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림에서 나노머신-39화 (39/78)

39. 황제의 제안

39. 황제의 제안

“나는 소림의 지범이라는 합니다. 이 대협은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고독을 알아볼 수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알아볼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을 살펴본 적이 없어서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하루에 30명 남짓 조사하는 것이 한계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소모되는 내공이 적지 않은지라.”

이한은 자신의 능력을 숨겼다.

손쉽게 사람의 내부를 꿰뚫어 본다는 것은 오해를 사기 쉬운 능력이었다.

사람의 내부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본다고 해봐야 이한의 감각으로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나노를 활용한 MRI 또는 엑스레이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능력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도교 쪽에서는 손도 쓰지 못하고 있었고, 불교에서도 흔한 것은 아니었다.

“역시 그렇군요. 조용히 조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만. 사실 그렇게 쉽게 될 일은 아니었지요.”

지범은 아쉽다는 얼굴이 되었다.

황궁에 있는 관리 전체를 다른 사람들 모르게 조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한에게 지범의 이러한 행동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지범은 황제가 대화를 나누는 중간에 끼어들었다.

이것은 문제로 삼으려면 얼마든지 문제로 삼을 수 있는 행동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황제 본인조차도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만큼 황제에게서 신뢰를 받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당의 도사들은 황궁에서 아예 밀려나기까지 했는데 소림의 승려들은 황제 옆에서 이너서클의 일원으로 발언하고 있다니!

이한에게 두 세력의 성쇠가 한눈에 들어왔다.

무당 본산에서 새로운 도사들을 내려보낼 만도 했다.

“그렇다면 쫓아내는 것은 어떻습니까? 고독을 사람의 몸에서 쫓아내는 것도 그렇게 숫자의 제한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대사. 음공을 이용한 방법이기에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이라면 숫자에는 상관없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궁인들을 모아놓고 이한 대협의 음률을 들려주면 되겠군요.”

이미 어떤 식으로 음공을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의논이 끝난 상태였다.

음공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을 뿐.

하지만 그 전에 이한의 음공이 고독에 효과가 있을지 확인해야 했다.

아무리 주변의 추천이 있고 스스로도 자신이 있는 듯하지만, 만에 하나 돌다리가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돌다리를 두드려보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

곧 7명의 사람들이 끌려 들어왔다.

환관이거나 궁녀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모두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고독을 품고 있으리라고 의심을 받은 자들이오.”

황제의 곁에 있던 환관이었다.

그는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끌려 들어온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눈빛이었다.

“아직 황사께서 살피지 않았기에 진짜로 고독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오. 그러나 이들의 행동과 말을 미루어 보았을 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소. 집법밀위는 이들이 과연 고독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도록 하시오.”

[3명입니다. 두 명의 환관과 한 명의 궁녀. 표시하겠습니다.]

이미 나노가 고독을 찾아내기 위한 조사절차를 확립한 이후라서 결과가 나오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한의 AR시야에 표식이 나타났다.

3개의 화살표가 3명의 사람을 가리켰다.

이한은 잠시 궁인들을 모두 살피는 듯 시간을 끌다가 그들 3명을 지목했다.

“과연! 이 대협을 의심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토록 빨리 구분해내다니. 나로서는 무리한 일이오.”

소림의 지범이 대놓고 감탄하며 이한의 능력을 추켜세웠다.

황제 역시 쓸만한 도구를 발견한 눈빛으로 이한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 찾아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비교를 위해 하나는 내공으로 위협을 하겠소이다.”

이번에는 나노에 의해 이한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평가를 받은 무관이었다.

그는 지목된 사람들 중 하나인 환관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내공을 끌어올렸는지 그로부터 발산되는 기파가 눈길을 돌린 환관을 향해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눈길을 받은 환관의 눈빛이 공포에 물들었다.

거의 동시에 그의 눈이 한가지 감정을 더 드러냈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펄떡거리는 팔과 다리는 덤이었다.

격렬하게 반응하던 환관은 몇 호흡 지나지 않아서 숨을 멈췄다.

즉사였다.

이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미 몇 차례 그런 모습을 보았음이 분명했다.

이번에는 이한의 차례였다.

이한은 공포에 질려있는 6명의 궁인들을 향해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형편없는 실력의 음률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그들 중 두 명이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진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의 코로 검은색의 작은 벌레가 하나 기어 나왔다.

물론 그들 중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을 끌고 가서 생각이나 말이 변했는지 확인하도록 하라.”

황제의 옆에 있던 환관이 명을 내리자 궁인들을 끌고 들어왔던 환관들이 쓰러져 있던 둘을 데리고 나갔다.

그는 아직 남아있던 4명의 궁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차갑기 그지없는 눈빛이었지만 이번에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혐오와 살기였다.

“너희들은 황제 폐하를 모시는 궁인임에도 불구하고 불온한 자들에게 매수되었다. 항거 불가능한 처지에 빠졌던 자들과 달리 너희들은 탐욕과 두려움으로 불충했으니 그 죄를 용서할 수 없다. 끌어내라.”

절망으로 정신을 놓아버린 4명의 궁인이 끌려 나갔다.

