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취사병-53화 (53/227)

53화 대장장이 (2)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문 뒤.

나는 병실에서 퇴원했다.

탄약대대 내에 마련된 내 방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이게 내 방이라고?”

“예. 원래는 대대장실로 쓰이던 방인데. 병장님이 쓰시는 게 맞다고 다들 동의했습니다.”

문제는 그 방이란 게 보통 방이 아닌.

무려 대대장실이란 것.

저 공책의 저자이자 이 부대의 지휘관이 사용하던 방.

솔직히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이젠 일개 병장이 아니게 돼 버렸으니까.’

423대대 병사들뿐일 때는 그래도 병사 중 한 명이란 느낌이었으나.

생존자들까지 합류한 지금.

내 지위는 길드장.

꽤 높은 위치다.

이 지위를 생각하면.

마냥 다른 이들과 함께 생활관에 지내는 것도 그들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일.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부담스러운 방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려던 때.

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노크하며 들어왔다.

익숙한 사람이었다.

“어, 박씨 할아버지?”

“오랜만이다.”

박씨 할아버지.

내가 칼을 관리하는 걸 보고 칼을 직접 갈아 주기도 하고, 관리법을 알려 주기도 하셨던 분이다.

그때의 일이 연이 되어, 이후에도 몇 번씩 이야기를 나누곤 하는 사이.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습니까?”

일단 지위가 있다 보니 공식적인 자리에선 반말을 하지만.

아무래도 박씨 할아버지쯤 되면 나이 차가 너무 크다 보니.

사석에선 그냥 경어를 쓰는 편이다.

“대장이란 놈이 앓아누웠다는데 신경 쓰여서 도무지 잘 지내지를 못하겠더군. 이제 다 나은 거냐?”

“예. 활동에는 문제없습니다.”

“흥, 그나마 다행이구만.”

말은 저렇게 까칠하게 하지만.

속은 꽤 괜찮은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니 별생각은 안 들었다.

“그건 그렇고.”

말을 늘이며 눈을 가늘게 뜨는 할아버지.

뭘 보고 그러는지는 알 만했다.

대대장실 한쪽에 놓인.

기괴하게 찌그러진 칼.

난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뭐. 이렇게 됐습니다.”

“쯧. 대충 어떻게 싸웠는지는 들었다. 이렇게 돼 있을 것 같았지.”

“……이거, 어떻게 못 살릴까요?”

슬슬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긴 했다만.

일단 가장 손에 익은 칼이다.

“각성한 날부터 계속 사용해 온 칼이라, 제 전투법도 이 칼에 어느 정도 맞춰져 있거든요.”

가장 좋은 건 이 칼을 어떻게든 살려내는 것.

하지만.

“못 살린다.”

혹시나 하던 마음에.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차라리 날이 심하게 나가거나 한 거면 괜찮다.”

박씨 할아버지가 일그러진 식칼을 이리저리 만지며 말했다.

“고온에 노출된 것도, 그것 자체는 문제없어.”

“그러면 어떻게 방법이…….”

“하지만 고온에 노출된 칼날이 천천히 식는 과정이 문제다. 필연적으로 안쪽에 변화가 생기게 되거든.”

“아…….”

“금속의 성질 자체가 바뀌게 되지.”

금속의 성질 자체가 바뀐다니.

“그건 즉.”

“어떻게든 형태를 원래의 칼로 바꿔도. 전혀 다른 칼일 거다. 써먹지도 못할 장식품이 되겠지.”

결국.

이 칼을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다른 칼을 구하기는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포인트 상점에서 식칼을 팔기는 하니까.

‘그건 마트에서 파는 일반적인 식칼하고 다름없다니까, 장인이 만들었다는 후임 녀석의 칼보다는 별로겠지만.’

뭐 어쩌겠냐.

아쉬운 대로 포인트 상점을 열어 아껴놨던 포인트를 쓰려고 할 때.

“그러니. 새로 하나 만들어 주마.”

“네?”

“그 칼. 내 놔라.”

박씨 할아버지가.

그런 말을 꺼냈다.

“그 칼, 참고용으로 쓰게. 내놓으라고.”

“예? 아니, 칼을 만든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여긴 이렇다 할 설비도 없는데요?”

“벌써 까먹었냐? 나도 각성했다는 거.”

박씨 할아버지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노인의 왜소한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큼지막한 망치였다.

“각성한 직업의 이름은 대장장이라고 하더구나.”

“아.”

박씨 할아버지는 부대를 찾아온 생존자 25인 중 한 명.

며칠 전에, 그 생존자들은 모두 각성을 완료했다.

그 중, 박씨 할아버지의 각성 직업은 대장장이.

어떤 특성이 있는지까진 못 들었지만.

대장장이라.

“사실, 원래 그쪽 일을 하신 분이 아닐까 싶기는 했습니다만.”

“눈치가 없지는 않구나.”

423대대의 식당에서 내 칼을 갈아 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냥 주방일을 해 본 할아버지라 하기엔 남다른 면모가 있었지.

‘뭐랄까. 장인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하나.’

금속공예 같은 일을 한 걸까 추측하긴 했는데.

