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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58화 (15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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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은 벼락을 신의 징벌이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다. 어두운 하늘에서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한 빛이 반짝인다면, 심지어 그 빛에 맞은 나무며 바위 따위가 일격에 박살 나기까지 한다면, 무지한 자들은 그걸 신의 징벌쯤으로 여기리라.

그건 신이 없는 세상에 살던 사람들도 그랬는데 정말 신이 존재하는 이곳에선 어떨 것인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을 본 자들은 본능적으로 신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벼락에 맞은 용도 그러할 것인가?

그건 알 수 없다. 목 잘린 용은 말할 수 없는 법이니까.

“끄으윽······.”

아슬란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상으로 떨어진 벼락 때문에 저도 모르게 감고 있던 눈을 다시 뜨니 바르토시스가 목 잘린 채로 죽은 게 보였다.

그가 알기로 용은 날 때부터 강력한 힘을 가진 생물이며 승천할 자 역시 함부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리고 바르토시스는 그런 용 중에서 특출나게 강했다. 용은 무리를 짓지 않고 개인 생활을 하기에 동족 의식이라는 게 없지만 용들은 뭔가 위험한 일이 생기면 전부 바르토시스에게 도움을 청한다던가?

그래서 바르토시스가 은연중에 용족의 대장 비슷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그 정도로 강한 용이 일격에 죽다니? 내 알기로 저 목의 비늘은 아주 단단하고 그 아래의 근육은 몹시 질겨서 황금 채찍으로 조르더라도 토막을 내는 건 불가능할 텐데.

“하나 보냈고.”

아슬란은 서늘한 목소리에 몸을 떨었다. 벼락 때문에 생겨난 먼지구름 너머로 김창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한 손에 벼락을 쥐고 있었는데 그걸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굉음과 함께 빛이 번쩍였다.

아슬란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공격을 보고서 반사적으로 건틀릿을 휘둘렀다. 황금의 건틀릿과 벼락의 칼날이 부딪치는 순간, 아슬란은 저도 모르게 아차 소리를 내뱉었다.

“끄윽!”

벼락과 건틀릿이 부딪치자 전신이 저려 왔다. 분명 어지간한 마법 공격은 전부 무효화 할 수 있는 황금의 갑옷을 입고 있음에도 이만한 고통이 느껴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슬란은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며 침이 흐르려는 건 억지로 참았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서 주먹을 휘둘렀다.

벼락의 힘 때문에 몸이 마비된 탓에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그럼에도 당장 그의 목이 날아가지 않은 건 등 뒤에 달린 거인의 손 덕분이었다.

그건 아슬란의 몸에 붙어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진짜 신체는 아니기에 마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거인의 손은 주인이 반응하지 못하는 공격을 전부 받아냈다. 상대인 김창이 반신의 경지에 올라 일개 승천할 자 이상의 강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지만······.

“크악!”

아슬란이 비명을 내질렀다.

거인의 손은 부서지고 재생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있었다. 분명 거인의 손은 김창의 공격에 전부 반응했지만 완벽하게 공격을 막아낸 건 아니었다.

엄밀히 말해서 그건 막아낸 게 아니라 그냥 아슬란을 대신해서 공격을 맞은 것에 불과했다.

“여가, 여가 이토록 무력하게······.”

아슬란은 강하다.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강하다.

승천할 자로서, 또한 황금의 기사로서, 그는 언제나 승리의 길만을 걸어왔다. 거인의 손이 모든 공격을 방어하고 황금 채찍이 모든 걸 분쇄한다는 전략은 간단하지만 언제나 그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언젠가 국경 너머의 야만족이 대군을 이끌고 제국을 침략했을 때였던가? 아슬란은 섭정왕으로서 친히 전장에 나서 혼자서 그들을 죄 죽였다.

아슬란은 그때의 일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야만족의 대전사가 자신의 발밑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하던 그때의 일을.

당시 수많은 야만족의 목숨은 그의 손짓 하나에 달려 있었다. 대전사의 항복 선언을 무시하고 기어코 그 많은 적을 쓸어버렸을 때, 아슬란은 자신을 지상에 강림한 신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얼마나 오만한 짓인가? 그건 일개 인간이 사람의 목숨을 제멋대로 다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오만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힘 있는 자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그러니 승천할 자인 자신에겐 분명 그럴 권리가 있다.

그리고 김창에겐 그런 자신조차 마음대로 죽여버릴 권리가 있으니 과연 그야말로 진정한 신이로다······.

“허억, 허억······.”

거인의 손이 다섯 번째 부서졌다. 그러나 그건 이제 더는 재생하지 않았다.

당연한 소리지만 거인의 손을 복구하는 힘은 아슬란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그는 지금껏 너무 많은 힘을 썼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황금의 갑옷뿐. 하지만 이게 내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까? 설령 한 번의 공격을 막아줄 수는 있어도 그다음은······.

아슬란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김창을 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원래 전설 같은 걸 보면 신에게선 강렬한 후광이 반짝여 일개 인간 따위는 감히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다고 했는데 지금이 딱 그랬다.

물론 김창의 등 뒤에서 나오는 건 후광이 아니라 그냥 벼락의 빛이었지만 결국 감히 쳐다볼 수 없다는 점에선 똑같았다.

