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당문은 하나일까? >
65. 당문은 하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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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지방, 특히 당문이 자리 잡고 있는 성도는 사천 당문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사천 당문의 직계 혈족들은 당가타(唐家陀)라고 부르는 집성촌에 모여 살지만, 방계는 물론이고 당문과 관계된 많은 사람들은 성도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성도에서 당문이 모르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디에나 당문의 눈이 있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몰려올 사람들이 있다.
당문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되어 있던 어사대의 관리들 역시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과 실제로 그런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였다.
어사대의 관리들은 점점 증가하는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우리를 감시하는 자들이 더 늘어난 것 같습니다. 하는 짓도 전보다 더 노골적이구요. 이거 그냥 두어도 괜찮겠습니까? 냉 교위님.”
“음······ 이제는 아예 대놓고 감시를 하는구만. 감시하러 와서 감시를 당하다니 이거 웃을 수도 없고. 소 경력이 보기는 어떤가? 감시하는 자들이 보내는 적대감이 전보다 더 늘어난 것 같나?”
“예. 분위기가 영······ 이러다가 조만간에 무슨 일이 터지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아직 임 교위님이 청성에서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소대건은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는 어사대의 8품 경력이었다.
8품이라면 미관말직이지만, 어사대의 8품은 일반적인 8품과는 달랐다.
아무리 고위 관리라고 하더라도 소대건에게는 예의를 갖추고 대해 주었다.
경사 어디를 가든지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성도에서는 그게 뭔데? 라는 반응이었다.
아무리 사천 지방이 따로 노는 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이 정도로 어사대의 관리를 무시하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불리한 환경에서 위협을 당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분위기가 안 좋을 만도 해. 경사에서 불온하게 굴던 자들이 숙청되었다고 하니 불안해진 것이겠지. 반역자들과 같이 어울리던 자들 중에 사천 당문의 사람들도 있지 않았던가? 사천 같은 시골 벽촌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지내던 자들 입장에서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울 테니 일단은 고슴도치처럼 구는 걸세. 나 건드리면 너도 다쳐 하면서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위협을 한다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아무 의미가 없는 짓 아닙니까? 오히려 우리가 안 좋은 소리를 위에 보고하면 문제가 더 커질 텐데 말입니다.”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면 사천 당문이 아니지. 저 작자들은 누가 와서 건드리며 더 난리를 치고 날뛸 사람들이야. 사천 지방에서는 감히 자신들을 건드릴 만한 자가 없다고 자신하는 것이겠지.”
사천 당문에 대한 편견이 섞여 있는 평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사천 당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감안하면 진실에 가까운 판단일 것이다.
사천 지방에서 당문을 건드리다니!
감당할 수 있겠어?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
대놓고 반역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모를까, 당씨 성을 가진 사람 몇 명이 반역과 관련이 되었다고 해서 당문 전체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자칫 사천 전체가 시끄러워지면 감당할 수 없다.
사천 당문은 물론이고 소란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도 멀쩡할 수 없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냉광철은 얼마 전부터 피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도찰원과 육선문, 심지어 남면방어사의 황궁 고수들까지 사천으로 몰려왔다.
지금도 계속 인원이 보충되고 있었다.
그들 말고도 어사대에서 파악하지 못한 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암살 위주로 활동하는 환관 내부 조직이라든가, 황실 직속의 무림 고수 같은 자들 말이다.
냉광철은 조만간 진짜 큰일이 터질 것 같다는 느낌에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기하고 있으라는 명령과 함께 방치되어 있는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의문도 품고 있었다.
그때였다.
불안한 마음에 계속 밖을 살피던 소대건이 당혹스런 어조로 외쳤다.
“냉 교위님. 방문객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먹으로 팹니다.”
“뭐? 누구를?”
“누구긴요. 당문에서 보낸 사람들을 패고 있습니다!”
“아니 이런.”
둘은 다급하게 밖으로 튀어 나갔다.
*
냉광철과 소대건, 어사대의 교위와 경력은 평범한 가옥을 통째로 빌려서 머무르고 있었다.
나무로 만든 목책으로 담장을 둘렀고, 작은 마당과 부엌, 그리고 5개의 방이 있는 가정집이었다.
원래는 오랫동안 성도에 머물러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을 피해야 할 필요도 있어서 아예 가정집을 빌린 것이다.
하지만 냉광철의 결정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상대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여기는 성도였고, 당문에 속한 사람이 어디에나 있는 도시였다.
어사대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자마자 감시하는 자들이 몰려왔다.
심지어 감시하는 자들 중 몇 명은 주기적으로 담장 주변을 어슬렁거렸고, 가끔은 담장의 입구를 가로막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지금 두들겨 맞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이놈들이 감히 어디서 앞을 막아!”
매서운 주먹이었다.
당문의 방계도 되지 못한 자들이지만, 그래도 당문의 이름을 걸고 밖에서 활동하는 자들인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퍽! 퍽! 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가떨어져서 땅바닥을 구르는 것이 짜고 치는 곡예처럼 우스꽝스러웠다.
그러나 냉광철은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역시 한때는 큰 꿈을 가지고 무공 수련에 정진한 적이 있었다.
재능이 부족해서 큰 꿈에 어울리는 실력은 키우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의 노력 덕분에 보는 눈만큼은 남 못지않다고 자부할 정도는 되었다.