“흥, 박씨공방이다.”

“네?”

박씨 할아버지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씨공방이라고. 너도 이름은 들어 봤겠지?”

“박씨, 공방이요?”

“그 박씨공방의 2대째 사장이 바로 나다.”

“…….”

그게 뭐지.

내 반응이 미묘한 것을 느낀 걸까.

박씨 할아버지의 표정이 묘하게 날카로워졌다.

“박씨공방…… 모르냐?”

“……아! 알죠. 대단하신 분이었군요!”

“됐다. 너 이 자식. 전혀 모르는군.”

뭔가 대단한 것처럼 말씀하셔서 미안하지만.

솔직히 처음 들어 봤다.

정황상 칼을 만드는 회사인 것 같긴 한데.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전문 요리사였던 것도 아니고 일개 취사병이었으니.

“도대체가. 어떻게 요리를 한다는 놈이…….”

“그, 제가 각성은 요리사로 했어도 본질은 일개 취사병이라. 칼에 관심이 많던 건 아니라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강원도를 넘어 전국 최고로 꼽는…… 아니, 됐다. 뭔 말을 하겠냐.”

한숨을 내쉬며 말을 끊는 박씨 할아버지.

조금 서운해 하는 것 처럼 보였으나.

모르는 놈한테 더 말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신 모양.

취사병들은 요리사 출신도 많다 보니.

기본적으로 개인용 칼의 반입이 가능하다.

흉기로 쓰일 우려가 있어 칼끝을 뭉툭하게 갈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하지만.

‘우리 부대는 워낙 대충인 가라 부대라. 그마저도 안 했지.’

하지만.

요리사 출신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은 그냥 보급 칼을 쓴다.

전문적인 요리사들이라면 알 만한 이름일 듯하다만.

나는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던지라.

나름 요리를 배우다가 입대했던 후임 녀석들이라면 듣자마자 알았을지도.

“아무튼. 칼 몇 자루쯤 만들 능력은 있다는 것만 알아두고. 몇 가지만 허가해 주거라.”

“어떤 허가 말입니까?”

“일단은 마법사 몇 명한테 도움을 좀 받으려고 한다. 나랑 같은 방을 썼던 자매들. 기억나지?”

이름이 분명 혜진, 현진이라 했던가.

애초에 박씨 할아버지와 연이 닿은 이유도 그 자매들 덕분이었으니.

기억은 한다.

“각자 불, 얼음 속성 마법사로 각성했다. 칼을 만드는 데 온도 조절은 필수니, 그 두 녀석한테 도움을 좀 받으려고 한다만.”

“마법사들의 조장은 민재 형이니, 제가 전달해 두겠습니다.”

“고맙군. 그리고 다음은 공방을 좀 만들려고 하는데.”

공방?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자.

박씨 할아버지의 설명이 이어졌다.

“뭐, 별 건 아니야. 규모가 조금 큰 작업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뇨. 공방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만. 대장장이는 그런 게 필요한 직업입니까?”

“필수는 아니다만, 있으면 좋지. 나나, 저 공병 병사들. 그리고 저 재봉사 아가씨 있잖냐.”

“예.”

“이렇게 물건을 제작하는 생산직들의 경우. 작업할 수 있는 공방의 유무에 따라 결과물에 차이가 크게 나타난다는 설명이 있더구나.”

“오.”

이상아 조장이 만든 장비들은 지금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질 수가 있다는 건가.

“여기 있는 탄약고 중 하나를 뜯어고쳐 보려고 하는데, 허가해 줄 수 있겠는고.”

공병들이 만든 전투 차량 역시 이번 전투에서 확실히 도움이 됐다.

민재 형의 보고에 의하면 이 부대에서 노획한 물건들도 개조해서 병기로 만들고 있다고 했던가.

녀석들이 활약할 구석을 늘려줘서 나쁠 건 없겠지.

“알겠습니다. 그 부분도 자유롭게 진행하시죠.”

“고맙구나. 사실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부탁이었는데 말이지.”

“더 부탁하실 건 없습니까?”

나도 그렇지만.

이세계에서 생산직들의 성능은 생각보다 뛰어난바.

이왕 지원해 주기로 한 것.

할 수 있는 건 다 지원해 줄 생각으로 말했다.

“마지막 부탁이 있긴 하다만. 으음.”

“?”

“당장은 말고. 나중에 알려 주마.”

의미심장하게 말을 아끼는 박씨 할아버지.

“말하기 좀 힘든 부탁입니까?”

“그런 건 아니고. 뭐, 그때 가면 알 거다.”

씨익 웃으며 말씀하시는 게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나쁜 의도는 아닐 테니까.

“그럼, 준비가 어느 정도 갖춰지면 다시 연락하마.”

* * *

박씨 할아버지에게 공방의 건설을 허가한 뒤.

두두두두두.

캉, 캉, 캉.

“거기, 구멍 좀 더 크게…….”

부대의 한구석.

탄약고들이 있던 자리에서 매일같이 큰 공사 소리가 들려왔다.

“소음 문제는 괜찮은 건가?”

