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관사 (4)
끼이익.
오래된 관사 건물의 유리문이 열리며 기분 나쁜 마찰음이 퍼진다.
관사의 거주민들이 외부인의 진입을 감지한 것일까.
크륵…….
카하악.
거친 숨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지간히 청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이 안에서 각각의 소리의 진원지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지.
하지만.
“거기냐!”
인간을 초월한 괴물의 청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앞장서 진입한 병사가 입구 근처의 장롱을 향해 칼을 꽂아 넣었다.
그러자.
터억.
장롱 안에 몸을 기괴하게 구겨 넣고 있던 좀비.
휴가 복귀 예정이었던 후임의 시체가 반토막 난 채 쓰러졌다.
반 토막 난 상체로도 날뛰려 들던 좀비의 머리통에 병사가 칼을 꽂아 넣는다.
사방에서 울리는 소리 안에서 적의 위치를 정확히 감지할 수 있었던 이유.
그건 바로 이 특성 덕분이다.
[특성 : 예민한 청각(열화)]
[일부 종족만이 타고나는 극도로 예민한 청각입니다. 수 킬로 떨어진 곳에서 나는 작은 소리도, 전쟁통에서 들려오는 개미의 발자국 소리도. 이만큼 예민한 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열화된 탓에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일부 종족만이 타고나는 청각.
당연히 원래 가지고 있던 특성은 아니다.
내가 만든 요리.
[하급 요리사의 침착한 감정의 잘 구워진 알라우르 귓살 구이]의 효과.
‘리자드 고기로 요리를 만들었을 때. 혹시나 했었지.’
리자드 고기로 만든 요리를 먹었을 때 나타난 문구
[요리에 담긴 ‘강철 리자드’의 마력이 몸 안에 스며듭니다. 물리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마력이 포함된 요리.
요리의 성능이 올라가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런데 뜬금없이 물리 저항력이 대폭 상승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리자드들의 단단한 비늘. 그리고 가죽이지.’
내가 세운 가설은 이랬다.
어쩌면 그 비늘과 가죽은 리자드들의 마력으로 인해 그렇게 강화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괴물의 고기로 요리를 하면 마력의 영향이 그대로 요리에 남아, 먹는 자에게 물리 저항력을 제공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다른 특성을 가진 몬스터는 어떨까.’
반쯤은 도박수다.
마력으로 인한 영향이 정확히 어떻게 나타나는지 정확히 파악한 것도 아니고.
내 가설이 맞다고 한들 어떤 특성이 요리에 반영될지도 알 수 없었으니까.
그나마 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하나.
‘특성이 대놓고 명백한 몬스터들이라면. 뭘 얻게 될지 예상할 수 있거든.’
엿듣는 알라우르.
외견도 그렇고 요리사의 눈으로 알게 된 특징도 그렇고.
‘대놓고 청력에 스탯이 몰빵된 괴물.’
내 가설이 맞다면.
알라우르의 요리를 통해 청력에 관련된 버프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귀신같이 적중.
일시적으로 ‘예민한 청각(열화)’이라는 특성을 획득하는 데 성공한 것.
문제는 특성에 붙은 (열화)라는 단어다.
대체 어떤 부작용이 있는 건가 하는 부분인데.
“대단합니다!”
좀비를 끝장낸 병사가 눈을 반짝거리며 나를 보고 말했다.
“소리만으로 적의 위치를 정확히 알 것 같아요! 이런 게 요리를 먹은 것만으로 가능하다니……!”
내 요리의 효과에 감탄하는 병사.
고맙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뿌듯하긴 한데.
“끄아악-”
“조, 조용히 말해. 인마.”
다른 몬스터의 마력과 특성을 억지로 끌어 온 탓에 붙은 것으로 보이는 (열화)라는 문구.
부작용은 단순했다.
“귀 깨지겠다, 제기랄.”
“아앗. 죄, 죄송함다.”
귀가 정말 깨질 듯이 아팠다.
청각이 예민해진 건 좋은데.
예민해진 청각에 맞춰 뇌 기능까지 최적화되는 것은 아닌 모양.
‘세상이. 소리로 가득 찬 것 같아.’
본래라면 인지도 못 했을 작은 소리가 들리는 만큼.
평소에 평범하게 들렸을 목소리들은,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그나마 약간 괴로운 정도라서 다행인가.’
열화라고 해서 그 특성의 효과가 줄어들면 어쩌나 했다만.
다행히, 효과에는 전혀 영향이 없었다.
서로 입을 다문 나와 부대원들.
