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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전생 더 빌런-351화 (351/367)

무한전생-더 빌런 351화

32-레지스탕스

“괜찮을까요?”

“당연하죠. 김혜림 씨는 요즘 각광 받는 초능력 최면 암시 요법의 권위자니까요.”

김혜림 박사는 정신계 능력자였다. 다만 그 힘이 너무 약해서 초능력자가 아니라도 심지 굳은 사람에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명색이 정신계 능력자였기 때문에 정신계 능력자가 져야 하는 제약은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그런 불합리함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미약한 정신계 능력을 이용, 최면과 암시를 완벽하게 걸어 트라우마나 정신적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고 해소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그렇다. 경완이 마리아 소장에게 미연의 치유 능력 개발에 관해 상담 받는다는 목적은 날조였다.

그는 미연이 없을 때 마리아 소장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고, 마리아 소장은 최면 암시 요법의 전문가를 그 방안으로 내놓았다. 정확히 납치범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다.

경완은 불안감과 함께 미연이 최면에 빠지는 것을 지켜봤다.

“납치되었을 때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나요?”

김혜림의 말에 미연은 미약한 어조로 대답했다.

“네.”

“혹시 생각하기 싫은 일이 있었나요?”

“없었어요.”

“그럼 납치범이 당신에게 무엇을 했나요?”

“제게 말했어요. 요하네스는 나쁜 놈이라고요.”

“그 말을 믿나요?”

“네.”

“어째서요?”

“세계 정복은 나쁜 짓이고, 그 일에 우리 오빠를 끌어들이고 있으니까요.”

잠시 뒤 김혜림이 경완과 마리아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됐나요?”

경완의 물음에 김혜림은 대답했다.

“확실히 정신계 능력에 걸려있는 게 확실해 보여요.”

“회복할 수 있나요?”

“글쎄요. 정신이라는 건 상당히 미묘한 거라서요.”

인간의 정신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김혜림은 그것을 선천적 기질과 후천적 학습에 의해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정신계 초능력은 그 둘 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고, 어떤 간섭은 불가역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정신은 민감해서 함부로 건들면 안 돼요. 그게 설사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자칫 더 큰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

“결국 본인이 자신의 이상한 점을 깨닫고 극복해야 한다는 건가요?”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 거예요.”

“미연이 머릿속에 있는 S입자 덩어리 때문인가요?

김혜림이 고개를 끄덕이자 경완이 물었다.

“그건 도대체 뭐죠?”

그 질문에는 마리아 소장이 대답했다.

“정신계 능력으로 만들어진 S입자 구성체로 보고 있어요. 저도 경완 씨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로 놀라운 물건이에요.”

S입자의 농도를 검색하는 장치는 이미 개발되어 다양한 분야에 응용되고 있었다. 초능력자 확인 장치, 능력 발현 감지 장치 등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미연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S입자 구성체는 그 농도가 너무 희박하고, 미연이 가진 본연의 S입자에 가려져서 일반적인 장비로는 발견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마리아도 경완이 이상하다고 말해서 S입자 연구에나 사용되는 정밀 감지 장치를 사용해서 이상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혜림 박사가 마리아 소장의 말을 받아 이었다.

“아마, 사람의 감정 발현을 왜곡하는 종류로 보여요.”

인간의 감정은 그 근본을 따지면 대부분 하나일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길가는 거지를 보고 누군가는 동정심을 느끼는 반면, 누군가는 경멸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두 감정의 근원엔 ‘공포’가 자리했다.

다만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어’라는 무의식적인 공감성이 동정심을 자아낸다면, ‘나는 저렇게 되기 싫어’라는 무의식적인 공격성이 거지에 대한 경멸감을 만들어낸다. 두 감정의 발현 모두 거지라는 존재로 추락한 자신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상상하고, 그로 인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 정신의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즉,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적 태도는 사실 동전의 앞뒤, 주사위의 서로 다른 면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연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S입자 구성체가 무의식 속에서 벌어지는 발현 과정에 간섭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마리아는 설명했다.

요하네스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발현된 표현의 결과가 적대적이도록 말이다.

예를 들어 ‘요하네스는 대단한 사람이다’는 ‘우리 오빠 앞길을 막는 사람’, ‘요하네스는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이다’는 ‘우리 오빠를 이용하는 사람’, ‘요하네스에게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우리 오빠를 이용하기 위한 위선’ 등으로 말이다.

경완이 물었다.

“그럼 그걸 제거하면 원래대로 돌아올까요?”

중화 영역을 염두에 두고 한 질문이었지만, 김혜림이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장담할 수 없어요. 정확히 저 구성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해요.”

예를 들어 이미 미연의 정신은 심각하게 왜곡된 상태고,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S입자 구성체가 그 왜곡을 억제하고 있는 상태일 수도 있었다.

문제를 해결한다고 손을 쓰면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도록 덫을 깔아놓았을 가능성에 경완은 한 가지 해답밖에 찾지 못했다.

“미연에게 저 능력을 건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말이군요.”

어쩌면 미연에게 정신계 초능력을 사용한 자가 나이로비에서 자살특공을 한 테러범들의 정신을 만진 놈일 수도 있었다.

경완의 눈빛이 깊어지는 가운데 김혜림 박사가 말을 이었다.

“저 능력이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된다면 혹여 문제가 발생한다고 해도 치료가 가능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완은 김혜림 박사와 마리아 소장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오빠. 결과 나왔어?”

“아직. 좀 더 분석하고 연구한 다음에 알려준다네.”

경완은 치유 능력을 회춘 능력으로 발전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는 미연에게 거짓말을 하고, IAMSR에 휴가계를 냈다.

