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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24화 (24/78)

24. 사천당문에서 나온 자

24. 사천당문에서 나온 자.

독?

장법을 사용하는 사람의 손이 검은색으로 변하면 누구라도 독을 떠올릴 것이다.

흑사장이 그렇고, 삼양수도 마찬가지다.

흑사장은 독을 손으로 흡수하는 기공을 운용하며 익히는 장법이고, 삼양수는 독을 먹으며 수련한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은 비슷하다.

독공을 운용하는 순간 둘 다 손이 검은색으로 변한다.

그 손에 맞거나 잡히면 그대로 독에 중독되고 만다.

어떤 독에 중독될지는 어떤 독을 흡수하며 수련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산발한 노인의 손이 먹물처럼 검은색으로 변한 것을 보면 수련에 사용한 독이 배탈이나 일으키는 허접한 독 따위는 아닐 것이다.

독성이 높은 독물을 이용한 것이 분명했다.

이를테면 뱀독이나 전갈독 같이 단숨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독 말이다.

그러나 이한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산발한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리 강한 독이라도 이한에게는 문제가 안 된다.

해독은 나노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다.

이한은 자신이 지금까지 익히고 수련해온 삼단삼극권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30년 내공이 이한의 몸속에서 용솟음쳤다.

금기와 토기, 화기로 이어지는 기운의 순환이 내공을 증폭시켰다.

역시 연습과 실전은 달랐다.

아무리 실전 같은 연습이라고해도 연습은 연습이었던 모양이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로 하는 순간, 그리고 진정한 살의를 가진 자를 앞에 둔 순간, 연습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날카로움이 이한의 정신을 곤두세웠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었던 고양감이 이한을 몸을 일깨웠다.

이한의 모든 감각, 어쩌면 육감까지도 극도로 예민해졌다.

그 이후부터는 완전히 달라진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손짓 하나에 실린 변초와 허초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배분되어 있는 내공의 흐름과 위력을 눈으로 본 것처럼 알 수 있었다.

높아진 안목만큼은 마치 무학의 대종사라도 된 것 같았다.

순식간에 둘의 손이 얽혔다.

밀고, 당기고, 치고, 막는 둘의 공방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합이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오가는 기파는 살벌하기만 했다.

한 방만 제대로 맞는다면 인간의 육체 따위는 단숨에 파괴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서려 있었다.

산발한 노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기껏해야 이류, 아니면 갓 일류에 도달했을 것 같은 녀석이 갑자기 자신과 대등하게 맞서오니 이게 뭔지 싶은 것이다.

권장의 위력이 자신과 대등한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황보세가와 어떤 인연이 있는 놈인지는 몰라도 오행권에 기반을 둔 무공을 사용하고 있으니 다섯 개의 기운을 서로 꼬리 물듯 자극하여 위력을 극대화한 것이리라.

그 불안정한 내공심법을 사용하여 이렇게까지 제대로 힘을 끌어내는 것이 놀랍기는 했다.

하지만 하늘이 내린 것 같은 재능을 타고나는 자가 가끔 튀어나오는 것이 무림이다.

이 정도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범주였다.

그러나 내공의 수발과 초식의 공방이 이렇게까지 뛰어난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자신과 대등하게 맞서다니!

저 애송이는 찰나의 순간에 생사가 오가는 지옥에서 한 10년쯤 구르다 오기라도 했나?

이런 것은 경험의 영역이었다.

실전을 많이 겪어 봐야만 아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리고 실전을 아무리 겪어도 모르는 놈은 끝까지 모른다.

죽을 때까지.

게다가 독공.

어린놈이 중독되지 않고 있었다.

이러면 쉽게 제압하기 힘들다.

산발한 노인은 주변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광대가면은 냉막한 표정의 도사를 상대로 간신히 몸을 지키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강시나 제련하는 술사답게 본신의 무공은 영 아니었다.

무당파의 본산에 내려왔다는 청륜이라는 도사가 예상보다 뛰어나기는 했지만, 그것뿐이었다면 별문제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과 광대가면 둘이면 상대하기 충분했을 테니까.

하지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애송이가 문제였다.

이놈은 예상 밖의 변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청륜 도사를 따라다니던 무림인들이 폐광 안에서 들이마신 독으로 인해 몸상태가 영 아니라는 정도?

하지만 시간이 좀 주어지면 저들 역시 어떻게든 몸을 회복하고 끼어들 것이다.

이대로는 곤란했다.

황궁에 있는 도사들의 요구를 맞추어 주려면 청륜이라는 도사를 잡아가야 했다.

그래서 산발한 노인은 미련을 버렸다.

절정급의 고수를 제외한 나머지는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려면 먼저 눈앞의 애송이부터 치워야 했다.

“화기를 일으켜 독을 태우는 것이냐?”

이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실전을 통해 끌어올린 집중력을 계속 유지해야 했다.

정신없이 오가는 공방 속에서 강한 자를 상대로 살아남아야 했다.

이한은 무공 수련에 오랜 시간을 바친 무림인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급조된 무림인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조화신단으로 30년의 내공을 며칠 만에 쌓았고, 나노가 분석해낸 비전과 절정고수의 족집게 과외를 통해 수련기간을 압축해냈을 뿐이다.

거기에다가 나노가 단전과 경맥은 물론 신체 전반까지 지금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

덕분에 신체 하나만큼은 오랜 세월 동안 수련에 전념한 사람 못지않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균형이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했다.

