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비어 있는 마트들 (1)
‘매X액스냐고.’
군데군데 뿔이나 가시, 창날 등이 나 있는 차량들.
지나칠 정도로 세기말적인 디자인이다.
그 모습을 보며 어이없어하고 있자니.
“충성! 신 병장님 오셨습니까.”
이공우 상병이 다가왔다.
어깨를 피며 자랑스럽게 묻는 녀석.
“어떻습니까. 저희 작품이.”
“그. 뭐라 해야 하나.”
대단해 보이긴 한다.
좀 여러 가지 의미로 말이지.
“하하. 디자인이 좀 그렇긴 하죠?”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허허 웃으며 말하는 녀석.
열심히 만들었을 물건을 혹평하는 건 좀 그렇다만.
이 디자인을 녀석 쪽에서 먼저 언급할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 너희 취향이냐?”
“설마요. 성능 중시입니다.”
그 말을 듣고 차량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여전히 뿔과 가시로 도배된 차량.
……이게 성능 중시라고?
“뭐. 들어 보십쇼.”
차에 붙어 있는 가시 같은 것을 툭툭 건드리는 녀석.
“차량들을 개조하기 전에 공병들끼리 잠깐 회의를 했습니다. 그때 저희는 이 차량들의 목적은 도로 주행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죠.”
“도로주행용이 아니라면?”
“음? 그야 당연히 전투용 아니겠습니까.”
아.
“총격전이 위주였던 기존의 전쟁하고는 상황이 여러모로 달라졌다는 것도 고려해야만 했죠. 적들이 총을 든 병사에서 발톱을 지닌 괴물로 변했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거기에 대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거기까지 설명을 듣고 나니 한 가지는 납득이 갔다.
발톱을 지닌 괴물을 상대하기 위한 설계라면.
“이 가시들. 괴물의 접근을 막는 용도인 건가.”
“정확하십니다.”
중세의 전쟁터 풍경 같은 것을 떠올렸다.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해 날카로운 창 같은 거로 방진을 짜놓든가 했다지.
현대전으로 비교해도 비슷한 게 있다.
부대 경계의 펜스에 두르는 가시철조망 같은 것.
이 가시와 창날들이 그 용도라는 거겠지.
“공격용으로도 기능할 겁니다. 보십쇼. 이 차량을 타고 괴물들 사이를 내달리면……. 저기 옆에 난 창날들 보이시죠? 저게 적들을 사사삭.”
손으로 무언가를 베는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이공우 상병.
확실히 꽤 날카로워 보이는 날들이다.
저기에 걸리면 스치기만 해도 치명상일 거다.
“뭐. 리자드처럼 단단한 몬스터한테는 쥐뿔도 안 먹히겠지만요.”
……까지는 아닌가?
괴물 중에는 워낙 튼튼한 녀석들도 많으니까.
“그래도 좀비들 정도라면 ‘좀/비’로 만들고도 남을 겁니다. 아니라도 거슬리게 하는 정도는 충분하겠죠.”
“확실히 상대하기 까다로워 보이긴 하네.”
“바리케이드와 전차의 역할을 겸한다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처음에는 영화 홍보용 차량인가 싶었던 모습.
하지만 생각해 보니, ‘매X액스’의 차량 역시 전투용으로 개조된 차량들이었던가.
성능 위주의 디자인이라는 것이 빈말이 아닌 셈이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가능한 선에서 방음 작업까지 모두 마쳤습니다.”
“매X액스 차량이면 괴성을 지르고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예?”
“아. 아무것도 아냐.”
무심코 속마음이.
“크흠, 아무튼. 무음까지는 무리라고 해도 소음을 상당히 줄였으니, 괴물들의 어그로 걱정도 조금 줄어들 겁니다. 방호력은 기본이구요.”
“그건. 확실히 대단한걸.”
그 후에도 이공우 상병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그런 부분까지 고려했다고?”
나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세세한 부분들.
그 하나하나에 실전을 고려한 세심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저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차량.
