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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취사병-141화 (141/227)

141화 어딜 사기 치려고 하고 있어?

우리 길드를 찾아온 상인, 상협.

그는 과거 내가 요구한 정보를 가져다준 전적이 있었다.

덕분에 우리 길드와 이렇게 직접적인 거래를 틀 수 있게 되었지.

그때는 그냥 ‘우연히 지하 수로의 소리를 들은 건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만.

이제 보니.

나름대로 정보를 얻을 수 있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식재료 감별(강화)]

[이상협]

[최하급 상인 Lv.9]

[특성]

[최하급 정보 습득 숙련]

‘정보 습득 숙련이라?’

우리 부대원들 중에서도 저런 특성을 가진 사람은 본 적 없다.

아마 상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란 거겠지.

우리 역시 정수아의 [정령안]이나, 태준이 녀석의 [점성술]을 통해 주변의 정보를 모으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래도 춘천 내부의 위험을 탐색하는 데 주력하는 편.

다른 지역의 정보는 알 길이 없었다만.

이 상인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서 북쪽에 있는 도시.

그곳에 꽤 큰 인간 세력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

‘게다가 양구라…….’

저 녹색갈기 부족들이 자리 잡고 있는 도시는 철원과 화천.

강원도의 서북부 외곽이었다.

‘아리엘라의 말대로라면, 검은 장벽 때문에 강원도를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지. 그렇다면…….’

우리가 자리 잡고 있는 도시가 춘천.

그리고, 그들이 있다는 양구.

두 도시에서 방어선을 펼친다면.

저 괴물들은 빠져나갈 구석이 없어진 채, 포위를 당하게 되는 위치였다.

그 세력과 동맹을 맺을 수만 있다면.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상행. 같이 하자고요.”

“그. 김 중위님? 저분은…….”

“아아.”

그게, 내가 이 대화에 끼어든 이유.

갑자기 내가 대화에 끼어들자 조금 당황한 듯한 김 중위였으나.

그도 이제는 꽤 긴 바지사장 경력을 자랑하는 편.

“신영준 병장. 우리 부대 최고참 병사 중 한 명이오.”

“……!”

“영준아. 그래도 얘기하는데 말은 하고 끼어들어야지.”

“죄송합니다, 김 중위님. 그래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우리 부대에 간부가 한 명뿐이라는 것은 나름대로 알려진 사항.

그 당사자인 김 중위는, 자연히 우리 부대의 지휘관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병장……!”

최고참 병사라는 것은 즉.

김 중위 다음가는 부대의 권력자라는 뜻.

“바, 반갑습니다. 저는 이상협이라고 하고, 직업은 상인…….”

“예. 반갑습니다.”

상협에게는 가볍게 목례를 한 뒤.

김 중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끼어든 건 죄송합니다만, 김 중위님. 그 상행,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음……. 굳이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

“우리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잖습니까.”

어차피 내 말을 들을 김 중위지만.

대외적으로는 그가 지휘관의 역할을 맡는 게 좋을 것이라는 합의가 이루어진 상황.

남의 눈이 있으니, 나도 김 중위의 권한을 존중하는 연기가 필요했다.

“상인이 오가면서 교류가 생기면 다른 지역의 정보를 얻기도 쉬워질 겁니다. 이 거래 자체가 양측의 생존에 좀 더 도움이 되기도 하겠죠.”

“으음.”

“게다가. 우리 부대도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 말이 끝나자.

김 중위는 고민에 빠진 듯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맞는 말이다.”

아니, 구란데?

일단 김 중위를 설득하는 척을 해야 했기에 한 거짓말이다.

마냥 전부 거짓도 아니지만.

저런 선의만 가득한 의도는 또 아니거든.

‘중요한 건 동맹을 맺을 수 있을 만한 세력에 접촉하는 것.’

북쪽에 있다는 그 집단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건 이 상인이니.

그의 상행에 숟가락 좀 얹겠다 이거다.

어차피 김 중위는 내 말을 거스를 생각 따위 하지도 않을 테니.

고민하는 척 연기하던 그가 상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상협 씨라고 했나.”

“예에!”

“당신의 제안에 대해…… 솔직히 나는 조금 회의적이오. 우리는 지금 춘천시와 인제군 근처를 방어하는데도 벅찬 상황이거든.”

“그, 그런.”

“특히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원정은 병사들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 난 안전한지 확인조차 되지 않은 전장에 내 병사들을 몰아넣고 싶지는 않소.”

“하지만!”

“방금 전까지 그랬다는 얘기요. 영준이 녀석의 말을 들어 보니 생각이 좀 바뀌는군.”

김 중위는 앞에 있는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우리 12군단은 원래 춘천시가 아닌 강원도 전반의 방어를 맡고 있소. 하지만 다른 부대들과의 연락이 끊기고, 우리 부대만으로는 도시 하나 방어하기 힘겨운 상황이지.”

