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화 (프롤로그) (1/227)

프롤로그

“여, 역시 농성하는 게 좋지 않을까?”

김 중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 병사들의 표정이 찡그려졌지만.

또 몇몇 병사는 김 중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식량도 다 떨어졌다니까요. 결국 부대를 버리고 이동해야 합니다.”

“시, 식량은…… 우리 부대가 산에 있으니까, 칡뿌리 같은 걸 캐든가 사냥을 하면…….”

“아니, 그런 걸 말이라고…….”

레이더반 박 병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부대원들의 눈에 있는 두려움은 가시지 않았다.

그야 그럴 만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갑작스럽게 세상에 몬스터가 나타나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부대 바깥과 연락해 보려 했으나, 일반적인 통화는커녕 부대의 긴급연락망도 작동하지 않았다.

인트라넷도, 전화도.

군용 주파수까지 모두 먹통이 되었다.

바깥세상이 긴급연락망조차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개판이 났으리란 건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여기는 그래도 안전하지 않습니까!”

“지금까진 그랬겠지.”

괴물조차 찾아오기 힘든 높은 산에 위치한 부대.

그리고 무엇보다 부대를 둘러싼 침입 장애물.

우리 부대가 아직까지 살아남은 이유다.

이런 이점을 버리고 이동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말로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고, 우리는 군부대라는 방벽을 버리고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부대원들이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듯하니.

“됐고, 점심인데 밥 먹고 하죠?”

나는 밥을 먹여야겠다.

“자, 오늘 점심은 사리곰탕입니다!”

사리곰탕.

준수한 맛으로 병사들에게 인기가 좋은 메뉴였다.

진한 고깃국에 담긴 높은 열량은 힘든 작업을 해야 하는 병사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거기에 특제 소스 하나를 섞어 주면 금상첨화.

나는 펄펄 끓는 사리곰탕에 소금을 넣는 척하면서, 스킬을 사용했다.

[주방장의 비밀 소스 - 용기]

[맛있는 음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음식을 먹은 대상들의 용기가 상승합니다.]

완성이다.

병사들이 근심 어린 얼굴로 곰탕을 한 술 떠먹었다.

김 중위는 여전히 생각이 많은 얼굴로 사리곰탕을 한 술 떠먹었다.

“아무튼 말이지. 다 먹으면서 들어봐. 후릅, 아무리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해도, 꿀꺽, 지금 나가는 건…….”

“무서우십니까?”

내 말에 김 중위가 잠시 멈칫했다.

“나가는…… 나…… 나가…….”

여기저기서 숟가락이 땅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김 중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나가아아!! 나가자고! 나가! 당장 짐 싸! 이 개자식들아! 군인이 돼서 그거 하나 무서워하는 게 말이 되냐! 이 사슴 같은 새끼들!”

그의 말에 전 부대원들이 호응하기 시작했다.

“X발! 까짓거 나가지 뭐!”

“부대에만 갇혀서 갑갑했는데 산책할 겸 몬스터 목이나 따러 갑시다!”

“크큭. 식후 운동으로는 제격이겠어.”

“끼에에에에에엑!!!!”

“대한국군 만세!!!”

가장 벌벌 떨던 김 중위의 용맹한 끼에엑 소리를 들으며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역시 사람은 밥을 먹어야지.”

병장 신영준.

23세.

나는 이 부대를 책임지는 취사병이다.

1화 각성

대한민국 군대의 일상은 대체로 평이하다.

검열이나 훈련이라도 있지 않은 이상에야, 매일같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하루.

그나마 주말에는 부대도 업무에서 조금은 벗어나 휴식을 즐기지만.

그렇지도 않은 부서도 있다.

“신영준 병장님? 오늘 저녁 오징어볶음인데 오징어가 안 보입니다.”

“뭐? 너 부식 목록 똑바로 체크하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

“신 병장님, 김 중위한테 전화 왔는데, 자기 점심 고등어 튀김 먹기 싫다고, 요리 하나만 해 주면 안 되냐고 합니다.”

“아니, 그 새끼는…… 하, 그냥 알겠다고 그래.”

취사반.

