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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43화 (14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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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한석구는 물론이고 정복자까지 놀란 얼굴로 김창을 쳐다봤다. 너무나 뜬금없는 소리가 튀아나온 탓에 머리가 얼른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나? 뭘 어쩌겠다고?”

“석구 아저씨, 말 제대로 들은 것 맞는데? 나도 스타 경기 봐서 잘 아는데, 원래 이럴 땐 본진에다 핵 쏘고 그러는 게 맞아.”

세 사람 중에서 상황 적응이 제일 빠른 건 산자이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한석구가 여전히 멍한 얼굴로 말했다.

“나도 스타 경기 보긴 봤는데, 핵 쏴서 본진 날리는 게 타격이 크긴 해도 그게 자주 나오는 상황은 아니지 않나?”

“그거야 핵 쏘는 유닛이 약해서 그런 거고. 그런데 우리한테는 걸어 다니는 핵이 있잖아?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날아오는 핵을 쏴서 요격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쟤를 적진 한가운데에 던지기만 해도 끝날걸?”

한석구가 눈만 끔뻑이다가 정복자를 쳐다봤다. 듣고 보니 뭔가 그럴듯하긴 했다. 두 사람은 김창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혼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도.

“뭐···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긴 하네. 하지만 그러면 창이 혼자 너무 큰 위험을 짊어져야 하지 않나? 만약 그랬다가 적진에서 고립이라도 되면?”

거기까지 말하고서 한석구가 혼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생각해보니 별 위험할 것도 없네. 혼자서 대악마 썰어 죽이는 놈이 병사들 속에 혼자 떨어지면 위험한 건 병사들이었어.”

“그러니까 내 말이! 석구 아저씨, 우리 전쟁 오래 끌 거야? 나 영주 되고 뭐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전쟁 터져서 진짜 너무 억울하거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오성이도 같은 생각일걸? 전쟁 빨리 끝내고 우리도 영주 꿀 좀 빨아보자구!”

한석구는 전쟁이 돈 빨아먹는 귀신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미 역병 군주 때문에 한 번 경험해본 일이 있으니까.

그때야 전쟁이 몇 주도 이어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려 1년이나 질질 끌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이겨도 남는 게 없을지 모른다.

“그래, 그럼 그러자. 어쨌건 창이 너 혼자한테 짐을 다 짊어지게 하는 셈이라 좀 미안하네.”

“미안할 거 없어. 나도 다 받는 게 있으니 하는 일이니까.”

김창이 말하자 한석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받을 게 있다고? 설마 너도 영주 자리 받으려고? 아니면 돈?”

“둘 다 아니야.”

“그럼 뭘 받는데.”

“랭커들 목숨.”

순간 한석구가 입을 다물었다. 그가 잠시 뒤에 침을 꿀꺽 삼키고서 말했다.

“걔네··· 다 죽일 거냐?”

“그럼 살려두려고 했나? 다른 놈들도 아니고 뒤통수치고 나간 애들 굳이 살려둬야 할 이유가 있는진 잘 모르겠는데.”

한석구는 말이 없었다. 그가 왜 침묵하고 있는지는 김창도 잘 알았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같은 동향 사람을 죽이기 싫어서고 둘째는 랭커들이 대량으로 죽음으로서 원탁의 힘이 약해지는 걸 우려해서다.

어느 쪽이든 이해할 수 있는 이유지만 그런 것 때문에 배신자들을 살려둘 수는 없다. 원래 역사적으로 배신도 하던 놈이 하는 법이다.

그 왜 삼국지를 보면 여포 같은 작자는 아버지만 몇 번을 바꾸지 않았던가? 배신자들도 따지고 보면 힘세고 욕심 많은 여포랑 다를 게 없으니 똑같은 짓거리를 하지 않으리란 법이 어디 있겠는가.

김창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석구를 쳐다보기만 했고, 시선을 받은 그는 결국 긴 한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사실 이치를 따지자면 그게 맞지. 애초에 걔넨 내 말 듣던 놈들도 아닌데 살려둬봤자 어디 쓸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또 배신할 놈들 살려둬서 불씨 남길 이유가 없는 게 맞다.”

김창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럼 걔네는 죽이는 걸로 하고. 차원문 열어. 바로 가게.”

