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직업 변경 (1)
[계약]
이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스킬이다.
일단 스킬로 등록되어 있긴 하다만, 그 내용대로라면.
‘이게 바로 이 인간들이 악마와 맺은 계약 그 자체겠지.’
그렇다면.
그 계약을 무마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저 스킬을 없애 버리는 것.’
즉.
“일을 그만두는데, 사장 허락을 왜 맡아?”
“그게 무슨…….”
당황한 계약자들이 의구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지만.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는 없다.
‘괜히 설명해 줬다가, 내게 동조하는 행위가 계약 위반으로 취급될 수도 있으니.’
나는 몸을 일으킨 뒤.
내 뒤에 서 있던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광일 상병.”
“예. 상병 전광일.”
“전사조 애들 데리고, 밖에 있는 괴물 시체들 전부 가져와.”
“괴물들의 사체를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충성 충성!”
엄청난 신체 능력을 자랑하는 전사들.
그들이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며, 괴물들의 사체를 수거하기 시작한다.
“이민재 병장.”
“……예. 병장 이민재.”
“백만 볼트 장전해.”
“실시.”
군단 최강의 마법사.
이민재 병장의 손에 푸른 전류가 모여든다.
그 모습을 본 계약자들이 경악했다.
“무, 무슨 짓을 하려고……!”
“결국, 다 죽이겠다는 거냐!”
이민재 병장의 마법.
그 위력은 이곳에 있는 계약자들도 직접 목도한 바.
그 위력 또한 익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말대로.
민재 형이 마음만 먹으면 저들을 몰살하는 것도 어렵진 않겠지만.
“말했잖아?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
“아, 대신.”
[생존 욕구]의 요리가 적용되고 있는 상태.
누구보다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앞서고 있는 상태였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걸 이겨 내고 내게 자유를 청했다.’
그렇다면.
뭐,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깟 자유, 줄 수도 있지.’
줄 수도 있는데.
대신.
“좀…… 많이 아프긴 할거거든?”
“그게 무슨!?”
우리가 친한 사이도 아니고.
공짜로 주는 건 조금 그렇잖냐.
“뭐, 지금까지 나쁜 짓 한 벌이라고 생각하시고.”
계약자들의 눈동자에
경악과 의문이 동시에 깃들지만.
“민재 형.”
거기에 대답해 줄 이유는 없었다.
“백만 볼트, 발사.”
“실시.”
파지지지지지지직!
“끄르륵…….”
한자리에 모여 있던 각성자들.
그들에게 민재 형의 번개가 퍼져 나가자.
털썩…….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우리를 바라보고 있던 계약자들.
그들 전원이 바닥으로 쓰러진다.
“……일단 말해 두겠는데. 영준아.”
물론.
죽인 건 아니고.
“이 정도의 인원이 죽지만 않을 정도로 번개의 위력을 조절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야.”
“에이. 잘했으면서 무슨 엄살은.”
“사실은 조금 쫄렸…… 아니. 됐다.”
이곳에 모여 있던 100명이 넘는 계약자들.
그들 모두가 기절해 버린 상태.
‘민재 형의 마법은 제압에도 최적화되어 있으니까.’
과거.
우리 부대에게 있어서 김 중위가 큰 위협이라고 여겨졌을 때.
‘김 중위를 기절시키고 감방에 집어넣은 장본인이 바로 민재 형이었지.’
전기의 위력을 조절하면.
누군가를 기절시키는 건 쉽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신영준 병장님.”
“응?”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다음 명령을 내리려던 찰나.
서수혁 상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우리의 적이었던 이들입니다.”
그 이유 역시.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우리가 저 녀석들을 죽여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테죠. 병장님이 말했던 불살 원칙도 우리에게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이들에 한한 것이었고요.”
“뭐, 그렇긴 하지?”
“다른 병사들은 당연히 이 녀석들을 죽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더군요. 그도 아니면 감방에 넣고 평생을 썩게 하거나.”
세상에.
우리 부대원들 나 없는 곳에서는 꽤 살벌한 얘기도 자주 하는 모양.
“솔직히. 저나 다른 조장들은 솔직히 다른 쪽을 예상했었습니다…….”
“응?”
“그. 병장님의 권속한테 보낸다거나 하는 거 있잖습니까.”
“아아.”
뱀파이어의 존재는 기본적으로는 기밀이다만.
조장급의 병사들은 그 존재를 알고 있다.
실제로 나 역시 다른 조장들과 마찬가지.
저 녀석들이 명백한 악인이라 생각했을 때는 바로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으니까.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기는 하다만.
“그걸로는 조금 부족하지.”
“예?”
저 녀석들은 악행을 저질렀다.
듣자 하니 계약을 시작한 건 오래되지 않은 모습이긴 하다만.
우리를 공격한 것 외에도.
