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31화 (31/227)

31화 관사 (3)

“……하, 방음 엄청 안 되는구만.”

건물 안에 들어서자, 사방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좀비의 위치를 파악할 방법은 소리뿐이다.

‘이래서야 소리로 파악하는 건 불가능해.’

건물 전체가 좀비로 들어찬 것일까.

사방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각성자들의 감각이 일반인보다 예민하다 한들, 이 안에서 숨어 있는 좀비의 위치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불안하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고.

결정을 내린 나는 뒤를 보고 명령을 내렸다.

“일단 후퇴…….”

그때였다.

“신 병장님!”

뒤돌아 건물 밖으로 나가려던 나를 향해, 병사들이 달려드는 것이 보인다.

잠깐 당황했으나.

나를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란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커어…….

내 머리 위.

그곳에서 거친 숨소리 하나가 뚜렷하게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제기랄!’

낡은 건물의 천장을 지나는 수도관.

그곳에 보이지 않게 올라가 있던 좀비가 나를 덮치며 떨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황급히 손을 들어 머리 위쪽을 보호했다.

“카아아아악!!!”

“큭!”

콱!

다행히도 반응이 늦지는 않았다.

오른팔의 군복 위로 좀비의 이가 박혀 든 것이 느껴졌다.

‘그냥 군복이 아니라, 총알도 몇 발은 버틸 수 있는 군복.’

잘 쳐줘 봐야 성인 남성 수준이라는 좀비.

아무리 강하게 깨문다고 한들, 썩어 가는 이빨 따위로는 리자드 가죽으로 만들어진 군복을 뚫을 수는 없다.

‘군복이 보호해 주지 않는 부위를 물렸으면 끝장이었어.’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내 팔을 문 좀비 녀석을 관찰한다.

군복을 뚫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다른 곳을 물려는 듯 움찔거리는 모습.

‘어딜!’

다음 행동은 내가 더 빨랐다.

팔을 크게 휘둘러 녀석을 바닥에 내던져 버린다.

쾅!

카악!

바닥에 건물 바닥에 내쳐진 좀비.

카아아아아악!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인지 곧바로 일어나 나에게 달려들려 했으나.

콰직!

강하게 내리친 군홧발에 좀비의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전투직은 아니지만 나도 각성자니까.’

군화 신은 발로 강하게 내리치면 뼈를 깨트릴 정도는 된다.

“신 병장님!”

“괜찮으십니까!?”

“보면 알잖냐. 멀쩡해.”

기습을 제외하면 전투력 자체는 별것 없는 좀비들.

다소 위험하긴 했지만, 다행히 물리진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단 말이지.’

카아아악.

크르륵.

방금의 전투 소리가 녀석들을 자극한 것일까.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병사들이 나를 바라봤다.

이대로 진입해도 되는지 묻는 듯한 눈빛

나는 잠시 고민한 뒤, 결정을 내리고 말했다.

“일단은 빠진다.”

* * *

“저희 부서 박 하사님이었습니다.”

관사 건물에서 후퇴해 공터의 끝까지 퇴각한 뒤.

광일이 녀석이 꺼낸 말이었다.

방금 진입한 관사 건물에서 나를 덮친 좀비를 말하는 거겠지.

박 하사님이라.

“너랑 친했던 분인 걸로 기억하는데, 미안하다.”

전광일 상병은 시설반의 에이스였다.

병사는 물론 간부들과도 두루두루 친했었지.

박 하사는 그나마 젊은 편이기도 해서 병사들과 더 친하게 지냈던 거로 기억한다.

“아닙니다.”

광일이 녀석은 잠깐 움찔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박 하사님도 저런 꼴로 살아 있길 바라진 않으셨을 겁니다.”

광일이 녀석이 그나마 긍정적으로 대답을 해 줬으나.

그것과 별개로 병사들의 분위기는 꽤 가라앉은 상태였다.

운전병들이 좀비가 된 모습을 봤을 때도 그랬지.

알고 지내던 사람이 좀비가 되어있는 걸 보는 것은 기분이 썩 좋은 일은 아니거든.

그러고 보니 병사들에게 ‘안심’, ‘편안’ 등의 요리를 먹이지 않은 지도 꽤 됐다.

나중에 안정적인 상황이 되면 멘탈 치료를 위한 요리를 다시 만들어야지.

“일단 전원 휴식. 그리고 조장들. 잠깐 이쪽으로.”

“예?”

“회의 좀 하자.”

나는 조장급 인원만을 따로 빼 구석으로 이동했다.

병사들과 어느 정도 떨어지고 난 뒤.