하지만 설명을 다 듣고 나니.
이만큼 믿음직스러운 차량들이 있을까 싶어졌다.
“결국 전부 자재가 좋아서 가능했던 거죠. 자재 확보 쪽으로 결정을 내려 주신 덕분입니다.”
“덕은 무슨.”
그러고 보니.
자재 얘기를 하니까 떠오르는 게 있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됐어?”
“아, 한번 보시겠습니까?”
이 자재들을 강화한 주체.
공병들이 데리고 간 것까지는 알았지만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아직 몰랐다.
“이쪽입니다.”
공병들을 따라 이동하자.
관사 구석에 작은 목조 건물이 하나 있는 것이 보였다.
급조한 것 치고 나름 튼튼해 보이는 건물.
“조심하십쇼. 꽤 사납습니다.”
끼익.
그 문을 열자.
-캬아아아아아악!
안쪽에서 날카로운 괴성이 들려왔다.
일전에 붙잡아 온 그 괴물 녀석.
-캬악! 캬아아아악!!!
나름대로 위협을 하려는 것일까.
솜뭉치 같은 몸을 힘껏 부풀리는 괴물.
하지만.
‘전혀 위협이 되지는 않네.’
그래 봐야 녀석의 본체는 작고 연약하다.
새끼 고양이가 하악질 하는 정도의 위협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 안에서 기르고 있던 거야?”
“옙. 그다지 강한 녀석은 아니다 보니, 문단속만 잘하면 탈출은 못 하는 것 같더라구요.”
나는 계속해서 하악질을 해대는 괴물을 무시하고 목조 건물 안쪽을 둘러봤다.
기본적으로 텅 비어 있는 작은 간이 건물.
안에는 저 괴물을 제외하면 철판 몇 개가 굴러다닐 뿐이었다.
“저 철판들은 저렇게 놔둬도 되는 거냐? 이 녀석 적대심이 상당한 것 같은데.”
“예. 저희도 나름 조사를 해 봤습니다만. 저 정도 철판으로는 큰 위협이 안 되는 것 같더군요.”
“흠.”
이 괴물.
[맥]은 철물을 강화하는 힘이 있다.
거기다가 주식 역시 철물.
“위협적이지 않은 수준의 철물을 넣어 두면. 그중 일부는 식사로 섭취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 이것도 보시면, 갉아 먹은 자국이 보이시죠?”
“그러네.”
“하지만 먹는 양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게 중요한 점입니다만.”
들고 있는 철물을 통통 두드리는 녀석.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맥의 마력으로 강화된-.]
“먹다 남긴 나머지 철판들은 이렇게, 마력으로 강화를 시키더군요.”
“저렇게 넣어 두기만 하면 강화된 자재를 주기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예. 아마 본능적인 영역인 것 같습니다.”
강화된 자재들은 각성자들의 공격조차 버텨 낼 정도의 강도를 지닌다.
간단한 목조 건물과 강화할 재료들을 넣는 것만으로도 그런 자재들의 확보가 가능하다니.
“말도 안 되는 효율이군.”
“그렇죠. 당장은 강화 속도가 빠르진 않습니다만, 나름대로 최적화시키려고 노력해 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자재가 쌓이기 시작하면 장벽 같은 걸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장벽이라.”
“예. 지금도 흘러들어 오는 괴물들을 상대하기 위해 병사들이 24시간 보초를 서고 있지만. 장벽을 만들게 된다면 병사들의 고생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공병들.
나는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슬쩍 괴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크르르륵…….
여전히 몸을 부풀리고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는 녀석.
지금 공병들의 방식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머릿속에 드는 한 가지 생각.
‘으음.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말이지.’
살기를 드러내고 있는 저 괴물.
우리가 일방적으로 녀석을 착취하는 형태.
녀석 입장에서는 화낼 만도 하지.
어찌 됐든 우리는 이득을 보는 상황이다.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만.
더 괜찮은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진단 말이지.
사실 구체적인 방법도 하나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뭐. 지금도 충분히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
굳이 내가 손을 댈 필요는 없으려나.
