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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81화 (8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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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김창과 하오성의 고개가 한석구 쪽으로 동시에 돌아갔다.

두 사람은 한석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김대걸이 써먹을 데 없는 쓰레기라도 해도 결국 원탁의 일원이니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리라 생각했다.

그 새끼를 잡아다 족치더라도 그건 원탁이 할 일이지, 다른 놈이 멋대로 잡아 죽이는 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외치리란 건 뻔한 일이었다.

“걔가 죽었다고?”

그러나 한석구의 반응은 생각한 것과 달랐다. 당연히 발작적으로 화를 내리라 생각했는데 이상할 정도로 덤덤했기 때문이다.

김대걸이 죽었다는 게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서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일까? 설마 그럴 리는 없을 텐데.

김창이 한석구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여전히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무슨 분신 같은 게 아니라 진짜 김대걸 맞나? 혹시 내가 쫓아올 걸 대비해서 분신 가지고 죽은 척 쇼하는 건 아니고?”

확실히 의심할 만한 일이다. 한석구는 옛날에 김대걸을 쫓을 때 분신술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으니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모양이었다.

“저는 추적 마법의 대가입니다. 겨우 분신 따위로 제 눈을 속일 수는 없어요. 장담합니다. 이건 진짜 김대걸이에요.”

“아, 그래?”

이젠 상황을 받아들일 만한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 김창과 하오성은 이제야말로 한석구가 벌컥 화를 내리라 생각했다.

한석구가 툭 하고 한 마디 내뱉었다.

“그럼 뭐, 잘됐네.”

김창은 눈썹을 까딱거렸다. 저 인간이 방금 뭐라고 했나? 잘됐다고? 잘되긴 뭐가? 원탁의 일원인 김대걸이 죽었는데 그걸 지금 잘됐다고 말한 건가?

그건 확실히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었다. 화를 내지 않는 것까지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잘됐다고 말하는 건 대체?

의문을 넘어서 당황스러움을 느낀 건 김창만이 아니었다. 하오성이 멍청한 얼굴로 물었다.

“잘됐다고? 김대걸이 죽었는데 잘 됐어?”

“그러면 안 된 일인가?”

바로 나온 대답에 하오성은 말문이 막혔다. 저 새끼가 왜 저러지? 자식 과보호하는 부모처럼 애가 어디 가서 맞고 오면 사람 죽일 듯 길길이 날뛰던 놈이 지금은 왜?

그럼 김대걸은 이미 버린 자식이라는 말인가? 하기야 걔 하는 짓거리를 보면 쌍놈 새끼가 따로 없기야 하다만······.

가만히 있던 김창이 말했다.

“생각한 거랑 다른 반응인데.”

“그러면 뭔 반응을 기대했는데? 내가 눈 뒤집혀서 김대걸 복수라도 하러 가자고 할 줄 알았어?”

김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석구가 픽 웃었다. 냉소적인 웃음이었다.

“내가 그 새끼 복수를 왜 해야 하는데? 난 김대걸 그 새끼 잡으러 다닐 때부터 그냥 콱 죽여버리고 싶었어. 근데 안 그러고 굳이 살려서 감옥에 처넣은 건 아무리 그래도 같은 동포를 죽이긴 싫어서야. 몇 년 지나도 꺼내주지 않은 건 그 새끼 면상 다시 보긴 싫어서고.

그 새끼 그냥 감옥에서 콱 뒈졌으면 좋겠는데 식사도 안 주고 굶겨 죽이자니 그건 너무 치졸한 짓 같아서 못 하겠어. 공식적으로 사형 선고 내리자니 다른 애들이 그걸 보고 동요할까 봐 못하겠고.

정말 사형시키면 나보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사람 죽이는 독재자라는 말 나올 거 아니야?

내 손으로 죽이긴 싫고 누구 시켜서 죽이긴 더 싫은데 혼자 감옥 탈출해서 누구한테 칼 맞아 뒈졌으니 얼마나 기쁜 일이냐? 난 솔직히 마음 같아선 걔 죽인 사람한테 상이라도 주고 싶어.”