“관사에 오자고 한 거 말입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광일 상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

“우리 부대원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려 하신 거 맞습니까?”

“맞아.”

“으음.”

내 대답을 들은 광일이는 고개를 돌려 휴식 중인 병사들을 슬쩍 엿보았다.

“굳이 확인해야만 했던 겁니까? 병사들 사기가 영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요. 차라리 다른 곳을 조사하러 가는 게 낫지 않았을지.”

병사들의 눈치를 계속해서 살피며 말하는 녀석.

“네 말도 맞아. 사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하지만…… 그래도 관사에 들러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거든.”

“이유가 뭡니까?”

“멘탈 관리.”

“예?”

광일이를 비롯한 조장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번졌다.

“이상하지?”

“그…….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당장 병사들이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면 내 목적이 멘탈 관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드니까.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지금의 저 모습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

“만약에 말이야. 여기에 살아남은 부대원들이 있었으면 어떨 거 같아?”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관사에 살아남은 부대원들이 있었고, 우리가 그들을 구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관사를 그냥 두고 지나갔다가.

훗날 관사를 찾았을 때, 최근까지 살아 있던 부대원이 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죄책감까지 더해지고 말겠지.’

구할 수 있는 부대원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죄책감은 단순한 우울함보다도 오래간다.

생존자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안다고는 해도 확인을 해야만 했던 이유였다.

“관사를 방문해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했다는 것. 그게 가지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고 보거든.”

“아아…….”

설명이 끝나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광일이.

“의외로 생각이 깊으시네요……?”

“으음. 나도 거점으로써의 이점만 생각했지,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듣고 보니 확실히 맞는 말 같군.”

나를 다시 봤다는 듯 지켜보는 이상아와 생각에 빠진 듯한 민재 형.

어찌 됐든 다들 내 판단을 이해한 것 같았다.

“그럼.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민재 형이 팔짱을 끼며 질문했다.

의도가 뭐가 됐든 관사 공략으로 목표를 잡은 것이 사실.

문제는 지금부터란 말이지.

“다들 보내 드려야지.”

같은 부대에서 한솥밥 먹던 이들이다.

저렇게 망자가 되어 돌아다니게 둘 수는 없지.

“말은 쉽다만,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은데?”

슬쩍 뒤돌아 관사 건물들을 보는 이민재 병장.

“저 건물들. 어디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던전이나 다름없더군.”

“그렇지.”

“평지에서 몰려오는 좀비들이라면 수백 마리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만. 좁은 건물에,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르는 좀비들? 보통 어려운 게 아닐걸.”

소리를 통해 좀비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나는 이상아를 보며 물었다.

“생존자들의 노하우는 없나? 새로운 건물에 진입할 때 주의하는 부분이라든가.”

“평소보다 더 조심한다…… 정도밖에 없네요. 정보가 없는 건물이나 지역에 진입하는 건 언제나 위험한 도전이었어요.”

우리는 전투력으로 따지면 그녀가 이끌던 생존자 그룹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할 터.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전면전의 경우다.

숨어 있는 좀비에게 기습당해 어디 한 곳 물리면 죽는 건 각성자라도 마찬가지.

“아예 마법사들을 다 끌고 와서 최대 화력으로 마법을 쏟아 버릴까? 숨어 있는 좀비들 박멸도 어렵진 않을걸.”

“관사까지 다 무너트리실 셈입니까?”

“농담이다.”

아연해하는 전광일 상병의 반응에 피식 웃는 이민재 병장.

관사까지 다 무너트린다라.

“그 방법도 고려는 해야겠지.”

“예?”

소음이 문제가 되긴 하겠지만.

정 공략이 어렵다 싶으면 좀비가 된 부대원들을 보내 주기 위해서 고려해 볼 만한 선택지다.

“진심이십니까?”

“진심이긴 한데. 어디까지나 플랜 B지.”

슬쩍 고개를 올려 하늘을 쳐다본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손목시계를 슬쩍 보니, 슬슬 점심인 것 같다.

플랜 A를 시도하기 가장 좋은 시간.

“밥부터 먹자.”

* * *

관사 외곽의 공터.

주변이 안전하단 것을 어느 정도 확인한 뒤 가져온 군장 가방을 열었다.

“어디 보자…….”

군장 가방에서 나온 것은 침낭이나 보호의 같은 게 아니었다.

낡은 부르스타.

깊이가 있는 편인 프라이팬.

그리고, 종이 포일에 싸인 커다란 고깃덩어리들.

“어, 그거 고기입니까?”

“어. 가장 좋은 부위들로 엄선해 가져왔지.”