‘만약 손을 댄다고 한다면 나중에.’
새 방법을 시도해야 할 상황이 나왔을 때 해도 늦지는 않을 테니까.
* * *
공병들이 자재를 활용하는 동안.
다른 부대원들도 놀고만 있지는 않았다.
“꾸준히 주변 정찰도 하고. 나름대로 물자 확보도 시도해 봤습니다만…….”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하나.
“대단한 건 하나도 없었네요.”
“뭐 어쩌겠어.”
우리가 자리 잡은 관사는 안 그래도 군 단위의 소도시인 인제군.
거기서도 한참 외진 곳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애초에 사람이 없던 지역이라는 뜻.
장점이 없지는 않다.
사람이 없던 만큼 좀비도 적고.
사냥감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괴물의 숫자도 비교적 적은 것 같다는 점 정도.
‘기동 요새’를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
안전이라는 측면에서는 당장은 꽤 괜찮은 임시 거점이란 말이지?
‘문제는 자원이지.’
식량이나 기름.
거기에 각종 의약품까지.
생존에 필수적인 물품들.
그런 물건들은 당연히 수요가 있는 곳…….
즉.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몰려 있기 마련이다.
‘이 관사 근처하고는 영 연이 없다는 뜻.’
그렇다고 먼 거리를 가는 것도 위험이 크다.
덕분에 지금까지는 주위의 안전 확보에 의의를 둔 작전만 이뤄졌지만.
“공병들의 차량 개조가 끝났다.”
이제는 아니다.
“성능이 생각보다 괜찮아.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을 개시해도 될 정도로.”
“드디어 뭐라도 해 볼 수 있겠군요.”
자재 확보를 서두른 이유는 이후의 활동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공병들의 차량 개조가 끝난 지금.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
“이 근처라면. 아마 마트가 하나 있을 거예요.”
말을 꺼낸 것은 생존자들의 대표인 이상아였다.
그녀는 이 주변에서 실제로 생활하던 현지인.
외출 때나 가끔 나오던 우리보다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겠지.
“여기예요. 저도 자주 다니진 않았지만, 여기에 작은 마트가 있는 걸 지나가면서 많이 봤거든요.”
“비교적 외곽이네. 안전하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군내에 진입하는 것보단 낫겠죠?”
지도의 한 구석을 가리키며 말하는 그녀.
거리로 보나 위험도로 보나, 나름대로 괜찮은 목적지 같았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음?”
걱정스러운 듯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
주변에 위험한 요소라도 있는 건가 싶었으나.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남아 있을까?’ 하는 거죠.”
“아.”
“그것도 그렇군요.”
괴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지상의 생존자들 역시 치열하게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었을 터.
“이 마트는 그나마 안 알려진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변에 살던 사람들은 이용하던 곳일 테니까요.”
“다른 생존자들이 이미 거쳐 갔을 가능성이 크다. 그건가.”
“그렇죠.”
힘들게 찾아가 봤자 비어 있을 가능성도 크다는 뜻.
하지만.
“가능성이 0은 아니니까.”
밑져야 본전이라는 거지.
부대는 원정을 준비에 들어갔다.
* * *
교외의 작은 마트.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고 하나 무작정 걸어가기에는 애매한 거리.
어차피 물자를 옮기려면 필요하니까.
이번에 개조를 마친 차량을 바로 투입하기로 했다.
차량을 타고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중.
몇 차례인가 좀비 무리와 조우했으나.
“꽉 잡으십쇼!”
쾅!
도로에 서 있던 두 마리의 좀비.
그 좀비들이, 개조된 차량 전면부의 창날들에 갈려 나갔다.
“맙소사.”
“하하. 좀 식은땀 나긴 하는군요.”
운전하던 병사가 말했다.
얼굴을 보니, 약간 안색이 창백해져 있는 병사.
도로에 있는 사람 형체에 돌격한다는 행위.
‘기존의 상식을 부정하고 저질러야 하는 일이니까.’