토마슨 청장은 이 바쁜 시기에 무슨 일이냐고 고개를 저었지만, 경완은 사정을 말해주지 않고 휴가를 밀어붙였다.

토마슨 청장은 태업하고 말겠다는 그의 협박에 결국 일주일의 휴가를 주었고, 경완은 그 길로 바로 불씨 재단으로 향했다.

불씨 재단은 여전했다. 세상이 격변하는 와중에도 부산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부고발자가 주목받기엔 그간 한국 사회가 정신없는 일을 많이 겪었다. 북한 붕괴라든가 서울 참사라든가.

강우빈은 미리 연락도 없었던 경완의 방문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사장님. 도대체 얼마 만에 오는 겁니까? 좀 자주 들리세요.”

“뭐, 굳이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가잖아요?”

“절 너무 믿으시면 안 됩니다.”

“그간 보여준 게 있으니까 믿고 맡기는 거죠.”

솔직히 경완은 이제 불씨 재단이 없어지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돈 버리는 셈 치고 만든 재단이니까. 내부고발자가 눈꼴시려운 인간들 엿 먹으라는 기분이 출자 결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나저나 뒤편에 공터가 있던데 좀 걸으면서 이야기할까요?”

“네, 그러죠.”

강우빈은 별다른 의심 없이 경완과 함께 재단 건물 뒤에 있는 공터로 향했다. 공터에는 인적이 없었다.

“무슨 이야기인가요?”

“음……. 사망기자 어디 있어요?”

“……그걸 왜 저에게 물으시죠?”

강우빈은 잠깐 멈칫했다가 아주 의아하다는 태도로 대꾸했다. 마치 자신은 사망기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양 말이다.

경완은 찬찬히 사정을 설명했다. 이미연 납치사건에 사망기자가 관련되어 있고, 미연에게 정신계 능력을 사용한 범인을 잡기 위해선 사망기자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강우빈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아무런 맥락도 없이 자신에게 말할 리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알고 있었습니까?”

자신이 비질란스의 샌드맨이라는 사실을.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강우빈 씨가 샌드맨이라는 사실이랑 저랑은 아무런 관련도 없으니까요. 아니, 없었죠.”

경완의 담담한 눈빛이 강우빈을 향했다.

“당신이라면 기꺼이 제게 사망기자와 접촉할 방법을 알려줄 것 같은데……. 아닌가요?”

나름의 정의와 협(俠)의 기질이 있는 강우빈이라면 미연이 당한 일을 듣고서도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경완의 판단이었다.

만약 모른 척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쉽게 갈 일이 조금 번거로워지는 것뿐이니까.

강우빈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비질란스가 활동을 중단한 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아십니까?”

“그렇기는 해도 점조직 나름의 끈끈함은 있겠죠. 솔직히 비질란스가 완전히 비밀결사처럼 행동한 건 아니잖아요?”

세계정복과 같은 대의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비밀결사라면 대의(大義)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비질란스는 경완이 보기엔 정의를 추구한다는 대의에 별로 진심인 것 같지 않았다.

비질란스는 어떤 대단한 비밀결사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보자는 소시민적 이상(理想)이 동기가 되어 몇몇 핵심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된 동호회에 가깝다는 게 경완의 판단이었다.

일단 비질란스는 영향력을 구축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들이 정말 자신들의 정의를 믿고 그 대의를 추구하자고 했다면 프로파간다로 추종자를 만들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비질란스는 그저 동호회에 수준에 불과했다.

사법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법적 자경행위 동호회랄까? 그러니 요하네스가 나서자마자 활동이 멈추고 조직이 와해되다시피 한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조직력이 탄탄했다면 충분히 저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라면 여전히 점조직으로서 연결선이 남아 있을 텐데요.”

경완이 말했다. 비질란스가 죄인을 특정하는 정보력은 역시나 사망기자에게서 비롯된 것 같다고 말이다. 아무래도 샌드맨 강우빈에게 죄인이 정말 죄인인지 판단할 정보력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사망기자가 원하지 않으면 접촉할 수 없습니다.”

“아. 거짓말.”

“…….”

“제게 진실의 스무고개가 있다는 걸 깜빡했나 봐요?”

강우빈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그의 반응을 유심히 살핀 경완이 입을 열었다.

“혹시 사망기자랑 사적으로 아는 사이?”

흠칫!

“아하!”

평범한 사람은 감지할 수 없을 정도의 작은 동요를 알아차린 경완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강우빈에겐 더없이 서늘하게 느껴지는 미소를.

“사망기자에겐 별일 없을 겁니다. 제가 약속하죠.”

그 말에 강우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경완으로부터 도망갈 수도 없고, 그의 요구를 거부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수작을 부렸다면 뭐라도 했을 것이다. 설사 그 일이 비도덕적인 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그 말에 경완은 고개를 끄덕였고, 사망기자의 신상을 들을 수 있었다.

사망기자의 이름은 도재영. 그와 강우빈의 인연은 비질란스 입단식에서부터 이어졌다.

비질란스의 입단식이란 서로의 원한을 해소해 주는 것. 그래서 강우빈은 사망기자, 도재영의 사촌누나를 강간한 수사관을 반신불구로 만들었고, 사망기자는 강우빈의 누나, 강민주의 억울한 죽음과 그 범인들을 만천하에 공개했다. 서로의 복수를 도운 것이다.

서로의 마음에 가장 응어리져 있던 부분을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해소해준 상대다 보니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 친해지고 신상정보도 교환할 수 있었다.

“지금쯤 아마 어떤 IT 기업에 취직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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