내공과 초식의 연계가 특히 그랬다.

이한에게는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산발한 미친 노인네에게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오행심법이 한 줌의 내공으로도 한 갑자의 공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지만 오래가지는 못하지. 몸에 침투한 독을 태우기 위해 화기를 소모하면 금방 내력이 바닥나겠구나?”

산발한 노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빨을 드러내고 눈매가 휘어졌다.

하지만 그것을 미소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산발한 노인의 악의가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먹물처럼 검었던 손이 기름이라고 칠한 것처럼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검은색은 더욱 검어졌다.

그리고 눈.

산발한 노인의 눈에서 흰자위가 없어졌다.

검은색뿐이었다.

이한은 얼굴을 스치듯 지나가는 산발한 노인의 손을 밀어서 궤적을 틀어버렸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독이었다.

손뿐만이 아니었다.

산발한 노인의 몸에서도 비릿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산발한 노인은 독인이라도 된 것처럼 독을 주변에 흘렸다.

그러나 이한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그 정도는 나노의 도움 없이 이한의 내공만으로도 버틸 수 있다.

진짜 위험한 것은 경력에 실려 날아오는 독기였다.

호흡이나 피부를 통해 중독되는 독과 달리 경력에 실려 침투해오는 독기는 인체의 내부를 직격해 버린다.

단전이나 경맥에 독기가 침투하면 해독제조차 제대로 듣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스스로의 내공을 이용해 밀어내는 것 말고는 효과 있는 방법도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방금 이한이 궤적을 틀어버린 노인의 손 역시 그 자체의 파괴력보다는 독기가 실린 경력이 더 위협적이었다.

물론 보통의 무림인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내공을 운용하는 새로운 패턴을 확보했습니다.]

나노의 보고는 건조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엄청난 것이었다.

내공을 운용하는 새로운 패턴?

내공심법이다.

산발한 미친 노인네가 운용하는 내공심법.

내공으로 독을 운용하고 경력에 독을 실어서 공격할 수 있는 방법.

그 모든 것을 나노가 훔쳐낸 것이다.

이한은 자신이 독을 사용할 수 있는 내공심법을 확보했음을 깨달았다.

드디어 지금까지 몸 안에 두는 것이 너무 위험해서 실전에서 쓰지 못했던 독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적당한 기회만 잡을 수 있으면 거꾸로 저 노인네에게 독을 먹여줄 수도 있다.

탁! 쿵! 투닥!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산발한 노인이 공격하고 이한이 공격을 막아내는 지금까지의 공방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산발한 노인의 모습이 조금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공격이 더 강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 느려지고, 약해진 면이 있을 정도였다.

더 강한 독을 사용하는 대신 권장의 위력이 약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한은 가끔 반격할 기회도 잡을 수 있었다.

아주 약간의 틈을 발견한 이한의 주먹이 산발한 노인의 팔을 빗겨서 튕겨내며 가슴을 때릴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퍽!

지금까지와는 다른 조금 둔탁한 소리였다.

이한은 주먹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약간 다르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엇! 함정?

이한은 본능적으로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아챘다.

하지만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상대의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검은색의 피였다.

색깔만 봐도 저것은 독이었다.

그것도 액기스로 농축된 진짜배기 독.

이한은 피하지도 못하고 상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피를 그대로 뒤집어썼다.

산발한 노인이 이한의 팔을 잡고 늘어졌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검은색의 피를 뒤집어쓰고, 심지어 눈에까지 들어간 모습을 본 산발한 노인은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애송아. 너는 이제 곧 죽겠구나. 고통도 심할 거다. 독전갈의 꼬리에서 나온 독이니까.”

“글쎄. 과연 그럴까?”

이한의 태연한 모습에 웃고 있던 노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곧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검은색의 피로 얼룩져 있던 이한의 얼굴에서 검은색의 피가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피부가 검은색의 피를 흡수하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한의 눈에서 흰자위가 사라졌다.

오직 검은색.

노인의 눈보다 훨씬 더 어둡고 짙은 검은색의 눈이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삼양심법? 너는 누구냐! 당가의 혈손이 감히 가문의 결정에 반기를 들다니!”

“사천당문은 예친왕과 손을 잡기로 한 것인가?”

이한의 말에 산발한 노인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는 재빠르게 품에서 단약을 꺼내어 입에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그의 눈에서 검은색이 사라지고 대신 붉은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네 놈이 누군지는 잡아놓고 물어보면 되겠지.”

산발한 노인은 자신이 잡은 이한의 팔을 당기며 얽어서 꺾으려고 했다.

함부로 점혈법을 쓸 정도로 실력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 일단 금나술로 제압하려는 것이다.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인간의 뼈 따위는 단숨에 부러뜨릴만한 힘이었다.

어쩌면 철로 만든 기둥같은 것도 구부려 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분명히 산발한 노인이 먹은 단약과 관련이 있을 것이 뻔한 힘이었다.

그러나 이한은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았다.

이한의 골격은 신체강화시술을 받은 골격이었다.

아무리 내공과 약물에 의해 강화된 힘이라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의 강도와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이한은 평온한 어조로 산발한 노인을 향해 통고했다.

“당신을 중독시키고, 경맥을 찢을 거요. 단전 역시 멀쩡하지는 않겠지. 그다음에 대화를 나누어 봅시다. 시작해라. 나노.”

이한은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산발한 노인을 마주 잡았다.

서로가 굳게 잡고 있는 접촉면을 통해 독과 내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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