꽤 긴장했었나 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차량 성능은 확실하다는 거지.’
방금 좀비를 치었는데도 주변에서 괴물이 몰려오는 낌새는 없었다.
공병들이 말한 소음을 줄였다는 부분도 확실하다는 뜻이겠지.
도로의 상황이 과거와 다르게 좋지 않다는 점이나.
몬스터 무리와 조우하게 된다면 얘기가 또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걸리기는 하지만.
이동의 제약이 크게 해소되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저기예요.”
그렇게 이동을 개시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 앞쪽이 개판 됐는데요.”
“으, 징그러워라.”
좀비들을 갈아 버린 차량 전면부는 기괴한 고깃덩이와 썩은 피로 더럽혀진 상태였다.
꽤 충격적인 비주얼.
“아니. 봤을 때 징그러운 것 정도는 상관없지.”
“진짜 징그러운 건 저걸 닦아내야 한다는 거죠.”
다행히 병사들도 잔인한 풍경에는 꽤 익숙해진 상태.
오히려 청소해야 할 때 귀찮음을 떠올리고 있을 정도였다.
‘저런 거에 익숙해진다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괜히 생각해 봐야 머리만 아픈 일.
차량에서 내려 각자의 장비를 점검하는 병사들.
나는 그들을 보고 말했다.
“다들 지급한 전투식량은 가지고 왔지?”
“옙.”
“3번으로. 먹자.”
병사들에게는 내가 만든 육포가 전투식량으로 지급된다.
나는 그중에서도 요리의 효과에 따라 종류를 구분했다.
3번 요리의 효과는 익히 경험한 것.
[요리에 깃든 마력이 영향을 줍니다.]
[일시적으로, 특성 - ‘예민한 청각(열화)’을 획득합니다.]
“으, 벌써 귀가 아픈 것 같은데요.”
“다들 큰 소리 내는 건 자제하자고.”
‘귀 큰 알라우르’의 요리다.
청력을 어마어마하게 끌어올려 주는 효과를 가진 요리.
이 능력을 활용한다면 좁은 장소로 들어간다고 해도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겠지.
모든 병사가 육포를 입 안에 넣은 것을 확인한 뒤.
“진입한다.”
끼이익-
반쯤 부숴진 상태의 유리문을 살짝 밀며 마트 안쪽으로 진입했다.
안쪽에서 괴물이나 좀비가 튀어나올 경우도 각오한 상태였으나.
“으음.”
“이건.”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간 마트의 안쪽.
걱정했던 괴물이나, 좀비는 없었다.
문제는.
“깔끔하네요.”
“뭐. 어느 정도는 예상했잖아?”
괴물이나 좀비만 없는 게 아니었다는 것.
“허. 저기 보십쇼. 그 와중에 장난감 같은 건 남아 있네요.”
“살아남는 게 급급한 와중이잖아. 그런 거 챙길 이유는 없지.”
장난감이나 가전제품 등.
생존에 필수가 아닌 물품들을 제외한 모든 물건이 이미 털린 상태였다.
그 와중에 한 병사가 마트의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 좀 봐. 펫푸드 코너도 텅텅 비었어.”
“예? 펫푸드는 왜?”
“그것도 딱히 생존에 필수는 아닌 거 아닙니까.”
몇몇 병사가 의문을 표했다.
하지만 그건 밥 굶을 일 없던 우리 부대에서나 해당되는 일.
“맛이 문제지, 사람도 먹을 수는 있잖냐.”
“아.”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인간용이든 동물용이든 먹을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라는 거지 뭐.”
사실 우리도 비슷하다.
펫푸드나 괴물의 고기나.
일반적인 인간은 입에 댈 생각을 잘 안 할 테니까.
“혹시 필요한 물건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샅샅이 뒤진다.”
“옙.”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혹시라도 남아 있는 물건 중에 쓸 만한 게 있을 수도 있다.
병사들은 흩어져서 탐색에 들어갔다.
“여기. 좀비 시체입니다.”
