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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35화 (35/78)

35. 음공에는 노래로

35. 음공에는 노래로

금은 거문고와 비슷하게 생긴 악기다.

전각 안에 있는 남자가 금을 타는 방법도 그런 종류의 악기를 연주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았다.

금을 앞에 두고 앉아서 손으로 현을 튕기는 것이다.

이한에게는 낯선 음률이었지만, 듣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동양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약간 지루하고 단순한 음악.

딱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음률에 실린 살의와 폭력성은 지루하지도 단순하지도 않았다.

당장이라도 이한을 찢어버릴 것 같은 기운이 실려 있었다.

저 소리에 직격당하면 최소한 고막 정도는 단숨에 찢겨나가겠구나 싶었다.

실제로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옷이 찢겨져 나갈 정도였다.

잠깐 연주를 멈췄던 남자가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투명한 덩어리였다.

1초에 한두 개 정도?

음률에 맞추어 박자라도 세는 것처럼 쏟아져 나왔다.

무시무시한 속력이었다.

도저히 눈으로 보고 피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감각으로 느끼며 미리 피해야 했다.

이한은 연달아 날아오는 공격을 피해 옆으로 달렸다.

투명한 덩어리는 그런 이한을 쫓아왔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향해 쏘아대는 고사포의 야광탄처럼 이한을 쫓으며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땅이 패이고, 나무가 부러지고, 풀이 산산이 흩어졌다.

잘 가꾼 정원의 일부는 순식간에 폐허가 되어 갔다.

피하는 것만으로도 호흡이 벅찰 정도였다.

그러나 이한은 달리는 와중에서도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

저 투명한 덩어리가 바위까지는 부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담고 있는 기세는 바위를 가루로 으깰 것처럼 강력했는데, 실제로는 나무가 부러지고 땅이 패일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느껴지는 기세와 실제로 보여지는 현상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설마 보여주기만 그럴듯한 걸까?

아니면 살아있는 존재에게 더 치명적인 걸까?

“저거 맞으면 나도 박살 나나?”

[음파 무기는 기본적으로 비살상 무기입니다. 일단 내공으로 몸을 보호하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음파의 파동을 상쇄하기 위한 성대의 변형, 앞으로 30초!]

나노의 대답을 들은 이한은 지그재그로 뛰기 시작했다.

목표는 금을 연주하고 있는 전각의 남자.

거리는 50장.

가까이 다가갈수록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지겠지만, 몇 번의 공격만 몸으로 때울 수 있다면 문제없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이한의 예상대로였다.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아무리 지그재그로 뛰면서 접근을 한다고 해도 50장의 거리는 무공을 익힌 사람에게 너무 가까웠다.

날아오는 비도를 쳐내듯 날아오는 투명한 덩어리를 쳐내는 것도 가능했다.

상대를 파악하자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지그재그로 뛸 것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상대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그러한 이한의 변화를 금을 타던 남자도 눈치챈 것 같았다.

금의 소리가 변했다.

금을 타는 방식도, 음률도, 기세까지.

모든 것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일정한 박자가 바탕에 깔려서 굳건한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빠르고 격렬하며 날카로웠다.

맹렬한 속도로 내달리는 연주가 품은 뜻은 살기 그 자체였다.

마치 악기가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 같았다.

더 이상 투명한 덩어리가 날아오지 않았다.

대신 소리를 눈으로 본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은 장면이 이한의 눈앞에 펼쳐졌다.

금을 타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공기가 물결치듯 일렁였다.

공기가 이한이 있는 방향을 향해 파도라도 치는 것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이 언뜻언뜻 드러났다.

소리의 파동이 공기라는 매질을 타고 퍼지는 모습이 사람의 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실체화된 것이다.

음률에 내공이 실리고, 뜻이 담겼기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공기의 움직임을 시각화합니다. AR모드에 추가로 표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한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그러한 파동을 볼 수 있었다.

파동은 대처하기에 곤란한 방식이었다.

방금까지 이한을 노리고 날아왔던 기운의 덩어리들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있었다.

담긴 뜻에 비하면 위력도 약했다.

여차하면 그냥 몸으로 때워도 됐다.

상처가 나면 나노에게 맡기면 된다.

그러나 파도치듯 몰려오는 이번 공격은 피할 수 없는 종류였다.

입자가 아니라 파동이니까.

무조건 맞아야 했다.

보기보다 위력이 약하기를 바라며 그냥 몸으로 때워야 했다.

파동이 이한에게 와서 부딪쳤다.

그리고 지나갔다.

파동은 특별히 이한을 노리고 온 공격이 아니라는 듯,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예외 없이 부딪치며 지나갔다.

이한은 파동이 자신을 지나치는 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균형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손으로 코끼리 코를 하고 한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일어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귀도 멍하니 잘 들리지 않았다.

[음파 공격에 의해 평형 기관이 정상 기능을 상실. 고막 일부 손상. 복구를 완료했습니다.]

나노의 보고와 거의 동시에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뛰다가 잠깐 비틀거렸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이한은 계속 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한의 뒤를 추격해왔던 두 명의 식객은 그렇지 못했다.

