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화 탈주
“계약이라고.”
“그래…….”
갑작스럽게 폭발해 버린 인간.
그 시체를 약식으로나마 수습하고.
계약자들이나 아군 병사들 역시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싶었을 때.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계약은 지독한 불공정 계약이다.”
“뭐, 그건 알고 있었지.”
“……?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원준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기로 했다.
“다들 불공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알면서도 계약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흠.”
정말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는지 솔직히 의문이긴 하다만.
그건 넘어가기로 하고.
“계약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따라온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원준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멋대로 그 계약을 파기하려고 할 시, 우리에게 제약이 가해진다는 조약이지.”
“제약이라.”
그게 어떤 제약이었는지는.
몇 분 전.
내 몸을 뒤덮었던 살점들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목숨.’
안 그래도 불공정 계약이라는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이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보르진은 그런 말은 없었는데?’
녹색갈기 부족은 악마의 편에 들었다가 나중에 그만두었다.
어떻게 그런 건가 싶었으나.
생각해 보니 간단했다.
‘그 초원신이라는 양반이…… 뭔가 도움을 준 거겠지.’
이쪽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니까.
“허.”
내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자.
뒤에 있던 다른 계약자들이 소리쳤다.
“아니.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요!”
“분명 멋대로 계약을 파기할 경우 제약이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 제약이 죽음이라니.”
다른 계약자들은 그 제약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는 듯했으나.
그게 죽음을 의미한다는 점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저 악마가 줄 제약이 사소할 리가 없다는 것 정도는 다들 어느 정도 예상했잖나.”
“…….”
“[계약] 스킬만 봐도. 대가를 바쳐야 한다는 문구만 있을 뿐, 그게 어떤 대가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지. 하지만 다들 경험해 봤잖소. 저 악마가 요구하거나, 거둬 가는 건 하나뿐이라고.”
영혼과 육신.
즉, 계약자의 모든 것이다.
“나 역시 계약하고 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제약이란 게 죽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하고 깨달았지. 하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어.”
“어째서……!”
“말해 봐야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괜히 각오한 사람들에게 찬물만 끼얹는 꼴이 될 거라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허무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 원준.
“그걸 말하지 않은 탓에…… 종완 씨가 죽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어.”
“…….”
“애초에 모두가 각오가 된 이들이었으니 이 계약을 그만두겠다 할 이가 나오는 상황 자체를 생각 못 했지…… 모두 내 탓이다.”
이 모든 것이 원준의 탓이라는 것.
그 생각은 다른 계약자들도 마찬가지인 듯.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얼마 전까지 그들의 지도자였을 이.
그에게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많았다.
“당신을 믿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중요한 사실을 숨기다니……!”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끝날 일이……!”
가장 먼저 악마와 계약한 것은 바로 저 원준이라는 사내.
나머지는 그에게 제안을 받아 계약을 진행하게 된 이들이라는 듯.
원망이 한 사람에게 몰리는 모습.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병사들은.
저 계약자들의 다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내 요리의 효과로 인해.
군단 외의 인물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크지 않은 이들.
내 요리의 효과를 알고 있는 민재 형 정도를 제외하면.
애초에 남들에게 그다지 몰입할 수 있는 성향들이 아니다.
게다가.
“이제 와서 죽느니 뭐니 해도…….”
“저희를 공격해서 죽이려고 했던 놈들 아닙니까. 솔직히 저희가 신경 써 줄 내용인가 싶은데요.”
저 녀석들은 우리의 적이기도 하니까.
이제 와서 후회하며 계약을 파기하려다가 죽는다고 한들.
우리 쪽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
‘몇몇 병사는 오히려 통쾌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자신들이 저지른 일.
그 일이 역으로 돌아와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
권선징악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으음.
“역시, 조금 맘에 안 드네.”
“……예?”
저 계약자들이 사실은 인류를 위해 한 일이라든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계산해 주고 싶지는 않다.
“너희들은 화나지도 않냐?”
“……그. 뭐에 화나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악마란 녀석은.”
동기가 어찌 되었든 간에.
저들이 저지른 것은 분명히 악행.
그걸 덮어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하지만.
“인간을 가지고 논 거다.”
“……!”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계약의 내용을 교묘하게 숨기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고선…… 선의를 가지고 있던 인간들을 제 손 아래에 두었지.”
멸망이 찾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군림하고 있던 인간들.
그런 우리를.
‘외부에서 온 녀석이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나는.
이 점이.
“굉장히…… 열 받거든.”
슬쩍 허공을 올려다본다.
[식재료 감별(강화)]
[악마종 - 악마]
녀석의 시선은 여전히 이곳을 떠나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녀석 또한.
