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이상식욕자 (2)
[요리사의 대적.]
[이상식욕자를 마주하였습니다.]
[직업 퀘스트 - 대적자 척살(이상식욕자)]
[이상식욕자.]
[그릇된 방법을 거친 식사로 왜곡된 힘을 얻은 존재들입니다.]
[올바른 식사를 주도하는 요리사들에게 있어서, 용서할 수 없는 대적 중 하나!]
[당신의 대적자를 주살하십시오.]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대적자를 상대하는 데 한해 전투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퀘스트 보상 - 랜덤 스킬북]
‘직업 퀘스트?’
뭐야 이게.
세상이 게임 같은 시스템으로 변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젠 퀘스트까지?
‘아니. 이런 거에 일일이 놀라기엔 시간이 많이 지났지.’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천천히 퀘스트창의 내용을 읽어 보았다.
그 결과.
저 녀석이 저런 괴상한 모습과 힘을 가지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상식욕……이라.’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왜곡된 힘을 얻는 존재.
그 올바르지 않은 방법이란 건 아마도.
“크, 큰형님! 제발 목숨만은……!”
지금도 부하였던 녀석들을 쳐 죽이고, 몸집을 키우고 있는.
저 행위를 말하는 거겠지.
그리고 내 직업은 ‘요리사.’
저딴 식의 ‘식사’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 같다.
뭐.
그런 건 중요하지 않고.
퀘스트가 떠오른 이상 가장 중요한 것은 보상인데.
문제는 그게.
[퀘스트 보상 - 랜덤 스킬북]
‘미친.’
스킬북이라고?
스킬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많지 않다.
업적을 달성하거나.
아니면 포인트 상점에서 엄청난 포인트를 지불하고 ‘랜덤 스킬북’을 구매하거나.
둘 중 하나.
후자의 경우.
나름 포인트를 많이 저축해놓은 나조차 기겁할 정도의 가격을 지불해야 얻을 수 있는 아이템.
그런데.
그걸 그냥 준다고?
‘이건 못 참지.’
여전히 자기 부하들을 사냥하고 있는 살덩어리 괴물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니까.
저 약탈자 놈들도, 내 요리를 통해 ‘갱생’시킬 예비 신병들이다.
그 녀석들을 흡수하며 힘을 키우고 있는 괴물.
가만 지켜보고 있어선 안 되겠지.
“다들 집중!”
병사들을 향해 소리치며 말했다.
“저 자식. 아무래도 인간을 흡수하면서 힘을 키우고 있는 것 같다.”
“그, 그런 겁니까? 그럼 어떻게 대처해야…….”
“어떻게 하긴?”
나는 덤덤하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간 뒤.
식칼을 꺼내 들었다.
“더 흡수하기 전에. 빨리 족쳐야지.”
“…….”
비현실적인 광경에 멍해져 있던 아군 병사들이었으나.
명령이 내려진 이상.
“충성충성!”
망설임은 없었다.
“카하하하!!! 날 두고 어딜 가느냐! 돼지 새끼!”
전광일 상병이 몸을 날리는 것을 시작으로.
아군 병사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전광일과 살덩어리가 1:1로 겨뤘던 직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아군 병사들이 모두 동원된 총공격.
녀석을 도울 약탈자들은 녀석이 직접 흡수해 버렸으니.
쉽게 처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나.
“커허……!”
“전광일 상병님!?”
가장 먼저 덤벼들었던 전광일 상병이 피를 토하며 날아간다.
“큭큭. 이제야 좀 재밌어졌군……!”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어나긴 했지만.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 있는 모습.
저 광일이 녀석조차 치명상을 입을 정도의 강함이라니.
“이 괴물. 아까랑은 비교도 안 되게 강해졌습니다!”
이미 수많은 약탈자를 집어삼킨 뒤라서일까.
안 그래도 강력했던 살덩어리 괴물.
녀석은 어마어마하게 강력해져버린 상태였다.
이만큼 강한 괴물이라니.
철물창고에서 마주했던 ‘맥’이 떠오를 정도.
