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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80화 (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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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자기 마누라도 못 찾는 놈이 김대걸을 어떻게 찾아?”

김창은 대답하지 않았다. 벌써 차원문을 통과한 후였기 때문이다. 한석구는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쩝 소리를 내며 말했다.

“민우야, 나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여기 잘 지키고 있어라. 그리고 하오성? 너도 따라와, 이 새끼야.”

“아니, 나는 왜······.”

하오성이 가기 싫다는 티를 내자 한석구가 귀신처럼 눈을 부라렸다.

“이게 다 너 때문에 생긴 일인데, 안 가고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엄밀히 따지면 나 때문이 아니라 김대걸 도망치는 거 못 막은 이정호 탓 아닌가······.”

이 새낀 양심이라는 게 없나? 한서구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자 하오성이 어깨를 움츠렸다.

“그냥 해본 소리야. 자, 가자. 그 새끼 빨리 잡아야지.”

한석구는 한숨을 내뱉으며 하오성과 함께 차원문을 통과했다. 단 몇 걸음 걷는 것만으로 며칠을 가야 할 거리를 좁힌 그들은 정면에 우뚝 선 탑을 쳐다봤다.

탑은 저번의 전투 때문인지 약간 기울어져 있었는데 그런 것치고 제법 안정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마법의 힘일까? 한석구가 가만히 보니 뭔가 마력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 수리를 하긴 해야 할 터다.

먼저 차원문을 통과한 김창이 말했다.

“뭘 꾸물대다가 이제야 와?”

“하오성 이 새끼가 안 온다고 뻗대서.”

김창이 어이없어 하며 말했다.

“너는 양심이라는 게 없냐?”

“엄밀히 따지면 그건 내 탓이 아니라······.”

하오성이 또 괜한 소리를 하려다가 한석구에게 한 대 맞았다. 그 역시 세상에 몇 없는 랭커로서 어디 가면 목에 힘 빡 주고 다닐 텐데, 한석구한테는 아무 말도 못 하는 게 조금 우습다.

애초에 저 정도로 한석구한테 설설 기는 놈이었다면 시킨 일은 왜 제대로 안 했나? 숙제 안 하면 혼날 거 뻔히 알면서도 친구랑 공 차러 나가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게 뭔······.

“저게 그 탑이냐? 정민이 구출했던 곳?”

“그래. 흑마법사 놈들 있는지 한 번 봐야겠는데.”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탑에 가까이 갔다. 전에 왔을 때는 흑마법사들이 야영을 하고 있어서 찾기 쉬웠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물론 그땐 그들이 강제로 탑에서 쫓겨난 상태였으니 이젠 그러고 있을 이유가 없긴 했다.

김창은 탑의 문을 가볍게 밀었다. 혹시나 잠겨 있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수틀리면 칼 들고 물건 뺏으러 오는 이 개 같은 세상에서 위기의식이 전혀 없는 모양이군.

혼자서 중얼거리며 안쪽으로 들어가자 스산한 바람이 불어왔다.

“힘을 원하는가······.”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다. 저번의 그 마법사인가? 이게 또 뭔 짓거리인지 몰라서 김창이 가만히 있는데 다시 목소리가 날아왔다.

“힘을 원한다면 대가를 바쳐라······.”

아무래도 이런 식으로 힘을 주겠다느니 하는 말로 사람을 홀려 목숨을 빼앗는 모양이다.

“그 대가는 뭐냐?”

정말 저 마법사가 자신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을 리는 없지만 이 웃기지도 않은 놀이에는 어울려 주기로 했다.

“모든 것······.”

그러면 목숨도 바치라는 소리인데 그러면 힘을 얻는 이유가 뭔가? 힘을 얻어봤자 죽게 될 텐데.

김창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럼 안 해.”

“분할 납부도 가능하다. 일단 손이라도 하나 바쳐보고 생각하는 게······.”

이게 무슨 은행 대출도 아니고 분할 납부는 뭔 분할 납부? 김창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염병할 소리 그만하고 튀어나와라. 아니면 내가 직접 찾아가야 하나?”