내가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하지만.
‘여유로워 보이시는군.’
처음의 살벌했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었다.
지금은 그저 여유롭게.
이 상황을 즐기려는 듯 지켜보고 있는 모습.
지상에 간섭할 수는 없다고 한들.
이미 저 인간들은 [계약]을 통해 저 악마에게 묶여 있는 상황.
이 상황을 해소할 방법 따윈 없으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여유롭게 관망하고 있는 것 같은데…….
‘뻔뻔하기도 해라.’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던 녀석이다.
그 녀석이 저렇게 여유까지 부리고 있다면.
그냥 넘어갈 수가 있나.
“한 방, 먹여 줘야지 않겠냐.”
“……예?”
* * *
딱히 이 녀석들이 이쁘단 건 아니다.
뭐라고 주절주절 사정을 얘기하긴 했다만.
인류의 위기에 스스로를 바치려 했다는 점.
그 부분만을 쳐 줄 뿐.
결국, 우리에게 적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넘어가면 내 짜증이 해소될 것 같지가 않거든.’
미안하게 됐다만.
내 짜증을 해소하기 위해.
“자…… 거수자 양반들.”
너희들은.
내게 조금 이용당해 줘야겠다.
“다들 집중.”
“……?”
서로를 탓하며 네 탓이니 내 탓이니 하던 계약자들.
그들의 앞에 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에 내게 쏠리는 게 느껴진다.
“다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으실 텐데, 조용히 하시고.”
“…….”
“크음…….”
악마는 이곳을 내려다볼 수 있을 뿐.
직접적인 간섭은 불가능하다.
악마가 소환한 하수인들은 모두 토벌되었으며.
저들은 강렬한 [생존 욕구]로 인해 [계약]은 커녕, 우리에게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상황.
이쪽은 명백한 갑.
저쪽은 명백한 을이란 거다.
“몇 개만 묻지.”
“묻는다니…….”
“갑자기 무슨 말이신지…….”
“본인들이 사기당했다는 거 자체는 이제 다들 깨달으셨을 것 같은데.”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금은 거만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일단, 지금까지 했다는 악행들에 대해 설명해라.”
“…….”
“뭐야, 말을 아끼네? 죽고 싶은 거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건가?”
“아, 알겠소!”
내 요리로 인해 생존 욕구가 그득그득 들어찬 계약자들.
머리에 총구를 겨누자.
꽤나 금방 답변이 나왔다.
“그, 그분의 명령으로 몇 가지 악행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에요.”
“주로 나중에 그분이 강림했을 때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이었지…….”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 함은?”
“……인도자님에게는 악행 지식이라는 특성이 있어요. 그 특성으로 얻은 지식을 통해 곳곳에 사악한 기운을 저장하는 마법진 같은 걸 그려 놓는다든가…….”
“허.”
그렇게 그려 놓은 곳에 쌓인 기운을.
언젠가 강림하는 악마가 흡수할 계획이었다는 것.
“하, 하지만 믿어 주시오. 남을 상대로 피해를 준 적은 거의 없어!”
“글쎄다. 그렇게 말해도 영 믿기지 않는데.”
소수의 인류라도 살리기 위함이라고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려던 녀석들.
어쩌면 이미 상당한 수의 인간들을 담가 버린 게 아닐까 싶었으니.
“……나름의 이유도 있다.”
“응?”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겠지만…….”
인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던 사내.
원준이 말했다.
“내가 처음 악마와 계약하고, 아직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 숫자가 너무 적어.”
“그게 무슨 상관이지?”
“……악마가 내게 명령한 것은, 일단 동지를 많이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하지. 바칠 수 있는 동지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 악마가 계약을 통해 이 세상에 간섭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해질 테니까.”
한 번에 많은 계약자가 목숨을 바칠수록.
악마에게 빌 수 있는 소원도 강력해진다.
“다른 인간들과 조우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최대한 우리 쪽으로 포섭하는 방향으로 작전을 수립했지…… 처음엔 20명 남짓했던 내 그룹이 지금 이 정도로 많아진 것 역시 그런 이유다.”
그 소원 역시 결국은 악마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빌어질 테니.
녀석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계약자의 숫자를 늘려 놔야 했다는 것.
“흠…….”
“다만, 말했다시피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그가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방법 따위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절망하도록 유도했어.”
“…….”
“그렇게 절망한 인간에게 최소한의 인류만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사명감을 불어넣었다.”
그런 식으로.
마주치는 다른 인간들을 그들과 같은.
“그분의 노예로 만들었지……. 이것 역시 더없이 심한 악행.”
말을 잇던 그가.
고개를 들더니,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믿어다오. 소중한 동지들을 대규모로 희생시켜가면서까지 남을 공격하려 한 적은 너희가 처음이었다.”
