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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34화 (34/78)

34. 집부령의 저택에서

34. 집부령의 저택에서

하지만 이한의 기대는 배반당했다.

식객들 중 밖으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창을 들고 있을 뿐 일반인과 별 차이도 없는 문지기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등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몰래 들어오는 사람을 어떻게 눈치를 챌 수 있을까.

원래 열 명이 지켜도 한 명의 도둑을 막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식객으로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조차 이런 무반응이라니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아니, 자그마치 상서성의 집부령이 들인 식객들인데 그중에서 쓸만한 무공을 익힌 자가 하나도 없단 말인가?

아무리 주변의 이목을 피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관직을 청원하기 위해 온 자들인데 모른다고?

분명 저들 중에는 무관직을 원하는 자들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한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식객들이 머무르고 있는 전각을 바라보았다.

이러면 위지산이 머무르고 있을 전각에까지 가야 할 판인데, 그것은 이한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더욱 그랬다.

밖에서 적당히 소란을 피우다가 도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한이 원하는 최선이었다.

위지산이 머무르는 전각 안까지 들어가는 것은 뭔가 이상하게 일이 꼬여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예 생각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러한 이한의 행동은 여문기와 의논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이한은 위지산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 결과를 금방 예상할 수 있었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나중에 은밀전과 함께 죽을 것이고, 명령에 따르면 암살행 도중에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가 직접 명령한 것도 아니고, 중간에 있는 관리들이 내린 명령이 분명한데 아무리 후환이 두렵다고 해도 목숨까지 거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버리고 은밀전 사람들과 함께 잠적을 했으면 했지, 충성하지도 않는 어린애를 위해 죽어줄 생각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이한은 이곳 사람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아닐 것이고.

하지만 그래도 타협할 만한 요소가 있는지는 살펴보았다.

아무리 자신의 입장이 그렇다고 해도 극단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좋지 않으니까.

이한이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은 지금처럼 경사에서 기루도 운영하고, 상방도 꾸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을 것이기에 일단은 타협점을 찾으려고 했다.

그래서 이한은 암살 명령의 대가로 지나친 요구를 하기도 하고, 황력과 의견을 나누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황실의 반응을 시험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집부령이나 되는 고위 관리를 암살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이해하려고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번 암살 시도가 단순히 위지산 개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물론 위지산을 제거할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황실의 진짜 목표는 암살시도라는 물리적 공격을 통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극단적인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치적 공격이라면 타협의 여지가 있지만, 물리적 공격에는 죽느냐 사느냐의 두 가지 선택지만이 주어진다.

이런 압박이라면 늦기 전에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차원적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포나 불안 또는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의 시야는 좁아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것은 친위 쿠데타에 대한 좋은 명분이 될 것이다.

황제 친위 세력의 병력이 경사에 쫙 깔리고 평소에 껄끄러웠던 자들을 모두 숙청할 것이다.

황제에게는 분명히 그럴 만한 힘이 있다.

그러한 작업의 시작점이 바로 이곳, 위지산의 저택에서의 암살시도인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알 수 있게끔 거창하게 벌어지는 암살 시도.

그것이 필요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을 이해한 순간, 이한은 목숨을 걸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받은 전표의 일부를 허물어서 낭인을 고용하고, 물자를 준비했다.

촌각을 다투는 계획표 역시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아예 계약의 조건으로 걸었다.

충분한 대가를 받았으니까 위에서 원하는 의도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결과를 내주기 위해서 말이다.

이제 얼마 후면 낭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충분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너무 늦기 전에 배우를 무대에 올려야 했다.

그 숫자는 감당이 가능한 선에서 많을수록 좋았다.

이한은 대놓고 기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공을 끌어올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키웠다.

과연 그제서야 반응이 왔다.

위지산의 식객이 머무르고 있다는 전각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대에 올릴 조연 배우가 늦지 않게 나타날 모양이었다.

“설마 오행심법에 기척을 숨기는 효과도 있었던가? 그런 것은 느끼지 못했는데.”

[기척을 숨기는 효과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전보다 기세가 약해진다고 할까 내공에서 발생하는 기파가 많이 줄어들기는 했습니다. 오행심법을 통한 내공의 격발이 전보다 더 강해진 것을 고려하면 무공 수준을 숨기는 효과는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무공 수준에 대한 오해를 살 수도 있겠군. 나로서는 좋은 일이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근육질에 큰 체격을 가졌다면, 사람들은 저 사람의 육체적인 능력은 다른 사람에 비해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공을 수련한 이들은 상대가 풍기는 기세에 따라 상대방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충이라도 짐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공에서 비롯되는 기파를 숨길 수 있다면?

일류급의 무림인이라고 해도 실제로 실력을 발휘하기 전까지는 그저 그런 삼류 무림인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한은 위지산이 기거한다는 전각을 향해 움직이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의도치 않은 일이지만 상대가 자신을 얕잡아보고 경시하면 그로서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여러 명의 적을 상대해야 하는데 초반에 한둘 정도는 쉽게 쓰러뜨릴 수도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전각의 문을 박차고 튀어나온 자는 모두 3명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먼저 튀어나와서 이한을 향해 달려오는 자는 는 보통 사람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크고 덩치도 두 배에 달하는 거인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강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외공을 중심으로 익힌 자임이 분명했다.

