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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40화 (140/227)

140화 상병 전광일

“지, 진심으로 하란다고 진짜 선임을 개 패듯 패네. 으웨엑.”

“…….”

제기랄.

진짜 더럽게 아프네.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는, 솔직히 나도 조금은 자신이 있었다.

요리사답게 전투 특성은 거의 없는 나다만.

[절대 미각]의 효과나, 아리엘라를 상대로 한 흡혈 등.

깡 스탯 하나만큼은 엄청난 편이었으니까.

그 자신이 사라져 버린 것은.

스파링 시작 후 5초쯤 지났을 때.

뭐랄까…….

일방적인 구타였지.

“신영준 병장님.”

“끄윽. 아파 죽겠네. 뭐 임마.”

“진심으로 해 주십쇼.”

내가 아파 죽거나 말거나.

광일이 녀석은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뭔 개소리야. 완전 진심이었는데.”

“……신 병장님이 얼마나 강한지 제가 모를 것 같습니까? 이런 짓은 저를 모욕하는 거라고밖에.”

“크흐흐. 그럼 너도 [광기]를 최대한으로 해방하시던가.”

아직도 저 소리냐.

나는 바닥에 누운 채 헛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광일아.”

“예.”

“재밌는 거 하나 보여 줄까.”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바닥에 앉은 뒤.

나는 품속에 있던 전투식량들을 꺼내 들었다.

‘언제나 강한 척만 하는 것도. 슬슬 질리던 참이니까.’

이 녀석이라면.

조금은 약한 모습을 보여 줘도 되겠지.

서로 다른 종류의 전투식량들.

나는 그중에서 네 개를 골라, 한입에 집어넣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일반적인 경우.

요리의 효과는 한 번에 하나만 적용된다.

여러 요리를 한 번에 먹는다고 한들 유의미한 추가 버프는 없다는 것이.

병사들에게 알려진 상식.

하지만.

[절대 미각(강화)]의 효과로 인해.

내게는 요리의 버프가 중첩된다.

[적용 중인 요리 효과 - (4)]

“……!”

요리의 효과가 적용되자.

전신을 가득 채우는 힘이 느껴진다.

힘, 민첩, 마력.

능력치는 물론.

요리사인 나로서는 가질 수 없을.

강력한 특성들까지.

“드디어 진심으로……!”

내 기세가 변하자, 이제야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고 착각한 것일까.

희열을 느끼는 듯한 놈이었으나.

“끄어억.”

“?”

당연히 그런 건 아니었다.

녀석에게 얻어맞았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신 병장님? 대체 무슨!”

“크, 크큭……. 재밌는 거 보여 준다고 했잖아. 봐.”

당황스러워하는 녀석에게 팔을 내밀자.

내 팔을 본 녀석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이건.”

주먹을 쥔 손.

내가 봐도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빠지지지직…….

“근육이, 뒤틀리고 있는 겁니까……?”

“재밌지? 당사자는 죽겠다, 야.”

멀쩡한 근육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과도하게 많은 버프를 몸에 몰아넣은 대가.’

[절대 미각]으로 인해 안 그래도 요리의 효과를 증폭시켜서 받는다.

그런데, 그렇게 효과가 증폭된 요리를 하나도 아니고 몇 개씩 쑤셔 박아 버리니.

몸이 요리의 효과를 버틸 수 있을 리가 있나.

이렇게, 비명을 내지르고 마는 것이다.

“네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냐. 정확히 말하면. 반쯤 정답이지.”

“그게 대체 무슨.”

“맘만 먹으면 너보다 강해질 수 있기는 해. 근데 너도 알잖냐. 난 전투직이 아니라는 거.”

요리사라는 직업이 최소한 레어 클래스에 속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

전투직이 아닌 서포터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레어 서포터든, 일반 서포터든.

서포터는 서포터거든.

“이게, 비전투직이 강해지기 위한 대가란 거야.”

“…….”

식은땀을 흘리며, 내 팔을 바라보는 녀석.

“사실 원래라면, 이 정도 요리를 한 번에 먹은 시점에서 몸이 터져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걸.”

“예!? 몸이 터져 죽는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아니. 평범한 경우에 그렇다는 거고. 나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해. 아니었으면 진작에 몸이 터져 죽었겠지.”

과도한 버프는 몸에 큰 부담을 준다.

내가 아무리 높은 스탯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버틸 수 없었어야 정상.

그럼에도 내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

‘아리엘라의 피.’

과거 아리엘라의 피를 한계까지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몸이 뱀파이어에 가까워졌다.

‘그 결과 얻게 된 회복력.’

그 회복력이.

이 부작용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 주고 있었다.

몸을 파괴시키는 과도한 버프.

그렇게 몸이 파괴됨과 동시에, 파괴된 몸을 회복시키는 귀족의 피.