“그래. 그 점도 신경 쓰였지. 애초에 우리는 왜 공격한 거냐.”
“그 라디오를 발송했잖나.”
“……응?”
라디오?
민재 형의 의견으로 발송하게 된 그 라디오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게 왜 여기서 나와.’
뜬금없는 이유에 조금 의아했으나.
저들에게는 그게 무척이나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았다.
“말했다시피 그분은 계약자를 늘리길 원했다. 다만…… 악마라는 그 이름은 인간들에게는 무척이나 불길하게 들리니까.”
평범한 이들이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을 계약.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거나, 희망이 있는 이들은 악마와의 계약을 선택하지 않아. 최후의 최후에 가서야, 다른 선택지가 단 하나도 남지 않았을 때 어쩔 수 없이 고르는 것이 바로…… 악마와의 계약이지.”
악마와 계약하려면.
여유도, 희망도 없어야 한다.
그러니.
“너희가 쏘아 낸 라디오는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했다.”
“……과연.”
우리가 쏘아 낸 라디오.
그로 인해 인류는 괴물들의 사냥법을 깨닫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을 것이다.
“인류가 강해진다면 다른 누군가에게 의존할 필요도 줄어들고, 악마와 계약할 일도 없어진다는 거군.”
“비슷하다만, 하나 더.”
“응?”
“너희의 존재 자체가, 다른 인간들의 희망이 되어 버렸을 거다.”
“희망?”
“언젠가 살아남은 군부대가 자신들을 구하러 와 줄 것이라는…… 희망.”
…….
희망이라.
“희망을 가진 인간들은 악마에게 기대지 않아. 그분을 섬길 만한 인간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겠지.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제거해야 했다, 이거로군.”
“그렇다.”
과연.
녀석들이 우리를 공격한 이유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희망이니 뭐니 하는 건 너무 거창해서 모르겠다만.’
결국은.
그 악마 녀석에게 우리가 방해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는 것.
“……대충은 이해했다.”
아마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지고.
이들의 세력이 더 커졌다면.
다른 인간들에게 큰 피해를 줬을 가능성도 컸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악마에게 해가 될 만한 인간 세력이 어딘가에 더 있을 테니까.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자.”
“뭐?”
“너희가 그 악마와 계약한 건 잘 알겠는데. 그러면.”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까지는…… 적어도 큰 피해를 끼친 것은 아닌 듯하니.
“그 계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이 있다고 하면.”
“……?”
한 가지 제안은.
건네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따를 건가?”
“……!”
그 말에.
계약자들 사이에 소란이 퍼져 나간다.
“무, 무슨.”
“그런 방법이 있다는…….”
“잠깐!”
웅성거리는 계약자들.
그들의 입을 막은 것은 원준이었다.
“다들. 방금 종완 씨가 어떤 꼴이 됐는지.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아.”
“다들 말을 조심해야 해. 여기서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큰일이 날 테니.”
이미 한 남자가 우리에게 넘어오려고 했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저 계약자들 역시.
잘못 입을 여는 순간, 그런 꼴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한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군.”
“음?”
이들의 수장 격이었던 인물.
원준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입을 열었다.
“이미 말했을 텐데? 그 악마는 우리 영혼의 주인이 되어 버렸어.”
반쯤 자포자기한 얼굴.
이러다가 죽게 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우리 마음대로 그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 따위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말했지 않나.”
“흠. 그 얘기는 듣기는 했는데.”
듣긴 했지.
듣긴 했는데.
“뒷부분은 그냥 네 개인적인 생각 아닌가?”
“뭐……?”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지배에서 벗어나는 게 절대로 불가능하다니.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이거야.”
군대라는 게.
언제나 이성적으로만 돌아가는 단체는 아니다.
때로는 말도 안 되는 명령이 위에서 내려올 때도 부지기수.
하지만.
그럴 때.
불가능한 일이라도, 시도하는 모습이라도 보이는 병사.
그리고, 불가능하니까 안 하겠다고 명령을 거부하는 병사.
“됐고.”
둘 중.
군대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보통 전자인 법이거든.
“자유로워질 수단이 있으면 선택할 건지 말 건지 그것만 말해라.”
“……이미 봤을 텐데? 그걸 입에 담는 순간 우리는.”
“그 수단이 뭔지는 말 안 했잖아? 막말로. 그 악마한테 싹싹 빌어서 그냥 놓아주십쇼~ 하는 방법일 수도 있는 거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가 말하긴 했지만.
말도 안 되는 궤변인 건 사실이다.
실제로.
모든 계약자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섣불리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의 정적이 이어지고.