그는 다른 사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이한을 향해 다가왔다.

잔뜩 성이 난 얼굴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해하는 표정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대놓고 살벌한 기세를 풍기는 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택의 주인이 머무르고 있는 전각으로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의 주인을 지켜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기겁할 일이었다.

적을 제압하기 전까지는 약간의 여유도 용납할 수 없었다.

과연 이한을 향해 날아오듯 달려온 거인은 잠깐의 지체도 없이 그대로 이한을 들이받았다.

서로 간의 이름을 주고받는 간단한 예의조차 차릴 틈도 없었다.

일단 죽여놓고 이름을 물어도 된다는 식이었다.

몸통으로 들이받기.

무공마다 자기 나름대로의 명칭이 붙어있겠지만, 초식의 형은 다 비슷비슷하다.

어깨나 등으로 상대방을 들이받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판이하게 나온다.

내공을 어떤 식으로 운용하느냐에 따라 단순히 상대를 밀쳐버리는 것으로 끝나기도 하고, 상대의 뼈를 모조리 박살내기도 한다.

거인이 행한 몸통으로 들이받기는 전자에 가까웠다.

거인의 몸은 정말 튼튼하고 강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거인이 익힌 묵공철령심공은 몸을 크게 키우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심공이라서 대성하기 전까지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있었다.

지금 당장은 거대한 바위로 맞부딪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한은 두 다리로 굳게 서서 부딪쳐오는 거인의 몸통을 오행권의 기운이 담긴 양손으로 쳐냈다.

이것은 최대한 많은 충격을 그대로 받아내려는 심산이었다.

이한이 거인과 부딪치는 순간 단전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내공이 오행심법의 묘리에 따라 연달아 변화했다.

외부의 충격을 목기로 받아내면서 목기에서 화기를 끌어냈다.

목기와 목기에 누적된 충격량이 그대로 화기로 전환되면서 강렬하게 내공이 치솟았다.

당장이라도 단전이 터져나가고 경맥이 찢어질 것 같은 기운이 일주천하는 과정에서 토기로 감싸안으며 하나가 되었다.

거기에서 오직 금기만이 남았다.

단전을 중심으로 일주천한 내공의 기운이 금기가 되어 두 손을 통해 뻗어 나갔다.

충격으로 인한 반탄력은 물론이고 이한의 손에서 뻗어나간 금기의 장력이 거인의 외부와 내부를 동시에 흔들었다.

상대를 으깨기 위해 날아간 바위는 오히려 자신이 박살 나고 말았다.

거인은 자신이 20년을 넘게 하루 같이 수련해온 묵공철령심공이 박살 나는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내장이 터져나가고, 단전이 흔들렸다.

피부와 근육 역시 검게 변색하고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거인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이한은 곧장 거인의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묵공철령심공이 깨진 거인의 몸은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바위라고 하더라도 간단하게 깨부술 수 있는 것이 이한의 주먹이었다.

사람의 머리뼈는 바위보다 약하다.

거인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거인을 따라서 달려오던 자들은 한순간에 거인이 절명하는 것을 보자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은 곧장 달려들기보다는 이한을 둘러싸며 견제하려고 했다.

둘 다 검을 든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한은 눈앞의 둘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갑자기 자신의 뒤편에서 무엇인가가 날아온 것이다.

그것도 살기를 띠고 있는 무엇인가였다.

이한이 그것으로부터 몸을 피하며 시선을 돌렸을 때 발견한 것은 투명한 공기 덩어리 같은 것이었다.

생긴 것은 도넛 모양인데 일렁거리는 모습이 마치 투명한 물을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서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게 한 것 같았다.

그것도 그냥 하나가 아니었다.

연달아 줄을 지어서 날아왔다.

금을 타는 소리에 맞추어서.

금을 튕기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하나씩이었다.

음율을 연주하고 있으니 마치 연발총이라도 날아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속도 역시 화살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도저히 보고 피할 수가 없어서 목기를 북돋아 몸을 보호하며 피할 뿐이었다.

이한이 몸을 피한 자리에 투명한 공기 덩어리가 연달아 와서 부딪쳤다.

그때마다 폭음과 먼지가 사람의 눈을 가렸다.

흙으로 된 바닥이 푹푹 패이고, 그 자리에 있던 식물들이 산산이 부서지며 흩날렸다.

무슨 폭탄이라도 터지는 것 같았다.

일반인이라면 몸을 찢어 버릴 수 있을 것이고, 내공으로 몸을 보호한다고 해도 안전할 것 같지 않았다.

살짝 여파에 휘말렸을 뿐인데도 옷이 찢겨 나갈 정도였다.

[음파 무기에 의한 공격입니다. 대응을 위한 준비에 1분이 필요합니다.]

“음파 무기가 아니라 음공이다.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군.”

위지산이 머무른다는 전각의 문이 열려 있었다.

금을 가진 남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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