‘음. 내가 덤비면 그냥 죽겠는데?’
내 전공은 어디까지나 요리.
전투 능력은 글쎄.
부대에서 가장 먼저 각성에 성공했음에도 잘 쳐줘야 중위권 정도가 아닐까.
전투 능력으로만 따지면 단연코 우리 부대의 최강자인 전광일 상병이 저런 모습을 보일 정도다.
평상시의 나였다면.
전투 개시 후 3초면 반으로 접혀 있을 확률이 높겠지.
‘그래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양손에 식칼을 든 채.
괴물 녀석에게 접근했다.
나름대로 믿는 구석도 하나 있거든.
[직업 퀘스트가 진행 중입니다.]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대적자를 상대하는 데에 한해 전투 능력이 대폭 증가합니다.]
직업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 적용된다는 버프.
전투 능력의 대폭 증가.
무려 ‘대폭’ 증가다.
광일이보단 못해도 그럭저럭 강해져 있는 상태 아닐까.
“시, 신 병장님!?”
“물러나십쇼! 여긴 저희들이……!”
근접전을 치르던 전사들이 접근해 온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전투직도 아닌 내가 왜 이렇게 위험한 곳까지 왔느냐는 것이겠지.
난 녀석들의 만류를 무시한 채.
눈앞의 살덩어리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요리사의 눈이 발동합니다.]
[‘하급 요리 비결 - 이상식욕자 손질법의 깨달음’을 획득합니다.]
머릿속으로 파도치며 들어오는 손질법을 되새기며.
오른손에 든 중식도, [검정 중식]에 힘을 주었다.
두껍고 무거운 칼.
저 덩치에게도 그럭저럭 통하길 기원하며 칼을 휘둘렀다.
그런데.
‘……어?’
칼을 휘두르는 순간.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직업 퀘스트의 효과로 어느 정도 강해졌을 것이라는 건 예상했지만.
이건.
‘어느 정도’가 아니잖아?
‘몸이, 너무 가볍다.’
이상할 정도로 가벼워진 몸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병사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전사들을 상대하느라 바쁘던 녀석은 내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머리 속에 떠오르는 녀석의 손질법에 따라.
칼을 쥔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서걱-
두꺼운 가죽을, 종잇장처럼 뚫고 지나가는 칼날.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 여왕의 한이 상처를 파고듭니다.]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힙니다.]
[검정 중식]과 [독고 구식].
두 자루의 칼은 탄약대대를 점거하고 있던 흰거미 여왕의 앞발로 만들어진바.
한 종족을 이끌던 최후의 여왕.
그녀의 원한이, 잘려나간 상처 부위를 파고들어 갔다.
“크워어어어어어!!!”
거대한 살덩어리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뭐, 뭐야?”
“신 병장님이다! 신영준 병장님의 공격이 통한 거야!”
전사들은 물론.
후위 마법사들의 공격조차 버텨 내던 괴물.
“아파. 아파. 아파……!”
그런 녀석이 갑자기 고통에 차서 발광하기 시작하는 모습.
아군 병사들이 경악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놀라울 지경인데, 남들이야 오죽할까.’
하지만.
가만히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너, 죽인다……!”
너무 큰 고통을 안겨 준 탓에.
녀석의 어그로가 내게 옮겨와 버렸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덩치가 두 배는 커진 것 같은 녀석.
그 거대한 손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저기에 잡히는 순간.
온몸의 뼈가 가루가 돼 버리겠지.
하지만.
‘생각보다 느리다.’
아니.
‘내가 빨라진 건가.’
가볍게 몸을 움직여 녀석의 공격을 피한 뒤.
공격으로 생긴 허점을 향해 양손에 쥔 칼을 휘둘렀다.
서걱-
“크아아아아!!! 아파, 아프다!!!”
고통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녀석.
녀석이 비명을 지르는 사이.
“먹는 걸 좋아할 것처럼 생기셨는데.”
비명을 지르느라 벌려진 입.
그 거대한 입 사이에 발을 집어넣고, 강제로 벌린다.
그리고.