“자주 싸우지 않는 이유? 매번 이 꼴 나면서까지 싸우긴 좀 그렇잖아. 애초에 난 서포터니까.”

아무리 저 회복력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게 해 준다고 한들.

이 회복력의 근간은 괴물에게서 온 것.

마냥 이것만 믿기에도 부담이 컸다.

혹시라도 이 재생력에만 의존하다가, 어느 순간 선을 넘어 버린다면.

그대로 뱀파이어가 돼 버릴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 하지만. 대부분의 위기는 신 병장님이 모두 처리하셨잖습니까. 전투뿐만이 아니라, 요리로 위기를 해결하신 적도…….”

“뭐…… 그건 그렇지? 내가 싸움은 못해도 요리는 좀 잘하거든. 카하하.”

“…….”

전투 쪽은 이런 상황이지만 뭐.

요리 쪽은, 솔직히 좀 자부심이 있거든.

가볍게 웃으며 말하자.

농담할 기분은 아니라는 듯, 눈빛으로 바라보는 녀석.

“뭐. 방금 건 그냥 해 본 말이고.”

나도 조금은 진지하게 말했다.

“중요한 건,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안 된단 거야.”

“…….”

“잠깐 싸우는 건 가능해. 네 말대로, 저 부작용만 버티면 너보다도 훨씬 강해질 수 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뿐이다. 부작용도 명확하고.”

요리로 인한 버프가 없어지는 순간.

내 전투 능력은 광일이는커녕.

전사조의 중상위권과 비슷하거나, 그것보다 못해지겠지.

“같이 싸워 주는 병사들이 없었으면, 난 진작에 시체가 됐을 거다.”

“그, 그렇군요.”

“너희들이 있어 봤자 도움이 안 된다느니, 그런 소리는 하지 마. 넌 엄청 도움 되고 있으니까.”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전광일 상병.

얼굴에는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

“이해했습니다.”

“그런 것 치곤 아직도 불만 있는 얼굴인데.”

“아. 그건.”

잠깐 대답을 망설이던 녀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제가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는 건 변함이 없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니, 그렇게 말해도 이해를-”

“서포터인 신 병장님이 이렇게 무리를 하시는 이유는. 결국 다른 병사들의 힘만으로는 모자란 상황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닙니까.”

“……음.”

그건 뭐.

그렇긴 하지.

다른 부대원들이 충분히 강했다면.

내가 머리 싸매 가면서 요리를 만들고 난리 칠 필요도 없었을 거다.

그냥 버프만 주면 그걸로 충분했을 테니.

하지만…….

“그 정도로 강해진단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너만 해도 충분하고 넘칠 정도로 강해.”

“신 병장님이 이루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

어쩐다.

이 녀석의 마음에 박힌 패배감과 조급함.

가볍게 뽑아내기엔, 너무 깊게 박혀 있는 느낌이다.

‘아니. 이렇게 강한 놈이 조급할 게 뭐가 있다고.’

충분하고 넘칠 정도로 성장한 녀석이 이러니.

뭐 어떻게 해결을 해 줘야 할지 감도 안 온다.

내가 이 녀석을 필요로 하는 것은 전해진 듯하다만.

그것과 이 녀석이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별개니까.

‘하필 비교 대상이 나기도 하고.’

내가 좀 잘난 게 아니잖냐.

나랑 비교해서 모자라다 느끼는 것이라면 특히나 힘든 문제가 돼 버린단 말이지.

사실.

방법이 있기는 하다.

심플하기도 하고, 한 방에 해결 가능한 방법.

쓰읍.

‘요리를 쓸까?’

과한 [용기]의 요리를 먹임으로써, 겁 많던 이 녀석은 ‘광전사’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스스로의 모자람에 자격지심을 느낄 뿐.

어떤 강적을 만나도 겁도 없이 들이대는 건 여전하다.

전력을 다한 요리에, 전력을 다한 [특별 소스]를 담아 먹인다면.

저 패배감을 흔적도 없이 밀어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역시. 그러고 싶진 않네.’

이놈이 광전사가 된 것.

어느 정도…… 아니.

100% 내 탓일 것이다.

그 순하던 녀석이 미치광이 광전사가 되어 버린 거다.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한 사람의 인격을 개조해 버린 셈.

심지어 그게 어떤 범죄를 저지른 녀석도 아니고, 착해빠진 저 후임이었으니.

솔직히,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상이 범죄자라거나.

아니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닌 이상.

평생 영향이 갈 만큼 강력한 [특별 소스]를 사용할 생각은 없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행히, 내 설득이 아예 효과가 없던 것은 아닌 듯.

“제가 신 병장님께 도움이 되고는 있다는 점. 잘 알았습니다.”