태양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내리쬐고, 파도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몰아치듯, 금을 연주하는 남자에게서 비롯된 파동 역시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파동의 범위에 들어온 자라면 누구나 파동으로 인한 영향을 받아야 했다.

예외는 없었다.

위지산의 두 식객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한의 뒤를 따라 달려오던 둘은 거의 동시에 균형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중심을 못 잡고 일어서다가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소리의 파동은 계속 파도치듯 몰려왔고, 두 명의 식객은 계속 파동에 얻어맞았다.

몇 번 파동에 얻어맞자 이제는 균형을 잡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머리를 오랫동안 얻어맞은 것 같았다.

제대로 생각을 이어갈 수도 없고, 정신도 몽롱해졌다.

결국은 둘 다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것을 보면 나노의 말대로 음파 무기가 비살상무기인 것은 맞았다.

어쨌든 죽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위력은 이한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적어도 약한 다수를 상대로는 이보다 더 좋은 무공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독을 사용한다고 해도 따라가지 못한다.

독을 이용해 다수의 적을 상대하려고 한다면 미리 준비할 것이 정말 많다.

장소를 결정하고 장소에 걸맞은 독을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나마도 기후에 따라 헛수고가 되기도 한다.

아무 준비 없이 악기 하나 들고 다수의 적을 상대할 수 있는 음공과 비교하면 손색이 있을 수밖에.

탐이 난다는 뜻이다.

“이것도 분석하고 있지?”

[처음 보는 유형의 무공이라서 모든 데이터를 수집 중입니다. 내공의 운용법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가까이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알았다.”

이한은 파동이 지나갈 때마다 울렁거리는 느낌을 받아야 했다.

내공으로 신체 내부를 보호하고 나노가 평형기관을 실시간으로 복구하고 있지만, 그래도 공격의 영향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감각이나 뇌와 관련된 부분은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음파상쇄기관의 형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성대의 일부를 변형해서 실시간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소리를 내시면 음공으로 발생시킨 파장을 상쇄시켜 없애겠습니다.]

30초의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이한은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는 어리둥절했다.

“소리라고?”

[노래가 좋겠습니다.]

“노래? 무슨 노래?”

[아무 노래나 상관없습니다. 소리만 내주시면 됩니다.]

“반짝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비추네. 서쪽 하늘에서도 동쪽 하늘에서도.”

음정도 박자도 맞지 않는 노래였지만 위력은 확실했다.

이한의 성대가 울리자마자 파도처럼 연이어 몰려오던 파장이 그대로 상쇄되어 사라진 것이다.

성대의 울림을 나노가 실시간으로 보정하면서 이루어진 반격이었다.

적어도 이한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영역에서 음공은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기회를 잡은 이한은 엉터리 노래를 부르며 이제 얼마 안 남은 거리를 직진했다.

전각은 바로 코앞이었다. .

금을 연주하던 남자는 자신의 음공이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자 더 빠르고 격렬하게 연주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몸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두 눈에 핏발이 서고, 온몸에서 혈관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혈도 자리에 열기가 어려 붉어지고, 경맥은 강하게 흐르는 내공 때문에 찢어질 것만 같았다.

단전 역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뽑아 당기는 내공 때문에 아파지기 시작했다.

신체의 어디가 되었든 지금 당장 파탄이 나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갔다.

그것은 남자가 타고 있던 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쏟아붓는 내공을 감당하기에 버거워 나무로 된 몸체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남자의 금이 남자의 육체보다 조금 더 약했던 모양이다.

이한이 남자의 앞에 서는 순간, 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현이 끊어졌다.

일곱 개의 현이 거의 동시에 말이다.

순간 남자 역시 피를 토하고 말았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경맥은 물론이고 혈관에 단전까지 온전한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완전히 회복하려면 오랫동안 정양을 해야 할 듯했다.

남자는 허탈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이한을 바라보았다.

“은밀전의 후인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 그대는 누군가?”

그래. 이럴 줄 알았다.

명색이 상사성의 집부령이다.

제국 관리의 정점.

거기에 고명대신.

눈뜬장님이 아닌 바에야 경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대충이라도 파악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이것은 이한의 상정 범위 내였다.

하지만 이한은 남자의 질문에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담장 밖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한이 기다리고 있었던 낭인들이었다.

그들은 저택의 전각을 향해 불화살을 쏘아댔다 .

몇 명은 아예 담을 넘어와서 전각에 불덩이를 던져 넣기도 했다.

정문 쪽에서 비명도 들려왔다.

집부령의 저택을 지키는 자들을 향한 공격이었다.

자택에서 일어난 우연한 화재 따위로 눈가림하고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지기들이 불에 탄 정문 앞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이 필요했다.

낭인들은 이한이 요구한 일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중이었다.

[현재까지는 모든 일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노는 낭인들이 내는 소음을 분석해서 현재 상황을 파악하며 실시간으로 전달했다.

나노의 보고가 이어지는 동안 이한은 입을 다물고 눈앞의 남자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도대체가 나이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30대에서 50대까지 어떤 나이를 말해도 그럴 법한 외모와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집부령 같은 고위 관리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상대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확인부터 했다.

“당신이 위지산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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