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튀기면 다 맛있어. (4)
내 철판 요리를 괴물에게 던진 뒤.
우리는 약간의 텀을 두고 창고로 다시 진입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철판들 사이.
끼이잉…….
검은색 덩어리 같은 생명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작게 들려오는 소리.
까드득.
까득.
콰삭.
“이 소리는…….”
“먹고 있는 거다.”
그것도 꽤 신나게.
그리고 내 요리를 입에 담은 이상.
그 안에 담긴 소스.
그 효과를 피해 갈 수는 없을 터.
저벅…….
내가 한 걸음 더 다가가자.
움찔.
우리의 접근을 눈치챘는지.
살짝 움찔하는 녀석.
중요한 것은 그다음의 반응이었다.
키이이익……!
화들짝 놀라며 구석으로 도망치는 녀석.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나와 부대원들은 산개하며 녀석이 탈출하지 못하게 저지했다.
결국 창고의 구석으로 몰린 괴물.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지자.
끼이잉…….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떠는 녀석.
뭐야.
이렇게 보니까.
“꽤 귀엽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각종 철갑을 두른 강철의 괴수였던 직전과는 달리.
지금의 모습은, 마치 검은색의 작은 솜뭉치 처럼 생겼다.
쪼그마한 다리가 네 개 달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정말로 검정 솜이라고 생각하게 될 정도.
“그나저나 대단하군요.”
“그렇게 강력하던 괴물이 이렇게 벌벌 떠는 모습이라니.”
“이게, 신 병장님의 요리의 효과…….”
내가 녀석에게 먹인 요리의 효과는 ‘패배감’.
‘아마 이 녀석이 지금이라도 싸우려고 군다면. 우리 모두를 박살 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 정도로 강력한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의를 가지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
지금 이 녀석은.
패배감에 짓눌려, 두려움에 벌벌 떠는 약자에 불과하다.
스릉.
“안 아프게 보내 주마.”
나는 식칼을 꺼내 들었다.
녀석의 손질법은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자르기.’
본체는 약점이랄 것도 없는 연약한 생명체라는 뜻이다.
이 칼로 저 목을 베기만 하면-
“잠시만요!”
그때였다.
이공우 상병이 칼을 휘두르려던 내 손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야?”
나는 살짝 표정을 찡그린 채 물었다.
내 요리의 효과는 영원하지 않다.
저 녀석에게 적용된 ‘패배감’이 유지되는 동안 처리해야 한다는 것.
언제 녀석이 다시 날뛸지 모르는 상황.
당장 처리해도 모자랄 마당에 말리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저항하지 않는 괴물을 죽이는 게 꺼려진다든가 그런 얘기라면-.”
“그런 거 아닙니다. 이것 좀 봐 주십쇼.”
“뭐?”
그렇게 말하면서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이공우 상병.
그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철판이었다.
바닥에 흩뿌려져 있던 흔한 철판 중 하나.
“이거 뭐 어쨌다고-”
그런데.
그 철판을 유심히 바라본 순간.
[식재료 감별]
‘어?’
특성이 발동했다.
[마력으로 강화된 맥의 철판]
[특별한 마력으로 인해 강화된 철판입니다.]
[재료의 질은 높으나 위생과 청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요리 재료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
‘뭐야.’
순간 잘못 본 건가 했다.
발동한 것은 분명 [식재료 감별].
하지만 그 특성이 감별하고 있는 것은 철판이었다.
문제는.
‘이 특성이, 왜.’
지금 발동한 거지……?
“아. 보라고 해도 모르시겠군요. [자재 감별] 특성을 가지고 있는건 공병들 뿐이었으니.”
그래.
원래라면, 난 요리 재료도 아닌 저 철판의 효과는 보지 못하는 게 정상이다.
갑자기 발동한 특성에 당황하는 사이.
이공우 상병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철판, 평범한 철판이 아닙니다.”
평범한 철판이 아니라는 말.
설마 내가 본 것과 같은 건가.
“이공우 상병님?”
“평범한 철판이 아니라는 건 무슨 소리입니까?”
“저 괴물의 마력으로 강화된 상태라는 거야.”
역시.
내가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확인한 것과 같다.
“저번 전투 때도 사실 조금 의아했거든. 아무리 두꺼운 철판이라고 해도, 각성한 전사들의 공격에 기스만 나고 끝난다는 건 말이 안 돼. 심지어 저 괴물이 두르고 있던 철판들은 그리 두껍지도 않았거든.”
“이 녀석이 철판들을 강화해서 그랬다는 겁니까?”
“그래. 그리고 이게 더 중요한데.”
손가락으로 벌벌 떨고 있는 괴물을 가리키는 이공우 상병.
“저 녀석에게서 떨어져 나온 지금, 여전히 강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거야.”
“그 뜻은 설마.”