자고로 전투력의 핵심은 영양에서 나오고, 그 영양 보급은 취사병들이 책임진다.

식사는 인간의 3대 욕구와도 연관된바.

그러니 주말이고 뭐고, 하루도 쉴 수 없는 것이다.

맛없는 음식이나 매일같이 똑같은 음식만 먹인다면 병사들의 사기도 바닥을 치기 마련.

취사병들은 매일같이 바뀌는 다양한 메뉴를 먹을 만한 수준으로 요리해 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언가 문제가 생긴다면, 모두 취사병의 임기응변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하…… 됐고, 저번에 부대 회식용으로 빼놨던 삼겹살 있지? 저녁 오징어볶음 말고 그걸로 삼겹살볶음 해서 줘. 애들도 좋아할걸. 애들 삼겹살이면 환장하니까, 니가 직접 배식하는 거 잊지 말고.”

“옙!”

“냉장고에서 생크림이랑 닭고기 좀 꺼내 와라. 김 중위는 면 요리 좋아하니까 닭고기 파스타 같은 거 해 주면 잘 먹겠지, 뭐.”

대충 이런 식으로 말이다.

주말에도 제대로 쉴 수 없고 짜증 나는 일이었지만.

“전역도 며칠 안 남았는데, 고생 많으십니다.”

“그러게 말이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이 짓거리도 드디어 얼마 안 남았다는 것.

나는 말년 휴가를 며칠 앞둔 말년 병장이었다.

물론 말년이라고 편히 쉴 수 있는 취사반이 어디 있겠냐마는.

“전역하시면 뭐 하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맞후임의 질문은, 전역을 얼마 안 남겨 둔 병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할 법한 생각이었다.

사회 나가면 뭐 하지.

당연히 나도 생각이 있기는 했다.

“요리 한번 제대로 배워서, 식당이나 차려 보려고.”

“예? 요즘 요식업계 완전 헬 아닙니까?”

나는 취사병이지만.

원래부터 요리를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어쩌다 보니 보직이 취사병으로 배정됐을 뿐.

내가 군대에서 처음 겪어 본 요리도 요리가 아니라 조리에 가까운 취사였고.

하지만, 제대로 된 요리를 하고 싶어진 이유는 있다.

“내 음식 먹고 맛있다고 해 주는 애들 보니까 뭔가 좀 뿌듯하더라고. 그래서 제대로 배워 보려고.”

“어, 그럼 신 병장님. 저 일하던 식당으로 오시겠습니까? 제가 선배로서 잘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누구 좋으라고? 그리고 일식은 생각 없어, 인마.”

내 맞후임.

준혁이는 사회에서도 일식을 공부하다 들어온 녀석이었다.

안 그래도 요리 업계는 군대보다도 위계질서가 빡세다는데.

후임의 후배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일식도 괜찮은데.”

“아 됐고, 아까 보니까 소금 다 떨어져 가더라. 창고에서 좀 가져와 줘.”

“옙.”

소금 같은 재료는 식당 건물에서 약간 떨어진 부식 창고에서 보관한다.

창고로 가기 위해 식당의 뒷문으로 나서는 준혁이를 보며, 나도 잠시 딴생각에 잠겼다.

‘일식이라…….’

어쩌면 일식을 배우는 것도 나쁘진 않을지도.

군대에서 배운 요리는 대부분 한식이지만, 전역하고 나서도 한식을 배워야 할 이유는 없고.

후임 녀석의 후배로 들어가는 건 질색이지만 다른 식당에서 배우는 건 괜찮지 않을까.

‘아니, 그래도 역시 요리의 꽃은 양식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준혁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

뒷문을 연 준혁이가,

문밖에서 튀어나온 ‘무언가’에 덮쳐지는 모습이 보였다.

“어?”

처음엔 또 누가 장난을 치나 했다.

준혁이는 귀여운 외모 때문에 병장들의 장난감이 되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그 무언가가 준혁이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으니까.

“주, 준혁아!”

“커…… 커헉.”

잠깐 당황했지만, 곧바로 발이 움직였다.

저게 무슨 생물인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빨리 구해야 해!’