그런 그의 시각으로 볼 때 저런 장면이 나오려면 보통 실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했다.
지금 얻어맞으면서 바닥을 뒹굴고 있는 당문의 감시자들은 물론이고, 자신들까지 함께 덤벼들어도 이기기 힘들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 잠깐! 당신 누구요! 누군데 감히 당문의 사람을 공격하는 거요?”
뒤늦게 고함이 터져 나왔다.
다들 땅바닥을 뒹굴고 난 다음이었다.
그제서야 폭력이 멈추었다.
“당문이라고? 진짜 당문이 맞나?”
“나는 당문의 외당에서 일하고 있는 조위정이라고 하오!”
“그래? 그런데 당문이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였다.
냉혹한 성품이 절로 배어 나오는 목소리였다.
조위정은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더듬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 무슨 소리요? 그리고 당신은 누구요?”
“감히 어사대의 관리들이 머무는 곳을 감시하고, 검문까지 해? 당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조위정은 침을 삼키며 눈치를 살폈다.
애초에 그가 받은 명령은 간단했다.
어사대의 관리들을 감시하고, 가능하면 압박하라는 명령이었다.
그들이 지내는 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미행하라는 명령도 함께였다 .
당문에서 흑도의 문파를 상대로 종종 벌이던 짓이었다.
그런데 경사에서 내려온 황제의 관리를 상대로도 같은 짓을 하라니!
하지만 그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장기말에 불과했다.
명령이 내려오면 따라야지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명령에 따르되 선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만약의 경우 그냥 버림패로 쓰일 수도 있다는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조위정의 처지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일방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그 책임도 떠밀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조위정은 상대의 신분이라도 파악하기로 했다.
위에 보고하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 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상대는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다.
조위정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감시하던 자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남자는 집 안에서 나온 어사대의 사람들을 향해 가까이 올 필요가 없다는 듯 손짓을 하며 말했다.
“어사판관 이한이다. 판어사시중의 명을 받고 왔다.”
이한의 말에 안에 있던 어사대의 관리들은 곧장 고개를 숙였다.
어사판관이라니!
드디어 어사대에서 지휘권이 있는 사람이 온 것이다.
“어사교위 냉광철입니다.”
“경력 소대건입니다.”
“반갑군. 인사를 나누기 전에 이자들부터 먼저 처리를 하도록 하지.”
이한은 어사판관이라는 관직명을 듣고 완전히 얼어버린 조위정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른 자들은 그저 경사에서 온 높은 사람인가보다 하는 태도였지만, 조위정의 태도를 보니 그는 어사대의 어사판관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일 정오 즈음에 당문을 방문할 예정이다. 미리 알리도록 해라. 그리고 주변에서 얼쩡대는 것들은 다 치워라. 또 보이면 이번에는 그냥 두지 않겠다.”
이한의 주먹이 담장을 이루는 목책을 향해 휘둘러졌다.
반장 정도 되는 길이의 담장이 중간부터 터져나갔다.
수 장의 거리를 두고 격공장을 발휘한 것이다.
산산조각난 담장의 나무를 본 사람들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저 주먹이 담장의 목책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한은 굳어버린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사대의 두 관리 역시 이한을 따라 갔다.
이한은 집 안의 내부가 텅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질문부터 던졌다.
“어사대에서 사천으로 파견된 사람이 더 있다고 들었는데?”
“예. 그렇습니다. 모두 5명이 왔습니다. 일단 어사교위 임창배가 청성파에 가 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협조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개방과 점창파에도 사람이 가 있습니다.”
“점창파? 아미파가 아니라 점창파? 점창파는 사천이 아니라 운남 지방에 있는 문파 아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운남이 사천에서 그리 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점창파가 필요한 것은 만약의 경우 당문의 독을 해독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운남에는 오독문이라고 독공에는 당문 못지 않은 문파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따로 교류가 없어서 점창파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당문을 압박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군. 당문에서 무리하게 이곳을 살피려고 할 만했네. 자네들의 공은 내가 제대로 상신하도록 하지.”
이한의 칭찬에도 냉광철은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냉광철은 이미 위로 보고한 내용을 다시 한번 이한에게도 설명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천과 인근의 몇몇 문파를 모았다고 해도 당문을 토벌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압박은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당문에서 무시하면 그만입니다. 당문 사람들은 성정이 좀 특이한 편입니다. 다수를 동원해서 하는 압박은 잘 먹혀들지 않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예?”
냉광철은 멍청하게 반문하고 말았다.
그는 이한이 나이도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보여서 걱정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공명심 때문에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사판관이기에 그가 우려하는 바를 잘 설명하려고 했는데, 이한 역시 같은 생각이라고 하니 놀란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더 놀라고 말았다.
“당문 사람들의 성정이 특이하다고 했나? 다른 자들에게 특이하게 군다면, 자기들끼리는 또 얼마나 서로 특이하게 굴까? 그자들이 과연 하나로 뭉쳐 있을까?”
“글쎄요. 어느 쪽이든지 확언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내일 가서 확인해 보자고. 그리고 사천에는 우리만 온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세상을 다 짊어진 표정을 하고 있을 필요 없네.”
이한과 두 명의 어사대 관리가 함께 사천 당문을 방문한 것은 해가 중천에 다다를 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