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뱀파이어 토벌 (1)
강원도의 작은 도시인 인제군.
그 북쪽 구석의 한 산맥 깊은 곳.
그곳에는,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동굴 하나가 있었다.
그 동굴 내부.
비상시에 대비해 만들어진 군사시설이 지어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정말로 극소수였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리 적다고 한들 그곳 역시 인간들의 무력 시설.
그렇기에.
괴물이 나타났다.
“커, 커억……!”
여타 군부대를 습격한 괴물들과 달리.
벙커에 나타난 괴물은 단 한 마리에 불과했다.
그 한 마리의 괴물이.
어떤 남자의 목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목에 이빨이 박힌 남자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저항하면서 고통에 몸부림쳤으나.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남자의 몸 안을 돌던 모든 혈액이 괴물의 목으로 넘어간 뒤.
괴물의 피가 거꾸로 흘러 들어와 남자의 혈관을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왕님에게 충성을…….”
“그래. 네 활약을 기대하마.”
이내 영혼 없는 눈으로 괴물의 앞에 무릎 꿇는 남자.
그 모습을 보며.
‘여왕’이라 불린 괴물은 생각했다.
‘권속도 꽤 많이 늘어났구나.’
그녀가 이곳에 나타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첫 번째 권속은 이 동굴의 시설을 관리하던 남자였다.
아무래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꽤 중요한 지위에 있던 것 같다만.
그런 지위 따위.
그녀의 앞에 맨몸으로 선 이상, 장식으로서의 가치조차 없는 일.
그래도 나름대로 높은 지위의 남자였던지라 이 세상의 지식에 대해서는 꽤 해박했다.
그녀는 첫 번째 권속에게서 이 세상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지식을 통해 그녀가 얻은 결론은 하나.
‘내가 힘을 키우기에 최고의 환경이다.’
가증스러운 성기사들도.
항마 승병도 혈귀 사냥꾼도 없다.
그녀와 비슷한 개념을 지닌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세간에 있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상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었을 뿐.
그녀와 같은 존재에 대한 대비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눈에.
이 세계의 인간들은 자신에게 물어 달라고 목덜미를 내놓고 있는 이들처럼 보였다.
‘그때는 참 기분 좋았는데 말이지.’
그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기쁜 마음에 곧바로 사냥에 나서려고 했다.
순식간에 힘을 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벙커를 나서려고 하던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상념이 밀려 들어왔다.
[인간종의 무력 시설을 침공하고, 점거하라.]
[누구에게도 빼앗겨선 안 된다.]
무시하려고도 해 봤지만.
출구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강해지는 상념.
그럼에도 욕심을 버릴 수 없었던 그녀는 생각했다.
‘내가 이곳을 떠날 수 없다면, 먹이들이 나를 찾아오게 만들면 되겠지.’
다행히도 그녀의 권속은 자유자재로 벙커의 밖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직접 사냥하는 것에 비하면 확실히 효율이 떨어졌다.
그녀가 하루에 권속으로 만들 수 있는 숫자는 다섯.
초창기에는 하루에 한 명도 권속으로 만들지 못한 날도 많았다.
나름 머리가 좋던 첫 번째 권속이 머리를 굴린 결과.
생존자들 사이에 소문을 내는 데 성공했고.
최근에서야 권속을 늘리는 데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대로 힘을 키우다 보면 하루에 만들 수 있는 권속의 숫자도 늘어날 테지.’
지금은 찾아오는 생존자들은 모두 권속들의 먹이로 주거나 새로운 권속으로 만들고 있지만.
충분한 전력이 갖춰진 뒤에는 인간들을 납치해 사육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일종의 식량 생산 공장을 만드는 것.
거기까지 가기만 한다면 그녀가 힘을 키우는 속도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었다.
언젠가 그녀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상념조차 밀어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출 수 있었을 테지만.
‘짜증 나는구나.’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기껏 속도가 붙기 시작했거늘.
최근에 생긴 불미스러운 일 하나 때문에 약간 그 속도가 줄어들었기 때문.
‘수완이 좋은 권속이었는데.’
권완태.
권속 중에서도 고레벨에 속하고, 수완도 좋아 각별히 아끼던 존재 중 하나였다.
그가 뜬금없이 살해당한 것.
범인들에 대해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군인…… 이 세상의 전사 계층.’
최근에 들어온 권속들 중에서는 그 군인들에 대한 소문을 가지고 있던 이들도 있었다.
전멸한 줄 알았던 군부대 중 생존한 부대가 있으며.
그들은 약탈자 그룹을 토벌하는 등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이들이라던가.
그 소문에는 군부대의 대략적인 위치도 있었다.
전사 계층에 속하는 이들.
그녀가 직접 나서지 못하는 지금.
