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용아병 (2)
꽤 불합리한 세상이 돼 버리긴 했다만.
일의 난이도와 보상의 정도는 언제나 비례했다.
용의 이빨.
획득할 때의 업적 내용을 보면 허접한 아이템일 가능성은 우선 없다고 봐도 되겠지.
이를 통해 소환 가능한 10체의 용아병이란 녀석들도 상당히 강력할 거다.
하지만.
‘양이 너무 적어.’
고작 10마리를 소환하고 끝이라니.
한 마리라도 죽는 순간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는 셈이다.
그리고…… 이건 다른 얘긴데.
군대에서 가끔 이런 일이 생길 때가 있다.
‘담당 병사의 실수로 요리에 필요한 재료가 적게 오거나 하는 경우.’
재료의 양이 적으면 당연히 문제가 되긴 한다만.
그런 사고를 해결하는 임기응변이야말로 현장 취사병의 능력이다.
“재료는 적게. 물은 많이.”
좀 많이 밍밍해지긴 할 텐데, 뭐 어쩌겠냐.
자고로 군대 밥은 질보다는 양.
맛은 별로여도 양은 충분해지는 취사병의 꼼수란 거다.
솥에 가득 찬 물.
난 [용의 이빨]을 쥔 손을 그 위에 올렸다.
그러자.
[주의!]
[격이 높은 식재료입니다.]
[재료에 비해 요리사의 경지가 낮습니다.]
[요리를 시도할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문구구만.”
나름 요리 실력에 자신이 붙은 나지만.
그래 봐야 아직 [중급 요리사]란 거다.
이름부터 거창한 재료들을 다루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
하지만.
여긴 다름 아닌 [식당].
[Lv.2 식당]
[요리사의 숙련도에 보정이 가해집니다.]
탄약대대 시절.
박씨 할아버지와 공병들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공방]이라는 시설을 지으면 그들의 작업과 작업물에 보너스가 더해진다던가.
‘자기들이 만든 공방은 어디까지나 임시 공방일 뿐, 제대로 된 공방은 아니라고도 했지.’
그 제대로 된 시설이란 거.
이렇게 점령전 포인트를 지불해서 만들어진 시설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공방을 통해 보너스를 받는 다른 생산직들과 마찬가지.
이 식당이라는 시설의 보조를 받는다면, 내 요리 실력은 한 단계 향상된다.
[식당 Lv.2의 숙련도 보정이 부여됩니다.]
[격이 높은 식재료에 도전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주의!]
[희귀한 매개체입니다.]
[요리 재료로 소모할 시, 다시는 복구할 수 없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피식.
“옛날이면 손을 뺐을 수도 있겠네.”
이런 딱 봐도 대단해 보이는 재료.
그걸 고작 요리에 쓴다니.
예전이었으면 아깝다는 생각에 기겁하며 손을 뺐을 것이다.
이제는 아니다.
‘요리라는 행위가 가진 잠재력은, 내 생각보다도 더 대단하거든.’
얼마 전의 사건들을 통해 그것을 확인한 지금.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퐁당.
끓는 물 속으로 용의 이빨을 넣었다.
“으음. 이것만으론 좀 부족한데.”
사골국이라는 게 뼈 넣고 끓인다고 전부가 아니다.
뭐 군대에서야 캔 하나 까서 넣으면 끝이었다만.
제대로 만들려면 온갖 약재들로 잡내를 잡아주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겠지.
약재라.
“……괜찮은 게 있잖아?”
그림자를 열어 안쪽에 있는 상자 하나를 꺼낸다.
얼마 전.
탄약대대를 떠날 때, 농부 각성자 철욱이 건네준 상자.
그 안에는.
[쿠스락의 뿌리]
[레이디올 잎]
처음 보는 이름의 각종 식물들.
마력이 담긴 이계의 식재료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중요할 때 쓰려고 아껴두고 있었는데 말이지.”