[하급 요리사의 정성이 담긴 짙은 무력감의 아라크론 육포]
“이것도 좀 먹어 보시던가.”
“끄륵.”
[전투식량]을 던져 넣었다.
“뭐 해, 이것들아! 가세한다!”
“신 병장님을 도와라!”
[전투식량]에 담긴 감정은, 짙은 무력감.
“아, 아프다…… 그만해라…….”
무력감에 휩싸인 녀석의 기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병사들이 나를 도와 전투에 가세했다.
아무리 퀘스트의 효과로 강해졌다고 한들.
1:1로 싸운다면, 내가 녀석을 이기는 건 불가능했겠지만.
[짙은 무력감]의 요리로 인해 기세가 꺾인 것은 물론.
‘동료를 집어삼킨 너랑은 다르거든.’
내게는.
함께 싸울 병사들이 있었다.
‘약간의 변수조차 없다.’
나는 머리를 비운 채.
그저 무아지경으로 계속해서 양손의 칼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찌르고.
베고.
찍고.
가르고.
그 과정을 몇 번을 반복했을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기괴할 정도로 부풀어 올랐던 살덩어리를 계속해서 베어 낸 결과.
평범한 인간 수준의 크기까지 줄어든 녀석.
녀석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나는 지친 숨을 가라앉히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왜소해진 어깨를 붙잡고 쭈그려 앉아 살려 달라고 비는 녀석.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녀석.
만약에 살려 둔다면, 어떻게든 이용할 구석이 나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식재료 감별]
[이상식욕자]
[한때는 인간이었으나, 그릇된 방법을 통해 완전히 인간을 벗어나게 된 존재입니다.]
아쉽게도.
이 녀석은, 이미 인간이 아니게 되어버린 상태였다.
“미안하지만…… 넌 갱생도 안 될 것 같다.”
인간을 먹어서 힘을 키우는 괴물.
정수아의 그룹을 추격한 약탈자들이 물자는 됐으니 인간만 넘겨달라 했던 것을 떠올렸다.
노예로 삼는다고만 생각해도 꽤 께름칙한 일이지만.
이 녀석이 다른 약탈자들을 흡수해 몸집을 키우던 모습을 보면.
‘인간만 넘겨달라는 그 약탈자들의 요구…….’
단순히 노예로 쓰겠다는 것보다는.
이 녀석의 몸집을 키우기 위한 목적도 있지 않았을까.
“아파, 아파. 엄마…… 살려…….”
꿀꺽.
[특별소스]를 먹여 가며 살려둔다고 한들.
이성이랄 것이 거의 남지 않은 녀석은, 내 요리로도 통제하기 힘들 터.
서걱-
나는 칼을 쥔 손에 힘을 꽉 준 뒤.
녀석의 목 부위를 ‘손질’했다.
그러자.
괴물을 처치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묘한 충족감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 왔다.
엄청난 양의 경험치가, 몸 안을 가득 메우는 것이 느껴지고.
[플레이어를 처치하였습니다.]
[플레이어가 소유 중인 포인트 – 3,271pt를 획득합니다.]
‘소유 중인 포인트까지?’
녀석이 가지고 있던 포인트가, 내게 넘어왔다.
설마.
사람을 죽일 경우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포인트까지 획득할 수 있는 건가?
그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깨달았다.
‘이게 내 첫 살인인가.’
이미 많은 괴물들의 목숨을 뺏어 왔다.
이 녀석 역시, 인간보다는 괴물에 가까운 모습이 되어 버렸다지만.
‘쯧.’
그럼에도, 한때는 인간이었던 녀석.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칼을 쥔 손가락이 조금씩 떨리는 게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떨림을 억제했다.
‘괜한 생각에 매몰되면 안 된다.’
내 손으로 죽인 적에 대한 생각에 매몰되어 울적해지다니.
지금 내게 그럴만한 여유는 없었다.
‘내가 신경써야 할 것은. 죽은 적이 아니야.’
살아남은 사람들.
그들과 어떻게 생존해 나가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
그런 면에서.
이번에 들어온 포인트의 양은.
나를 놀라기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3,271이라고?’
