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맹인을 눈뜨게 하시고 (2)
새하얗게 빛을 잃었던 눈동자.
덕분에 묘한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던 그 눈은.
지금은 묘한 푸른빛 눈동자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눈을 매만지던 수아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생 맹인으로 살아야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
“나쁘지 않은 거래긴 했죠. 시력을 대가로 얻은 특성이긴 해도 그만큼 강력한 능력이었으니까요. 각성자가 된 후로는 감각도 예민해져서 어느 정도 생활에 문제도 없었고요. 하지만…….”
눈물 한 방울.
“괜찮은 거래라고 생각했지만, 자다 일어났을 때 앞이 보이지 않으면 무서웠어요.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 생각하면 몸이 떨렸구요…….”
“그거야 뭐 이해합니다.”
“이해 못 하실 거예요. 한번 잃었던 걸 되찾은 기분은…….”
정수아가 눈물을 닦아 내고 말한다.
“이거, 의도하신 건가요?”
“의도했다고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눈에 도움이 되는 쪽의 요리를 하는 건 노린 게 맞는데.
……없어진 시력을 되돌린 건 전혀 의도한 바가 아니라.
그런 내 대답을 어떻게 이해한 걸까.
“맹인의 눈을 뜨게 하다니. 이런 건 성경에서나 나오던…….”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흠칫하며 나를 보는 정수아.
푸른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보기에는 꽤 좋지만.
저것도 일반적인 눈의 색은 아니란 말이지.
‘정령안의 영향인 건가.’
아.
그러고 보니.
“기적…….”
“수아 씨.”
“기적을 일으…… 아. 네?”
무슨 생각에 잠긴 것인지.
여전히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녀.
시력을 되찾고 감상에 빠진 것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확인해 둬야 하는 일이 있었다.
“계약의 대가로 시력을 잃고 정령안을 얻었다. 그렇게 말씀하셨잖습니까?”
“네. 그랬죠.”
“그럼 지금. 정령안은 제대로 남아 있는 거 맞습니까?”
시력을 대가로 얻은 능력.
그렇다면 시력이 돌아온 지금.
혹시나.
정령안도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큰일이다.
정령 드론으로 꿀 빨 계획이 초장부터 무너지는 셈.
초조한 심정으로 묻자.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아.”
“방울아.”
긴장한 나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드는 그녀.
그 손에 전에 보았던 물방울이 다시금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방울이와의 계약도 그대로고. 정령안도 멀쩡한 것 같아요.”
“그건 다행이군요.”
진짜로 식겁했잖냐.
“말 나온 김에 주변이나 한번 둘러볼까요?”
그녀의 말과 함께 식당 밖으로 나가는 정령.
그녀의 시선이 이전처럼 허공을 향했다.
자세는 비슷하지만.
하얗게 혼탁해진 눈동자가 푸른 바다 빛으로 변한 탓일까.
이전에는 다소 기괴하게 느껴졌다면.
지금은 신비로운 분위기만 남아 있었다.
“대단하네요.”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가 멍하니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길래 그렇습니까?”
“여기서부터 군내의 모습이 보일 정도예요. 이 정도로 멀리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건 정말…….”
충격이 큰 것인지 말꼬리를 흐리는 그녀.
내 입장에서는 그저 호재였다.
‘됐다.’
조금 냉정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내 목적은 시력 회복이 아닌 정령안의 강화.
그녀의 시력이 회복되었다는 것보다도 특성이 강화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었으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잠시 감상에 빠진 듯 말을 잃었던 그녀가 눈물을 슥슥 닦으며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제 요리. 이제 좀 믿고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의심한 건 정말 죄송해요. 다른 그룹원들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저만은 당신한테 받은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은혜라니, 거창하게.
내게 나쁜 일은 아니다만.
“그럼. 일단 거래 내용부터 이행하죠.”
“맞아……. 기적을 베풀어 주셨으니, 전력을 다해 갚아야…… 네?”
“약탈자들을 토벌하고, 잡혀간 그룹원들을 구해 준다. 그 대가로 그쪽은 우리 부대에 합류한다. 그런 거래였잖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죄송하다는 얼굴로 말하는 그녀.
“잡혀간 동료들한테는 못 할 말이긴 하지만. 이만한 은혜를 입었는걸요. 솔직히 말해, 그냥 합류하라고 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그러면 안 되죠. 약속한 게 있는데.”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
……같은 건 사실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고.
“게다가 이 거래, 딱히 당신들을 위한 부분만 있는 건 아니라서.”