“잠깐만,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왕도부터 가려는 건 아니지? 거긴 지금 못 가. 차원문이 안 열리거든.”

“저번에는 왕궁에 차원문 열고 바로 침입했잖아. 지금은 왜 안 되는데?”

“지난번에 우리가 침실로 침입했을 때 덤덤하게 대화하길래 괜찮은 줄 알았는데 실은 말은 안 했어도 속으로 되게 화가 많이 난 모양이야. 바로 왕실 경비대장 경질하고 마법사들 불러서 왕도 안에선 차원문 마법 못 쓰게 조치했더라. 그래서 왕도로는 못 가.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우리 뒤통수를 칠 준비를 했던 것 같네.”

김창은 그러냐 하고 말하고선 정복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일단 지금 바깥에서 진 치고 있는 놈들부터 처리하자고. 저 군대 주인 누구야?”

“고무신.”

“···이름이 뭐 그래?”

“내 생각엔 김창도 만만치 않긴 한데······. 어쨌건 고무신 걔 랭킹 8위고 직업은 전사야. 그리고 걔 랭킹은 낮아도 게임에서 PVP를 워낙 잘해서 이름 그대로 별명이 무신(武神)이었어. 바깥에서 공성하는 거 보면 군 지휘 쪽으로도 좀 잘하는 것 같고.”

랭커의 강함을 생각하면 전쟁이라는 건 사실상 랭커가 얼마나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그런데 이쪽엔 정복자와 산자이가 있는데도 고무신 혼자서 그 둘을 상대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그의 전략적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잘난 놈이 왜 랭킹 8위래?”

“옛날에 인생 살러 간다고 게임 잠깐 접어서 그럴걸. 지금은 내가 랭킹 4위쯤 되는데 원래는 걔가 나보다 더 위였어.”

“참고로 나는 10위야!”

산자이가 묻지도 않은 걸 외치더니 혼자 깔깔 웃었다. 하여튼 실없는 년.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래, 자기가 무신이다 이거지? 그럼 무신이 반신보다 강한지 한번 보자고.”

김창이 한석구를 향해 말했다.

“쟤네 적진 한가운데에 문 열어줘. 설마 군영 안에도 차원문을 못 열게 조치해놨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무식한 전사 놈이 그런 마법적 소양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진 않은데.”

“그건 전사 혐오 발언이야. 뭐, 문이야 열 수 있지. 그런데 아무래도 적진 한가운데에 여는 거라 들키면 바로 공격당할 수도 있어.”

“심민우는 어딨어? 걘 차원문 아주 빨리 열잖아.”

“지금 식량 사러 다니고 있는데. 이젠 요정 왕국의 곡물 상인들은 민우 얼굴 다 알고 있을걸.”

원탁도 나름 필사적이군. 김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그냥 네가 열어. 내가 장담하는데, 지금 이건 알고도 못 막아.”

“그래, 그럼······.”

한석구가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더니 차원문을 열었다. 적진 한가운데에 갑자기 차원문이 열렸으니 저쪽에서도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시선이 집중될 것이다.

어쩌면 저쪽 마법사가 나서서 바로 차원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 김창은 인사도 하지 않고 곧장 차원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어, 저쪽에서 뭐가 나오는데······.”

차원문을 통과하자마자 들리는 건 당황한 병사의 목소리였다. 김창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하자 무장한 병사들이 잔뜩 보였다.

그들은 아까의 여세를 몰아 다시금 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김창을 보고서 몹시 당황한 모양새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전장에선 멍청할수록 빨리 죽는다. 차원문이 열리고 김창이 튀어나온 걸 본 병사들이 했어야 할 행동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손에 든 무기를 휘둘렀어야 했다. 물론 그것 역시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었을 테지만······.

“끄아악!”

“칼이 날아다닌다!”

“습격이다! 적습이다!”

“가서 지원 요청해! 적은 한 명! 뭐? 뭔 미친 소리냐고? 미친 소리가 아니니까 가서 지원 요청해!”

요도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병사들을 학살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병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어 나갔다.

김창은 그 모습을 보며 허리춤의 칼을 뽑았다. 단지 그랬을 뿐인데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무기를 쥐고 달려들려던 병사들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발이 굳고 말았다. 움직이려고 해도 땅이 발을 붙잡은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이건 맹수를 만났을 때의 감각과 똑같았다. 아니, 김창의 강함을 생각하면 이건 맹수를 만났을 때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었다.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칼은 무자비하게 적들을 도륙했다.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는지 공격을 쳐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잡아! 저 칼부터 잡아!”