한석구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 잡아다 가죽 벗기던 박대호도 처벌하지 않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김대걸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김대호의 죄질이 더는 원탁의 비호를 받지 못할 만큼 악랄했다는 소리기도 했다.

김창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에 한석구가 말을 이었다.

“내가 왜 김대걸을 빨리 잡으려고 했는지 알아? 걔가 어디 가서 칼 맞고 뒈질까 봐 그런 게 아니라 어디 가서 누구 죽일까 봐 그런 거야. 그 새끼가 날뛰면 원탁에 시비 거는 놈들이 많아질 테니까. 네가 어디 가서 시비 걸려온 거면 난 기쁜 마음으로 그 새끼들 조져줄 거야. 근데 김대걸 때문에 싸워야 하는 거면 그건 참 개 같은 일 아니겠냐?”

김창은 물론이고 하오성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석구는 단 한 사람의 플레이어를 위해서 그 어떤 적과도 싸워줄 수 있는 사람이다.

플레이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 그 처벌은 원탁의 고유한 권리라는 논리로 영주나 왕을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고 싸울 것이다.

하지만 지켜야 할 대상이 김대걸이라면? 그래도 제 목숨 바쳐가며 지켜야 하나?

설마.

현실에서 사람 죽여다 전시하고 다니는 놈인데 그걸 왜 지켜주나? 그래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걔가 어디 가서 사고 치기 전에 다른 사람한테 죽었으니 얼마나 다행인 일이냐? 굳이 걔 찾아다닐 필요도 없고 말이야.”

하오성은 한석구의 말에 절반 정도 동의했다. 그에겐 아직 의문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정이야 어쨌건 김대걸은 대외적으로 원탁 소속이야. 걔 죽인 애도 김대걸이 플레이어라는 걸 모르진 않았을 텐데, 이걸 그냥 두면 원탁이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김대걸이 개새끼긴 해도 우리 개새끼다 이거지? 그래, 원래는 그게 맞지. 김대걸이 개새끼든 아니든 결국 원탁을 건드린 건 사실이니까 가서 걔 죽인 놈 조지는 게 맞아. 그래야 다시는 원탁에 덤비지 않을 테니까. 근데 이번엔 그러기 싫어.”

“···왜?”

“그러면 김대걸 위해서 복수해주는 셈이 되니까. 굳이 걔 시체도 안 찾을 거야. 어디서 들개 먹이로 주든 말든 내 알 바인가?”

“그래도 누가 죽였는지 조사는 해봐야 하지 않나? 나중에 다른 사람이 습격을 받을 수도 있는데.”

“너 정도 되는 놈이 죽었다면 나도 심각하게 생각했겠지. 근데 김대걸은 어그로는 잘 끌어도 싸움은 좆밥이야. 그리고 내가 장담하는데 걔 죽인 놈도 원탁에 시비 걸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 새끼한테 원한 있어서 그런 걸걸. 걔가 오죽 사고를 치고 다녔어야 말이지.”

원탁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그답지 않은 생각이요, 언행이었지만 하오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석구가 그렇게 하겠다면 굳이 입을 댈 생각은 없었다.

“마법사 양반? 아까 보니 실력이 정말 대단하던데. 추적 마법의 대가라더니 그 말이 정말이었나 봐.”

한석구가 마법사를 보며 빙긋 웃었다.

“하하,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또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찾아주십시오. 은인 분의 친구라면 언제든 환영이니까요.”

“말만 들어도 고마운데. 그러면 언젠가 또 보자고. 나도 그쪽 도와줄 일 있으면 도와줄 테니까.”

“그러지요.”

한석구는 마법사와 가볍게 악수를 나누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탑을 나왔다. 정말 김대걸의 복수에 아무런 미련이 없는 모양이었다.

원탁의 수장이 복수를 안 하겠다는데 다른 사람이 날뛰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김창과 하오성도 마법사와 인사를 나누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들은 그대로 차원문을 통과해 다시 원탁으로 돌아왔다. 호들갑을 떨었던 것치고 참 맥빠지는 결말이었다.

“음? 빨리 돌아오셨네요. 또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차원문을 지키고 있던 심민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한석구가 대답했다.

“어떤 마법사 덕분에 금방 해결됐어. 너도 오늘 고생했다. 이만 가서 쉬어.”