“네?”
“아무튼. 정령안의 성능도 올라갔다고 하셨으니, 지금이라면 약탈자 녀석들의 근거지는 파악 가능한 겁니까?”
“녀석들이 활동하던 지역은 알고 있으니. 그 주변 물가에서부터 탐색을 시작한다면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반쯤 명령조가 돼 버렸지만.
정수아는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약탈자 토벌이 은인분께도 도움이 된다. 그 얘기겠죠?”
“뭐 그런 셈입니다.”
“그렇다면…… 알겠어요. 맡겨만 주세요!”
기운차게 대답하는 모습.
뭐라고 해야 하나.
동료들을 구할 수 있게 된 것은 중요하지 않고.
내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한데.
‘뭐 나쁘지 않나.’
* * *
“시력이 되살아났다…….”
정수아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뒤.
나는 부대의 일을 상의하기도 할 겸.
있었던 일들을 민재 형에게 전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민재 형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건 내 추측이긴 하다만.”
“음?”
“아마 그 계약의 대가라는 거. 시력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시력이 아니라니.
“정령이라고 하면. 명확한 언어로 대화하는 이미지는 없거든.”
“그러면?”
“시력이 아니라, 예를 들어 눈에 있는 마력이라든지. 그런 류의 계약이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일반인들은 마력이랄 게 거의 없으니.”
“그 얼마 없는 마력을 계약 조건으로 지불하고 실명했다?”
“그리고 눈에 관련된 좋은 마력만 모인 음식을 먹자 다시 시력이 돌아왔다. 뭐 그런 게 아닐까.”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하며 어깨를 으쓱하는 민재 형.
하지만.
나는 이 추측이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힐러 계열 각성자면 또 몰라.’
아예 실명된 눈을 되살린다던가.
요리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름 요리 실력에 자신이 있긴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은 아니거든.
“아무튼. 우리한테는 나쁘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 약탈자의 근거지도 파악할 수 있게 됐고.”
“그것도 그렇지만…… 아까 잠깐 그 여자랑 얘기를 나눠 봤거든.”
“정수아랑?”
“그래. 그 여자. 자기 눈에 떠진 것에 대해 상당히 신기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더군. 뭐. 그만큼 대단한 일이었으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만.”
“의미부여라니?”
“뭐야, 넌 눈치 못 챘냐?”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 정도는 느꼈다만.
의미부여라 할 만한 게 있었나? 싶다.
“뭐, 몰라도 상관은 없나? 어쨌든, 이미 그녀는 너에게 큰 은혜를 느끼고 있어. 그렇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냐 싶다만.”
“약탈자 토벌을 말하는 거지?”
“그래. 굳이 거래를 이행하지 않아도 그 여자는 부대에 합류할 의지가 넘치는 것 같던데.”
민재 형이 말하려는 바는 알겠다만.
내 생각은 반대였다.
“약탈자 토벌은 빠르면 빠를수록 나아.”
“왜지?”
“어차피 언젠가 부딪힐 녀석들이니까.”
지상에 내려와서 겪어 본바.
우리 부대는 아마 인간 중에서는 꽤 강한 축.
아니.
엄청나게 강한 축에 들 것이다.
‘하지만, 이 차이는 산맥에서 빠른 성장을 이뤘기에 가능한 거였지.’
지상에 내려온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다른 이들도 각성한 이상 세력전을 의식하고 있을 거야. 조금이라도 안주하는 순간 다른 이들과의 차이는 좁혀져 갈 거고.”
“그건 그럴 수도 있겠다만.”
“그럴 바에야. 우리가 확실히 앞서가고 있는 지금 싸우는 게 낫지. 부대원들도 이번 기회에 인간과 싸우는 경험을 쌓아야 하고.”
“인간과 싸우는 경험이라.”
민재 형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약탈자들은 전부 죽이면 되는 건가?”
“아니. 가급적 생포하는 쪽이지.”
“생포라. 너무 안일한 생각 아닌가? 괜히 포로로 잡아 봤자 식량만 축낼 뿐이다. 부대에서도 너는 살인은 좋지 않다고 말했지만, 여기까지 와서도 불살주의를 지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만.”
이 형.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살인은 나쁘다던가. 내가 그런 이유로 살려 두자고 한 것 같아?”
“아니란 거냐?”
“설마. 나 그 정도로 착한 놈은 아니야.”
“그러면 약탈자 놈들을 생포해서 어디에…… 아.”
그제서야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민재 형.
“너. ‘기수 열외’를 늘릴 셈인 거군.”