당황스럽긴 하지만, 일단은 준혁이를 구해야 한다.

그런 생각에 마침 근처에 있던 조리용 대형 삽을 들고 몸을 날렸으나.

빠지직.

한 박자 늦고 말았다.

찌직, 찍-

살점이 뜯어져 나가는 소리가 나며, 그 괴물에 입에 연분홍빛 무언가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왔다.

사람의 신체 기관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목에서 뜯겨 나오면 안 되는 무언가란 건 알았다.

‘……준혁이가, 죽었……어?’

불과 몇십 초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던 후임의 장기가 흩날리는, 비현실적인 광경.

그 징그러운 모습에, 난 대형 삽을 꽉 쥔 채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신 병장님? 방금 소리는 대체…… 허억!”

식당 구석에서 고등어를 튀기고 있던 막내 녀석도 그제야 준혁이를 보고 당황한 듯 소리를 질렀다.

멍하니 굳어 있던 나는, 그 소리 덕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저게 대체, 뭐야. X발…….’

그제야 준혁이를 덮친 생물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그러나 보인다고 해서, 그게 뭔지 알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나마 비슷한 생물을 찾자면 도마뱀일까.

유선형의 얼굴을 포함한 전신이 두꺼운 비늘로 덮여 있었으며, 키는 거의 사람만 했다.

그러나 뱀과 달리 이빨은 날카로웠고, 준혁이의 몸을 헤집는 손에는 날카로운 발톱도 보였다.

세로로 찢어진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번들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막내가 지른 소리를 듣고, 이쪽을 본 거다!’

준혁이를 실컷 뜯고 맛보던 괴물 녀석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누가 봐도 다음 사냥감을 노리는 모습.

살면서 사냥감의 입장이 되어 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온몸이 서늘해지는 느낌.

‘제기랄!’

처참하게 널브러진 후임 녀석의 시체가 보인다.

나는.

나는, 저렇게 되고 싶지는 않아!

“막내!”

“예, 예?”

“연장 챙겨!”

부랴부랴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는 막내를 뒤로한 채.

나는 그 괴물을 향해 조리용 대형 삽을 휘둘렀다.

대량 조리에나 쓰이는 대형 삽은 충분히 크고, 무겁고, 단단하다.

진심으로 휘두르면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닐 흉기.

그러나…….

깡!

무기와 동물이 부딪쳤을 때 나선 안 되는 소리가 들렸다.

“크륵!”

“아악!”

마치 벽을 향해 휘두르기라도 한 것처럼.

오히려 삽을 후려친 내 팔이 반동으로 인해 시리게 저려 왔다.

격통에 자칫 삽을 놓칠 뻔했지만.

무기마저 잃으면 끝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덕에 가까스로 쥐고 있을 수 있었다.

‘무슨 쇳덩어리도 아니고……!’

고통에 떨고 있는 나와 달리.

괴물 녀석은 삽에 맞은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발톱을 휘둘러 댔다.

‘큭!’

팔에 고통이 느껴지자마자 몸을 뒤로 뺀 덕에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조금만 늦어도 시체 한 구가 늘어날 뻔했다고 생각하니, 심장의 벌렁거림이 멈추질 않았다.

‘저 비늘! 어쩐지 더럽게 두꺼워 보이더라니!’

단단함은 보이는 것 그 이상인 듯했다.

“시, 신 병장님!? 저게 대체 뭡니까!?”

“나라고 알겠냐!”

당황한 막내 녀석이 말을 걸어왔지만, 당황스럽기는 나도 마찬가지.

차라리 산을 돌아다니던 호랑이가 덮쳐 온 상황이 낫지.

‘X발, X발, X발! 저딴 괴물이 왜 현실에 있는 거냐고.’

갑작스럽게 덮쳐 온 괴물의 불합리함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속으로 욕을 되뇌는 것밖에 없었다.

막내 녀석도 부랴부랴 나처럼 대형 삽을 하나 들고 왔지만, 큰 의미는 없겠지.

온몸이 단단한 비늘에 둘러싸인 괴물의 모습.

마치 중세의 기사를 연상케 했다.