“…….”

“그런 상황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눈을 돌리고 살았지만…… 우리 부대의 역할은 변하지 않소. 강원도 전역을 방어한다는 것. 힘이 모자라 병사를 보낼 수는 없을지언정, 다른 도시의 상황을 확인해 둘 필요는 있겠지.”

“그 말씀은.”

“그 상행. 우리 부대가 지원해 드리도록 하겠소.”

“오, 오오……! 감사합니다!”

이렇게 쉽게 수락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상협이 크게 놀라며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상행을 간다는 건 좋은데.”

그 인사를 대충 받으며 김 중위가 말했다.

“예. 뭐 궁금하신 거라도…….”

“팔 만한 물건이 있기는 한 거요?”

이 도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에 잠겨 있었다.

지상에 있던 대부분의 물건을 못 쓰게 되어 버린 상황이다 보니.

대도시임에도 불구.

우리가 온 인제군보다도 쓸 만한 물건들이 적을 정도였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한테 팔 만한 물건이 있기는 할까 싶었으나.

“허허. 그걸 군인분들이 말씀하실 줄이야.”

“?”

상협은 무슨 당연한 것을 묻냐는 듯한 태도였다.

“전투식량이 있잖습니까.”

“아아.”

어, 맞네?

나도 그건 생각 못 했다.

우리 부대에는 워낙 흔한 물건이다 보니.

다른 데서 귀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잘 못한단 말이지.

“아시다시피. 안 그래도 식량이 귀한 세상입니다. 어떻게 농사를 지어서 식량을 얻으려고 한다고 쳐도 시간이 걸리고, 괴물의 고기는 먹을 수도 없으니……. 게다가, 곧 겨울이 오지 않겠습니까.”

“겨울…… 그렇군.”

김 중위가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

자연의 힘은 강력하다.

과거에 자연을 이기게 만들어 준 문명은 박살이 나 버린 상황.

겨울이 온다면, 각성자들조차 활동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겠지.

아직은 그래도 시간이 남아 있는 편이긴 하다만.

평범한 사람들이 겨울을 버티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준비에 들어가야 할 터.

“김 중위님. 겨울이 오면…… 많이들 죽을 겁니다.”

“음. 아마도 그 사인의 대부분은 아사겠지.”

“예. 살아남기 위해서는 식량을 보존하는 것이 필수일 텐데. 겨울을 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보존되는 식량 자체가 드물죠. 그런데 심지어 그게 먹으면 버프까지 얻을 수 있고, 맛도 있으니.”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다.

“사실 이 도시에서도 전투식량은 귀한 편입니다만. 아무래도 전투식량을 만들어 주는 군인분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공급처가 바로 근처여서야.”

“우리 쪽에서 물량이 공급될수록, 가치도 떨어지고 있겠지.”

“……크흠.”

내가 갑자기 헛기침을 하자.

두 사람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응? 영준 씨라고 하셨나요. 뭐 불편하신 부분이라도?”

“아니.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시고. 두 분 얘기 계속하시죠”

내 요리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을 들으니.

뭔가 서운하구만.

“아무튼! 여기서도 귀한 전투식량이지만, 그 전투식량을 공급받을 방법조차 없던 다른 곳에서는 비교도 안 되게 귀한 물건이라는 뜻입니다.”

“호오.”

“이 전투식량을 다른 곳에 가져가서 가치 있는 물건들을 가져오고. 그 가치 있는 물건들을 비교적 전투식량의 가격이 저렴한 이곳에서 다시 전투식량으로 바꾸고. 그걸 또 저기 가서 팔고…… 이걸 반복하다 보면.”

“반복하다 보면?”

“돈이 복사……가 아니구나. 그 종이 쪼가리들은 휴지로 쓰이고 있으니. 아무튼 복사가 된다, 이겁니다!”

결국은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라는 뜻이다.

우리도 동맹을 맺기 위해 접촉하는 게 최우선 목표라고 하나.

이득을 볼 수 있다면 마다할 필요가 없지.

“그럼 우리한테 원하는 건 무엇이오. 원하는 게 있으니 찾아온 것일 텐데.”

“예. 그, 제가 거래 쪽으로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자신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상행 가는 길에 좀비 무리 하나만 만나도 얄짤 없이 사망할 처지인지라.”

“비전투직이시니 어쩔 수 없지. 용건은 호위 병력을 빌려 달라는 것이겠군.”

“덤으로. 전투식량도 투자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저번에 받은 보상을 밑천 삼아 해 볼까 했습니다만. 규모가 커질수록 좋으니까요.”

투자라.

전투식량이야 여유가 있다 못해 넘치는 상황이다.

어느 정도 투자해서 쓸 만한 물건들을 얻어 올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만.

문제는 투자의 효율이 얼마나 좋은가겠지.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투자해 주신 전투식량을 그대로 갚는 건 물론이고. 이번 거래로 얻을 이익의 1할을 드리겠습니다!”