“···음? 이 목소린?”

저쪽도 이제야 김창이 누구인지 알아챈 모양이었다. 타닥타닥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곧 마법사가 나타났다.

“혹시나 했더니 정말이었군요? 또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은인 분. 그런데 여긴 또 어쩐 일로···?”

김창이 마법사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뭘 하긴요? 영업 뛰고 있었죠. 요즘 장사가 영 안 돼서 오랜만에 손님이 온 건데 설마 은인 분일 줄은 몰랐네요.”

“사람 홀려다가 목숨 빼먹는 게 장사냐?”

“용병들이 돈 받고 사람 죽이는 것도 인력 장사인데 이것도 장사라고 할 만하지요, 뭘.”

하긴 그런가? 김창은 당당히 대답하는 마법사를 보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저번에 정복자가 얘네 토벌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아직 멀쩡한 걸 보면 마탑에 이르진 않은 모양이다.

덕분에 도움을 받게 됐으니 다행인 일이라고 할 만했다.

“그래서, 여긴 정말 어쩐 일입니까? 설마 장사 접으라고 경고하러 오신 건 아닐 테고.”

“물론 아니지. 저번에 듣자 하니, 네가 추적 마법의 대가라고 했던가? 사람 하나 찾을 건데 혹시 도와줄 수 있나?”

마법사가 훗 하고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이제야 제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겠군요! 찾으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김대걸이라는 놈인데.”

“음, 그러면 혹시 그 사람과 관련된 물건 같은 게 있습니까? 이름만 듣고 찾기는 어려워서요.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이면 찾기가 더 쉽습니다.”

김창이 고개를 돌려 한석구와 하오성을 쳐다봤다.

“김대걸이 가지고 있던 물건? 걔 몇 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개인적인 물건이랄 게 있나?”

“걔가 벗고 도망간 구속구는 어때? 개인적인 물건은 아니더라도 그것만큼 오랫동안 몸에 지니고 있던 게 없는데.”

“네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할 때도 있다니 놀랍네. 그러면 가서 가져와.”

“···뭐?”

한석구가 고개만 까딱이며 말했다.

“가서 가져오라고. 차원문 열려 있으니까 금방 갔다 올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왜 내가······.”

김창은 또 말대꾸를 하는 하오성을 보며 한 대 더 맞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한석구가 웃으며 말했다.

“왜, 너도 어디 가면 심부름하고 다닐 짬 아닌데 여기서 자꾸 귀찮은 일만 시키니까 자존심 상하나? 정말 그런 거라면 자존심 상할 필요 없어. 왜인 줄 아나?”

하오성이 미간을 좁히고 있자 한석구가 이어 말했다.

“네가 좆밥이니까. 현실에서 뭐 대단한 것도 없던 네가 여기서 우쭐대고 살 수 있는 건 남들보다 강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인데, 그러면 반대로 너도 자기보다 강한 사람한테는 굽신거려야 하는 거 아닌가? 원칙이라는 건 일관성이 있어야지, 왜 너 유리한 대로만 생각하려 들지?”

한석구가 따박따박 쏘아대자 하오성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건 모욕적이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오성은 강하지만 한석구만큼은 아니다. 그리고 한석구는 김창만큼 강하지 않으니 여기서 제일 약한 건 하오성인 게 맞았다.

요즘 70대들이 경로당에 안 가는 게 거기 가면 그 나이 먹고 막내 노릇 해야 해서라던가? 지금 하오성의 상황도 그랬다.

그도 어디 나가면 목에 힘주고 다닐 만한 위치에 있지만 지금 여기선 아니었다. 강함이라는 건 항상 상대적인 법이니까.

하오성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말했다.

“내가 갔다 올게······.”

한석구가 차원문으로 달려가는 하오성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게임 할 때부터 도적놈들 싫어했는데, 딜도 제대로 안 하는 게 맨날 막타 뺏어 먹을 생각만 하니까. 하여튼 그런 걸 보면 도적 하는 애들은 양심이 없는 게 분명해. 그러니까 맨날 돚거가 어쩌고 그런 소리나 듣지······.”

