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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에서 나노머신-66화 (66/78)

< 66. 이한은 당문을 방문했다. >

66. 이한은 당문을 방문했다.

성도의 외곽에는 당문에서 운영하는 대장간과 각종 공방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규모도 엄청났다.

성벽을 따라 늘어선 건물마다 대장간과 공방이 들어차 있고, 일하는 사람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심지어 소규모의 제철소도 드문드문 보였다.

몇 길이나 되는 높이의 고로가 세워져서 굴뚝마다 솟아오르는 연기는 햇빛을 막을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이한은 친숙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오래된 공업단지를 연상케 했다.

그리고 오래된 공업단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매연 냄새였다.

석탄이 타서 오염된 공기의 냄새.

범인도 알 것 같았다.

이한의 시선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고로로 향했다.

하지만 흥미롭게 주변을 둘러보면서 가던 이한과 달리 그를 수행하는 어사대의 관리들은 점점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럴 만도 했다.

공기는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할 정도로 매캐했고, 철을 두드리는 소리는 얼마나 시끄러운지 바로 옆에서 말하는 소리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종류의 경험에 대해 아무런 면역이 없는 어사대의 관리들에게는 숨을 쉬는 것도 소음을 듣는 것도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한은 부하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주의를 끄는 것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오염된 환경에서도 사람들의 표정이나 태도가 밝은 편이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영양 상태나 신발의 상태 역시 평균은 넘는 수준이었다.

이한은 성도의 외곽에서 느껴지는 활력이 경사의 중심지 못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제서야 당문의 성세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단순히 지주 노릇을 하는 것만으로는 당문이 지금처럼 사천의 지배자로 떠오른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다른 문파나 명문 세가 역시 자신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 지주 노릇하는 것은 기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들 중 왕을 연상케 할 정도의 세력을 쌓은 자는 없었다.

그저 한 지방의 유력자, 또는 유력자들의 대표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당문은 철을 기반으로 한 산업을 일으켜서 성도의 사람들과 이익을 공유했다.

당문이 무너지면 이곳 사람들이 생업을 잃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 당문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져도 땅은 어디로 가지 않으니 소작하는 사람들이 크게 동요할 것 같지는 않았다.

새로운 지주 역시 소작인이 필요할 테니 당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도에서 철제품을 만들고 유통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달랐다.

제품을 만들고 유통하는 구조는 땅과 달리 예민하고 금방 망가지는 무형의 가치다.

당문이 무너지면 그들이 일군 산업도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다.

적어도 큰 타격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과연 그들이 당문이 무너지는 것을 방관할까?

만약 당문이 무너져서 자신들의 생업도 무너진다면 어떻게 반응을 할까?

이한은 고개를 젓고 말았다.

애초에 당문 토벌은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사천 지방의 민심 이반과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반란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시도하는 것조차 위험했다.

아무래도 최선은 문제를 일으키는 당문의 일부를 도려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게 과연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이한의 눈에 나무상자를 싣고 있던 여러 대의 수레가 들어왔다.

일꾼들 여럿이 동시에 달라붙어서 수레로 올리는 것을 보니 상자 안에 든 것이 철로 된 상품임이 분명했다.

이한은 자신을 수행하던 냉광철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철제품들이 사천은 물론이고 운남까지 팔려나간다는 사실을 아나?”

“예. 그런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래선지 당문의 방계조차 부자가 아닌 자가 없다고 하더군요.”

“돈이 흐르면 영향력도 돈을 따라 흐르는 법이지. 당문의 영향력은 운남까지 뻗어 있을 거야.”

“......무서운 이야기군요.”

소대건은 이한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대룩대룩 굴렸지만, 냉광철은 이한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었다.

당문이 사천이라는 벽지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면 일이 많이 복잡해진다.

당문을 주저앉히기에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냉광철은 목이 섬뜩해지는 느낌이었다.

과연 당문에 들어갔다가 무사히 살아서 나올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졌다.

경사도 아니고 성도에서 어사대의 권위가 어디까지 통할지 불안하기만 했다.

일행은 성도의 외곽을 벗어나서 당가타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공개적이고, 예정된 움직임이라서 그런지 그들을 살피는 눈이 여럿이었다.

그러나 접근해서 안내를 자청하는 자는 없었다.

당문에서 정식으로 나와서 안내를 하는 자도 없었다.

이한은 아직 당문의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의미로 판단했다.

그게 아니라면 무시하기로 결정을 내렸거나.

그건 좀 곤란했다.

조만간 들고 일어나겠다는 소리와 다르지 않으니까.

그들은 성도에서 나와서 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되어 작은 성 같은 것을 발견했다.

직경은 20~30장 정도.

3~5층 높이의 원형 건물이 길을 감시하는 것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두껍게 벽을 세우고, 거주지로 삼을 건물을 벽에 기대어 올린 후, 중앙에는 우물과 밭을 두는 작은 성.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문도 하나뿐이다.

이한은 이러한 종류의 건물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이것은 토루라고 부르는 거주지 겸 방어시설이었다.

토루가 위치한 곳은 당가타를 방어하기에 적절했다.

이렇게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만약 누군가가 당가타를 공격하려고 몰려온다면 문을 걸어 잠그고 버티면 그만이다.