“그물 가져와!”

“던져! 한꺼번에 던져!”

병사들은 맹수 잡을 때나 사용하는 그물을 가져와서 칼을 향해 던졌으나 별 소득은 없었다.

요도는 재빠르게 움직이며 그물을 피하거나 아예 잘라버렸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고 그물을 던진 병사들의 목숨까지 앗아갔다.

“잡았······.”

하지만 아무리 요도가 빠르게 움직이고 잔혹하게 적들을 죽여도 결국은 한 자루의 칼일 뿐이었다.

병사들은 일부의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결국엔 요도를 붙잡을 틈을 만들어냈다. 병사 하나가 몸을 던졌고 건틀릿 낀 손으로 칼을 붙잡으려 할 때였다.

“끄악!”

빛이 번쩍이더니 병사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허접하긴 해도 분명 갑옷으로 무장한 상태인데 칼날은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병사를 두 동강 냈다.

그건 너무나 현실감이 없는 광경이라 병사들은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으, 으으······.”

이해가 느리면 느릴수록 뒤따라오는 충격은 더욱 큰 법이다. 병사들은 김창이 칼 한 자루로 사람을 썰어 버리는 걸 보고서 크게 비명을 질렀다.

그들 모두는 전장에서 구를 대로 구른 베테랑 병사고 팔다리가 잘리는 것이나 사람이 죽는 걸 수도 없이 봐왔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 반으로 잘려 죽는 걸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사람의 몸이란 건 원래 저렇게 무력한 것이었나? 아무리 그래도 사람 몸이 무 잘리듯 잘리는 건······.

“괴물이다! 괴물이야!”

“대장 불러와! 이건 우리 상대가 아니야!”

“도망쳐! 악마가 나타났다! 악마가 나타났다고!”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다. 누군가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순간, 다른 사람 역시 무기를 던지고 등을 돌렸다.

김창은 굳이 도망치는 사람을 따라가서 죽이진 않았으나 칼이 닿는 경로에 있는 자들은 살려두지 않았다.

마치 농부가 곡식을 수확하듯 차분히 칼을 휘둘러 목을 잘라버리는 광경은 섬뜩하다 못해 헛웃음이 나왔다.

모두가 공포에 절어 도망치기에 급급할 때, 누군가 흐름을 거슬러 김창을 향해 다가왔다.

“너······.”

김창은 감히 자신을 너라고 부르는 사람을 쳐다봤다. 그가 죽여야 할 상대였다.

“네가 고무신이냐? 듣자 하니 무신이라 불린다던데 그러면 네가 반쪽짜리 신인 나보다 강할지 궁금하군. 한 번 붙자. 무기 들어.”

고무신은 전사답게 몸 곳곳이 단단한 근육으로 부풀어 있었다. 두꺼운 손목은 그의 악력이 얼마나 강할지 쉬이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등에 거대한 전투 도끼를 메고 있었는데 거기선 미처 닦지 못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호엔의 병사를 죽이고 묻은 피일 터다.

김창은 확실히 그가 강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것저것 많이 죽여보긴 했는데 원탁의 랭커를 죽여보는 건 처음이야. 널 죽이면 신성을 얼마나 줄까 궁금한데.”

고무신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넌 누구냐······?”

얜 나를 모르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서로 이름은 알고 있어도 직접 얼굴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김창은 원래 원탁에 잘 드나들지 않았고 고무신도 원탁의 일은 내버려 두고 놀기 바빴으니 서로 얼굴 볼 일이 없던 것이다.

“지나가던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 아니, 그게 뭔······.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테러리스트라면 뭔가 목적이 있겠지? 왜 우리를 공격한 거냐? 목적이 뭐야?”

“목적이 뭐냐고?”

“그래,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르지만 상당히 강하다는 건 알겠다. 그러니 우리 협상하지. 원하는 게 있다면 내가 들어줄 테니······.”

김창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테러리스트는 협상하지 않는다.”

아니, 테러리스트가 협상 테이블을 걷어차면 어떡해? 고무신이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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