“오오……!”

처져 있던 부대원들 사이에 약간의 활기가 돈다.

“광일이랑 다른 애들이 챙겨 준 고기니까. 걔들한테 감사해.”

“아, 헤헤…… 뭘 감사까지야.”

광일이 녀석이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인다.

산맥을 내려오며 사냥한 몬스터들의 고기.

애들이 열심히 챙겨 주지 않았다면 쓰지도 못했을 테지.

“으음.”

하지만 이민재 병장은 애매한 반응이었다.

“능력치를 올린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닐 텐데?”

예전이라면 뜬금없이 ‘밥부터 먹자’ 하면 뭔 소리냐는 얘기부터 했을 부대원들.

하지만 슬슬 내가 하는 밥이 그냥 영양 보충이 아니란 것에 다들 익숙해졌다.

‘물론 그래 봐야 능력치를 올리거나 감정을 바꾸는 정도가 한계였지.’

민재 형의 말대로다.

애초에 전투력이 모자란 게 아니니.

능력치 버프 정도로는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긴 힘들겠지.

“뭐.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가방에 든 고깃덩이들을 유심히 살폈다.

빙결 계열 마법사들이 만들어 준 아이스팩과 함께 종이 포일에 감겨 있는 고기들.

그중에 내가 찾던 물건이 하나 있다.

“찾았다.”

[엿듣는 알라우르의 귓살]

[재료 등급 : 중]

[신선도 : 상]

알라우르는 산맥을 내려오며 마주쳤던 몬스터 중에 하나다.

기괴할 정도로 큰 귀를 가진 여우 같은 모습의 괴물이었지.

“화염 계열 마법사 있나?”

“예, 일병 손병문.”

“여기 땔감에 불 좀 붙여 주라.”

“아. 옙.”

화륵.

아무래도 야전에 제대로 된 장비도 없다 보니 화려한 요리를 하긴 좀 어렵고.

그냥 그대로 구워서 줄 생각이다.

마력이 깃들어서 그런가.

몬스터들의 고기는 그냥 고기로 쳐도 상당히 맛있거든.

치이이익…….

달궈진 프라이팬에 커다란 고기를 통째로 얹는다.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고기가 익어 간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가진 스킬에 대해 생각했다.

[요리사의 눈]

대상의 손질법과 추천 조리법을 알려 주는 스킬.

덕분에 몬스터에 대한 [손질법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과 달리.

‘손질법만 알려 주는 건 또 아니거든.’

[엿듣는 알라우르의 손질법]

[알라우르의 큰 귀는 천적과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하게 해 주는 기관으로, 주요 혈관이 지나는 장소라 약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부분을 잘라내면 쉽게 피를 빼낼 수 있으며…….]

분명 손질법을 알려 주는 건 맞다만.

은근슬쩍 그 몬스터의 특성이 조금씩 섞여 나온단 말이지?

‘큰 귀. 천적과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해 주는 기관…….’

덕분에, 약점이 아닌 몬스터의 특성 자체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그게 이 고기를 고른 이유기도 하고.

‘저 손질법과 조리법. 누가 쓴건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도움이 많이 된다.

이윽고.

[하급 요리사의 침착한 감정의 잘 구워진 알라우르 귓살 구이]

[신선도가 높은 재료로 만든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소폭 상승합니다.]

[마력이 담긴 재료로 만든 요리입니다. 요리의 효과가 상승합니다.]

.

.

.

요리가 완성되었다.

“다들 찬합 들고 줄 서.”

“옙!”

사실 배식이랄 건 없고.

완성된 커다란 고깃덩이를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 나눠 주는 정도다.

고기뿐이라 배불리 먹지도 못할 테지만, 병사들은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와, 식감이 항정살 같슴다.”

“크, 밥이랑 쌈이 같이 있어야 했는데.”

밥이랑 쌈이라.

탄수화물과 채소도 가급적 빨리 확보하긴 해야겠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배식이 끝난 뒤.

병사들이 오순도순 앉아 고기를 씹는 것을 보며 나 역시 고기를 한 점 베어 물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라면.

분명 그 메시지가 나올 터.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요리에 깃든 마력이 영향을 줍니다.]

[요리에 담긴 ‘엿듣는 알라우르’의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어, 다들 상태창 열어 봐.”

“무슨 일인데 그래?”

“뭔가. 이상한 특성이-”

“자, 잠깐.”

예상이 완벽하게 적중했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참기 어려웠다.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무슨 소리야. 소리는 네가…….”

[일시적으로, 특성 - ‘예민한 청각(열화)’을 획득합니다.]

‘계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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