“1할?”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싶었으나.

그런 말이 나오기도 전에, 상협이 설명을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거래이실 겁니다. 가만히 있어도 재산이 불어나는 셈이니까요. 물론 군인분들이야 모자랄 게 없으시겠지만, 뭐든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뭐라 뭐라 설명을 이어 가는 상협.

그 말을 들을수록.

이 거래가 우리에게 나쁘지 않다는…… 아니.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이득을 가져다주는 거래일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으음. 그렇게까지 양보해 준다는 뜻인가.”

“예에! 그리고 어쩌구 저쩌구.”

“허어! 너무 우리만 이득 보는 거래가 아닌가 싶소만.”

“하하, 앞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의미에서……”

“흐음. 흐음.”

나뿐만이 아니라, 김 중위 역시 비슷한 듯.

1할이라는 수치.

저 상인이 엄청나게 양보한.

매우 합리적인 것을 넘어, 파격적인 비율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하였으나-

“잠깐만요.”

그렇기에.

나는 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 신 병장님이라고 하셨나요. 뭐 질문이라도.”

“3할로 합시다.”

“……예?”

신나게 떠들며 우리 쪽을 설득하던 상협.

그의 얼굴이 조금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가 가져가는 거. 이익의 3할로 하자고요.”

“……예에?”

내 말을 들은 상협은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는 듯.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1할이라는 비율도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제 쪽에서 피해를 감수하고 엄청나게 많이 떼 드린 겁니다! 그런데 그 3배라니요!”

“4할.”

“……그, 그런 식으로 계약을 맺게 되면, 저는 상행을 해도 손해를 보게-”

“5할.”

“……김현석 중위님! 뭐라고 말 좀 해 주십쇼!”

“나, 나 말인가.”

나와 상인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김 중위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 눈빛이 어떤 의미인지는 대충 짐작이 간다.

‘얘기 들어 보니까 1할도 엄청 좋은 조건 같은데?’

‘너무 그렇게 요구하다가 파토 나면 우리만 손해 아니냐?’

‘상행 끼자고 한 건 영준이 너 아니었냐. 갑자기 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뭐, 대충 이런 뜻이겠지.

하지만, 그건 뭘 모르니까 나오는 생각이고.

‘오늘 저녁 굶고 싶은 거 아니면 닥치고 제 말대로 하세요.’

그런 눈빛을 담아 김 중위를 쳐다보았다.

그걸로 충분했다.

“크흠. 나는 거래의 세세한 수치까지는 잘 몰라서 말이오. 자세한 비율 조정은 신영준 병장에게 맡기도록 하지.”

“그, 그런……!”

다 넘어온 것 같은 분위기였던 김 중위마저 망설임 없이 내 편을 들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이 좌절하는 상협.

“정말 억울합니다. 군인분들이 거래를 잘 안 해 보셨나 본데. 이런 식의 거래는 양측 모두 좋을 게 없-.”

“6ㅎ…….”

“오케이! 거기까지.”

6할로 하자는 말을 꺼내려고 하자.

그가 다급히 손을 뻗어 내 입을 막으며 말했다.

“5, 5할로 합시다. 5할. 좋습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상협.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5할이 적정가였나 보군.’

사실.

그의 설명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1할이 우리 쪽에 많이 유리한 거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쪽이 우리에게 호의를 얻고자 출혈을 감수해 가면서 건넨 제안이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순이익의 1할?

‘투자는 물론 호위까지 담당하는 쪽이, 고작 1할?’

이딴 거래가 이득일 리가 없거든.

조금만 생각해도 답이 나오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중위는 물론 나까지 그 1할이라는 비율이 합리적이라고 속아 넘어갈 뻔했다.

이유야 뭐 뻔하지.

[식재료 감별(강화)]

[이상협]

[특성]

[최하급 신뢰도 향상]

[최하급 화법 숙련]

[스킬]

[가격 후려치기]

[호구잡기]

말도 안 되는 비율로 후려쳐도 그럴싸하게 느껴지도록 만들 수 있는.

저 스킬셋의 영향이겠지.

‘어딜 사기 치려고 하고 있어?’

일반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상태창을 살펴볼 수는 없다만.

나는 [식재료 감별(강화)]를 가지고 있다.

다른 인간 역시 내 직업의 관점에서 보자면 식재료의 한 종류에 불과한 바.

상태창을 엿보는 건 어렵지 않다.

특성과 스킬을 미리 살펴본 덕분에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만.

그게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호구 잡힐 뻔했다.

아마도 5할이 적정가.

6할부터는, 정말로 저쪽이 손해를 보는 구조였지 않을까.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하, 하하…… 저야말로. 크흑.”

조금 괘씸하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상인이란 이득을 추구해야 하는 직업.

굳이 이걸로 뭐라 할 생각은 없다만.

‘그렇다고 호구 잡혀 줄 생각도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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