무한전생-더 빌런 309화
29-역사는 거꾸로 간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두고 봅시다.”
재벌이 위버멘쉬 코리아를 끌어들이기 위해 경제적으로 미끼를 던지거나 압박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연회장에서 체포쇼가 벌어지고 난 다음 날, 구속이 이어졌다.
마약을 유통하거나 사용한 재벌집 자제들이 일제히 잡혀간 것이다. 이에 시사평론전문가들은 인질을 잡고 재벌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거라고 분석했다.
그런 인질극은 당하는 입장에선 비열하기 그지없었지만, 사회적으로 봤을 때 군부정권이 재벌에 칼을 대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고, 고분고분하게 말만 잘 들으면 그것이 여러모로 사회적인 부작용이 덜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재벌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우선 언론을 통해 온갖 이야기를 떠들어댔는데, 그중 반은 정청완 중장과 군부 정권에 대한 비난이었으며 절반은 경제 위기에 관한 것이었다.
군부 쿠데타에 의해 헌정 질서가 파괴되고, 이로 인해 국가 신용도가 떨어졌으며, 그로 인해 금융시장에 타격이 오고, 기업은 자금을 수혈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비단 그런 논리만 전개한 것이 아니라 신규채용도 줄였다. 사람들에게 경제적 혼란을 피부로 느끼게 하겠다는 심산인 걸 경완이 캐치하지 못할 리 없었다.
이에 대한 정청완 중장의 대응은 공기업에 대한 감사 명령이었다.
그 첫 빠다는 국민연금공단. 뇌물이나 향응을 받고 특정 기업에 유리한 방식으로 주가를 지탱해 주지 않았냐는 의혹에 대해 철저히 감사를 실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SNS를 통해 밝힌 정청완 중장의 말은 이러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신용이다. 신용의 근간을 해치는 불법 행위에 철퇴를 내리겠다.]
그러면서 첨부하길 국가 신용도가 떨어졌다고 떠들어대는 기자와 언론에 대해서도 주가조작 사범으로 구속영장을 이미 신청했고 신청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가 신용도가 떨어진 적은 없었으니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쿠데타가 벌어졌을 때 주가가 요동치기는 했지만 국가 신용도에 바로 영향을 주진 않았다.
자본주의는 국가가 독재인지 민주주의인지에 따라 신용을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돈을 잘 갚을 수 있느냐를 따질 뿐.
지금은 망해 버린 중국도 한때는 경제개방을 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면서 국가 신용도가 한국과 동일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한국이 독재정권이었던가? 그때의 중국이 민주화가 완료된 민주국가였던가? 아니었다.
정청완 중장은 팩트를 기반으로 여론전과 법적인 압박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해 기업들이 움직였다.
“오빠, 괜찮아?”
“응? 뭐가?”
그 와중에 미연이 경완의 상태를 물었다.
“요즘 엄청 소란스럽잖아.”
“아, 그렇기는 하지.”
“우리 회사로 엉뚱한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 모양이야.”
“무슨 문의?”
“오빠랑 나랑 광고모델로 기용하겠다던데?”
“무슨 광고인데?”
“그냥 종류가 많아. 생전 못 본 제품도 있고. 아 맞다. 아파트 광고도 있더라.”
“제정신인가?”
경완마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이미지가 들어간 광고가 잘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나야 모르지. 특이한 광고도 많잖아?”
“인상 깊은 광고를 만들려다가 뇌절하는 광고도 많잖아?”
애가 생겼으니 스포츠카를 더 큰 차로 바꾸라는 광고는 차 광고가 아니라 피임을 권장하는 공익광고가 되어버렸고, 10억을 받았습니다 광고는 사망보험에 안 든 애비를 책임감 없는 애비로 만들었으며, 날은 더운데 남친은 차가 없네라는 음료수 광고도 오지게 욕을 처먹었다.
어떻게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뇌리에 남겨져 보고자 발악을 한 결과는 이미지의 극심한 훼손이었다.
하지만 미연은 은근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래도 광고 때문에 대박 난 연예인이 한둘이 아닌걸? 오빠도 가능하지 않을까?”