“그건 뭐. 알아먹었다니 다행이네.”

“예. 괜한 걱정을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뭐, 그런 건 사과할 필요 없고. 굳이 사과하려면 선임을 개 패듯 팬 점을 사과해야…….”

일단 내게 충분히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만은 전달이 된 듯하니.

당장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자기가 죽으면 내게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안 지금.

‘차라리 죽게 두시지 그랬냐’ 따위의 헛소리를 하진 않을 테니까.

“신 병장님.”

“어.”

“저.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러냐.”

이 녀석이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신 병장님이 직접 싸울 필요도 없다 생각하게 되실 정도로. 강해질겁니다……, 무조건.”

스스로 강해지는 것 외에는 해결법이 없는 일.

그렇다면.

“고생해라. 도중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하하. 예!”

나는 그저 믿고 기다려 주면 되는 거다.

이 녀석이, 스스로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강해질 때까지.

* * *

그 후로도 몇몇 병사들과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이 끝난 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병원 Lv.2]

병원이었다.

“아, 군인분……!”

“아. 누워 계셔도 됩니다.”

안쪽으로 이동하자, 누워 있는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우리 부대의 병사는 아니었다.

도시 방어에 협력한 각성자도 아니고.

“누워 있으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저 괴물 놈들한테 구해 주신 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절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번 전투에서 괴물 측에 서 있던 인간들.

놈들이 끌고 온 전차를 조종하던 노예병들이었다.

놈들이 후퇴하는 것을 계속 추격하며 피해를 입힌 탓일까.

노예로 굴리던 이들까지 챙길 여유는 없었던 모양.

이들은 그대로 우리 부대에 구조되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잡아먹겠다는 협박을 들어서.”

“듣기만 한 게 뭐야. 실제로 몇 명은…….”

그들의 말을 들은 나는 조금 의아해져서 되물었다.

“협박이라니. 저놈들이 한국말도 한답니까?”

“아아. 전부 그런 건 당연히 아닙니다만. 자기들을 주술사라고 자칭하는 괴물들이 있습니다. 다른 괴물들하고 다르게 징그러울 정도로 빼빼 마른 놈들입죠.”

아.

확실히 마법 같은 걸 사용하던 괴물들이 있었지.

그놈들이 강 사이에 길을 만들어 버린 덕에 꽤 당황했었지.

“놈들 중 일부가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익힌 것 같았습니다.”

“어눌하긴 했습니다만…….”

괴물들이 언어를 익힐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이미 알고 있었다만.

인간을 노예로 쓰는 괴물이 있을 줄이야.

“실례가 안 된다면. 여러분이 있던 곳 상황을 좀 듣고 싶습니다만.”

“아, 예. 당연히 알려드려야죠.”

이들에게 들은 서쪽의 상황은 대충 이랬다.

강원도 서부의 도시들 중 반 정도는 이미 놈들이 차지한 상태.

그 와중에, 도시에 숨어 있던 인간들 역시 괴물들에 의해 죽거나 사로잡혔다고.

“저항한 사람은 죽이고, 그 외에는 노예로 삼은 겁니까?”

“아뇨. 저항한 사람들을 모두 죽인 건 맞습니다만. 투항한다고 살려 둔 건 아닙니다.”

“?”

“저희들처럼 그나마 쓸 만한 구석이 있다 싶은 사람만 노예로 살아남은 거죠. 그 외에 쓸모가 없다 싶은 사람들은 모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남자.

나도 속으로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살아남은 인간 숫자가 적은데. 서쪽은 사실상 전멸이라 봐야 하는 건가.’

차라리 모두 노예가 되었다면, 언젠가 구출이라도 해 보았을 것을.

얘기를 들어 보면 노예로나마 살아남은 인간조차 소수라는 것 아닌가.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한 전력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데.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럼, 노예가 된 사람들의 대우는 어떻습니까?”

“아……. 말을 안 들으면 심하게 구타할 때도 있고, 심할 땐 그대로 잡아먹히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심하게 거역하는 게 아닌 이상 죽이진 않습니다. 쓸 만하다 싶으면 어떻게든 살려서 쓰려고 하는 것 같더군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적어도 노예가 된 사람들은 당장 죽을 위기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는 일.

언젠가는, 놈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도 탈환해야만 한다.

* * *

“그 후로는 어때?”

“태준이 녀석 말대로 대규모 공세가 올 기미는 없다. 하지만.”

민재 형은 지도의 몇 군데를 체크했다.

“여기서 수십 마리 단위의 녹색갈기들과 교전이 있었다. 용아병들이 있어서 어떻게든 격퇴하긴 했다만.”

“……역시 이렇게 나오는구만.”

태준이 녀석이 말한 대로.

놈들은 우리의 요새를 뚫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 요새를 중심으로 더 많은 방어시설들이 설치될 것이고, 용아병까지 있다.