“이 강화된 철판을 우리도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과연.
대충은 이해했다.
녀석이 하고 싶은 말도 예상이 된다.
“신 병장님.”
“그래.”
“이 녀석. 살려 보면 안 되겠습니까?”
역시나.
“괴물을 살려 두자는 말입니까?”
“에이, 그건 좀.”
그 얘기를 들은 다른 병사들은 모두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괴물이 괜히 괴물이겠는가.
지금은 내 능력으로 저렇게 겁에 떨고 있다만.
요리의 효과가 사라지는 순간 다시 우리를 죽이려 들지도 모르는 일.
아니, 높은 확률로 그러겠지.
깔끔하게 처리하는 편이 후환이 없을 터.
하지만…….
“어떻게든 살려 두기만 한다면. 저 특성을 활용해서 엄청난 물건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런 기회를 그냥 날리는 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흐음.”
강화된 자재들을 얻었을 때의 이득.
그것도 포기하기 힘들단 말이지?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괴물을 바라봤다.
검은색 새끼 곰하고 비슷하게 생긴 녀석.
그 몸 근처에는 검은 기운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주변의 물건을 붙잡고 조종하던 기운.
‘가만.’
나는 주머니에서 헝겊 하나를 꺼냈다.
칼에 묻은 피를 닦아 낼 때 쓰던 물건.
그걸 녀석 주위에 일렁이는 검은 기운에 가져다 대 보았다.
“안 붙네?”
철들이 검은 기운에 달라붙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주변의 물건들을 모두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철물류밖에 조종할 수 없는 건가.”
그렇다면.
“얘들아.”
“예?”
“가방 좀 가져다줄 수 있나? 지퍼나 버클같이 쇠붙이가 안 붙은 거.”
“아…… 하나 있을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곧 병사 한 명이 가방 하나를 들고 왔다.
“가방이라기보단 주머니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긴 합니다만.”
“괜찮네. 이걸로 되겠어.”
병사가 들고 온 것은 말 그대로 주머니였다.
주머니 자체도 천이고 입구는 줄로 조인 뒤 묶는 형태.
사각.
나는 줄의 양 끝부분에 붙어 있던 쇠붙이만 잘라 낸 뒤.
“집어넣자.”
주머니의 입구를 크게 연 뒤.
괴물에게 다가갔다.
“앗, 도망치려 한다!”
“어어!”
“가만히 있어!”
도망치려는 녀석을 병사들과 합심해 붙잡은 뒤.
우여곡절 끝에 주머니 안에 넣는 데 성공했다.
케에엥…….
“뭔가 동물 학대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찔리는데요.”
“죽이는 것보단 낫잖냐.”
거부감은 있는 것 같지만 짙은 패배감 때문인지 격렬하게 저항하지는 않는 괴물.
꽈악…….
입구의 줄을 팽팽하게 조이자 검은 기운도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철재.
“세상에. 이렇게 많이……!”
그 철재들을 둘러보며 감탄하는 이공우 상병.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 제가 또 조금 오버했나 봅니다.”
“응
“신 병장님은 모르실 겁니다. 제 눈에 저것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다시금 바닥에 깔린 자재들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녀석.
하지만 글쎄다.
내가 모를 거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생각이 다르다.
‘나도 알 것 같은데.’
[식재료 감별]
[맥의 마력으로 강화된 너트]
[맥의 마력으로 강화된 몽키스패너]
[맥의 마력으로……]
.
.
.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도 저 물건들의 정보가 상세하게 보인다.
철물 창고를 찾았을 때 원했던 것은 평범한 자재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발견한 것은 마력으로 강화된 물건들.
전체의 90% 가까이가 괴물의 마력으로 인해 강화된 상태였다.
즉.
‘보물덩어리들.’
기대한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보상이었다.
* * *
성공적으로 자재를 확보해서 복귀했다.
오가는 길의 안전만 확보하면 몇 차례 더 가서 나머지 물건들도 가져오게 될 듯하다.
“이 녀석은 여기 가둬 놓도록 하겠습니다.”
철물 창고지만 철물만 있지는 않았다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들도 있었다.
나무판자들을 엮어서 적당한 사이즈의 관 같은 것을 만들었다.
거기에 괴물, ‘맥’을 넣었다.
크르륵!!
그새 요리의 효과가 풀렸는지 날뛰는 녀석.
하지만.
“어허, 조용.”
꽁.
크에엑.
본체는 연약하기 그지없다.
근처에 조종할 만한 철만 없으면 무력한 괴물.
식량도 철인 듯하니, 잘 관리한다면 문제없겠지.
그런 뒤.
트럭의 뒷문을 열었다.
전리품이다.
자재들을 확인하기 위해 공병들이 모여들었다.
“우와.”
“뭐야 이거, 그냥 철들이 아닌데요?”