‘전신을 철갑으로 두른 맨앳암즈 한 명은, 농기구를 든 농민들을 상대로 학살도 할 수 있다던가.’

학살당하는 양민의 입장이 되어 보니, 뼈에 시리도록 체감이 된다.

아무리 무기를 휘둘러 봐야 비늘에 흠집이나 내면 다행인 수준이니.

상대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런 기사를 상대하려면, 어떻게든 지치게 만들거나, 아니면 뜨거운 기름을 붓거나…….’

아.

상대할 방법이 있었다.

‘오늘 점심. 고등어 순살 튀김…….’

이딴 게 먹힐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서서 죽음을 기다릴 생각은 없다.

나는 들고 있던 대형 삽을 온 힘을 다해 괴물 녀석에게 던지고 몸을 뒤로 날렸다.

“크락!”

나름대로 전력을 다해 던진 삽이 머리에 맞았음에도 괴물 녀석은 잠깐 움찔할 뿐.

그게 오히려 화를 돋우었는지.

놈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이 느껴졌다.

‘제발, 제발, 늦지 마라!’

괴물이 움찔한 그 잠깐 사이.

나는 좁은 식당을 가로질러 뒤에 있는 튀김 솥에 도착했다.

생선 찌꺼기가 둥둥 떠다니는, 기름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튀김 솥.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근처의 대형 국자를 쥔 나는, 급하게 기름에 국자를 처박았다.

그리고.

촤아악

“크라악!!!”

손만 뻗어도 닿을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던 괴물 녀석에게, 펄펄 끓는 기름을 뿌렸다.

튀김 요리를 할 때 기름의 적정 온도는 최소 180도.

겨울에도 튀김 요리를 하다 보면 근처를 지나가기만 해도 땀이 날 정도의 고온.

그 기름을 얼굴에 직접 뒤집어쓴 괴물 녀석이, 괴로움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아직이야!’

괴로워하는 듯 보이지만, 녀석은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쇼크로 기절할 만한 짓을 당하고도.

하지만 기름 공격이 통한다는 것은 확인했다.

나는 솥 안의 기름을 아예 비워 버릴 기세로, 계속해서 국자를 휘둘러 댔다.

펄펄 끓는 솥의 열기.

거칠게 기름을 뿌려 대다 보니 나한테도 몇 방울씩 튀는 기름이, 미칠 듯이 뜨겁고 아팠지만.

‘제발 죽어라, 제발……!’

그딴 걸 신경 쓸 겨를 따윈 없는 상황.

눈물이 찔끔 새어 나오는 것을 참으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케륵…….”

그렇게 몇 차례 기름을 뿌려 댔을까.

식당 바닥이 번들거리는 기름으로 도배될 때쯤.

고통에 몸부림치던 괴물 녀석이,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주, 죽은 건가?’

일단 움직임은 멈췄지만…….

‘죽은 척하는 걸 수도 있어.’

죽인 줄 알고 접근했다가 만약 살아 있기라도 한다면 큰일.

나는 조심스럽게 괴물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시, 신 병장님? 이 녀석, 죽은 겁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인 듯.

막내 녀석이 삽을 들고 괴물 녀석에게 접근했다.

“야, 야! 아직 살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

“제, 제대로 죽었는지 확인만…….”

콰직.

시체를 뒤집으려고 다가가던 막내 녀석의 발을 괴물 녀석이 물어뜯었다.

“끄아아악!”

“막내야!”

다급하게 뛰쳐나갔지만, 나는 혹시 몰라 괴물에게서 거리를 벌리고 있었던 상황.

찌지직…….

내가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괴물 녀석은 막내의 배를 뜯어 먹고 있었다.

죽기 직전까지 몰린 줄 알았더니.

방심한 사냥감이 다가오길 기다렸던 것이다.

‘마…… 막내까지…….’

이젠 정말 나밖에 남지 않았다.

나까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이빨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기, 기름. 더 뿌려야.’

슬쩍 기름 솥에 슬쩍 시선을 주었으나.

더는 남아 있는 기름도 없었다.

당장은 막내 녀석을 뜯어 먹느라 바쁜 괴물이었지만 언제 나를 노릴지 모른다.