설마 벌써 쓸 곳이 생길 줄이야.
[식재료 감별]
[레이디올 잎]
[신선도 - 상]
[특유의 향이 있어 호불호가 갈리는 재료입니다.]
[그 자체만으로 요리에 쓰이는 경우는 많지 않으나, 잡내를 제거하거나 다른 요리에 곁들여 먹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다른 식재료의 마력을 복돋아 주는 효과가 있어 건강식으로도 자주…….]
나는 그중에서도 이번 요리에 쓸 만해 보이는 물건들만을 따로 선별한 뒤.
깨끗이 세척하고 손질하여 솥에 같이 넣어 주었다.
“……후우!”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일뿐.
중간중간 거품이 올라오는 걸 걷어 주면서 국물이 우러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요리가 완성되었습니다!]
[요리사의 수준에 맞지 않는 고급 식재료를 요리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
나는 완성된 요리를 들고 [병영]을 향했다.
이름에 걸맞지 않게 생긴 제단.
그 한가운데 있는 그릇 위로 완성된 요리를 올렸다.
부드럽게 찰랑거리는 상아빛의 액체.
[중급 요리사의 드래곤투스 스프]
[용의 이빨을 우려내어 만든 국물 요리입니다.]
[용의 마력이 진하게 스며들었으며, 다양한 약초들로 인해 마력의 질이 크게 상승하였습니다.]
완성된 요리는 꽤 훌륭한 물건이었다.
먹는 용도가 아니라서 문제지.
먹는다면 엄청난 버프를 얻을 수 있을 것이 확실한 음식.
문제는.
“한 그릇뿐이라.”
본래 계획대로라면 양이 좀 더 많아야 했다.
하지만 요리가 완성되기 직전.
그 많던 물이 갑자기 한 번에 졸아들더니, 이렇게 한 그릇 정도의 양으로 줄어들어 버렸다.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긴 한데. 뭐 상관없나?”
내 [요리]도, [용의 이빨]이라는 재료도.
아직 밝혀진 게 적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일어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밖에.
중요한 것은 하나.
이렇게 요리로 바뀌어 버린 녀석도 소환의 매개체로 작동하냐인데…….
난 조심스럽게 요리를 들고 그릇에 접근했다.
그러자.
[매개체가 확인됩니다.]
[드래곤투스 스프]
[소환 병력 - 열화 용아병x200]
“휴!”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잘 넘어간 것 같다.
요리를 했더니 매개체로 사용될 수 없다거나 하면 말짱 도루묵이었으니까.
“숫자가 20배로 늘어나고. 대신 전투력이 조금 떨어졌나 보네.”
기존에는 용아병을 10마리 소환할 수 있다던 [용의 이빨]
이걸 요리했더니, 열화 용아병 200마리를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
[병영 Lv.2]
[병력 : 0/200]
200마리라면.
정확히 Lv.2 병영이 소화할 수 있는 최대치.
양을 불린다는 소기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 셈.
“질이 떨어진 건 조금 아쉽긴 하다만.”
이대로 소환을 해도 꽤 훌륭한 전력이 되어 주겠지.
하지만.
“10마리의 용아병에서, 200마리의 열화 용아병이라.”
숫자만 늘어났을 뿐.
아마 총합 전력 자체는 큰 차이가 없을 확률이 높다.
요리에 들어간 약초들을 생각하면 이쪽이 조금 더 강할 수도 있다만…….
씨익.
“이 정도로는 만족 못 하지.”
난 가볍게 웃으며 요리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이 이빨을 굳이 요리하기로 선택한, 진정한 이유는.
바로 이것
“오병이어.”
[스킬 - 오병이어]
[빵 다섯 개와 두 마리 물고기로 수천 명을 먹인 기적의 일화를 아십니까?]
[이제 당신에게는 기적이 아닌 현실입니다.]
완성된 요리를.
복사하는 능력.