병사 중 한 명이 구석에 쓰러져 있는 좀비를 발견했다.
마트의 직원이었던 걸까.
마트의 로고가 그려진 앞치마를 입고 있는 좀비.
“어. 좀비한테 시체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넘어가고. 다른 특이사항은 없나?”
“음. 머리통이 도끼 같은 거에 찍힌 상처가 있는데요.”
“도끼라. 이미 다녀간 생존자가 처리한 건가.”
이상아가 우려한 대로였다.
시간이 지날 대로 지났으니까.
이미 다른 이들이 찾아와 좀비들을 처치하고 물건들도 털어 간 모양.
“탈탈 털어 갔네요.”
“우리가 부대에서 농성하는 동안 지상의 생존자들도 놀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어쩔 수 없지.”
조금 아쉽기는 하다만.
조사하면서도 아마 남은 물건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슬 복귀 명령을 내릴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때였다.
……바스락
‘소리!’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크지 않은 작은 소리.
본래라면 듣지 못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특성으로 강화된 감각을 피해갈 수는 없다.
‘신 병장님.’
‘그래. 나도 들었어.’
주위를 둘러보던 병사들 모두가 발걸음을 멈추고 섰다.
멀리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거는 병사들.
모두가 같은 특성을 얻은 상태라는 걸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대화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질문에는 조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특성의 힘은 강력하다.
작은 소리였지만 이미 그 진원지까지 파악된 상태.
‘정육점 코너 안쪽.’
그곳에 있는 작은 철문.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안쪽이다.
문제는…….
무언가가 있는 건 확실하다만.
그걸 굳이 건드려야 하는가, 하는 점.
‘저 녀석. 일부러 소리를 죽이고 있는 것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한번 들려온 소리 이후로는 다른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일부러 기척을 죽이고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소리를 죽이고 자신의 기척을 감추고 있는 존재.
적이 없다고 방심한 사냥감을 공격하는 종류의 괴물일지도.
기척을 감추면서 행동하는 괴물.
굳이 기척을 감추는 데는 이유가 있을 터.
‘기습이 아닌 전면전에는 취약한 괴물일 가능성이 크겠지.’
아니라면 당당하게 정면에서 사냥을 나섰겠지.
‘처리하고 가자.’
‘예.’
그냥 못 본 척 지나가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괴물이 나중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일.
처리할 수 있을 때 처리해 두는 게 유리하겠지.
말을 들은 병사들 몇 명이 근처로 다가왔다.
망치를 치켜든 전사 한 명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허리춤에서 식칼을 꺼내 든 뒤.
‘부숴 버려.’
녀석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러자.
“흡!”
콰아아앙!
강하게 내려친 망치가 문을 쳐부쉈다.
부서진 문 안쪽으로 나와 병사들이 빠르게 몸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이었다.
슈욱!
방 안에 있던 무언가가 나를 향해 내리쳤다.
‘위쪽!’
하지만 나 역시 대비하고 있던바.
내게 내리친 물건을 향해 식칼을 휘둘렀다.
서걱.
나무 같은 질감의 물건이 잘려 나가는 소리와 감각.
공격을 막아 냈다고 판단한 나는 공격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떤 괴물인지는 몰라도, 약점만 파악한다면 이길 수 있어.’
공격을 가한 형체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마자.
스킬, [요리사의 눈]을 발동했다.
그런데.
[이미 손질법을 깨달은 재료입니다.]
[이미 조리법을 깨달은 재료입니다.]
[요리사의 눈이 발동하지 않습니다.]
‘……뭐?’
기대했던 스킬은 발동하지 않았다.
대신에 발동한 것은 다른 쪽.
[식재료 감별]
[영장류 - 인간종]
“……영장류 - 인간?”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
그 뒤쪽을 바라보자.
두 명의 인영이 보였다.
아직 어린 나이로 보이는 한 쌍의 남녀.
그중 나를 공격한 여자 쪽이 입을 열었다.
“도, 동생만은 잡아먹지 말아 주세요.”
뭔 소리야,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