“미친, 무슨 재료의 강도가……!”
다들 감탄하고 있는데,
이공우 상병이 다가왔다.
“저희를 믿고 자재 확보를 우선시해 준 점, 감사합니다.”
“고마워할 건 없고. 너희가 말한 대로 자재를 확보했으니, 우리 역할은 끝이야. 이제부터는…… 알지?”
“예. 저희 역할이죠.”
씨익 웃는 녀석
“기깔난 물건들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자재들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녀석들.
생활관 뒤편의 공간이 꽤 넓은 편이니 거기서 작업을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작업에 필요한 듯 몇몇 차량을 그쪽으로 끌고 가는 것도 보인다.
그 차를 슬쩍 보았다.
그리고.
[하급 식재료 감별]
[알루미늄]
[글라스화이버]
[기능성 세라믹]
.
.
.
또다시 특성이 발동했다.
‘차량에 쓰이는 재료들 리스트라. 관심도 없던 걸 알게 됐네.’
발동한 특성은 식재료 감별.
이름 그대로 식재료를 감별하고 분석해 주는 능력이다.
본래라면 알루미늄이니 세라믹에는 발동할 턱이 없던 능력.
내가 가진 스킬과 특성은 요리사라는 직업에서 비롯된 것.
당연히 요리에 관련된 것으로 한정된 경우가 대다수였다.
‘이제는 아니란 거지.’
창고에서 철물들을 봤을 때도 발동했던 특성.
그때는 뭔가 했지만, 이제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철판을 통한 요리에 성공했을 때.
[요리의 새 지평을 발견하였습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같은 문구가 나왔었다.
뭔가 길고 거창한 메시지들.
그 뒤에 나온 보상은 단 한 줄.
[식재료의 한계가 사라집니다.]
“아마 이게 원인이겠지.”
창고에서는 다른 일로도 바빠서 확인하지 못했다.
저 보상도 대체 이게 뭔가 하고 넘겼었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말도 안 되는 보상이군…….”
식재료의 한계가 사라졌다는 것.
그건 내 능력의 제한 중 하나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식재료 감별]
[요리사의 눈]
등등.
내 스킬들은 요리, 혹은 식재료에만 적용되는 것들이 많다.
뭐…… 내 직업이 요리사니까.
당연한 제약이라고 생각했던 부분.
하지만 일반적으로 요리 재료로 여겨지지 않는 철판.
그걸 통해 요리를 한 결과.
식재료의 한계…….
즉, 내 능력의 제약 중 하나가 사실상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요리 자체에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
내 요리의 주 고객층은 부대원들이다.
알루미늄이니 기능성 세라믹이니.
이런 것들의 요리가 가능해진다고 해서 부대원들한테 먹일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요리사의 눈은 약점을 파악하게 해 주는 능력이기도 해.”
어디까지나 식재료를 상대로만 발동했던 능력.
괴물들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무생물인 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도 요리사의 눈이 발동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은 의의가 크다.
“그리고 특히 사기인 점은…… 식재료 감별이지.”
말이 식재료 감별이지.
제한이 없어진 지금.
이 특성은 모든 물건을 감별할 수 있는 특성으로 변한 셈이다.
비슷한 특성을 가진 공병들도 자재에 한해 감별 특성이 발휘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제한 없는 감별 특성은 정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올 수 있을 터.
확신할 수 있다
이번 작전의 목표는 자재 확보였고 기대 이상의 질의 자재 확보도 성공했다만.
가장 큰 보상은 바로 이거라고.
* * *
그로부터 며칠 뒤.
“완성됐습니다!”
“어?”
다음 메뉴를 고민 중이던 내게 공병들이 찾아왔다.
주변 산에서 뜯어온 산나물로 쌈밥이라도 해 줄까 하던 참이었는데.
“완성됐다는 건, 드디어 작업이 끝난 거냐?”
“옙. 그동안 시끄럽게 해서 죄송했습니다.”
요 며칠.
이 녀석들의 작업 소리 덕에 낮에 관사는 꽤 시끄러웠다.
괴물들이 꼬이진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관사 뒤쪽에서 작업하고 있어서 자세히 본 적은 없었지.’
대충 차량들을 강화하겠다는 얘기만 들었었지.
작업 중인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나는 기대감을 품고 공병들을 따라 이동했다.
부대에서 사용하던 승합차나 승용차들.
혹시 그것들이 장갑차처럼 변신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그런데.
“짠!”
“어떻습니까, 신 병장님!”
자신만만하게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공병들.
“어? 어어.”
확실히 대단했다.
대단하긴 한데…….
“뿔이 있네……?”
멀쩡하던 승합 차량의 전면부.
커다란 뿔이 달려 있었다.
측면이나 바퀴에는 날카로운 창날 같은 것이 붙어 있기까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비주얼.
그래, 마치.
‘매X액스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