다른 약탈자들을 죄다 씹어 삼킨 녀석.
그렇게 먹힌 인간 중 각성자들이 소유하고 있던 포인트까지 한 번에 들어온 셈.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직업 퀘스트 - 대적자 척살을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 랜덤 스킬북]
랜덤 스킬북까지.
‘부대원들을 늘리기 위해 강행한 토벌이었는데.’
얻게 된 보상은 내가 예상했던 것 그 이상.
피가 묻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큭큭, 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이런 보상이라니.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기가 힘들잖아.
* * *
“우, 웃고 계셔.”
“……저런 괴물을 상대로 싸우고 나서 저렇게 여유롭게 웃다니. 대체.”
신영준 병장이 보상을 확인하며 웃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본 병사들이 중얼거렸다.
“내, 내가 대체 뭘 본 건가 싶다.”
“내가 본 거랑 같은 걸걸? 신 병장님이 저 괴물 같은 녀석을 말 그대로 손질해버리는 거.”
“그치? 잘못 본 거 아니지?”
“전광일 상병님도 나가떨어진 괴물을. 저리 손쉽게…….”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신영준 병장이 저 기괴한 살덩어리를 상대로 보여 준 무력.
그것은 ‘요리사’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보여 줬다고 믿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거기에 피 묻은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웃고 있는 저 모습까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전투광의 모습.
그 자체 아닌가.
“평상시에는 후방에서 요리를 제공하고 지휘하는 모습만 보여서 몰랐는데.”
“저게 신 병장님의 원래 모습인 거다.”
“신 병장님은 각성하실 때 총도 안 쓰셨잖아. 식칼 하나로 리자드를 찢어 죽이셨다고 들었어.”
“미친. 그게 인간이 가능한 일이야?”
각성 당시의 이야기까지 재조명되자.
병사들은 경악하며 신영준 병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저 정도면 평소에도 직접 나서시는 게 나았던 거 아냐?”
“그러게. 왜 매번 후방에 빠져 계셨던 거야?”
의문을 품은 병사들.
거기에 대답한 것은.
2m가 넘는 거구의 사내였다.
“하하. 너희들. 아직도 모르겠냐?”
“전 상병님?”
근처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전광일 상병이 병사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에게 성장할 기회를 주려고 하신 거다.”
“성장할 기회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 병장님은 요리사니까, 요리를 통해서도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지. 하지만 우리 같은 전투 계열 각성자들은 그럴 수가 없잖아?”
“그건 그렇죠.”
“아, 설마!”
거기까지 설명이 이어지자.
몇몇 병사는, 전광일 상병이 하고자 하는 말을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 신 병장님이 직접 칼을 들고 나서면 쉽게 해결되겠지만, 그래선 우리가 성장을 못 하지. 그래서.”
“우리의 성장을 위해 괴물들을 양보해 주셨다는 겁니까.”
“그래. 신 병장님의 배려에는 정말이지, 감동할 수밖에 없다니까.”
감동에 눈물을 훔치며 말하는 전광일 상병.
그때 병사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럼, 저번에 탄약고를 폭발시킬 때 크게 다치신 건요?”
“전투 능력이랑 신체 능력은 별개니까. 달리기는 좀 느리실 수도 있지.”
“철물 창고 때 그 괴물은…….”
“‘맥’을 말하는 거냐? 그 녀석은 죽이기보다 살려 놓는 게 쓸모 있다 판단하신 거겠지. 실제로 포획한 뒤에는 공병들이 잘 활용하고 있잖냐.”
실제로 어떤 이유가 있었든 간에.
그럴싸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져 가는 대화.
“그런 거였다니.”
“신 병장님…….”
“그런 면에서 우리는 반성할 게 많다고 본다.”
분한 듯 주먹을 꽉 움켜쥐는 전광일 상병.
“신 병장님은 우리를 위해 그렇게 양보를 해 왔지만. 우리가 약한 탓에 저 돼지 녀석을 못 쓰러트렸으니까. 신 병장님이 보면서 얼마나 갑갑하셨겠냐.”
