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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7화 (7/78)

7. 금문상방의 대방

7. 금문상방의 대방

“조금 역겹군.”

“누구냐!”

이제부터 밤새도록 즐길 생각에 흥분하고 있었던 윤등구는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

이 밤중에 복면을 한 남자라니!

좋은 뜻으로 온 자는 분명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밤이 아니라 낮에 왔을 테니까.

잠행을 한 데다가 복주같이 먼 곳에서 누가 나를 알랴하는 마음이 화근이었다.

기루에서 동떨어진 곳에 있는 별채에, 보표까지 치운 후라서 더 문제였다.

만약 금문상방이 평범한 상단이었다면 윤등구는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복면의 사내를 강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금문상방은 평범하게 상품만을 사고파는 상단이 아니었다.

높으신 분들이 원하는 것을 구해오는 일이 그들의 주된 사업이었다.

사람부터 골동품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원한을 갖게 된 자들, 금문상방 대신 높으신 분들의 일을 하고 싶어하는 자들을 생각하면 자신의 눈앞에 등장한 자가 우연히 들른 강도일 가능성은 한없이 바닥에 처박힌다.

윤등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철척이 들려 있었다.

간혹 사람들이 오해할 때가 있는데 뚱뚱하고 배가 튀어왔다고 해서 반드시 싸움에 무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중견 상단의 주인 정도만 되어도 자신의 목숨 정도는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 못한 자는 상단의 주인이 되기 전에 모두 죽었다.

지금 철척을 들고 살기를 흘리는 윤등구 역시 겉보기와는 달리 싸움이라면 어디에 가서도 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사람은 아니었다.

이한 역시 그런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윤등구라면 경사에서도 제법 지명도가 있는 상단의 주인인데 이한이 모를 수가 없다.

윤등구는 이한을 모르겠지만.

[지금 수준에서 맞상대하기 딱 좋은 수준이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너무 뚱보 아닙니까?]

“겉모습에 속아 넘어가지 마라. 내공을 쌓은 자는 당장 죽을 것처럼 보여도 위험해. 무림에서 아이와 여자와 노인을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이한이 헛소리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나노가 이한에게 하는 말은 이한의 뇌로 곧장 전해지는 전기신호였다.

하지만 이한이 나노에게 하는 말은 모두 입으로 소리내어서 전달해야 했다.

옆에서 보기에는 이한이 뜬금없이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니 이게 무슨 미친놈인가 싶을거다.

그러나 이한은 이런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평정심을 약간이라도 흔들 수 있다면 미친놈처럼 보여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것이다.

윤등구의 철척이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날카롭게 짓쳐들어왔다.

당장이라도 공세의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숴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이한은 철척의 공세를 피하지 않았다.

철척이 기형병기라고는 하지만 용법을 따진다면 단봉과 다르지 않다.

만약 철척의 공격을 피한다면 분명히 단봉 특유의 연환식이 따라올 것이다.

이름있는 연환식은 잘 설계된 공식과도 같다.

상대의 반응을 계산하여 미리 짜놓은 연결공격인 것이다.

그것도 대충 만든 것이 아니라 무공의 대가들이 오랫동안 고심하여 설계한 공격과 방어의 연속이었다.

그런 것에 휘말리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어어 하면서 밀리다가 몸뚱이의 어딘가에 구멍이 뚫리거나 베이는 법이다.

이를테면 목이라든가 가슴 같은 곳 말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일개 상인이 휘두르는 철척이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연환식을 펼칠 틈을 주면 안 된다.

언제나 공격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이한의 주먹이 초식의 빈틈을 꿰뚫고 내질러졌다.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철척을 휘둘러 간격을 확보하고 공격거리의 유리함을 이용해 연이어 이한을 두들기려고 했던 윤등구는 코끝에서 느끼는 풍압에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너무 늦은 모양이었다.

코피가 흘렀다.

얼굴에 주먹에 닿지 않았는데도 한 대 맞은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발경이다!

내가고수야!

윤 대방은 눈앞의 사내가 강도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집어던졌다.