권속만으로 토벌을 시도했다가는 이쪽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겠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권속은 매일같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그녀가 피를 나눠 준 존재를 마음대로 살해한 이들.
결코 용서할 마음은 없었다.
당장은 위험할 수 있으니 힘을 기른다.
그러나 충분할 정도로 힘을 기른 뒤에는.
그녀의 권속들이 파도가 되어 그 전사들을 척살하리라.
* * *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부대의 회의 시간.
이민재 병장이 그렇게 운을 떼며 말했다.
“아쉽지만, 그게 딱히 틀린 생각도 아니야. 영준이가 알아 온 정보가 사실이라면 저쪽이 각성자…… 뱀파이어를 늘리는 속도는 비정상적이다. 우리는 못 따라가.”
“하루에 다섯이 늘어난다고 했죠? 엄청나긴 하네요…….”
“리자드들이 멋모르고 부대에 꼬라박아 주던 때가 가장 빠르게 각성자를 늘린 시기였는데. 그때도 하루에 다섯 명씩 각성시키는 건 무리였으니 말입니다.”
말이 하루에 다섯이지.
일주일이면 서른이 넘고, 한 달이면 150명.
지금 우리 부대원의 숫자를 채울 수 있다는 것.
“그러면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는 벌어지는 거 아닌가요?”
“그대로 두면 결국에는 지금보다 더 답이 없는 지경까지 갈 것 같은데요.”
맞는 말이다.
그러니.
“선제공격으로 가야지.”
그러기 위해 전차도 얻은 것 아니겠어.
다만.
전차를 획득한 것은 좋지만 그냥 쓰기에는 조금 모자람이 있었다.
전차의 장갑은 두껍긴 하나, 각성자들이나 괴물들 역시 평범한 존재는 아니니까.
충분히 강력한 각성자라면 그 장갑을 파괴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 모자람을 공병들의 개조로 메꾸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공병들이 전차를 개조하는 사이.
나머지 부대원들은 뱀파이어 토벌에 필요한 작전 수립에 들어갔다.
“동굴의 입구는?”
“……산맥의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커다란 바위가 있다. 거기서 길을 벗어나 올라가다 보면…….”
“오호. 요새화가 완료됐다고 했지? 외부 초소들 위치도 좀 알려 줄래?”
“좋다……. 여러 곳에 퍼져 있어서 걸어서 접근해 오는 이들이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 위치는…….”
포로로 잡은 뱀파이어 녀석을 [솔직]하게 만들어 준 뒤.
얻은 정보들은 모조리 지도에 기록했다.
나와 병사들은 그 지도를 보며 머리를 맞대고 공략을 위한 작전을 짜내기로 했다.
작전 계획에 들어간 이들은 부대에서도 머리 좋기로 유명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만.
거기에 조금 의외였던 인물이 한 명.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 부분을 공격하려고 한다면 여기가…….”
“아. 그렇군요.”
병사 중 한 명이 제시한 작전에 누군가가 반대 의견을 표했다.
하지만 반대 의견이라고 한들 거기에 불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략 등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내가 봐도 충분히 납득갈 정도로 냉철한 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정말이지.
전문가라는 느낌이 팍팍 들어서, 본의 아니게 압도될 정도였다만…….
문제는.
“이대로 작전을 짰으면 큰일 날 뻔했군요.”
“감사합니다. 김 중위님.”
그게 바로 김현석 중위.
부대에서는 일 못 하는 것으로 유명하던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지적이었다는 것.
“감사할 것 없다. 서로 의견을 내고 모자란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작전 회의를 하는 거니까.”
“……진짜 적응 안 되네.”
“음? 영준아. 뭐라고 했니?”
“아무것도 아님다.”
김 중위가 각성한 직업은 [최하급 지휘관].
레벨이 꽤 오른 지금은 [하급 지휘관]이다만.
괜히 지휘관이 아니란 걸까.
작전 회의에 참가하는 그에게서는 423대대의 중대장이던 시절의 어벙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천재적인 전략가처럼 명석하고 냉정한 조언과 지적을 반복하는 모습.
이 작전 회의.
가장 활약하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그였다.
‘지휘관으로서의 레벨이 올라가서. 진짜 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향상됐다는 건가?’
조금 어이가 없는 모습.
도무지 적응은 되지 않는다만.
‘뭐 좋은 게 좋은 건가?’
사이가 안 좋던 것도 예전이고.
지금은 내게 무한한 충성을 보이는 김 중위니까.
그리고.
이 회의에서 가장 활약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건 바로 나겠지.’
아쉽지만.
전략, 전술하고는 그다지 연이 없는지라.
애초에 내 전공은 지휘가 아니잖냐.
