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합류
[각성하셨습니다.]
[월드 이벤트 - 세력전이 진행 중입니다.]
뭉쳐야 산다!
세력을 만들거나, 세력에 소속되어 보세요.
가장 빨리 세력을 일궈 낸 이들에겐, 특별한 특전이 주어질지도 모릅니다!
[현재 소속 세력 - 없음]
[월드 이벤트 - 점령전이 진행 중입니다.]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영토를 점령하고, 확장하세요.
세력을 키울수록 특별한 특전이 주어질지도 모릅니다!
[소속 지역 - ROK. 17]
[지역 내 점령전 현황]
1. ???(??%)
2. ???(??%)
3. ???(??%)
“이게 대체, 뭔…….”
괴물을 죽인 순간 나타난 정체불명의 문구.
사람이 죽어 나갔다.
살아남은 나 역시 온몸에 힘이 빠져 부들부들 떨리는 상태.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는, 그런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듯 경박하기 그지없었다.
‘각성하셨습니다? 무슨 각성?’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클릭하니, 마치 게임의 시스템창처럼 반응한다.
각성한 직업은 요리사.
뭔가 요리에 관련된 특성들에…….
‘이건 또 뭐야. 점령전?’
그 내용에 당황하는 사이.
멀리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타다다 타당.
타당 탕.
군인이라면 익숙할 수밖에 없는 소리.
총성.
멀쩡한 부대 내에서, 훈련도 없는 주말에 총성이 들려오는 상황.
그 이유를 짐작하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른 곳에도 나타난 건가?”
한 마리만 해도 끔찍한 이 괴물이, 부대의 다른 곳에도 나타난 것이다.
나는 눈길을 돌려 발아래 쓰러져 있는 괴물의 시체를 봤다.
“이 한 마리한테도 죽을 뻔했는데.”
아니, 죽을 뻔했다 수준이 아니다.
식당 뒷문 앞에 목이 뜯긴 채 죽은 맞후임.
기름 범벅이 된 식당 안쪽에서 괴물에게 배를 뜯겨 죽은 막내.
후임 두 명이 실제로 죽었다.
총원 4인.
휴가 나간 한 명을 제외하면 3인의 취사반에서 두 명.
사실상 과반수의 사상자가 나온 것이다.
한 마리한테 그렇게 당했는데, 이런 괴물이 여러 마리가 나온다면.
솔직히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방금이야 어떻게든 살아남았다지만.”
후임들이 아닌 내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죽음.
말년 휴가가 3일 남았는데, 여기서 죽는다고?
“그럴 순 없지.”
살아남을 거다.
살아남아서, 사회로 나가서 제대로 된 요리를 배우고, 식당을 열 거다.
가게 디자인이나 마케팅에도 신경 써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에도 등록될 거다.
그러려면.
여기서 뒈질 수는 없었다.
“살아남으려면…….”
유명한 격언이 하나 떠올랐다.
“뭉쳐야지.”
괴물을 죽이느라 온 힘을 쓴 탓에 부들부들 떨리는 손.
그 손으로 무릎을 쥐고 몸을 일으켰다.
살아남으려면 다른 부대원들과 합류해야 한다.
괴물의 목을 쑤시느라 덜덜 떨려오는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준혁이의 사시미칼을 들고.
총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몸을 옮겼다.
* * *
식당 건물은 부대의 다른 건물들과 거리가 떨어져 있는 편이었다.
애초에 규모가 크지 않은 부대라 건물 간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나는 총소리가 들려왔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마 탄약고일 텐데.”
사실 당연한 추측이다.
군대의 특성상 평상시에 부대원이 총알을 가진 경우는 거의 없다.
훈련 상황 등을 제외하면 총알은 대부분 탄약고에서 보관하니까.
총소리가 들려온 방향도 그렇고.
아마 부대원들이 있는 장소는 탄약고일 게 분명했다.
문제라면.
“하필이면 정반대 쪽이냐.”
식당 건물이 부대의 서쪽 끝에 있다면, 탄약고는 동쪽 끝쯤에 있다.
식당에서 탄약고로 가려면 말 그대로 부대 전체를 가로질러야만 한다.
애초에 부대의 크기가 크지 않은 만큼, 평상시에는 느긋하게 걸어가다 보면 도착할 위치였겠지만…….
괴물이 돌아다닐지도 모르는 지금은, 한없이 위험하고 먼 거리.
‘가능한 한 건물을 통해서 이동하자.’
부대의 도로는 너무 개방되어 있다.
평범하게 길을 걷다간 멀리서 내 모습을 발견한 괴물에게 추격당할지도 모르는 일.
탄약고까지 가는 길에 괴물과 마주치면 끝장이다.
들키지 않도록 주변 건물 내부를 통해 이동하는 게 낫겠지.
우선 식당의 바로 옆에 있는 보급반 건물로 뛰어가 몸을 숨겼다.
