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부선장을 설득함
6. 부선장을 설득함
이한이 보고 있는 자는 용두대선의 부선장이었다.
그자가 오늘의 목표였다.
원래 이한은 해룡방의 당주로 있는 섭중악이나 용두대선의 부선장같이 눈에 띄는 인물은 손을 댈 생각이 없었다.
목적을 이룰 때까지는 주의를 끌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다른 사람을 내세우고 뒤에 숨어 있는다.
그것이 무공도 없었던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틀 전 복주에 도착해서 해룡방의 졸개 하나를 납치한 후 알아보니 부선장 정도는 손에 넣어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어촌에서 잡아간 마을 사람들, 특히 촌장의 손녀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말단 수적이 아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복주의 노예 시장으로 넘기던 평소와 달리 다른 곳으로 보내졌다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어쩌면 그것은 의도적인 무관심일지도 몰랐다.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면 좋을 것이 없다는, 심지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주변의 경험에서 나온 흑도 졸개 나름의 처세술일 것이다.
덕분에 귀찮아진 것은 이한이었다.
경사로 돌아가기까지 시간적 여유가 좀 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이한은 주변을 탐문하며 시간을 끌 것 없이 곧장 문제해결의 중심을 잡아채기로 했다.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후로 갖게 된 자신감이 이한의 결정을 도왔다.
그것이 지금 이한이 용두대선의 부선장을 노려보는 이유였다.
섭중악과 함께 기루에 들어갔던 부선장은 해가 진 후에 홀로 나왔다.
복주에 돌아오면 기루에서 살다시피 하는 섭중악과 달리 부선장은 이리저리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지금도 술에 취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용두대선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한에게는 그런 부선장의 속사정 따위는 알 바가 아니었다.
이한이 주목한 것은 부선장이 술에 취한 채 홀로 밤거리를 걸어간다는 것이었다.
복주에서 해룡방의 간부를 누가 건드리겠느냐는 안일함이 가져온 기회였다.
*
부선장은 한참을 걸었음에도 여전히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
생각보다 일이 잘 끝났다면서 섭중악이 권한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이다.
섭중악의 기분을 거슬리지 않기 위해 주는 대로 받아 마셨더니 밤길을 걷는 정도로는 제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몽롱한 기분으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볍고 빠른 발걸음.
안정된 호흡.
그런데 순식간에 바로 뒤까지 따라붙는다?
반쯤 나가 있던 정신이 확 돌아왔다.
지금이야 하는 일이 주로 배를 다루는 일이라지만 반평생을 흑도에서 굴러먹은 몸이었다.
약탈은 물론 강도질에도 나름대로 경험을 쌓은 숙련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의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이거 습격 같은데?
하지만 그래도 복주에서 설마 나를? 이라는 망설임이 아주 약간 남아있었다.
그답지 않은 안일한 대처였다.
그리고 안일한 대처는 늦은 반응으로 이어졌다.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섬뜩함에 소름이 돋는 순간,
부선장은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걸어가던 그대로 앞으로 굴러서 공격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의 공격은 그의 반응보다 훨씬 빨랐다.
*
너무 평범한 공격이었다.
아니, 이것을 공격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정권 지르기.
두 발로 굳게 서서 주먹을 앞으로 내지른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마을 장터에서도 구할 수 있는 삼류무공서의 첫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본적인 초식이다.
하루에 천 번을, 한 번처럼 내지를 수 있다면 바위도 쪼갤 수 있다.
그런 식으로 근사하게 설명이 붙어있는 무공서도 있지만, 실제로는 무공에 갓 입문한 제자의 근기를 키우고 투로의 기초를 잡기 위해 반복하는 기본적이고도 육체적인 연공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 달려가며 내지른 정권에 내공이 실려있다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된다.
평범한 인간의 뼈 정도는 간단하게 부술 수 있다.
부선장이 뒤통수에 맞은 주먹이 바로 그런 종류의 주먹이었다.
물론 일격에 사람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정도로 강한 위력은 아니었다.
이한은 나노의 도움을 받아 세심하게 내공의 양을 계산하고 주먹의 위력도 조정했다.
사람의 정신을 날려버리기에 딱 알맞은 정도로 말이다.