내공을 쌓아 몸을 단단하게 하거나 공격의 위력을 강하게 하는 것은 일개 산적에 지나지 않는 녹림도조차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공격에 내공을 싣고, 그 내공이 허공을 격하여 영향을 끼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부단히 연공하고 재능까지 따라줘서 내공의 수발이 자유스러운 자들이나 가능한 것이다 .

윤등구는 눈앞에 있는 자는 무림인, 그것도 제법 이름있는 문파의 제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오해했다.

그것이 그의 마음 일각을 무너뜨렸다.

윤등구는 입술을 타고 흐르는 피를 혀로 핥았다.

쇠맛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길보다는 흉이 더 많은 날이 될 것 같았다.

이한은 질겁을 하고 뒤로 튀어버린 윤등구에게 곧장 따라붙었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무기는 길면 길수록 유리하다고 한다.

윤등구 대방이 이척짜리 철척을 들었으니 그의 팔이 이척만큼 더 길어진 셈이다.

그 거리만큼 더 가까이 접근해야 이한과 윤등구 사이에 놓여진 공격거리가 동등해지는 것이다.

그것을 못 한다면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할 뿐이다.

이한의 선택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바에는 상대에게 과감히 다가가는 것이었다.

상대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짧은 거리에서 이한은 폭발적인 속도로 연달아 정권을 박아넣었다.

한방 한방이 바위조차 박살을 낼 것 같은 위력이었다.

그러나 윤등구도 대방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이한의 주먹은 윤등구의 팔뚝을 타고 모두 조금씩 빗겨나갔다.

도저히 막을 수 없을 것 같으니 흘려버린 것이다.

이한은 짧게 혀를 차며 더 가깝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윤등구는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려고만 했다.

한차례의 공방이 그를 위축시켜 버렸기 때문이었다.

무슨 놈의 위력이 이렇게까지!

팔뚝의 뼈가 금이 간 것은 아닐까 싶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것도 아니고 흘려보냈는데도 이렇게 아프다니!

이것은 비정상이었다.

복면을 쓴 자의 내공이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했다.

음한공을 절정으로 익힌 자의 일장을 제대로 맞으면 몸 안의 장기부터 얼어붙어서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정도로 심한 통증이라면 이자의 주먹 역시 남다른 데가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자신도 모르게 위축된 윤등구와 달리 이한은 상대방을 몰아붙이기에 바쁘기만 했다.

연달아 내지른 세 번의 권격을 비껴서 흘려보낸 윤등구를 가격한 것은 팔꿈치였다.

다시 일권을 지를 듯이 허초를 날린 후 바로 윤등구의 어깨를 때린 것이다.

그것으로 윤등구는 반병신이 되어버렸다.

팔 하나를 쓸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깨는 생각보다 중요하고 복잡하며 동시에 연약한 부위다.

어깨를 중심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관절과 근육은 복잡한 태엽 인형과 비견할만하다.

하나만 틀어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윤등구의 왼팔이 축 늘어졌다.

어떻게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왼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윤등구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다.

머리가 나쁘면 상단의 대방 같은 것은 해 먹지도 못한다.

그래서 팔 하나를 못 쓰게 된 순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몇 수 나누어보지 못했지만, 상대는 쉽지 않은 자였다.

그리고 이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되었다.

무공으로 이길 수 없는 자를 무공으로 상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윤등구는 자신이 무림의 무공고수가 아니라 금문상방의 대방이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주겠네!”

윤등구는 고함을 치며 즉시 철척을 바닥에 내던졌다.

쇠로 된 자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전투가 끝났음을 알려왔다.

저항할 생각이 없다는 확실한 의사표시였다.

“두 배! 뭐든지 두 배로 주겠네. 자네를 보낸 사람이 얼마를 약속했든, 무엇을 약속했든 두 배로 주겠어.”

살아남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윤등구처럼 중견 상단의 주인이라면 매수도 좋은 방법이다.

상대방도 윤등구가 부자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이한은 저항을 포기한 윤등구를 보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아주 간발의 차이였다.

한 호흡만 더 늦게 외쳤어도 한두 군데는 더 분질러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한이 원한 것은 윤등구의 목이 아니었다.

이한에게는 죽은 윤등구보다는 협조적인 윤등구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멈췄다.