몇 가지의 악행을 더 저질렀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그 의도는 인간의 선의로 이루어져 있었다.’
자신들이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단 한 명의 인류만이라도 살리고자 하는.
희생.
“뭐, 그 희생정신을 높게 쳐줄 생각은 없기는 한데.”
“그러면, 왜…….”
“아예 무시하는 것도 조금 그렇잖냐.”
악행은 제대로 벌할 생각이지만.
그 선의 역시.
어느 정도는 계산에 넣어 줘야 한다는 게 내 생각.
“뭐,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될 거야. 그리고 그거 아냐?”
“……?”
“뱀파이어로 만드는 건 그렇게 아프진 않다더라고.”
다만.
그 희생정신을 계산에 넣어 주는 만큼.
죗값에 대해서도.
제대로 계산해서 지불하게 할 생각이다.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습니다만…… 너무 복잡하고 힘들게 돌아가시는 것 같군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사실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없긴 하지.”
“예?”
그리고.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사실.
희생이 어쩌니, 죗값이 어쩌니.
그딴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런 사소한 이유와는 비교도 안 되는.
내게 있어서 가장 큰 이유.
“조금 건방진 것 같단 말이지.”
“……저 말입니까?”
“너 말고, 인마.”
이 세상의 주인이었을 인간.
그 인간을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고.
결국에는 제 입맛대로 뜯어고치려 했던 존재.
“악마.”
그놈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여 줄 수만 있다면.
“조금 귀찮은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겠더라고.”
* * *
기절한 계약자들.
그들은 근처에 있는 방 안에 가둬졌다.
“무조건 1인당 1실이다.”
“알겠습니다.”
병사들에게 계약자들의 감금을 명령할 때.
나는 신신당부하며 말했다.
“그리고 공병들은 녀석들을 가둔 방을 강화해다오. 혹시라도 튀어나올 수도 있으니까.”
“예.”
건방지게도.
인간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고자 하는 존재.
악마.
‘계약자들이 계약에 얽매이게 된 이유는…… 저 [계약] 스킬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저 스킬을 없앨 수만 있다면.
계약자들은 자유를 되찾을 수 있게 된다는 것.
스킬을 없애는 방법은.
내가 알기론 하나뿐이다.
‘직업 변경.’
아리엘라의 경우가 그렇다.
그녀의 권속들은 원래 직업이 어땠다고 한들.
뱀파이어로 바뀐 뒤에는 무조건 [뱀파이어 나이트] 계열로 직업이 바뀌게 되는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킬이나 특성들은 삭제되어 버렸지.’
그녀가 나를 권속으로 만들지 못한 이유도 그 점이 핵심이었다.
내가 그녀의 권속이 된다면 요리 스킬 역시 사라질 것이고.
그녀는 내 요리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것.
‘중요한 건 그 직업을 바꾸는 방법인데.’
지금까지 겪어 본 바로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아리엘라를 동원해.
그 녀석의 권속으로 만들어 버리거나.
혹은…….
‘조금 잘못된 식습관을 가져 버리거나.’
잠시 뒤.
내 명령대로 괴물들의 사체를 가져온 병사들.
“이건 어디에다 두면 되겠습니까?”
“요리를 하시려는 것 같은데 요리하려면 어디 공터로 옮기는 게…….”
“응? 이걸 왜 요리해?”
“예?”
“딱 봐도 불길하게 생긴 게 맛도 없을 것 같구만. 이런 재료로 요리는 무슨.”
당연히 내가 요리를 할 것으로 생각한 듯.
요리를 하기 적당한 위치를 찾던 병사들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그, 그럼 이 사체들은 왜?”
“저 녀석들을 가둔 방.”
난 그 녀석들을 보면서 말했다.
“그 안에…… 최대한 가득 채워 줘라.”
“……?”
그 말에.
대부분의 병사들이 의아해했으나.
“……설마!”
딱 한 명.
내 말뜻을 이해한 것일까.
안색이 파리하게 질리는 병사가 있었다.
“구, 군단장님……!”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것일까.
몸이 덜덜덜 떨리며.
핏기가 없어진 얼굴로 말하는 여자.
“그건 미친 짓이에요!”
“에이, 넌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현진을 향해.
난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딱 기다려라.
“후배들 만들어 줄 테니까.”
* * *
“……허억!”
갑작스러운 전기 충격.
그로 인해 기절했던 사내.
원준은 이내 눈을 뜰 수 있었다.
“여, 여기는……?”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기억은 냉막(冷漠)한 인상의 군인.
그 군인의 손에서 해방된 강렬한 번개.
수많은 악마의 하수인들을 일격에 재로 만들어 버린.
바로 그 번개.
‘지옥…… 인가?’
그런 번개가 자신을 덮쳤으니.
자신은 죽은 것이 분명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끔찍한 생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섬기던 존재는 악마.