광고가 모델의 이미지를 이용한다면, 반대로 광고가 모델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때론 잘 찍은 광고 한 편이 드라마나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보다 파급이 클 때도 있었다.
미연의 말에 경완은 어깨를 으쓱했다.
“난 딱히 이미지 개선이 필요 없는데?”
“그래?”
미연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완은 눈알을 굴렸다. 솔직히 자기 연인이 좀 더 잘나갔으면 하는 건 모든 이들의 공통된 마음 아니겠는가? 혹시 광고가 잘 나와서 경완의 이미지가 개선되면 미연에게는 분명 기분 좋은 일이리라.
그래서 그는 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설사 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야.”
“왜?”
“그 광고 제안들이 순수하게 광고를 목적으로 한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러면서 경완은 현재 물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부 정권과 재벌 및 언론의 알력다툼을 설명해줬다.
“그럼 이 광고 제안도?”
“그래. 다방면으로 아군을 만들기 위한 밑밥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지.”
“그럼 거절해야겠네?”
“그렇다고 무턱대고 거절하면 괜히 광고 제안을 받은 너희 회사는 어떻게 될까? 곤란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어디 있어? 오빠가 우리 회사 소속이 아닌데.”
“하지만 네가 그 회사 소속이잖아?”
“그게 뭐가 어때서?”
“너도 알잖아? 이 세상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일쑤라는 걸.”
오죽하면 상식적인 행동들이 미담처럼 알려지겠는가?
그리고 돈과 권력을 쥔 이가 마음이 급해지면 상식적인 수단보다는 빠르고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게 마련이었다. 그게 비상식적인 수단이라고 해도 그것을 지적하며 방해하거나 벌을 내릴 사람이 없으니까.
경완이 말을 이었다.
“이거 어디 잠시 피해 있어야 하나?”
무턱대고 해외로 피신해 있을 순 없었다. 적어도 위버멘쉬 코리아가 한국 사회와 유력인사들에게 낯을 들 수 있는 명분은 걸고 움직여야 했다.
그게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경완이 직접 광고 제안을 넣은 기업을 방문해서 양해를 구해야 할 수도 있었다. 이는 무척 귀찮은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 출구가 생겨났다.
[경완 씨, 오랜만입니다.]
위버멘쉬의 총수, 요하네스의 연락이었다.
“아! 총수님. 어쩐 일이십니까?”
[긴밀하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입니까?”
[예전에 국정원이 경완 씨에게 부탁한 일과 결은 같아요.]
경완은 과거 국정원의 용역을 받아 마약 조직과 그 유통 루트를 조져놨던 기억을 떠올렸다.
“결이 같다는 말은 규모는 다르다는 말인가요?”
[한국의 하찮은 마약 조직은 귀여워 보일 정도입니다.]
“역시 남미입니까?”
[네.]
“하지만 남미에도 위버멘쉬가 진출하지 않았나요?”
[그렇기는 하지만 역시나 쉽지 않더군요. 마약 조직들이 초능력 신물질로 아주 치명적인 약물을 만들었습니다.]
“치명적인 약물이라면……?”
[일시적으로 신체강화능력을 부여해주는 약물이죠.]
“그거 진짜 대단한데요?”
경완은 감탄했다. 슈퍼솔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나라가 있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 물건이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제게 말하지 않아도 미국이나 유럽 같은 강대국에서 나서지 않을까요?”
[그들은 나서지 못할 겁니다.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기도 하고 당장 확보도 어렵고 부작용도 엄청나거든요.]
“어떤 부작용인데요?”
[과용하거나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좀비가 되어버립니다. 그것도 신체강화가 적용된 좀비요. 마치 헐크 영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변하면서도 피와 살점을 탐하게 되는 짐승이 되죠.]
“이야. 그거 테러 단체 손에 들어가면 큰일 나겠는데요?”
[더 큰일인 건 이렇게 좀비헐크가 되어버린 사람의 체액에는 고농도의 약물이 녹아 있다는 겁니다.]
“그 말씀은…….”
