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뱀파이어 토벌 (2)
“적습이다.”
“다들 방어 태세를 갖추도록.”
자신들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접근해 오는 적들.
뱀파이어들도 그 접근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방어선은 완전히 구축해 두었다.’
그들의 거점인 벙커는 이미 군사시설로써 그 자체로 안전하지만.
그들은 거기에 더해 벙커의 동굴이 자리한 산 일대를 요새화해 두었다.
“해가 뜨자마자 공격해 온 걸 보면.”
“그래. 우리 종족에 대해 눈치챈 게 확실하군.”
어떻게 눈치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들에 태양에 약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여명과 함께 쳐들어오기 시작한 적들.
하지만 뱀파이어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 정도도 대비하지 않았을 리가 있나.”
벙커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초소와 방어거점이 수십 개나 된다.
각 초소는 벙커에 도착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위치.
모두가 그림자 속에 자리해 뱀파이어들이 낮에도 대부분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
각 초소가 다른 초소들과 연계하여 대처할 수 있기에 공격자들 입장에서는 지옥과도 같겠지.
“각성자가 수천 명이 몰려와도 막아 낼 수 있다.”
“군인들이라. 잘 싸우는 동료가 늘어나겠군.”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 뱀파이어들.
그때.
쾅-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란 뱀파이어들이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허공에 붉은 궤적을 그리고 있는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어?”
* * *
“적중했습니다!”
“바로 다음으로 간다.”
망원경으로 먼 곳을 지켜보던 공병이 소리쳤다.
전차의 곡사포 포격이 적중한 것.
“다음 초소도 발견했습니다. 은인께서 알려 주신 위치 그대로.”
“좌표는?”
“위도…….”
한 여자가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눈은 신비한 푸른빛을 내며 반짝이고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저격 총을 들고 있는 남자가 허공에 손을 일자로 세우고 눈을 감았다.
잠시 집중하는 듯하던 그가 이내 입을 열었다.
“바람의 강도는…….”
포격에 필요한 정보를 몸으로 알려 주는 남자.
근처 일대는 저쪽의 뱀파이어들이 열심히 정리해 준 덕에 괴물들의 씨가 마른 상태였다.
포격음에 몰려드는 적들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테니 안심하고 말했다.
“포격 개시.”
우리가 노획한 전차포의 사정거리는 3km.
전차대대에서 우리를 향해 이루어진 포격의 사정거리는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포격에 필요한 유도정보 제공이 없어진 탓이다.
탑승자의 육안에 의존한 포격은 사정거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우리 손에 들어온 이상 얘기는 달라졌다.
생포한 뱀파이어 녀석에게서 들은 초소의 대략적인 위치.
그걸 더 정확하게 만들어주는 정수아의 정령을 통한 공중 정찰.
거기에, 서수혁의 감각을 키워 얻어 낸 환경 정보까지.
포격에 필요한 정보들은 갖춰졌다.
그 결과.
“적중했습니다!”
부대의 마법사들은 물론.
부대에서 가장 긴 사정거리를 지닌 서수혁조차 따라 할 수 없을 만한 거리.
그런 거리에서 포격을 갈길 수 있게 돼 버린 것.
‘각성자들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현대 화기를 따라잡기에는 이르단 거지.’
물론 나중에는 마법사들이 폭탄보다도 강력한 화력을 직사포 이상의 사정거리로 갈기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저쪽도 예상해 봐야 각성자의 공격을 예상했겠지.
전차를 끌고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걸.
“솔직히. 적들이 세워 뒀다는 방어거점들의 정보를 들었을 땐 꽤 까다로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우리 같은 보병들이 직접 들어가면 정말 지옥 같았을거다.”
저쪽에는 군사 전문가라도 있는 것일까.
포로를 통해 알아낸 방어시설의 배치는 정말로 까다로운 것이었다.
‘전차라도 끌고 오지 않고서야 공략법은 알 수 없다.’
그렇게 말한 포로의 말이 이해가 갈 정도의 방어시설들.
그래서 이렇게.
“전차를 끌고 와 줬지.”
그 방어시설들은.
포격에 의해 말 그대로 박살이 나고 있었다.
현대전에서 포격이 맡은 역할 또한 이거다.
적의 방어시설을 미리 파괴하고 적의 병력을 소모시킨다.
‘보병은 그 뒤에야 진입하는거지.’
문명이 박살 난 덕에 각성자들 위주의 전투로 바뀐 뒤.
전투전략은 중세, 혹은 고대의 그것에 가까운 형태로 퇴화했었다.
저쪽의 전략 역시 그 수준에 머물러 있겠지만.
“우리 부대는 다시 현대전의 논리로 간다.”
군대 간의 전쟁이라면 이쯤에서 저쪽도 대응 사격을 하거나.
혹은 포대를 공략하기 위한 병력을 보내는 게 정상.
하지만 이 사정거리에 대응할 방법은 저쪽에는 없다.
하늘에는 갓 떠오른 태양이 빛나고 있으니.