안 그래도 방어전에 특화되어있던 우리 부대.

어지간히 전력을 모아서 오는 게 아닌 한, 쉽게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저들이 선택한 것은

‘게릴라전.’

숫자가 넘쳐 나는 저들이기에 가능한 선택.

게릴라전은 이렇다 할 지휘관도 필요 없다.

그냥 퍼져서 이 근처의 사람들을 습격하면 그만.

“용아병들 덕에 순찰대의 숫자를 늘릴 수 있게 되었으니. 당장 피해가 크진 않다만.”

“작은 피해라도 조금씩 쌓이다 보면 커지는 건 시간 문제겠지.”

저 게릴라전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가 역으로 저들의 본진을 토벌하기 전까진.

‘토벌이라.’

요새도 있고 하니 방어에는 자신이 있다만.

문제는 공격.

일반적으로 공성 측은 수성 측의 3배 전력이 필요하다던가.

“……그게 되나?”

현시점에서는 까마득했다.

‘애초에 생존해 있는 인간들의 숫자가 한정적인 게 커.’

인간들을 아무리 끌어모은들.

그 숫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숫자의 한계를 돌파하려면, 병사 한 명 한 명이 엄청나게 강해져야 하는데.”

“아무리 레벨을 올리고 좋은 장비를 챙긴다고 한들…… 그 정도 수준까지 강해질 수가 있을까?”

지금도 다른 각성자들과 비교하면 강자들이 즐비한 우리 부대다만.

저 ‘녹색갈기’와의 전력 차이를 따라잡을 정도로 강해져야 한다고 하면.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

최소한 우리 부대만으로는 불가능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신 병장님? 회의 중이신데 죄송합니다만.”

“무슨 일이야?”

“그게, 상인이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할 얘기가 있다고…….”

우리 부대에 상인이 찾아왔다.

처음 보는 인물은 아니었다.

“왜 있잖습니까. 저번에 신 병장님이 찾던 정보를 알려 준.”

“아~ 그 사람. 직업이 상인이라고 했었지.”

“예. 김 중위님이 일단 맞이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만, 신 병장님도 같이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흠.”

분명 이름이 상협이었나.

이상식욕자의 위치에 대한 정보를 제보해 줬던 인물이었지.

‘나한테는 도움을 준 사람이기도 하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병사의 안내를 따라 이동했다.

“이상협이라고 합니다.”

“김현석 중위라고 합니다. 편하게 김 중위라고 불러 주시오.”

그러자.

김 중위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상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상인이라는 양반이 우리 부대를 찾아온 이유가 뭔지 듣고 싶소만.”

“실은, 상행을 떠나 볼까 합니다.”

나름 규모 있는 집단의 대외적인 리더라는 걸까.

분위기 잡는 김 중위를 보니 조금 오그라드네.

“상행이라?”

“예. 실은 거기에 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왜 우리 길드를 찾아왔나 했는데.

그는 먼 곳으로 떠나는 상행을 계획하고 있다는 듯했다.

거기에 필요한 도움을 받고 싶다는 얘기.

그나저나.

상행이라니.

“……어디로 말인가?”

김 중위 역시 나와 같은 의문을 품은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상인에게 물었다.

‘상행을 갈 만한 곳이 있나?’

사방에 넘쳐 나는 건 괴물뿐.

물건을 사고팔 만한 사람이 있어야 상행도 성립할 수 있을 텐데.

“크흠. 이건 지금 저만 알고 있는 정보입니다만.”

“?”

“여기서 북쪽…… 양구군 쪽으로 올라가면, 꽤 큰 집단을 이룬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군인 여러분들에 비견될 정도로요.”

“……!”

“그런 이들이라면 쓸 만한 물건들도 많을 테니, 상행을 떠나볼 만한 가치도 충분하죠.”

그 후로도 뭐라 뭐라 얘기하며 김 중위를 설득하려 드는 상협이었으나.

내게는, 그 내용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내게 중요한 내용은, 단 하나.

‘우리랑 비견될지도 모르는 집단이 있다고?’

지금 내가 가지고 있던 가장 큰 고민이 뭔가.

단체의 힘을 키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늘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부대원들의 성장에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가장 빠르게 힘을 키우는 방법이, 하나 있잖아.

동맹.

이미 강한 힘을 가진 다른 세력과.

그 힘을 합치는 것.

“물론 공짜로 도와 달란 얘기는 아닙니다. 군인 여러분들에게도 득이 될 만한…….”

“갑시다.”

“예?”

김 중위와 대화하고 있던 중이었으나.

뒤에 있던 내가 그렇게 말하자, 놀란 눈을 하며 내 쪽을 쳐다보는 상협.

“그 상행. 같이 가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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