“정답.”
기수 열외.
말 그대로 기수에서 제외된 병사를 뜻하는 말.
일반적인 부대에서는 계급 취급을 안 해주는 병사를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범죄자들.’
과거.
이상아 조장의 그룹에 섞여 산맥의 부대를 찾아왔던 5인의 범죄자들.
녀석들은 내 요리에 굴복하고 충성을 맹세했다.
그 결과.
기수와 상관없이 막내 취급을 받으며 활동하게 된 녀석들.
과거야 어쨌든 간에.
그 녀석들.
지금은 꽤 훌륭한 전력이거든.
“약탈자들은 기본적으로 범죄자들이고, 정신도 썩어 있겠지만. 그거야 뭐, 갱생시키면 되는 거 아니겠어?”
“…….”
정상적인 갱생 방법은 아니긴 하다만.
효과는 확실하다.
‘평범한 사람한테는 나도 굳이 [특별소스]를 쓰고 싶지 않지만 말이지.’
광일이 같은 경우가 대표적.
처음에는 그냥 겁 많은 성격을 조금 풀어 줄 생각이었다만.
아예 광전사가 돼 버린 녀석을 볼 때면.
솔직히, 가슴 한쪽이 찔릴 때도 많다.
하지만.
“약탈자 놈들은 별개지.”
다른 인간들을 습격하고.
심지어는 노예로까지 다루던 놈들.
그딴 녀석들의 인격까지 신경 써 준다?
내가 왜?
“과연……. 네 말대로 된다면, 부대원을 순식간에 늘릴 수 있겠군.”
“그런 거지.”
“……좋은 생각이다. 솔직히 네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처음부터 여기까지 계산했던 거냐?”
감탄한 듯 나를 바라보는 민재 형.
괜히 낯부끄러워진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노린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아다리가 잘 맞은 거지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하길 바란다면야. 그런 거로 치지.”
전혀 그런 거로 치겠다는 말투가 아닌데.
* * *
그로부터 며칠 뒤.
“지금부터 약탈자 그룹을 토벌한다.”
나는 병사들의 앞에 서서 입을 열었다.
정수아가 정령안을 통해 조사한 결과.
약탈자 그룹은 빌라촌 한 곳을 통째로 점거했다고 한다.
그곳에 펜스를 두르고 벽을 세워 해당 지역을 요새화했다고.
그 안에서 노예들을 통해 농사를 짓는 것은 물론.
각성자가 포함된 전투조는 안전한 거점을 중심으로 외부를 돌아다니며 약탈을 자행하는 것.
딱히 칭찬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정수아의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지금 시점에 이 정도 세력을 만들다니.’
근방에서 활동하는 약탈자 중 가장 큰 세력이라고 했던가?
이 녀석들.
확실히 무시할 만한 단체는 아닌 것 같았다.
어차피 언젠가 영역을 넓히다 보면 부딪혔어야 할 녀석들.
지금 부딪히게 된 게 오히려 우리에겐 이득이겠지.
“다들 알고 있겠지만, 이번 전투의 적들은 괴물이 아니다.”
병사들의 표정이 조금씩 변화했다.
몇몇 병사들은 다소 얼굴이 굳었을지언정.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저런 녀석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
문제는 다른 쪽.
얼굴에 떠오른 일말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괴물을 상대로 싸우는 데는 다들 익숙해졌다만.’
인간에게 칼을 들이민다는 것.
그 부분에는 망설임이 남아 있는 녀석들도 있다는 거다.
‘오히려 잘된 거지.’
이번 기회에.
부대원들에게 인간과의 전투를 경험시킨다.
저 탈영병 녀석들과의 조우를 제외하면 인간과의 전투를 겪을 기회가 없었으니까.
[요리사의 특별소스]를 통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개조할 수는 있지만.
소스를 통한 효과는 일시적이지만, 여파는 오래 간다.
잘못 사용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볼 수도 있는 일.
그럴 바에야.
직접 부딪혀서 경험시키는 게 낫다는 판단.
“그럼…… 음. 딱히 할 말은 없네.”
“풉.”
“신 병장님. 뭡니까 그게.”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걸 내가 해본 적이 있어야지. 다들 준비된 것 같으니. 가자.”
영 기운 빠지는 출전식이라 미안하지만.
그로 인해 일어난 현상은 꽤 웅장했다.
“출진!”
“군단의 승리를 위하여!”
다종다양한 무기를 든 군인들이
하나 된 발걸음으로 이동을 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