그리고 보급반 건물을 가로질러 반대편 입구로 나간 후, 그 옆의 시설반 건물로 빠르게 달려간다.
그렇게 건물에서 건물로.
주위에 괴물이 또 있지는 않나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탄약고로 향했다.
꽤 많은 건물을 지나쳤지만 인기척은 하나도 없었다.
오늘은 주말.
간부는 물론이고, 몇몇 부서를 제외하면 병사들도 출근하지 않은 탓이다.
타다당.
그렇게 조용한 와중에도, 멀리서는 여전히 간헐적인 총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의지해 가며 건물들 사이를 이동하던 와중이었다.
나는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생활관.’
다른 건물들은 주말이라 조용할 수 있지만.
부대원들이 생활하는 생활관은 온갖 잡담 소리와 TV 소리 등으로 시끄러워야 정상.
그러나 지금은 다른 건물들과 비슷하게 조용했다.
‘만약 그 괴물들이 사람을 습격했다면.’
나는 불길한 예감을 안은 채 생활관 문을 열었다.
그 안은.
예상한 대로의 모습 그대로였다.
“우욱…….”
통신반 막내 윤수.
밖에서 축구 선수 하다가 왔다던 시설반 박 상병.
그리고, 얼굴이 갈기갈기 뜯겨 알아볼 수 없는 누군가.
생활관 복도에 죽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대체, 몇 명이나 죽은 거야.”
생활관의 각 호실 안에도 시체가 보였다.
몇몇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관물대가 무너져 있는 등.
모르긴 몰라도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건 확실해 보였다.
식당에서 나와 후임들이 괴물과 싸우고 죽어 나갈 때.
주말이라 쉬고 있던 생활관의 병사들도 소란을 겪은 것이다.
“식당에는 끓는 기름이라도 있었지.”
괴물의 비늘은 엄청나게 단단했다.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흠집을 내기도 어려웠을 테지.
나야 끓는 기름으로 녀석을 튀겨 버리다시피 해서 겨우겨우 살아남았다지만…….
그런 것도 없는 생활관 병사들은 괴물과 싸울 방법도 없었을 테니.
말 그대로 학살이 펼쳐졌을 거다.
그러나.
생활관마다 배치된 총기 보관함의 총기들이 몇 정씩 빠져 있는 게 보였다.
대충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괴물들이 생활관을 습격했고, 싸움이 안 된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총을 꺼내고 탄약고로 달려간 거야.”
그리고 탄약고에서 총알을 보충하고, 괴물들과 싸우기 시작한 것.
그게 지금 들리는 총성의 원인일 것이다.
그렇게 생활관을 가로질러 나온 나는 탄약고 쪽으로 몸을 옮겼다.
생활관을 나선 다음부터는 탄약고로 가는 길에 시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긴, 총을 들고 탄약고로 달려가는 걸 괴물들이 그냥 보내 주진 않았겠지.
저 시체들은 괴물들의 추격에 따라잡힌 병사들일 것이다.
그렇게 시체들을 지나치며 탄약고로 향하던 중.
꿈틀.
또 다른 시체인 줄 알고 별생각 없이 지나가려 했던 무언가가…….
움직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숨을 집어삼킬 수밖에 없었다.
“크르륵.”
낮게 울리는 짐승의 소리.
‘젠장…….’
길옆에 난 하수도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던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시체는 맞았지만.
그걸 뜯어 먹고 있는 괴물이 그 뒤에 있었다는 것까진 알아보지 못했다.
식당에서 본 괴물과 똑같이 생긴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파충류 특유의 눈동자가 기괴하게 번들거리며 나를 바라본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그렇게 괴물한테 안 들키려고 조심했는데!
탄약고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는 끓는 기름도 없어.’
생활관 안의 시체들이 생각났다.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한, 병사들의 시체.
그곳에 괴물의 사체는 없었다.
그렇게 많은 병사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었는데.
나라고 뭐가 다를까.
“내가…… 휴가를 3일 남겨 두고 뒈진다고?”
이럴 줄 알았으면 말년 휴가 3일만 빨리 신청할걸.
태준이 그 녀석이 휴가 맞춰서 나가자고 하지만 않았어도.
동기 사랑은 무슨, 덕분에 부대에 사이좋게 묻히게 생겼다.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사이.
도마뱀을 닮은 괴물 녀석이,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X발 그래. 어디 한번 해 보자.”
이대로 괴물의 한 끼 식사가 될 수는 없다.
나는 준혁이가 열심히 관리한 사시미칼을 오른손에 쥐고 자세를 잡았다.
‘암만 괴물이라도 칼로 쑤시다 보면 어딘가는 뚫리겠지.’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그래도 간단히 죽어 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괴물의 움직임에 집중하던 참이었다.
[스킬 -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재료 분석 중…….]
눈앞에.
또다시 정체불명의 문구가 떠올랐다.
“뭐, 뭔데 이거!”
아까도 떠올랐던 이상한 글자.