‘막내한테 신경이 팔린 사이 도망쳐? 아니, 괜히 뛰었다가 신경을 자극하기라도 하면…….’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던 중.

‘어?’

괴물의 등에서, 무언가 빨간 것이 보였다.

시커먼 비늘 사이에 드러난.

새빨갛게 달아오른 부위.

‘피, 피부가 드러난 건가?’

온몸을 단단한 비늘로 덮고 있는 괴물이었지만.

뜨거운 기름을 연거푸 뒤집어쓴 결과.

살이 익고 비늘이 갈라져, 안쪽의 달아오른 피부가 군데군데 노출된 것이다.

단단한 비늘과 달리.

평범한 동물하고 별 차이 없어 보이는 피부.

명백한 약점.

‘도망치려다가 추격당하기라도 하면 정말 끝장이야. 그럴 바에야…….’

막내에게 신경이 팔린 지금.

약점을 노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노출된 피부 면적이 넓지는 않아, 삽 같은 거로 후려치는 건 의미가 없을 듯했다.

‘약점을 노린다면, 때리는 게 아니라, 찔러야 해.’

다행히 식당에는 찌르기에 적합한 무기도 많았다.

막내를 잡아먹고 있는 괴물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식당 구석의 칼 보관함으로 향했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보관함 안에서 가장 길고 날카로운 식칼을 꺼낸다.

‘준혁아. 좀 빌린다.’

일식을 공부하던 준혁이의 개인 사시미칼.

스승님한테 받은 칼이라며 애지중지하며 관리하던 칼이다.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은 칼은, 살짝만 갖다 대도 베일 듯이 날카로웠다.

“크륵, 크르륵…….”

괴물은 여전히 막내 녀석을 뜯어 먹느라 바빠 보였다.

사람의 내장이 흩뿌려지는 장면을 실제로 본 것은 살면서 처음.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올 듯했지만, 어떻게든 참았다.

‘얼굴에 기름을 뒤집어쓴 덕에, 눈이 안 보이는 건가?’

상처를 회복할 영양분이 필요하기라도 한 것인지.

괴물 녀석은 막내의 시체를 뜯어 먹느라 바빠 보였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뒤를 잡는 건 어렵지 않았다.

‘노릴 만한 곳은, 목…….’

어떤 동물이든, 머리하고 몸이 이어지는 목을 다치면 죽는다.

설마 비늘 안쪽도 칼을 튕겨 낼 정도로 단단하지는 않겠지.

‘하나, 둘……!’

목 근처의 비늘이 벌려진 틈 사이로.

온 힘을 다해 사시미칼을 쑤셔 박았다.

“크라아아악!”

여기까지 와서도 힘이 남아 있었는지.

괴물 녀석은 목을 찔렸음에도 거칠게 저항하며 몸부림쳤다.

“이, 제발, 곱게, 좀…….”

녀석에게 뿌린 기름은 아직도 다 식지 않아 뜨거웠고.

단단한 비늘을 가진 괴물의 몸부림에 부딪힐 때마다, 쇳덩이에 맞은 듯이 아팠다.

“뒈, 져…… 이 새끼야…….”

하지만 나 역시 질 수는 없었다.

온몸으로 녀석의 저항을 억누르며.

한 손으로는 녀석의 머리를 짓누르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목에 박은 사시미칼을 이리저리 쑤시고 후벼 댔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러 댔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한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끄…… 끄륵…….”

거세게 저항하던 녀석의 몸에서 힘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눈앞에 이상한 문구가 보였다.

띠링-

[각성을 축하드립니다!]

[각성자 : 신영준]

[직업 : 신입 요리사 Lv. 1]

[능력치 : 힘 9, 민첩 10, 마력 8, 행운 9]

[특성 : 최하급 단도 숙련, 최하급 요리 숙련, 최하급 식재료 감별, 최하급 화염 친화]

[스킬 : 요리사의 눈, 주방장의 특별 소스]

[포인트 : 0pt]

[각성자에게서 고유 재능이 감지되었습니다.]

[재능 : 대규모 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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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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