황궁의 법도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엄격하다.

아마 저들은 잔인하게 죽을 것이다.

남아있는 궁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교훈을 얻을 것이고.

시험까지 마친 이한은 황궁에 머무르게 되었다.

며칠 이내에 곧 이한이 할 일이 생길 예정이라는 귀뜸과 함께였다.

그러나 이한은 며칠 이내가 아니라 바로 그날 밤으로 황제에게 불려 갔다.

황제의 곁에는 낮에 차가운 눈빛으로 궁인들을 다루던 태감이 함께 있었다.

“사례감의 태감인 구중리라고 하오.”

황제의 곁에서 직접 황제를 보필하고 있었으니 보통 지위에 있는 자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한의 생각보다 더 지위가 높은 자였다 .

사례감의 태감이면 환관들 중에서 서열 1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자가 황제의 옆에 붙어서 직접 수발을 들고 있다니.

이한은 황궁의 상태가 생각보다 엄중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황제에게서는 아무런 불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권위에 대해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낮의 태도를 보면 알 것은 다 아는 것 같던데도 저런 태도라니.

황제의 나이가 16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보통 배포가 아니었다.

심지어 황제는 이한을 포섭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까지 했다.

“구 태감에게 들으니 이미 경에게는 어사교위가 약속되어 있다고 하더군. 하지만 지금 경의 능력을 보니 어사교위는 어울리지 않아. 어사낭중도 아쉽지. 어사대부는 어떤가? 정3품의 관직이다.”

원래 황제가 주는 것은 무조건 받아야 한다.

받지 않겠다고 하면 자신을 무시하냐면서 삐지는 것이 권력자다.

그러나 어사대의 관직은 높으면 높을수록 권력의 바람을 탈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다.

이한은 황제의 손발이 되어서 신하들이나 조사하면서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그런 것은 은밀전에서 충분히 했다.

“황공하옵니다.”

이한은 고개를 수그렸다.

그냥 그러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황제가 아니었다.

“관직은 흥미가 없나?”

“배운 것이 없고, 출신도 이곳이 아닙니다. 제게는 과분할 뿐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황궁의 무공각은 어떤가?”

“예?”

이한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황력과 나눈 말이 모두 황제에게 들어간 것임이 틀림없었다.

“재미있는 소리를 했더군. 무공 서적을 모아 놓은 곳을 보고 싶다고 했다면서? 상징성은 있지만 별 쓸모도 없는 것들인데 말이지. 하지만 경은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 사람 같던데. 아마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겠지?“

황제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이한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한은 다시 고개를 수그리며 맹렬하게 머리를 굴렸다.

한편에서는 나노가 난리를 치고 있었다.

[당장 받아들이세요! 세상에 있는 모든 문파의 무공서라니! 제가 천하제일신공을 만들어서 제공하겠습니다! 이한님은 천하제일고수가 되는 겁니다! 그깟 가짜 도사들은 단 한 수에 모조리 사로잡아서 머릿속을 탈탈 털어낼 수 있습니다. 듣자 하니 내공을 사용해서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기법이 그렇게 많다면서요? 제가 모조리 분석해서 이한님을 위해 해설하겠습니다. 제발!]

“황공하옵니다.”

이번에는 고개를 수그렸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황제는 웃고 말았다.

“배운 것이 없다고? 경이? 몇십 년은 궁에서 일해온 사람 같지 않은가.”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할 뿐입니다. 진심이 통하는 것이겠지요.”

“집법밀위. 폐하 앞에서는 언행에 주의하시오.”

대번에 구 태감의 지적질이 날아왔지만, 황제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되었네. 평생을 야인으로 살아온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경은 기다리는 동안 무공각에서 책이나 읽고 있게. 그리고 어사대부가 무리면 어사낭중으로 하지. 어사대부라면 모를까 어사낭중을 일부러 흔들려는 자들은 별로 없을 걸세. 그것으로 무례를 용서하겠네.”

그것까지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척을 지자는 것이니까.

이한의 거처는 곧 무공각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대기하다가 부르면 가서 노래를 불러주면 된다.

이한은 2층으로 된 전각 내부를 채우고 있는 다양한 무공서적을 보며 나노에게 물었다.

“펼치면서 쭉 한번 눈으로 스치듯 보고 지나가면 되는 거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눈앞에 잠깐 들고 있으면 됩니다.”

“펼치지도 않고?”

“예. 그냥 통째로 들고 있으면 됩니다. 투시 후 제가 페이지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금방 끝나겠군. 그런데 나노. 너는 왜 그렇게 무공서적에 난리인 거야?”

“내공을 바탕으로 하는 인체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가능성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임플란트 이식을 통한 인간의 개조가 특이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밀키웨이 시리즈에서 지원하는 나노머신 시스템은 이러한 종류의 모든 노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래. 잘하자.”

이한은 무공각에서 5일을 지냈다.

그 사이에 몇 번 밖으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돌아왔다.

모두 궁인들, 즉 환관이나 궁녀, 금의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었다.

진짜는 5일이 지난 후에야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조정의 중신들이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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