만약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었다.

이한의 시선이 아이에게로 향했다.

아이는 겁에 질린 채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촌장의 손녀가 아니었다.

분명히 부선장이 촌장의 손녀를 챙겨서 윤등구에게 선물로 보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막상 이곳에는 엉뚱한 아이가 있었다.

[남자입니다.]

“뭐?”

[화장을 하고 여자 옷을 입혀놔서 구분하기 쉽지 않겠지만, 남자가 맞습니다.]

“두 배라고 했네. 두 배가 마음에 안 든다면 네 배는 어떤가? 나, 금문상방의 대방이야. 나는 약속한 것이라면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고!”

이한은 그의 짧은 반문에 발작하듯 반응하는 유등구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등구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살아날 길을 찾았다는 생각에 생기마저 돌았다.

두 배를 외친 순간 공격이 멈췄으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이한은 이런 종류의 사람에 대해 잘 아는 편이었다.

자신에게 협상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디까지 협상이 가능한지 가늠하기 위해 머리를 굴릴 사람이다.

그리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기꺼이 뒤통수를 치겠지.

이한은 그럴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이한의 손이 윤등구의 목을 움켜쥐었다.

“아이는 어디로 갔나?”

“억! 아이? 누구?”

“얼마 전에 해룡방에서 넘긴 여자아이.”

윤등구의 눈이 민활하게 굴러갔다.

이한의 목적을 알게 되자 어떻게 하면 이것을 이용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눈빛이었다.

“아! 그 여자아이. 무슨 일인지. 컥!”

이한의 손이 윤등구의 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조금만 삐끗하면 목뼈도 삐끗할 정도였다.

“윤등구 대방. 생각하지 마. 대답만 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살려줄 이유가 없어.”

“여자아이인 것을 발견해서 그냥 보내버렸소. 마침 다음날이 경사로 상품을 보내는 날이라서 해룡방에서 넘긴 사람들과 출발했을거요.”

“내가 너무 늦게 왔군.”

이한은 윤등구가 자신의 말에 흠칫 긴장하는 것을 느꼈다.

이해할만한 반응이었다.

이한이 여자아이를 찾는 일에 방해받고 싶지 않다면 윤등구의 입을 막는 것이 순리였다.

윤등구도 그 점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은 윤등구가 마지막 발버둥을 치게 만들었다.

팅!

스프링 튕기는 소리가 허리춤에서 났다.

윤등구의 손가락에서 나는 소리였다.

윤등구가 끼고 있던 커다란 반지의 윗부분이 열리며 날카로운 바늘이 튀어나갔다.

바늘은 이한의 허리에 박혀 들었다.

“이놈아. 일곱 걸음을 걷기도 전에 죽는다는 칠보단명사의 독맛이나 봐라. 맞자마자 사지가 굳어버리고 숨도 쉴 수 없게 될 거다.”

윤등구는 시원하게 내지르며 자기 목을 쥐고 있던 이한의 손을 풀려고 했다.

그러나 이한의 손은 여전히 단단하게 윤등구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신경독이 체내에 들어왔습니다. 미리 설정해둔 절차에 따라 즉시 제독 작업을 실시했습니다. 제독과정에서 소화된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65%의 독은 손톱 끝으로 몰아서 보관합니다.]

“나를 죽이고 싶었다면 수단을 잘못 선택한 것 같군. 윤 대방. 독은 나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아. 그러니까 당신들 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만독불침인 셈이지.”

이한은 윤등구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놀란 윤등구의 눈동자가 커질 때 이한은 윤등구의 얼굴에 자신의 손톱을 그었다.

칼에 베인 것 같은 자국이 이한의 손톱 끝을 따라 죽 그어졌다.

가늘고 붉은 선을 따라 핏방울이 방울방울 솟아올랐다.

그러나 윤등구는 뭐라고 말을 하지도 못했다.

날카로운 통증이 휘발되듯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 입이 마비되고 숨도 가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팔다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윤등구는 자신이 독으로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죽어가는 자신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금문상방의 대방이자 바지사장인 윤등구가 죽어가던 그때, 복주에서 경사로 가던 금문상방 역시 습격을 당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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