[이 초능력 신물질로 이루어진 마약이 좀비헐크화된 신체 내에서 합성된다는 뜻이죠.]
어우, 미친 물건이었다.
“어떻게, 해독제나 중화제 같은 건 있습니까?”
[연구 중이고 프로토타입도 있지만 문제는 생산성입니다.]
생산성? 왜 중화제의 생산성이 문제일까?
“설마 사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효과가 나오는 물건입니까?”
[네.]
경완은 잠시 멍하니 입을 벌렸다. 뭐지? 평화로운(?) 초능력 퓨전 현대물에서 갑자기 초능력 바이오하자드가 벌어진다고? 이거 혹시 좀비 아포칼립스 떡밥인가?
경완이 불안감을 느낄 때 요하네스는 말을 이었다.
[생물군이 풍부한 남미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세계적인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막아야 합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허락의 대답은 아니었다. 그냥 조건이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을 뿐.
요하네스가 대답했다.
[관련 지역에 있는 모든 인간들을 사살하고 자료를 확보해 주십시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초능력 마약이 자연에 유출되지 않아야 합니다.]
“조용히 처리해야겠군요.”
[그렇습니다. 소란이 일어났다가 약물이 유출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혹시 상대방에게 초능력자가 있나요?”
[저희가 조사해 본 바로는 대부분이 초능력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아. 약물 때문에요?”
[대부분이 신체강화능력자라고 봐도 됩니다. 총알이 잘 안 통하죠.]
경완은 그제야 왜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화력이 능사가 아닌 상황. 확실한 무력적 우위를 확보해야 문제를 조용히, 은밀하게, 그래서 안전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저 혼자 가는 건 아니겠죠?”
[당연합니다. 미군과 저희 위버멘쉬의 첩보자원 및 전투요원도 지원할 겁니다.]
미군이랑 공조해서 일을 벌인다고? 위버멘쉬가?
스케일이 무척이나 커진 이야기였지만 경완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문제가 많고 꼴보기 싫은 것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아포칼립스에 준하는 사태가 일어날 위험성을 방치할 순 없었다. 좀비가 된 물고기나 고래가 좀비헐크마약이 섞인 체액으로 바닷물을 오염시키며 돌아다니는 장면을 경완은 용납하고 싶지 않았다.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국에는 제가 말을 하죠.]
그리고 다음 날 김준이 방문했다.
“남미로 가신다면서요?”
“이야기는 들으셨어요?”
“글쎄요. 기밀이라던데 일단 주한미군 기지로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경완은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짐도 간단히 챙겼고 미연과 이야기도 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위험하면 도망칠게.”
경완은 미연에게 손짓하고는 김준의 차에 탔다. 김준은 시동을 걸기 전에 그에게 서류봉투를 하나 건넸다.
봉투에는 ‘Secret’이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고 입구는 봉인되어 있었다.
“이게 뭔가요?”
“상부에서 전해주라더군요.”
경완은 봉인을 뜯고 봉투를 열어보자 안에는 사진과 지도, 그리고 서류가 있었다.
경완이 한국인이라고 한국어로 작성된 걸로 보이는 서류의 내용은 이번 작전에 대한 설명이었다.
작전의 개요를 본 경완은 왜 이 봉투가 김준을 통해 건네졌는지 이해되었다. 사실상 그의 원맨쇼가 작전의 핵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가 김준에게 물었다.
“어……. 이거 누가 짠 작전이에요?”
“왜요? 문제가 있어요?”
“내용은 알아요?”
“아니요.”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하긴 봉인된 서류봉투를 열어봤다면 경완이 열기 전에 입구가 뜯겨 있었겠지.
김준이 물었다.
“누가 짠 작전인지는 왜 궁금해요? 작전이 마음이 안 들기라도 해요?”
“어……. 거의 제가 조뺑이 구르게 만들어놨던데요.”
“음, 기밀자료니까 제가 내용을 확인해서는 안 돼요.”
얽히기 싫다는 기색에 경완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전방주시 중인 김준과의 시선을 마주칠 순 없었다. 아니 김준이 일부러 전방만 주시하는 건가? 경완의 시선을 피하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