“아, 이번에 신 병장님이 나서신 건 그래서……!”
“답답해서 내가 뛴다는 심정으로 칼을 뽑아 드신 거다. 약해빠진 우리를 보며 갑갑해하다가 직접 정리하니, 속이 시원해서 웃으신 거겠지.”
“오.”
그럴싸한 해석에 병사들이 감탄하자.
전광일 상병은 씨익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신 병장님이 이렇게까지 우리를 배려해 주고 계시니까. 우리가 해야 할 건 하나뿐.”
“뭡니까?”
“오늘같이 신 병장님이 직접 나서실 일 없도록, 더욱더 연마하고 강해지는 거다. 그게 병장님의 배려에 보답하는 일이 되겠지.”
전광일 상병의 말이 끝나자.
전사조 병사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과연…… 알겠습니다.”
“전 상병님! 부대에 복귀하는 대로 스파링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저도 같이……!”
“물론 한 명만으로는 나도 훈련이 되지 않으니까, 다섯 명 정도는 동시에 상대해 주마.”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신 때문에 병사들이 훈련 욕구를 불태우고 있다는 것을.
당사자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 * *
전투 현장의 정리가 끝난 뒤.
우리 부대의 병사들은 빌라촌의 수색에 들어갔다.
약탈자들이 쌓아 놓은 자원도 자원이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들.
우리가 약탈자들의 토벌을 실행한 이유는 자원 따위가 아니었다.
약탈자들이 억압하고 있는 노예를 해방해서 영입.
포획한 포로들은 [요리사의 특별소스]로 ‘갱생’시켜서 부대원을 늘리는 것.
그것을 위해 전력의 절반 정도를 따로 분리.
포위조로서 빌라촌 주변 곳곳에 배치한 것이었다만.
“열심히 대기는 했는데, 우리한테 온 약탈자는 몇 명 안되더군.”
포위조의 지휘를 맡고 있던 민재 형이 말했다.
“솔직히 진이 빠질 정도였다. 너희들 쪽에서 대부분 포로로 삼는 데 성공한 건가 했는데.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거 같고.”
“아쉽게도 그렇게 됐네.”
포로로 삼으려던 약탈자들.
그 대부분은 저 ‘이상식욕자’ 녀석이 힘을 키우기 위해 잡아먹어 버렸다.
저 큰 몸뚱이로 빠르기는 얼마나 빠른지.
도망치려던 약탈자 놈들을 기어코 붙잡아 집어삼켜 버렸지.
덕분에 포로로 잡은 약탈자는 전투 초기에 붙잡은 몇 놈 정도.
다음은 노예로 잡혀 있던 이들인데.
“수아 언니!”
“얘들아!”
“수아 양, 우릴 구해 주러 올 줄이야.”
정수아의 그룹에서 납치당한 이들을 포함.
몇몇 노예들을 발견하고,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쪽도 예상했던 것보다 숫자가 많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수색을 계속하면서 알 수 있었다.
“우욱.”
“이건…….”
빌라촌 구석.
외진 곳에 있던 건물을 수색하던 병사들이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구역질을 내뱉었다.
노예.
그중 일부분은 살아있는 채로 노예로 혹사당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여기서 고문이라도 한 겁니까?”
“아니. 자세히 봐.”
나는 건물에 쌓여 있는 시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지가 잘려 있는 정도는 순한 편이다.
자신들의 욕구를 풀기 위한 장난감으로 쓰인 흔적은 물론.
그걸 넘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폭력으로 인해 훼손된 시체들까지.
“고문 따위가 아니야. 장난감으로 가지고 놀다가 죽인 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노예로 쓴다면 효율적일 텐데, 굳이 이렇게 죽일 이유가…….”
의아해하는 병사들.
나는 그 이유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저 살덩어리 녀석에게 식량으로 제공하려던 거겠지.”
“아……!”
그 살덩어리 괴물 녀석.
분명 약탈자 놈들에게 큰형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
“그 녀석이 약탈자 놈들의 대장이었던 거다.”
“부하들을 집어삼킨 그 녀석이…….”