우리는 눈을 마주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인 관사 토벌전.
아니.
청소의 시작이었다.
* * *
-카아아악!
“시끄럽습니다, 장 중사님!”
콰직.
예민한 청각을 통해 좀비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되자.
애초에 전투력으로는 별 볼 일 없는 좀비들을 처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못해 간단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 채의 건물의 청소가 끝났을까.
나와 분대원들은 다음 건물을 청소하기 위해 이동했다.
그런데 다음 건물 앞에 이미 모여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영준이 왔냐.”
“신 병장님 쪽도 속도는 비슷했나 보군요.”
다른 두 분대.
우리는 분대별로 나뉘어 각자 다른 방향에서 시작해 건물을 청소하기로 합의했었다.
그런데 여기에 세 분대가 모두 모여 있다는 건.
“이게 마지막 건물이란 건가?”
“그런 것 같슴다.”
마지막 건물.
다른 관사 건물과 비교해서 묘하게 최신식 건물 느낌이 나는 곳.
이곳은 간부용.
그중에서도 부사관이 아닌 장교들을 위한 숙소였다.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진입하는 병사들.
이미 몇 개의 건물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청소한 상태.
망설일 것도 없었다.
카아악…….
콰직.
옛 부대원들의 목을 베며 건물의 1층부터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는 빠르게 진행되어 마지막 3층까지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3층에 도착한 나는 분대원들과 함께 다음 문을 열었다.
안쪽에서는 익숙한 거친 숨소리가 하나 들려오고 있었다.
또 다른 간부의 좀비겠거니 하고 문을 열었던 나는.
안쪽을 보고 잠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케에엑…….
방 안에 있던 것은 지금까지 베어 온 것들과 같은 좀비.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대대장님.”
그 좀비가, 우리 부대의 대대장.
곽한중 소령이었다는 것.
‘대대장님……. 그러고 보니 애들 공부 때문에 가족은 다 서울에 있고, 혼자 부대 관사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 중이라고 했던가.’
군 생활 중 지나치듯 들었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누레진 민소매를 입고, 침을 줄줄 흘리고 있는 추레한 모습의 대대장.
그 모습을 보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본래라면 우리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을 사람.
우유부단한 김 중위와는 다르다.
병사들도 짜증 날 때가 있을지언정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은 모두가 인정했었다.
내 자리에 있었어야 할 사람이, 지금은 이 꼴이라니.
“제가 처리하겠습니-”
“아니.”
분대원이 별생각 없이 처리하려 나서는 것을 손을 뻗어 제지했다.
별 이유는 없고.
“내가 한다.”
423대대의 지휘관을 베는 일.
강철 군단의 길드장인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릉.
왼손에는 식칼을 꺼내 들고 대대장의 좀비 앞으로 다가갔다.
오른손은 손날을 펴고 이마 부근에 비스듬하게 가져다 댄다.
그리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입을 열었다.
“충성.”
대대장께 대하여 경례.
“병장 신영준.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케에에에……?”
내 목소리를 듣고.
곽한중 소령의 반 쯤 뭉개진 얼굴이 나를 향해 기울어진다.
“케엑!!!”
“그러면, 허가하신 거로 알고.”
“……케에에에에에엑!!!”
“실례 좀 하겠습니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곽한중 소령.
나는 그 목 앞에 식칼을 비스듬히 가져다 대었다.
[하급 단도 숙련]
그걸로 충분했다.
서걱-
썩어 버린 대대장의 머리가 방바닥에 떨어진다.
쓰러진 몸뚱어리는 더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후우.’
묘하게 심경이 복잡해진다.
주머니에서 헝겊을 꺼내 식칼에 묻은 썩은 피를 닦아 내고 있자니.
등 뒤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
뒤를 돌아보자.
언제 모인 건지 모를 병사들이 문 앞에 서 있었다.
나와 대대장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
‘음.’
대대장님을 직접 보내 드리는 건, 뭐라고 해야 하나.
나만의 작은 의식 같은 거였다.
지켜보던 병사들도 이 행동의 의미를 대충 짐작한 걸까.
굳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이들.
나는 그들을 향해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이 부대의 명백한 지휘관으로서.
“전투 끝났다. 정리하자.”
“예!”
* * *
관사의 좀비 청소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하지만 아직 뒤처리가 남아 있었다.
‘일단 알라우르 고기에 [침착한 감정의 소스]를 담긴 했지만. 그래도 안 좋은 기분은 오래 남으니까.’
좀비들 중에는 부대원들이 생전 친하게 지내던 이들도 대다수.