성이나 다름없는 토루는 방어에 특화된 건물이라서 쉽게 점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점령이 어렵다고 그냥 지나치는 무능한 자가 공격해온다면 더 좋다.

공격해 온 자들을 나중에 따라가서 협공으로 몰살시켜도 되고, 보급을 끊고 포위해서 말려죽여도 된다.

토루가 당문을 위해 길목을 막고 버티는 한, 웬만해서는 당가타까지 위험에 처할 일이 없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한은 당문의 방계에서도 제법 세력이 강성한 가문마다 토루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당문을 배신할 수 없는 자들이 토루에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운명공동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자들이니 웬만해서는  매수로 길을 여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이한으로서는 당문이 멸문당하는 상황을 떠올리기 힘들었다.

당문의 고수들을 모두 제압할 수 있는 절대 고수라도 나타나서 날뛴다면 모를까.

그것조차 나중에 수습할 생각을 하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이한은 길을 따라 가면서 모두 5개의 토루를 볼 수 있었다.

하나같이 만만하지 않은 규모와 기세를 가진 곳이었다.

5개의 토루를 모두 지나고 한참을 더 가자 길을 막고 흐르는 작은 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 건너편에는 동네 뒷산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높이의 산 여러 개가 연이어 늘어서 있었다.

당문의 직계들이 주로 거주한다는 당가타는 바로 그 산 아래에 위치했다.

이한은 강 건너편에 있는 당가타를 바라보았다.

마을 초입부터 거대한 전각이 처마를 잇댄 채 연달아 늘어서 있는 것이 자신들의 성세가 보통이 아님을 과시하는 듯했다.

특히, 마을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토루는 인상적이었다.

내성 역할을 하는 토루인듯한데, 지금까지 본 토루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공격적으로 생긴 토루였다.

단순히 기와가 덮인 지붕이 아니라 진짜 성처럼 위에서 싸울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강 건너편에는 이한을 기다리고 있던 당문의 인물들이 있었다.

모두 3명.

그들은 이한이 강 건너편에 도착하자 곧장 강을 건너와서 인사를 건넸다.

“어사판관께서 이렇게 방문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당문에서 장로직에 있는 당량이라고 합니다. 접객당을 맡고 있지요. 뒤에 있는 둘은 접객당에서 일하고 있는 당호엽, 당호진입니다. 둘은 형제이고, 모두 제 조카이기도 합니다. 만약 필요한 것이 있다면 이들을 불러주시면 됩니다.”

일가친척끼리 다 해 먹는 사천 당문의 특성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젊은 사람은 아들 아니면 조카, 나이 든 사람은 숙부 아니면 백부로 퉁치고 넘어간다.

실제로 그들의 관계가 어떤지는 외부인이 알기 어렵다.

사촌인지 육촌인지 아니면 팔촌인지 알게 뭔가.

양자로 입적하기도 하고 육촌 이상이면 족내혼도 가능해서 족보도 복잡하다.

확실한 것은 당가타 내부에서 살고 있다면 직계이며 당문의 실세로 간주하면 되고, 당가타 외부에 살면 방계라고 보면 된다는 것뿐이다.

마중을 나온 당량은 접객당을 맡고 있는 사람답게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

당가의 사람들이 대개 오만하고 특이한 성격을 가졌다는 세간의 평판을 감안하면,  당량은 그들 중에서는 정말 드문 성품의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아마 그런 성품 때문에 접객당을 맡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손님을 맞이하다가 기분 나쁘다고 싸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접객당에서 일하고 있다는 두 명의 형제 역시 비슷한 부류의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이한은 마중나온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며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주먹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인사 태도만큼은 누구도 트집을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역시 딱 필요한 말뿐이었다.

트집잡힐 만한 부분은 전혀 없었다.

“어사판관 이한이오. 판어사시중의 명령에 따라 당문의 문주께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방문했소이다.”

이한의 말에 당량은 난처한 태도를 보였다.

미안해하고,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사람이라서 접객당을 맡고 있는 것일까 싶을 정도였다.

“그게, 지금 당장은 곤란합니다. 당가주께서는 폐관 수련에 들어가 계십니다. 이미 한 달 전에 폐관 수련에 들어가시면서 스스로 나오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부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당량 장로. 나는 이해할 수 있소. 하지만 내 위의 분은 이해하지 않을 거요. 그리고 더 위에 계신 분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 감당할 수 있겠소?”

이한의 말에 당량은 정말 곤란하다는 태도를 숨기지 못했다.

그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 당가주님과 만나보겠다고 하시는 것은 무리입니다.”

“당량 장로.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은데, 당문이 멸문당한다고 해도 가주가 폐관을 한다면서 처박혀있는 꼴을 그대로 내버려 두겠다는 거요?”

이한의 말에 당량은 눈빛이 변했다.

지금까지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던 사람답지 않은 눈빛이었다.

어사대는 물론이고 어떤 곳이든 감찰권을 가진 조직이라면 부드러운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윽박지르고 협박하는 것이 기본이다.

대놓고 재산을 강탈하거나 죽이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문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상대는 죄인이고, 설사 죄인이 아니었더라도 죄인으로 만들 힘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한 역시 감찰권을 가진 조직 특유의 무례함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당문의 멸문을 언급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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