“작전에 대한 부분은 김 중위님에게 일임하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중에…….”
“간식 하나 더 요리해 드리죠.”
“고맙다! 영준아!!!”
그러니.
여기는 김 중위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잘하는 일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김 중위의 전공이 지휘라면.
내 전공은 뭐니 뭐니해도 요리거든.
‘안 그래도 꽤 공들여서 진행하고 있던 일이 있지.’
꽤 예전부터 시도하던 일이다 보니.
이제 슬슬 그쪽은 마무리 단계.
거기에 적이 무려 뱀파이어이다 보니.
생각해 놓은 요리도 있다.
잘 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내 노림수가 적중하기만 한다면.
뱀파이어가 수백 마리라.
‘경험치 엄청 많이 벌겠네.’
* * *
인제군 북부에 자리잡은 길드.
[강원도 생존자 연합]
그들에게 합류하기 위해 가족들을 이끌고 찾아온 남자가 한 명 있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굉장히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
“제기랄.”
“진정하십쇼, 형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착한 지가 언젠데. 대체 언제 합류를 시켜 주겠다는 거야.”
먼저 도착한 생존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도 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이유가 뭔가 하니.
“그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것 하나 때문에 이렇게 바뀌나.”
아무래도.
이전에 스카우트 담당을 하던 남자가 꽤 수완이 좋은 인물이었다는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근에 그 담당이 바뀌는 일이 발생했다든가.
새롭게 그 자리에 들어온 사람은 영 능력이 떨어지는 듯.
일의 진행이 상당히 지지부진해진 것.
“이해가 안 가네. 일 잘하고 있던 사람은 갑자기 왜 바꾸는 거야?”
“형님. 대규모 그룹이잖습니까, 덩치가 커지니까 실수가 나오는 거 아닐까요.”
“제기랄. 차라리 그 군부대라는 곳에 합류했어야 했나.”
남자도 한때 군부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이동했던 적이 있었으나.
오히려 그곳에 자리 잡고 있던 엄청나게 강력한 괴물들에게 죽을 위기만 겪고 끝났었다.
그런 경험이 있다 보니.
살아남은 군부대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음에도, 헛소문.
혹은 약탈자로 변질된 탈영병들이 낸 악의적인 소문일 것이라 판단했다.
잘못된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불만을 가진다고 해결되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그저 어쩔 수 없이 화를 삭이고 있던 중.
고오오오오오오…….
“뭐, 뭐야?”
갑자기.
땅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지진 아닙니까?”
“아니. 잘 들어 봐. 근처에서 뭔가 소리가 나고 있어.”
불만을 가지기는 했으나.
이 근처는 저 [생존자 연합]이라는 곳이 어느 정도 치안을 정리해 둬서, 괴물이나 좀비를 마주치는 일은 적었다.
하지만.
또 아예 없지는 않았다.
‘주변을 이동하던 대형 몬스터가 지나가는 건가……?’
혹시 모르는 일.
상대할 수 없는 몬스터라면 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남자는 건물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남자가 마주친 것은 거대한 괴물 따위가 아니었다.
‘뭐야. 군인?’
군복을 입은 젊은 남자들이 몇 명.
군인의 모습을 보지 못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라 생경한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사내는 그 두 명에게 소리쳤다.
“당신들은 누구요! 방금 그 소리는 또 뭐고!”
사실.
총을 든 약탈자들이라고 한다면 본래라면 이렇게 당당하게 말을 걸지는 못했겠지.
하지만 이곳은 저 대규모 그룹, [생존자 연합]의 영역.
그들이 치안을 관리하는 만큼, 저들이 사고를 칠 일은 없으리라 믿었다.
그도 그럴 게, [생존자 연합]은 그 인원만 수백 명에 달하는 대규모 집단.
아무리 대단한 이들이라도 그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을 테니까.
그러나.
“누구냐니…….”
“이거 뭐라고 대답해 줘야 하냐.”
두 명의 군인은 오히려 뭐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한 태도였다.
그때.
큰 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뒤에서 커다란 진동이 느껴졌다.
‘제기랄, 괴물인가!?’
긴장한 남자는 무기를 뽑아 들 준비를 했으나.
이내 그 손을 천천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지진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거대한 무한궤도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어, 어……?”
도로에 깔려 있던 좀비의 시체를 으스러트리며 나타난 것은.
거대한 전차였다.
기관총을 둘러매고 있던 병사가 자신들의 뒤를 따라오던 전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면 모르냐는 듯이.
“군인들인데요.”
아연해하는 남자를 뒤로하고.
병사들은 전차의 옆에 서서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정말…… 군대잖아.”
수십 대의 전차와 장갑차, 군용트럭들.
그 옆을 백 명이 넘는 군인들이 뒤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