그냥 넘어가면 뒷맛이 영 좋지 않겠지.
나는 부대원들을 향해 명령했다.
“죽은 부대원들 시체는 관사 공터 중앙에 모아 주고. 군번줄도 따로 회수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굳이 한곳에 모으는 건 이유가 있는 겁니까?”
병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장례식은 치러 줘야지.”
병사들과 함께 시체를 모으고 군번줄을 회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 시작 전에 길드 메시지를 보내 농가에서 대기 중인 서수혁에게도 연락했다.
모든 시체와 군번줄의 회수가 끝났을 때쯤.
전 부대원과 생존자들이 관사에 모였다.
“불, 붙이겠습니다.”
“부탁한다.”
화륵.
한곳에 모은 시체들이 불타오른다.
예법에 맞춰 장례를 해 줄 만한 여유도, 제대로 된 예법을 아는 사람도 없으니.
장례는 약식으로 치러졌다.
“곽한중 소령. 최재혁 대위. 안경수 중위-”
불타는 시체들의 앞에 선 나는 군번줄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하나 읊었다.
“-장문형 이병.”
마지막 이름을 말한 뒤.
“이들은 모두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약식으로 치러진 장례가 끝났다.
뒤를 돌아 장례에 임하던 부대원들을 바라봤다.
친한 이가 죽기라도 했는지 눈시울이 붉어진 병사도 많았다.
그걸 바라보는 생존자들 역시 남 얘기가 아니라 생각해서인지 굳어진 얼굴.
짝!
손뼉을 쳐 부대원들의 시선을 내게 집중시킨 뒤.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장례도 치렀으니 다들 좋은 곳으로 갔을 거다. 더는 미련 두지 마.”
죽은 이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들에 대해 더 신경 쓰고 있을 여유는 없다.
“앞으로는 살아남은 우리한테만 집중한다. 알겠나!”
“……예!”
많이 슬픈 병사도 있겠지만 다들 내 말뜻을 잘 이해한 모양.
처져 있던 분위기의 병사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렁차게 대답했다.
어쩌면 휴가 나간 몇 명은 살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만.
그 만약의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가 423대대의 마지막 생존자들이다.
우리만 살아남으면 부대 명맥이 끊기진 않는단 거지.
“바로 일 시작하자. 관사가 꽤 지저분하더라고. 일단 청소부터 하는 거로 하고. 아, 좀비 청소가 아니라 진짜 청소다.”
“큭큭. 저희도 압니다.”
“아, 그리고 관사 근처에 냇물 하나 있었지? 몇 명은 안쪽에서 페트병 몇 개 꺼내다 물 좀 조달해 줘. 또-.”
장례를 통해 죽은 이들에 대한 미련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관사를 임시 본거지로 삼기 위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언제 슬펐냐는 듯 바쁘게 일을 시작하는 부대원들.
“쓰레기는 모아 두면 나중에 태워서-.”
“대단하네요.”
“응?”
그렇게 이거저거 명령을 내리고 있자니.
어느새 다가온 이상아가 말을 걸었다.
“대단하다니?”
“저도 나름 생존자 그룹을 이끌어 본 입장이라서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건지. 경외감이 들 정도인데요?”
아.
설마 병사들을 이끄는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인가.
“안 해 본 짓 하느라 오그라들어 죽을 것 같은데. 무슨.”
“안 해 본 일을 이렇게 잘하면 재능이 있다는 거 아닐까요?”
“진짜로 부끄러우니까. 그만하자고.”
장례 같은 것도 진짜로 쪽팔렸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한 거지.
내 심정이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을 잇는 그녀.
“요리의 효과도 그렇고. 우리 생존자 그룹을 이끄는 게 당신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런데 그 내용이 조금 어두웠다.
“그러면 죽는 사람들도 없었을 텐데 말이죠.”
“명령한 거 벌써 잊었나?”
“네?”
나는 슬쩍 턱을 움직여 공터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녀가 이끌던 생존자들이 관사를 청소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한테만 집중해. 과거에 누가 죽었든. 살아서 우리 부대원이 되었으니까. 부대원으로서 잘할 생각을 먼저 해라.”
“……예. 미안해요.”
“미안할 건 없고. 대신.”
그녀에게 내가 쥐고 있던 물건을 슬쩍 넘겨준다.
커다란 물통이었다.
“저쪽에 냇가 있거든? 거기서 물 좀 떠 와. 이상아 조장.”
“……넵.”
이제 내 부대원이니까.
열심히 일해 줘야지 않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