부선장은 뒤통수에 주먹 한 방을 맞고 그대로 앞으로 뻗어버렸다.
미동도 없었다.
[수소양삼초경에 흐르는 내공을 적절하게 운기하셨습니다. 모든 면에서 완벽했습니다.]
“조금 과하게 쳤다는 느낌이었는데?”
[그것은 이한님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입니다. 이한님의 신체지표는 정상 범위 이내였습니다. 공격의 충격량도 허용범위 이내였습니다. 지금의 감각을 잘 기억해 두십시오. 내공이 공격의 강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는 저도 아직은 정확한 예측이 안 됩니다만, 이자가 죽지 않았으니 일단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죽지 않았으면 충분하지.”
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부선장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말씀만 하십시오. 뭐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가볍게 협박을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반응은 이한의 예상 밖이었다.
한두 번은 아주 찐하게 설득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말이다.
“아니, 너무 협조적이라서 오히려 의심스러운데? 당신은 그래도 해룡방의 용두대선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 아니었나?”
[신체신호를 종합해서 판단한 결과 이자는 지금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한은 너무도 협조적인 부선장의 모습에 의심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아직 물로 하는 설득은 시작하지도 않았고, 죽음을 권유하지도 않았다.
그저 암시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모양이다.
나노는 이자의 태도가 진실이라고 판단했지만, 이한은 반신반의했다.
인간은 신체신호로만 판단하기에는 너무 변수가 많은 존재였다.
하지만 부선장에게 있어서 이렇게 협조적인 태도는 너무도 당연했다.
강약약강.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
흑도인이라면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는 태도다.
그리고 부선장은 지금까지 성실한 흑도인으로 살아온 자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이익을 빼앗겠다고 해도 상대의 강약을 보고 태도를 정하는 것이 기본인데, 묻는 말에 대답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한 가지 더.
사실 부선장은 자신을 깔끔하게 기절시켰던 이한의 무공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공을 쌓고, 무공을 수련한 자의 주먹은 무섭다.
일격에 뼈를 부수고 바위를 깰 수 있다.
그러나 깔끔하게 기절시킬 정도로 위력을 조절해서 때린다고?
쉽지 않다.
정말 쉽지 않아.
차라리 그냥 머리통을 부수는 것이 훨씬 쉽다.
해룡방의 일원으로 지금까지 무공을 익힌 사람을 숱하게 보아온 부선장이었다.
눈앞의 괴인이라면 자신같이 보잘것없는 무명소졸 따위는 손가락 하나로도 눌러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자에게 저항이라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남아서 용두대선의 부선장까지 오른 것은 신념을 가졌거나 의리를 지켜서가 아니었다.
나설 때는 나서고, 숙일 때는 숙여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것을 못한 자들은 이미 죽고 없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지금은 무조건 숙일 때였다.
일단은 살아야 했다.
“저도 눈치라는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대협께서는 분명 관대하신 분이시니 그저 대협의 아량에 기댈 뿐입니다. 뭐든지 물어만 보십시오.”
“그래? 그러면 하나 묻지. 얼마 전에 백사도에서 약탈을 한 배가 자네가 부선장으로 있는 용두대선이 맞나?”
“예. 맞습니다. 대협.”
X발X발.
나가 죽어라 섭중악.
내가 기분이 쎄했어. 쎄했다고!
쓸데없이 거기를 가서 이 사단이냐.
평소 하던 대로 약탈이나 하지!
그런데 이놈은 어디서 온 놈일까?
설마 장강수로연맹?
섭중악이 그곳의 촌장을 죽였잖아!
제발 아니길!
그놈들은 뒤끝이 길다고!
부선장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태연하게 대답했지만 머릿속은는 복잡하게 돌아갔다.
“평소에는 납치한 양민을 복주의 노예상들에게 넘겼던 모양인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더군. 누구에게 넘겼나?”
누군가를 찾는구나!
잡아 온 마을 사람들 중에 찾아야 할 사람이 있는 거구나!
부선장은 살길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경사에서 온 장사치가 하나 있습니다. 원래는 그자의 대리인이 와서 일꾼을 구입해 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직접 왔습니다. 그런데 섭중악이 그 장사치의 의뢰를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백사도에서 구한 일꾼들을 그냥 넘겼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데?”