‘뭐…… 이런 게 정상이긴 하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운 작전이 하나 있었다만.
아무래도 그 작전을 수행할 필요는 없어진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
“……과연. 이해했다.”
말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던 남자.
원준이 이내 입을 열었다.
“인도자…… 가 아니라. 당신. 이해했다니. 뭘……?”
“저 말에 대답했을 때…… 죽게 되는 건 아마 대답을 한 그 사람뿐이겠지.”
후욱.
후욱…….
사내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렇다면…….”
[계약]을 어기는 것은.
내 질문에 대답하게 될 사람 한 명뿐.
나머지는 계약을 직접적으로 어기는 것은 아니니.
어찌어찌 목숨을 보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즉.
“내가 시작한 일이니. 내가 끝내는 게 옳아.”
악마와의 계약을 주선했던 보르진이, 죗값을 치르기 위해.
대족장의 명령을 수행하려 한 것처럼.
“각오는 된 건가?”
“……그렇소.”
“그럼. 내가 말하는 걸 따라 하도록.”
악마와 처음 계약을 맺은 원준.
그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로 다짐했다.
“[계약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자유로워지고 싶다.]라고.”
“……계약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한 일이라면, 자유로워지고 싶다.”
방금 전까지.
처음 계약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모든 증오를 사던 인물.
그가 그런 말을 꺼내자.
“다, 당신……!”
“인도자님!?”
계약자들이 크게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모든 이들을 대표해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
곧바로 그 머리가 터져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시선이 원준에게 꽂히고.
“……후욱!”
실제로 그 말을 꺼낸 원준 역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으나.
“……?”
“아, 안 죽는 건가?”
폭발은 없었다.
계약을 어긴 것에 대한 대가는 치러지지 않았다.
‘……이게 되네.’
저들이 한 계약의 내용은 결국.
계약을 파기하려고 할 경우, 제약이 발동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계약을 파기하지 않는 선에서, 라는 조건을 달아본 건데.’
솔직히 먹힐 줄은 몰랐다.
혹시나 싶어서 붙여 본 문구였는데.
아슬아슬하게 저 계약을 어기지 않는 내용이었던 모양.
피식.
문제는.
여기서 저들이 적극적으로 계약에서 벗어나려고 할 경우에는.
얄짤 없이 제약이 가해질 것이라는 점이다만.
“좋아. 아주 조금 맘에 들었어.”
저들에게는 아직 [생존 욕구]의 요리가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목숨을 잃게 될 것이 뻔함에도 불구하고.
정신력으로.
내 요리의 효과를 이겨 내고 말을 꺼냈다는 사실.
“그걸로 충분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뭘 할 셈이지?”
죽음을 예상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잇던 원준.
그리고 그를 비롯한 계약자들.
그들이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말했지 않나. 그 녀석이 우리를 자유롭게 놓아줄 리가 없다고……!”
“음…… 그거 말인데. 재밌는 얘기 하나 들려드릴까.”
“뭐?”
나는 취사병이지만.
사회에서부터 요리를 한 놈은 아니었다.
대신.
후임 중에는 요리사 출신이 둘이나 있었다.
그들에게서 이런저런 썰을 들을 때도 많았단 말이지.
“내 맞후임…… 준혁이란 녀석이 있는데.”
“맞후임? 갑자기 뭔.”
“그 녀석한테 들은 얘기인데, 식당 일이라는 게 엄청나게 힘들다더라고?”
다소 뜬금없는 내 말에.
계약자들은 물론.
“……신 병장님?”
“갑자기 무슨 소리를.”
병사들 역시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주방 인원의 채용 공고는 언제나 0명이라고 하더군. 그러니까 상시 채용이란 거지. 그만큼 사람 구하기가 힘들단 얘기고.”
“그러니까 갑자기 왜 헛소리를.”
“근데 사실 그건 크게 문제가 안 돼. 진짜 문제는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사람을 구했을 경우지.”
워낙에 일이 힘들고, 빡세다 보니.
어떻게든 직원을 구해 본다고 한들.
“하루만 일하고 다음 날에는 말없이 사라지는 놈들이…… 그렇게 많다더라.”
“……?”
“첫날 일한 임금이라도 보내 주겠다고 해도 이 악물고 씹고, 연락도 무시하고. 사실 남 얘기도 아닌 게, 준혁이 그 녀석도 처음엔 그랬다더라고.”
씨익.
“이 얘기의 교훈이 뭔지 알려 줄까?”
이 녀석들의 직업은 악마 계약자.
저들이 자유로워지지 못한 이유 역시 그 직업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을 그만두는데 사장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거다.”
계약자가 아니게 만들어 버리면.
그만인 거 아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