하오성이 그 말을 듣지 못해서 다행이다. 심부름 가는 것도 서러운데 직업 비하까지 당하면 더 서러울 테니까.

“이거면 될까?”

하오성은 도둑놈이라 그런지 발이 빨랐다. 이제는 정확한 수치를 볼 수 없지만 아마 스탯만 따지자면 하오성의 민첩 스탯은 김창과 비슷할 정도일 것이다.

“웬 구속구? 죄인이라도 쫓는 모양이죠? 흠, 일단 이걸로 해보겠습니다.”

마법사가 하오성에게 구속구를 받았다. 한 손에 그걸 들고서 다른 손으로는 왼쪽 눈을 가렸는데 그 상태로 주문을 외우자 오른쪽 눈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생각 이상으로 본격적인 추적 마법에 마법사인 한석구가 오호 하고 소리를 냈다. 원래 게임 속에 있던 마법 말고는 쓸 줄 모르는 그가 보기에 저 마법은 제법 대단한 재주였다.

마법사는 한참 동안 주문을 외우며 김대걸의 위치를 추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른쪽 눈에서 나오는 안광이 더욱 강해졌는데 손에 들린 구속구 역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건 곧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공중으로 떠올랐고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했다. 나침반처럼 방향을 찾는 건가?

김창이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회전이 멈췄다. 구속구의 사슬 부분이 가리키는 곳은 동쪽이었다.

“찾은 거야?”

한석구가 다급히 묻자 마법사가 후우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일단은요.”

“그걸 정말 찾네······. 난 그 새끼 찾으려고 복자랑 여기저기 다 들쑤시고 다녔는데.”

한석구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래서, 걘 어디 있는데?”

“잠시만요. 지금 대략적인 위치는 찾았는데 정확한 위치는 집중해서 봐야 하거든요. 잠깐만 기다리면 대답해드릴게요.”

마법사가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한석구도 그가 김대걸을 찾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자기 일행과 잡담을 나누었다.

“이런 걸 보면 같은 마법사로서 부끄럽긴 하네. 나야 쟤보다 싸움은 잘할지 몰라도 마법사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내가 하수 아닌가? 내가 마탑주한테 들으니 마법이라는 건 불가해한 기적의 재현이라던데, 난 그런 건 모르고 그냥 스킬만 쓰는 것뿐이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스킬도 없이 맨발로 뛰어다니는 나는 뭐가 되나? 허구한 날 칼이나 휘두르고 다니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김창은 그 말을 하다가 문득 하오성을 쳐다봤다. 생각해보니 나야 오러도 쓸 수 있고 이젠 신성 덕분에 스킬 재현도 할 수 있다지만 얜 뭘 할 수 있지?

원래 게임에서부터 도적은 약한 성능 때문에 천민 직업으로 불렸는데 여기선 스킬조차 쓸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물론 하오성은 원탁의 랭커이니 스킬 없이도 압도적인 신체 능력만으로 적을 학살할 수 있을 테지만 그것도 정복자 같은 놈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

이러면 한석구의 말대로 이 정도면 도적이라는 이름도 아까우니 돚거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닌가······.

하여튼 불쌍한 놈. 김창이 측은한 시선을 보내자 하오성이 당황하며 말했다.

“갑자기 왜 쳐다봐?”

“힘내라, 인마.”

“고, 고맙다···. 아니, 근데 갑자기 왜···?”

김창이 하오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김대걸 추적에 열중하고 있는 마법사가 있었는데 뭔가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왜 그래? 뭐 잘못 됐어? 그 새끼 혹시 분신술 쓰고 있나?”

“아, 아니요. 그건 아니고, 찾긴 찾았는데······.”

찾았는데 뭐? 설마 벌써 사람 죽여서 어디 전시라도 해놨나? 김창이 대답을 재촉하자 마법사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 사람 이미 죽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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