뱀파이어들을 파견할 수도 없을 터.
초소들이 박살 나는 것을 보며.
저쪽이 할 수 있는 대응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음.
째려보기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걸릴 건 하나도 없으니, 신나게 쏴 버려!”
“예!”
저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던 요새화.
그 거점들이 신나게 터져 나갔다.
* * *
“제, 제기랄!”
“포격이다! 다들 도망쳐!”
포격에 노출된 뱀파이어들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포격이 직격하기 직전에 안개화 해라! 이곳은 노출된 것 같으니, B-13 거점으로 후퇴한다!!!”
레벨이 10이 넘어 지휘관의 자격을 부여받은 뱀파이어가 책임감을 가지고 말했으나.
“제, 제가 그쪽에서 도망 온 겁니다! B-13 거점은 이미 파괴됐어요!”
“뭐라고……!?”
뱀파이어들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이들 모두가 얼마 전까지 인간이었다.
문명이 파괴되고 괴물과 좀비가 나타난 뒤.
매일매일 좀비한테 물려 죽지 않을까 공포에 떨었던 이들.
“그러다가 갑자기 전차라니……!”
좀비물에서 전쟁물로.
아예 장르가 달라졌으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콰앙!!!
“크윽……!”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이 현실이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겪어 본 포격.
뱀파이어가 됨으로써 인간을 초월했다고 생각했다.
좀비 따위에 빌빌대야 하는 열등종과는 다른, 상위종으로 거듭났다고.
그러나.
퍼엉!!!
옆에서 일어난 폭발에 형제의 몸이 터져 나간다.
그들이 직접 일궈 낸 자랑스러운 거점들은 속수무책으로 박살 났다.
폭발로 인한 진동으로 인해 땅이 울려 제대로 뛸 수조차 없었다.
뱀파이어로 거듭난 덕에 청력을 잃지는 않았지만, 울려 퍼지는 굉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처음 겪는 포격 속에서도 냉정하게 대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성적인 판단 따위 불가능하게 만드는 환경.
상위종으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생각했던 날 이후로.
뱀파이어들은, 처음 죽음의 공포에 직면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이 되냐며 소리쳤다.
“제기랄. 저 자식들! 어떻게 거점의 위치를 전부 파악하고 있는 거야!?”
철저하게 만들어진 거점들.
그중에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아도 찾기 힘들 정도로 숨겨진 곳도 많았다.
하지만 쏟아지는 포격은 모두가 정확하게 그들의 거점을 노리고 있었다.
모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
“누가 누설한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형제들 모두가 여왕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다. 인간들 따위와는 달라. 배신자가 있을 수가 없지.”
“하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거점의 위치를 이렇게 다 알고 있을 수가 있냐고!”
주인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는 형제들.
그들로서는, 어째서 저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인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형제들 중 한 명이,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지나치게 솔직한 성격이 되어 버렸다든가.
그런 걸 상상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제기랄……!”
“지금이 밤이었다면, 저깟 전차 따위.”
뱀파이어들은 동 레벨의 평범한 각성자들보다 강력했다.
접근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단단한 전차라도 파괴할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벙커에는 대전차 무기도 적게나마 구비되어 있었으니 근처에 가기만 하더라도 피해를 줄 수 있었을 테지만.
“개같은 태양.”
이제 막 해가 떠오른 시간.
수 킬로 밖에서 포격하는 전차를 향해 접근할 수는 없었다.
모든 뱀파이어들이 혼란에 빠져있던 그때.
그들의 뇌리에 한 여자의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다들 동굴로 돌아오렴.]
“여, 여왕님의 명령이다.”
“후퇴하라고 말씀하신 건가?”
“하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거점들을 잃을 수는…….”
[이미 요새들의 파괴는 막을 수 없다. 저 인간의 무기도 대단하지만…… 가증스러운 태양은 이곳에서도 우리를 방해하는구나.]
안타까움이 묻어 나오는 여왕의 목소리.
그것을 느낀 권속들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여왕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니. 태양이 없는 곳에서 싸우면 되는 일 아니겠느냐.]
그 말을 듣고서야.
뱀파이어들은 여왕의 명령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벙커 안에 숨어서 농성하자는 뜻이신가.”
“핵 공격에 대비해 만들어진 벙커야. 저쪽이 아무리 전차를 끌고 왔다고 해도 부술 수 없을 거다.”
“아무리 그래도. 항공기까지 동원해야 하는 벙커 버스터 같은 게 있지는 않겠지.”
벙커에 들어가 농성한다.
그렇게 농성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날 터.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태양이 내려앉고, 밤이 온다.
[태양 아래가 인간들의 영역이라면. 어둠 속은 우리의 영역일지니…….]
뱀파이어들은 수치심을 무릅쓰고 후퇴를 선택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나지만.
밤이 오는 순간.
그들의 사냥이 시작될 것이다.
* * *
“은인께서 예상하셨던 대로네요.”
뱀파이어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정수아가 말했다.
“모두 벙커의 입구가 있다는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뭐. 그럴 것 같았지.”