부선장은 침을 삼켰다.
이제부터는 정말 말을 잘해야 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
눈앞의 괴인도 두렵지만, 경사에서 온 자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해룡방주는 물론이고.
입을 잘 못 놀렸다가는 끝장이었다.
지금 죽느냐 나중 죽느냐의 문제일 뿐 어느 지옥에 처박힐지 모른다.
경사에서 온 장사치와 관련된 일은 해룡방이 하는 인신매매 사업 중에서도 가장 비밀한 것이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해룡방주의 의형제들까지가 전부였다.
그러나 해룡방의 간부 정도가 되면 얻어듣게 되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소모품으로 써버리는 말단 수적과는 다른 입장인 것이다.
“지금이라면 아마 경사로 돌아갔을 겁니다. 바쁘다고 했으니까요.”
[거짓말입니다. 신체 신호의 반응이 모두 전형적인 불안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통계상 이런 경우는 95%이상 거짓말이었습니다.]
“역시 수적새끼들 아니랄까 봐 말로만 하니까 못 알아먹는군.”
이한은 부선장의 머리를 물에 처박았다.
그것은 어떤 방식의 대화보다도 조용하고 확실한 설득이었다.
부선장은 금방 설득되었다.
“쿨럭쿨럭. 이화루! 이화루에 있습니다.”
[진실입니다.]
“그래? 확인을 해 볼까?”
이한은 다시 부선장의 머리를 물에 집어넣었다가 뺐다.
“으허헉! 이화루 맞습니다! 맞아요! 제발!”
[99% 진실이라고 봅니다.]
“그래. 이화루. 그런데 이화루의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 건데?”
“......황대인이라고 좀 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머무르고 있으니 금방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거짓말입니다.]
이한은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부선장의 머리를 물에 집어넣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발버둥 치던 부선장이 축 늘어지려고 할 때가 되어서야 머리를 물에서 꺼냈다.
삼도천에 목까지 들어갔다가 나온 부선장은 필사적이 되었다.
“컥컥! 제발! 제발!”
“황대인이라고 했나?”
“아닙니다! 윤등구라고 뚱뚱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경사에서 온 금문상방의 대방입니다.”
[진실입니다.]
“그래. 그렇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해야지. 왜 거짓말을 해. 피차 피곤하게.”
부선장의 눈치보기는 끝장이 났다.
부선장은 자신이 아는 것을 모조리 토해내고 말았다.
그것으로 부선장과 볼 일은 모두 끝났다.
*
금문상방의 윤등구 대방은 느지막하게 들인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이화루의 사용인을 부르는 종을 흔들었다.
급한 일은 처리했고, 해룡방을 찔러서 선물도 다시 받게되었으니 이제는 선물의 즐거움을 누릴 생각뿐이었다.
이화루의 사용인이 그 여리여리하고 조그마한 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새 옷을 입힌 후 향낭까지 달아서 데려온다고 했으니 기대만발이었다.
윤등구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커다란 반지를 어루만지며 초조하게 선물을 기다렸다.
과연 그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아서 이화루의 사용인이 데리고 온 아이는 경사에서도 흔하지 않은 미색을 가지고 있었다.
“하하하. 천박하게 금박이나 둘러댄 장식을 보고 이 기루가 경사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알았는데, 의외로 한 수를 숨기고 있었구나.”
기분이 좋아서 껄껄거리고 있는 윤등구의 기색을 보고 안심을 한 이화루의 사용인 역시 가볍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이렇게 해주겠다면서 금속편이 달린 채찍으로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본 것이 바로 조금 전이었다.
피를 철철 흘리며 비명을 지르던 희생자의 모습이 아이의 마음을 움켜잡았다.
저항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은 같은 꼴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자네는 나가봐. 그리고 알겠지만 내가 나가기 전까지는 들어오지 마.”
윤등구는 흥분 때문에 반쯤 맛이 간 눈을 이화루의 사용인에게 들이밀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어떤 소리가 나더라도!”
“알겠습니다. 대인 어른.”
새로운 술상이 들어오고, 별채의 문이 닫혔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후 남은 사람은 윤등구와 아이 뿐이었다.
아니, 한 명이 더 있었다.
이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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