“비교적 안쪽에 있는 탄약고를 개조하는 거라서요. 밖에 있는 괴물들한테까지 들리진 않을 것 같습니다.”

“넓은 부대라 다행이네.”

그나마 괴물들이 꼬일 정도는 아니란 게 위안이랄까.

그렇게 며칠.

내가 탄약대대의 식당 주방에 어느 정도 적응을 완료했을 때쯤.

“신 병장님.”

“어. 왜? 밥 모자라냐?”

“아뇨. 공방이 다 완성돼서요.”

“오.”

점심 배식을 마치고 저녁 식사를 준비 중인 내게 공병 한 명이 찾아왔다.

공방의 완성이라.

“공사 소리 되게 시끄러웠는데. 드디어 끝났구나.”

“하하. 좀 죄송하게 됐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공사를 완성해야 한다고 밤낮도 가리지 않았던지라.

그래도 덕분에 빨리 공사가 끝났다니 다행인가.

“그래서 말입니다만. 신 병장님. 잠깐 공방으로 와 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내가 도와줘야 할 일이 있나?”

“아뇨. 박 노야께서 말씀하시길, 뭔가 만들어 주기로 한 게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

“공방 작업물 1호는 무조건 그걸로 할 예정이라고……. 짐작 가는 거 있으십니까?”

짐작 가는 게 하나 있긴 하지.

‘내 식칼.’

탄약대대 식당에서 주운 일반 식칼로도 요리에는 문제가 없다만.

영 손맛이 없어서 내심 불편했던 차였다.

그렇게.

나는 완성된 공방의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공방의 생김새는 꽤 독특했다.

현대의 건물과 중세 대장간이 반쯤 섞인 것 같은 모습.

이글루 형태의 탄약고 하나를 개조해서 공방으로 뜯어고친 결과.

위에는 전에 없던 큰 굴뚝이 하나 튀어나와 있었으나, 연기는 나오고 있지 않았다.

“아직 작업은 시작 안 한 건가? 연기는 없네.”

“아. 연기는 아마 계속 안 나올 겁니다.”

“어?”

“마법사들의 불로 열을 내고 있어서요. 장작 같은 걸 태울 필요도 없으니, 연기도 안 나오는 거죠.”

“아. 그게 그렇게 되나?”

하긴.

연기가 나 봐야 괴물들의 시선이나 끌 테니 그편이 낫다만.

“그럼 저 굴뚝은 용도가 뭐야?”

“사실 이 공방 자체가 박 노야의 공방을 본뜬 거라서요. 필요성은 줄었어도 일단 달아 본 겁니다. 나름 열 배출도 되고요.”

“허어.”

그나저나.

박 노야라.

아까부터 자연스럽게 칭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 부대 분위기는 실력 대우가 크다고 하지 않았나.’

공병들에 비하면 상당히 늦게 각성을 마친 박씨 할아버지.

그런데 공방은 박씨 할아버지의 것을 본뜨고.

그 호칭마저 박 노야라.

내 생각보다도 훨씬 실력이 뛰어나신 걸지도.

“왔느냐.”

공방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씨 할아버지가 마중을 나왔다.

“흐흐. 어떠냐. 공방의 모습은.”

“멋있네요. 생각보다도.”

“아직 설비는 부족한 편이고, 이 공방도 어디까지나 시스템상으로는 임시 공방에 불과하다만…… 그래도 효과는 상당할 거다.”

“임시 공방이요?”

“나름 제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만, 이 시스템에서는 정식 공방으로 인정받지는 못하는 모양이더구나. 그쪽은 조건이 또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만한 공방이 정식 공방 취급을 못 받는다니.

주변을 둘러보자, 이미 무언가 일을 하고 있는 공병들이 보였다.

뚱땅거리며 쇳덩이를 만지작거리는 공병들.

그 근처에는 이미 만들어진듯한 쇠붙이들이 쌓여 있었다.

대충 인사를 마친 박씨 할아버지가 그렇게 쌓여있는 쇠붙이 중 한쪽으로 다가가더니.

물건 하나를 들고 내게 건넸다.

“이거. 한번 쥐어 보거라.”

“이건.”

그가 내게 건넨 것은 한 자루의 칼.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다란 도였다.

“와. 멋있네요.”

나야 환도니 일본도니 하면서 칼의 종류를 구분할 능력은 없는 막눈이라지만.

유려한 형태의 장도.

꽤 멋들어진 칼이란 건 알겠다.

“그러냐? 뭐 그건 상관없고. 쥐었으면 이거 한번 베어 보거라.”

그렇게 말하며.

작은 통나무 하나를 작업대에 올리는 할아버지.

‘겨우 통나무?’

나로서는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단단한 원목 테이블도 무처럼 썰어 재낀 나다.

어지간히 굵은 녀석이면 모를까.

이런 얇은 통나무를 베라는 건, 너무 간단한-.

빻!

.

.

.

팍!

“……어?”

순식간에 베일 것을 예상하고 휘두른 칼은.

베이기는커녕.

나무에 약간의 흠집을 내는 정도에 그쳤다.

“바, 박씨 할아버지?”

“뭐냐.”

나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박씨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칼. 쓰레긴데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