저들이 요새화한 거점들의 방어력이 대단하다느니 했지만.
사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저들은 딱히 방어전을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순수하게 힘 대 힘의 싸움으로 가면, 숫자가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이상 이기긴 힘들었겠지.’
그럼에도 벙커의 수비에 집중한 이유는 모르겠다.
저곳을 꼭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걸지도.
아무튼.
힘 대 힘으로 맞붙었을 때 저들이 더 강하다고 한다면.
굳이 답도 없는 거점 방어에 아까운 병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지.
어떻게든 숨어서 시간을 끌어, 밤이 됐을 때 우리를 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너무 뻔하잖아.”
저렇게 나올 걸 누가 모르겠냐고.
시끄러운 포격 현장에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것도 좀이 쑤시던 참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다음 단계로 가자.”
“예.”
나는 병사들을 이끌고 이동을 개시했다.
목표는 저들이 숨어든 바로 그 벙커.
거리가 꽤 있는 편이긴 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방어 병력이 죄다 벙커로 후퇴한 상황이니.
우리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동굴이 있다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바위에서 길을 벗어나 위쪽으로 가다 보면 나온다고 했지?”
“잘도 숨겨 놨군요.”
포로 녀석에게서 들었던 정보대로 이동했다.
중간부터는 이미 많은 뱀파이어 녀석들이 벙커 안으로 도망친 덕에, 발자국을 따라 이동하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산속의, 평소라면 절대 왔을 일 없을 장소.
그곳에 커다란 동굴이 있었다.
그 안으로 한참을 진입하자.
“저기 같습니다.”
거대한 철제문이 보였다.
문을 발견한 공병 중 한 명이 문에 다가가 손가락으로 문을 살짝 두들겼다.
통통.
“노크한다고 열어 주겠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 두께를 확인해 보는 거다.”
“아.”
“크흠. 엄청나게 두꺼운 것 같습니다.”
공병들이 문 근처에 달라붙어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핵폭발에 대비해서 만들어진 벙커 같군요.”
“이 정도면 전차포로도 부수기 힘들겠는데요.”
그 얘기를 들은 이민재 병장도 나를 보며 물었다.
“전차를 끌고 오고 마법사들까지 동원하면 결국 부술 수 있긴 할 거다. 하지만…….”
“엄청 시간이 걸리겠지?”
“그래. 그 전에 밤이 되고 저 녀석들이 뛰쳐나올 거다.”
저들이 벙커에서 농성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알고 있던바.
하지만 아는 것과 대처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그 단단한 방공호를 어떻게 뚫느냐에 대해, 작전 회의에서도 한참 막혀 있었다.
그때 나온 해결 방법이.
“너만 믿으라고 했지. 자.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나를 믿을 것.]
꽤 대책 없는 말 같긴 한데.
정말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고.
“꽤 공들여서 준비한 일이 하나 있거든.”
슬쩍 뒤로 이동한 나는 전투 차량의 짐 속에서 한 물건을 꺼냈다.
그 물건을 가지고 오자 다들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케이지 아닙니까?”
“맞아.”
애완동물을 넣고 이동하는 데에 쓰는 플라스틱 케이지.
그걸 벙커의 철문 앞에 내려놓은 뒤 케이지의 문을 열었다.
나는 케이지의 안에 있는 존재에게 말했다.
“나와. 겁먹지 말고.”
“나오라니, 누구한테 하는 말…….”
“쉿. 병장님이 뭔가 준비하신 게 있겠지.”
여전히 무슨 일인지 몰라 하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계속해서 녀석에게 말했다.
“저기 저 철문 보이지? 저거 좀 먹어 주면 안 될까?”
“끼잉…….”
“맛없어 보인다고? 음. 내가 만든 요리랑 비교하면 그렇긴 할 텐데……. 그래도 좀 부탁할게. 그동안 맛있는 거 많이 해 줬잖냐.”
“끼잉…… 낑.”
“집 가면 또 요리해 줄 테니까. 응?”
내가 계속해서 애원하자.
그제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낑.”
짧은 한숨 소리와 함께 케이지에서 기어 나오는 형체.
그것은 검은색 솜뭉치처럼 생긴 생명체였다.
얼핏 보면 새끼고양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그건……!”
“신 병장님. 미치셨습니까!?”
“영준아. 괜찮은 거냐.”
그 모습을 본 병사 몇 명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괜찮아. 괜찮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라 대충 넘어가고.
난 케이지 밖으로 나온 녀석을 관찰했다.
내가 부탁한 대로 벙커로 다가가는 녀석.
녀석의 입 부위가 커다랗게 벌어지더니 철문을 향했다.
그러자.
와그작.
핵폭발에도 버티도록 설계된, 터무니없이 두껍고 단단한 벙커의 입구.
그것이 마치 과자처럼 바스러졌다.
내가 노린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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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그작.
와그작.
과자처럼 바스러지는 소리가 나면 날수록.
검은 털 뭉치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두꺼운 철문에는 구멍이 뚫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