아까와 다른 점은 이 글자가 시야를 가려서 괴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냥은 안 죽겠다고 각오하고 칼을 들었는데.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허무하게 죽나 싶었던 순간.
[재료 분석 완료.]
[‘최하급 요리 비결 - 리자드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머릿속에.
이 괴물을 ‘손질하는 법’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리자드는 비늘이 두껍고 덩치가 커 손질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요령만 안다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손질할 수 있는 식재료 중 하나이다. 우선은 숨통을 끊고 몸의 피를 빼내는 것이 중요한데……]
평생 채소나 손질해 봤지.
살아 있는 생명체를 손질해 본 적은 없음에도.
[리자드의 외피는 비늘 때문에 손질하기 어렵지만, 관절부는 유연한 움직임을 위해 비늘이 없고 부드럽다. 그중에서도 왼쪽 겨드랑이 부분은 심장과 가까운 부위로, 이곳을 가볍게 찔러 주면 심장 근처의 혈관이 잘려 나가 간단하게 피를 뺄 수 있다.]
평생 낚싯배 위에서 산 선장이 횟감을 보는 것처럼.
30년 차 정육점 사장이 돼지, 소, 닭을 보는 것처럼.
……요리사가, 식재료를 볼 때처럼.
“크라아악!”
괴물 녀석이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내가 공격을 피해 뒤로 도망갈 것이라 예상했는지, 매우 큰 동작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공격을 피해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괴물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발톱을 휘두르던 자세는 빈틈이 많았다.
특히 팔을 크게 휘두른 탓에, 그 겨드랑이 부분도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
‘왼쪽 겨드랑이 안쪽.’
내 기준으론 오른쪽인가.
그곳을 향해 칼을 찔러 넣었다.
‘어?’
당황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잘못 찔렀나?’
칼날이 너무 쉽게 들어간 탓에.
혹시 허공에 칼을 찌른 게 아닌가 싶었던 것.
[특성 - 최하급 단도 숙련]
[단도 계열의 장비를 사용 시, 숙련도가 향상됩니다.]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피?”
내가 찌른 겨드랑이 부위.
그곳에서 괴물 녀석의 피가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크, 륵…….”
내게 달려들 때의 기세는 어디에도 없이.
겨드랑이 사이로 피를 흘리던 괴물은 점점 힘을 잃는 듯하더니.
내 몸 위로 푹, 하고 쓰러졌다.
죽음.
‘죽은 척이 아니야. 진짜로 죽었어.’
괴물이 죽음과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뭐라 설명하기 힘든 황홀한 감각.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
[요리사의 눈]
[훌륭한 요리사는 다루지 못하는 식재료가 없습니다.]
[그것이 비록 한 번도 다뤄 보지 못한 재료라고 해도요!]
[‘식재료’로 판정되는 대상에 한정해, 관찰을 통해 대상의 올바른 조리법, 손질법 등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스킬의 설명은 이랬다.
“……식재료.”
옛날에, 너튜브에서 봤던 영상이 하나 떠올랐다.
도마 위에서 미친 듯이 날뛰던 생선이, 지느러미 사이를 푹 찌르자 순식간에 잠잠해지고.
거기서부터 피가 쏟아져 나오던.
생선 손질 영상.
확실히.
푹 찌르니 피가 쏟아져 나오며 죽는 괴물은 그 영상하고 비슷하긴 했지만.
“이 괴물이 음식 재료라고?”
손질법은 그렇다 쳐도, 조리법은 또 뭔?
[리자드 조리법의 깨달음 - 리자드 고기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나, 지나치게 푹 익히면 질겨지는 경향이 있으며, 잡내를 제거하지 않을 시 누린내가 심해 조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재료 중 하나이다. 추천되는 조리법은…….]
미친.
나는 눈앞에 떠오르는 괴물의 조리법을 일부러 치워 버렸다.
저 녀석은 사람을 잡아먹은 괴물이다.
그 괴물을 다시 사람이 먹는다니, 끔찍하잖아.
“어찌 됐든. 살았으니까 다행인가.”
갑작스럽게 눈앞에 나타나는 문구.
뜬금없이 머릿속에 주입되는 손질법까지.
아직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살아남았단 사실에 감사할 일이었다.
내 위에 엎어져 있던 괴물의 사체를 치우고 총성이 들려오는 탄약고 쪽으로 몸을 옮겼다.
운이 좋게도 방금 ‘손질’한 괴물 외에 다른 괴물과는 마주치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탄약고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신영준 병장님?”
“빨리 안으로 오십쇼!”
탄약고 근처에는 생활복 차림에 총만 덜렁 든 병사들이 모여 있었다.
“사, 살았다.”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 힘이 빠진다.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모여 있는 부대원들의 얼굴을 둘러봤다.
그 순간.
[‘최하급 요리 비결 - 영장류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
내 직업, 신입 요리사.
평범한 요리사는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