그리고, 지구에 전해지는 구전에 의하면.
‘지옥은 악마의 영역.’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악마에게 의탁해 적은 수의 인간만이라도 살리고자 했던 그였으나.
그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다는걸 깨닫게 된 지금.
악마와 연관되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끔찍한 일.
그 번개로 인해 죽은 자신은.
악마의 영역에 내던져져 버린 게 아닌가 싶었으나.
‘……?’
잠시 뒤.
잠에서 막 깨어난 머리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고 나자.
지옥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익숙한 형태…….’
그가 있는 방의 형태는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그들이 아지트로 삼고 있던 폐건물.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감금당한 건가?’
주변의 문과 창문들.
그곳에는 철판인지 뭔지 모를 자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급하게 붙인 것인지, 조금 대충인 느낌이 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봉인.
‘저 시체들은 또 무슨.’
그리고 주변에는.
얼마 전까지 그들을 지켜 주던 괴물들.
……어쩌면 그들이 나중에 되었을지도 모르는 하수인들.
그 시체가 쌓여 있었다.
‘……어째서?’
자신이 감금당했다는 사실.
그걸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아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죽이려면 죽일 수도 있는 상황 아니었나?’
자신들은 군인들에게 완벽하게 제압되어 있었다.
죽이는 것도 어렵진 않았겠지.
그나마 감금하려는 이유라고 한다면, 정보를 캐내는 것 정도가 있겠으나.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당시의 그들은 그 누구보다 ‘죽기 싫은’ 상태였다.
목숨을 가지고 협박한다면.
어떤 정보든 쉽게 뱉어 버렸겠지.
굳이 이렇게 감금할 필요도 없다는 것.
그럼에도 이렇게 그를 가둬 둔 이유.
그 원인을 추측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려던 찰나.
‘……그나저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던 의아함.
그 의아함을 밀어 버리고.
강렬하게 밀려들어 오는.
또 다른 감정이 있었다.
원준의 머릿속을 순식간에 지배해 버리는.
저항 따위 불가능한 강렬한 감정의 파도.
꼬르륵…….
‘배가 고프군.’
공복.
배가 고파서 생각이 멈췄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졌지만.
그렇게 어이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후욱…… 후욱…….”
숨이 거칠어지고.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온다.
주륵.
입에서는 군침이 새어 나오고.
흐르는 침을 닦아야 할 양손은 배를 붙잡고 있었다.
‘배고프다…….’
어렸을 적.
낳은 부모에게 학대받았을 때나.
형편이 좋지 않은 고아원에서 살았을 때나.
난데없이 사회에 쫒겨났을 때.
몇 번이고 배고픈 삶을 경험해 본 적이 있던 그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느껴지는 배고픔은…….
여태껏 느껴 온 그것과는 격이 다른 것이었다.
“뭐, 뭔가 먹을 걸……!”
그런 생각에 급하게 방 안을 뒤진다.
하지만.
먹을 것은 고사하고, 마실 물 한 방울 존재하지 않는 방.
‘나, 나가야.’
방 안에 먹을 것이 없다면.
나가야 할 테지만.
밖으로 나가는 문은 봉쇄되어 있었다.
콰아아앙!
각성자의 신체 능력으로 벽을 부수고자 했으나.
벽면 전체가 무언가에 의해 강화된 것일까.
마땅한 전투 스킬을 지니지 못한 그로서는.
벽을 파괴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끄르륵……!’
지나친 공복이.
이성조차 날려 버리려고 한다.
이대로 공복이 이어진다면.
자신을 속인 존재인 악마.
그에게 자기 자신을 바침으로써, 먹을 것을 내놓으라 요구할 뻔했으나…….
입 안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먹을 것!’
급하게 혓바닥을 굴리자.
치아 사이에 끼어 있었던 무언가가 혓바닥 끝으로 느껴진다.
‘고기 조각?’
자신은 고기를 먹은 적이 없을 텐데.
왜 입 안에 고기 조각이 끼어 있는 것인지.
본래라면 의아하게 여겼을 만도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여유조차 없었다.
치아 사이에 끼어 있던 고기 조각.
그 조각이 목을 타고 넘어가고.
아주 약간.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약간의 공복이 채워짐과 동시에.
그 고기 조각이 가지고 있던 냄새.
미세한 육향이 입 안을 채웠다.
“뭐, 뭐든지 좋으니까……!”
그 육향이.
더더욱 그를 자극했다.
“먹을 걸…… 내놔……!”
이성이 사라지고.
공복으로 인한 분노만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입 안을 채운 육향.
그 육향이 고기를 찾게 만들고…….
‘고기라면…….’
그 시선이.
방의 구석을 향한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와 함께 처음부터 이 방 안에 있었던.
‘……맛있겠다.’
괴물들의 고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