“그래. 급하다고 부하들도 흡수해 버린 녀석인데, 평소에 어땠을지는 뻔하지.”
이곳은 식량으로 제공되기 전의 노예들을 보관하던 장소일 테지.
식량으로 가공하기 전에 약탈자 놈들이 조금씩 가지고 논 것일 테고.
“그. 욕구 해소용으로 쓰인 흔적도 있습니다만.”
“저 살덩어리 녀석이 말하는 거 들었지? 그런 거 신경 쓸 지성이나 있는 것 같았냐?”
“…….”
3살짜리 아기랑 비슷할까 싶은 어휘 능력.
‘이상식욕’을 통해 힘을 얻은 부작용인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강해진 것과 별개로 이성은 대부분 날아가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
“쯧.”
처참한 광경을 바라보는 병사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다만.
이 광경을 그냥 징그럽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면 안 되겠지.
“우리도 이렇게 될 수도 있었어.”
산맥에서부터 힘을 키워 왔기에.
강자의 입장에서 이들을 토벌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우리의 힘이 부족했다면.
반대로 저기에 쌓여 있는 시체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겠지.
“명심해라. 절대 방심해선 안 돼. 지금은 우리가 강한 편이라고 해도 언제 추월당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예.
“괴물도 괴물이지만, 인간을 쉽게 믿지도 말고.”
“인간을 믿지 말라니.”
“그럼 누굴 믿어야 합니까.”
누굴 믿어야 하냐니.
뻔한 걸 묻는구먼.
“군단.”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같은 길드의 동료들뿐.
그렇게 현장의 정리를 진행하던 중.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눈도 그렇고, 그룹원들도 그렇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정수아.
그리고 노예로 잡혀 갔었다던 그녀의 그룹원들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도 인사 드리세요. 우리를 구원해 주신 구원자분이십니다.”
“이분이 바로.”
“수아 언니의 눈을 치료해 주신…….”
“가, 감사합니다!”
구원자라니.
저번에도 조금 느꼈다만.
‘이 여자, 좀 거창한 표현을 좋아하네.’
아무튼.
“거래는 이걸로 완료입니다.”
“네.”
“이제 우리 부대의 일원이 되어 주셔야겠습니다만. 불만 없는 거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러면, 이제부터는 말을 놓도록 하지.”
그룹원 중에는 딱 봐도 나보다 연상으로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다만 내 위치가 위치인지라.
다수의 부대원 앞에서는 박씨 할아버지에게도 반말을 해야 했다.
‘좀 오글거리긴 하지만.’
지위에 걸맞은 위엄을 보이지 않으면 단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 일이니.
참아야지 어쩌겠어.
“오히려 그편이 마음 편한걸요. 좋으실 대로 불러주세요.”
“부대에 복귀하는 대로 길드 가입 절차가 진행될 거다.”
비각성자들은 차례대로 각성을 진행하게 될 거고.
각성자들의 경우에는, 공방의 장인들이 장비를 만들어 보급하게 되겠지.
그 후에.
이들은 본격적인 우리의 부대원으로 활동하게 될 거다.
“네. 그런데…….”
“음? 무슨 할 말이 있나?”
“이제 본격적으로 부대의 일원이 됐으니.”
아.
그러고 보니.
“부대의 일원으로서. 제가 가진 정보 하나 전해 드리고 싶어서요.”
정령안을 통해 이곳저곳을 정찰하곤 했다는 정수아.
내 요리를 먹기 전까지는 범위에 한계가 있었겠지.
하지만 지상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며 정령안을 사용해 왔다면.
이 근방의 정보에 가장 빠삭한 것은 그녀가 아닐까.
난 기대감을 품고 되물었다.
“무슨 정보지?”
“이 세상이 게임처럼 변해 버렸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시죠?”
그거야 뭐.
각성자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은인께서는 게임은 좀 해보셨나요?”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남들만큼은.”
“그렇다면 이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 수 있으실 거예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걸까 싶었으나.
싱긋 웃으며 꺼낸 그녀의 말에는.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던전이라고. 들어 보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