“그럴게요.”

심민우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세 사람뿐이었다.

김대걸의 탈출 사건은 그의 죽음으로 끝이 났다. 한석구는 이 사건을 더 조사할 생각이 없어 보이니 사건은 이대로 마무리를 내렸다고 봐도 될 터다.

그럼 우리는 이대로 돌아가서 발 뻗고 쉬면 되나? 하오성이 한석구의 눈치를 슬쩍 봤다.

“다들 고생했다. 솔직히 내 마음 같아선 하오성 너도 감옥에 한 며칠 처박아 두고 싶은데 어쨌건 일이 잘 끝났으니 그러진 않으마.”

하오성이 남몰래 한숨을 내뱉었다.

“김창 너도 당장 어디 가진 않을 거지? 그러면 며칠 뒤에 취임식에 좀 참석해라.”

한석구의 말에 김창이 얼굴을 찡그렸다.

“뭔 취임식?”

“복자가 이번에 호엔의 영주가 되잖아. 원탁의 수장으로서 그런 행사를 그냥 넘어갈 수 있나? 거창하게 취임식 열어주기로 했지. 그래야 복자도 면이 좀 살지 않겠냐.”

걘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할 텐데. 김창은 거절하려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장 어디 갈 곳도 없으니 거절할 이유도 없다.

“가서 뭐 이상한 거 시키지만 않는다면.”

“그런 거 안 시켜. 그냥 자리에 있어만 주면 돼. 오성이 너도 오고.”

“나도? 어······ 그래.”

설마 자기도 부를 줄 몰랐던 하오성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로 뭔가 불이익을 당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전혀 없었다.

하오성은 남몰래 김대걸에게 감사했다. 사고 안 치고 일찍 죽어줘서 고맙다고.

“그러면 오늘은 다들 해산. 나도 방에 가서 좀 쉬어야겠다. 오랜만에 마법 좀 썼더니 몸이 영······.”

한석구가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를 떴다. 김창과 하오성도 잠깐 뒤에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김창은 오랜만에 돌아온 자기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정복자의 영주 취임식까지는 사흘 정도 남았기에 그 시간 동안 여유롭게 보냈다. 심민우와 만나서 잡담을 하기도 하고 검술 수련을 하기도 했다.

때때로는 원탁 운영 회의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는 원탁 운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니 있어봤자 별 도움은 안 됐지만 한석구가 강제로 착석시켰다.

그런 식으로 한가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시간은 흐르고 정복자의 취임식 날이 다가왔다.

“그럼 차원문 열게요!”

칼라드에서 호엔까지 가는 것은 심민우의 차원문으로 해결했다. 원탁에서 지내던 수십 명의 플레이어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차원문을 통과해 호엔으로 갔다.

영주궁에는 이미 취임식을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대기실에는 정복자가 갑옷을 벗고 정복을 입었는데 영 불편한지 연신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김창은 그 모습을 보며 픽 웃다가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취임식이 시작됐다.

“···새 영주가 된 정복자 경을 뜨거운 박수로······.”

취임식을 진행을 맡은 건 원탁의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원래 엄숙해야 할 취임식은 뭔가 친구들끼리 벌이는 파티 같은 분위기로 진행됐다.

덕분에 김창도 별 생각없이 가볍게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그래, 이거지. 내가 원하던 게 이거야.”

한석구는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는 취임식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런 식으로 차츰차츰 플레이어 영주가 늘어나는 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원탁은 더욱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쥐게 될 것이고 아무도 원탁을 건드리지 못하게 되리라······.

기분 좋은 상상이 이어지며 한석구가 혼자 히죽 웃었다. 그런 그에게 서수민이 조용히 다가왔다.

“저기 의장님······.”

“응? 뭔 일 있어?”

서수민이 목소리를 낮추고 한석구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김창은 무심결에 한석구를 쳐다봤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서수민이 그에게 무슨 말을 속삭였는진 몰라도 좋은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누가 또 죽었다고?”

이번에 죽은 게 누군지는 몰라도 김대걸 같은 씹새끼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한석구가 금방이라도 발작할 듯 눈을 크게 뜨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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