물론, 생각만큼 쉽게 되지는 않았다.
[격이 높은 요리입니다!]
[스킬 발동이 취소됩니다.]
지난번.
던전 공략 당시, 다스무르의 교황을 요리했을 때도 같은 메시지가 나왔었다.
지나치게 격이 높은 요리는 복사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안 되면 되게 해야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
상당히 기합으로 가득찬…… 치트.
혹은 핵.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신력 : 2]
[‘2’의 신력만큼,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합니다.]
요리사의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일은, 아마도 1의 신력만으로는 불가능했겠지.
하지만.
지금 내 신력은 이현진을 인간으로 만들면서 2에 도달한 상태.
[스킬 발동이 재개됩니다.]
[복사할 양을 선택해주십시오.]
이 정도 불가능은.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다.
“내 신력과 마력이 허용하는 한, 최대로.”
[적용 중인 요리의 효과 - 4]
이때를 위해.
미리 마력을 올려주는 요리를 잔뜩 퍼먹고 왔다.
[스킬이 발동합니다.]
빵 다섯 조각.
두 마리 물고기.
이를 통해 수천을 먹인 기적.
신화에서나 다뤄질 법한 기적이.
내 손 아래에서 실현된다.
몸 안의 마력이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들고 있던 요리를 그릇 안으로 흘려 넣었다.
재단 중심에 세워진 고풍스러운 그릇.
그 안을 상앗빛의 액체가 채워 나갔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상앗빛 액체.
이를 끝없이 받아들이는 제단의 그릇.
그릇이 가득 차 넘쳐 흘러야 할 정도의 양이 들어갔음에도.
그릇은 넘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쿨럭.”
[주의!]
[마력의 소모가 극심합니다!]
[상태 이상 - 마력탈진]
내 몸 안의 마력이 모두 고갈되자.
흘러내리던 상앗빛 액체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멈추었다.
[병영 Lv.2]
[열화 용아병의 생산이 시작됩니다.]
[개체당 소요 시간 : 3시간]
[생산 대기 병력 계산 중…….]
[계산 중…….]
병영의 제단 뒤에 세워져 있던, 거대한 문.
그 문의 틈새 사이로, 커다란 빛이 새어 나온다.
[계산 완료.]
[헤아릴 수 없음.]
이윽고.
열린 문 사이로, 갑옷을 입은 형체가 한 명씩 걸어 나오는가 싶더니.
철컥.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병영 Lv.2]
[1/200]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 * *
군단이 예상한 몬스터 웨이브의 일자가 다가오자.
도시는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임시로 지급해 드리는 장비입니다.”
“우와…….”
강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요새 앞.
그곳에 상당히 많은 각성자들이 몰려 있었다.
강철 군단의 군인들뿐만이 아니었다.
‘민간인 협력자들.’
군단에 협력해 방어 작전을 돕겠다고 나선 이들.
개중에는 지난 던전 공략에서 군단을 도와 어인들과 싸웠던 이들도 있었다.
“이 보급품들은 어디까지나 임시입니다만. 전쟁이 끝나면 충분히 만족스러울 정도의 전리품이 모두에게 돌아갈 겁니다.”
군단에 조력하기로 한 이들.
군단의 입장에서도 우호적인 각성자들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전투가 끝났을 때의 보상을 후하게 줄 것을 약속하긴 했으나.
애초에 전투에서 죽으면 말짱 도루묵.
군단은 멀리 있는 탄약대대 기지에 연락.
급하게나마 장비들을 대량 양산해 임시로 대여해 주기로 결정했다.
“직업이 검사시군요. 여기 있습니다.”
“아, 예.”
장비를 대여해 준다고 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던 각성자들이었으나.
막상 그 장비를 받아 들자.
“뭐야 이거.”
“입는 것만으로 능력치가 올라간다고?”
각상자들의 눈이 커졌다.
“아이템, 이란 건가?”
“……나, 생산직 각성자가 파는 물건을 본 적이 있어. 그것도 나름 효과가 있긴 했는데, 너무 허접해서 굳이 아까운 전투식량으로 살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넘어갔거든? 그런데 이건…….”
“급이 다르군.”
군단의 생산직 각성자들이 만든 물건들.
부대원들에게 보급되는 물건들에 비하면 열악하기 그지없는 아이템이었으나.
“군인들은 왜 저렇게 다 강한가 했더니!”
“이런 아이템을 몸에 둘둘 두르고 있다는 거 아냐? 납득이 가네.”
이제 막 던전에서 나와 레벨링을 시작하는 이들.
그들에게 있어서는 엄청난 고급품이나 다름없었다.
“보급된 장비들은 능력치의 절대치를 올려 주도록 주문했습니다. 레벨이 낮을수록 효과가 크게 체감되실 겁니다.”
“오오…….”
애초에 저레벨 각성자용으로 양산된 물건이었다.
퍼센티지 상승이 아닌 절대치 상승.
레벨이 낮은 이라면 능력치가 두 배 가까이 상승하는 느낌을 받겠지.
“그런데 그 몬스터 웨이브라는 거.”
“음?”
“진짜 오는 건 맞죠?”
그때.
생존자 중 누군가가 그런 말을 꺼냈다.
“오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 거 아냐?”
“그건 그렇죠.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진형까지 만들고 버티고 있으면 그 괴물들도 피해 가지 않을까요? 바보들도 아니고. 굳이 방어를 굳힌 적을 공격할 이유가 있나 싶어서.”
물건을 보급하던 병사 중 한 명이 힐끗 각성자들을 보았다.
살짝 한숨을 내쉰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이곳을 지키고 있는 한 올 겁니다.”
“어떻게 확신하는 겁니까?”
“우리만 한 세력을 무시하고 지나쳤다간, 후방을 습격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말이 몬스터 웨이브지.
박태준 병장의 말대로라면, 저들은 몬스터로 이루어진 군대였다.
“저들이 동진하려면 우리가 있는 이 도시를 거쳐야만 할 겁니다. 지나친다면 오히려 좋죠.”
저들은 적극적으로 [점령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만.
다른 지역들에는 또 다른 괴물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아무리 숫자가 많고 강하다고 한들.
넘쳐 나는 괴물들을 뚫고 도시를 점령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우리를 지나치고 다른 도시를 먼저 공략하려 한다면, 우리는 그 뒤통수를 치면 그만입니다.”
“아~”
“그게 우리가 이 도시를 사수하려 한 이유입니다. 여길 포기하고 후퇴하면 그만큼 저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그 늘어난 영역에 있는 인간들은 살아남기 힘들겠죠.”
“어? 그럼 여길 사수한다고 한 건…….”
“그게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전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서 막아야 한다는 게 군단장님의 판단이었죠.”
군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문명이 파괴되고, 많은 인간들이 죽었다.
지금 세상은 야생이나 다름없었다.
강자가 약자를 잡아먹는 것이 당연한 세상.
강한 힘을 가진 저들이라면 남들을 노예처럼 부려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힘을 지닌 세력은, 적어도 이 근처에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피해를 줄이려고 지역을 사수했다니.’
방금 그 얘기대로라면.
저 군인들은 여전히 군인으로서의 목표…….
인간들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얘기.
사실, 군단의 입장에서는 살아남은 인간이 많을수록 군단의 생존에도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만.
이 자리의 각성자들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각성자들의 입장에서, 이 군인들은…….
정말 군인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남들을 힘으로 지배하려 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임에도, 의무에 충실한 모습.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힘들었으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이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
그리고. 아직은 모를 일이지만, 앞으로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면 그 이유 역시.
“……그 군단장님이라는 분한테 고마워해야겠네요.”
군단장이라는 이의 판단 덕분일 것이라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