아슬란은 떨지 않으려 노력했다. 승천할 자로서, 그리고 제국의 황족이자 섭정왕으로서 위엄 있게 죽으려 했다.

“그만······.”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누가 그랬던가. 자기 입으로 돈 욕심 없다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돈에 환장한 놈이라고.

그런 점에서 보면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하는 사람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법이다.

아슬란도 그랬다. 그는 지금 죽을 수 없었다. 죽음이 두려운 것도 있지만 그에겐 죽어선 안 될 이유가 있었다.

“그만! 그만해라, 김창! 항복하겠다! 여는 항복하겠어!”

아슬란히 다급하고도 절절히 외쳤지만 김창은 무시했다. 그냥 칼 한 번만 휘두르면 신성을 얻을 수 있는데 여기서 멈춰야 할 이유가 뭔가?

그가 머리 위로 벼락을 들어 올리자 아슬란이 다시 한번 외쳤다.

“여는 신성을 포기하겠다! 그러니 제발······.”

순간 김창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슬란이 다른 말을 했다면 그대로 무시하고 벼락을 휘둘렀겠지만 방금 그 말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신성을 포기하겠다고? 승천할 자라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승천할 자에게 있어서 신성은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신성을 얻은 자는 인간을 초월하여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는 동시에 신이 될 자격을 얻는다.

신성을 버린다는 건 보통 사람으로 치면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사지를 내버리는 것과 같다.

그런 식으로 목숨을 구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 사지를 잃고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며 살 바엔 존엄한 죽음을 맞는 게 더 나을 텐데.

그게 아니라면······.

“요안니스 흉내라도 내는 거냐? 이번 시대에 신이 되긴 글렀으니 다음 시대를 노리는 거야?”

보통이라면 감히 하지 않을 결정을 한 승천할 자가 있다. 그는 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칼날을 버텨 이번 시대에 다시 한번 승천할 자로서 부활했다.

김창의 존재가 없었다면 당연히 신이 됐을 그의 이름은 요안니스다.

“요안니스···?”

세간에 알려진 요안니스는 암흑 의회의 주인이다. 물론 그건 암흑 의회의 얼치기들이 멋대로 요안니스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이므로 아슬란은 진짜 요안니스가 누군지 모른다.

그러니 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를 것이다. 김창은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대신 벼락을 겨누며 물었다.

“신성을 포기하고 다음 시대의 승천을 노리는 거냐? 하지만 요정이면 몰라도 인간은 불가능할 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는 그러려는 게 아니다.”

“그럼 왜 신성을 포기하겠다는 거냐? 물론 목숨이야 소중하지만 신성을 포기하고 살아갈 자신이 있나? 정말로 일개 인간 따위로 돌아갈 자신이 있느냔 말이다.”

“물론 없다······. 하지만 여는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알고 있느냐? 여는 원래 신이 될 생각이 없었다.”

아까부터 뭔 헛소리만 하는 거지? 김창이 얼굴을 구기자 아슬란이 말했다.

“여에겐 누이가 있었다. 지배와 죽음 외엔 모르던 여에게 처음으로 온기와 사랑을 알려주었던 존재지. 여는 누이를 아끼고 사랑했다. 하여 그녀에게 여가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값진 것을 주기로 하였지. 여는 그녀에게 황위를 선물했으나 누이는 황제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에 걸려 죽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식 하나를 남겼으니 그게 바로 여의 조카이자 지금의 황제······ 끄아악!”

한참 지껄이던 아슬란이 자기 왼쪽 어깨를 손으로 붙잡고 비명을 내질렀다.

“누가 너보고 구구절절한 사연 팔이 하라고 했나?”

“이봐, 이 정도 말 정도는 들어줄 수······.”

“내가 그걸 왜 들어줘야 하냐. 그런 사연 팔이 들어주고 있을 만큼 난 한가하지 않아. 그리고 그 사연이란 것도 너무 뻔해서 들어줄 가치도 없고.”

“뻔하다고? 여의 사정이?”

“그럼 뻔하지. 네 사연에 대해 내가 말해볼까? 넌 누이를 잃었으니 그 자식이라도 잘 키워보려고 했겠지. 그래서 걔까지 황제로 만들고 네가 섭정을 자처하여 지금껏 국정을 이끌고 있었을 거야. 신이 되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네가 떠나버리면 황제를 지켜줄 놈이 없으니까 그랬을 테고. 그런데 왜 인제 와서 신이 되려고 할까? 네 누이가 병으로 죽었는데 황제도 같은 병에 걸렸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 전에 누이를 잃었던 것처럼 조카도 잃을까 봐 신이 돼서 그 병을 고쳐주려고 한 게 뻔하지. 아마 그 병이란 것도 어떤 명의가 와도 못 고치는 그런 병이었을 거고. 내 말 중에 틀린 거 있나?”

아슬란이 당황해서 입만 벙긋거렸다. 그가 잠시 뒤에 말했다.

“혹시 반신이 되면 독심술이나 그런 것도 쓸 수 있게 되나?”

“되겠냐? 네 이야기는 이미 소설이나 영화에서 써먹을 데로 써먹어서 단물 다 빠진 스토리라는 말이다. 요즘 그딴 거 가져오면 진부하다고 욕먹어.”

“영화···?”

아슬란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래서 결국 여를 살려주진 못하겠다는 소리인가?”

“그래.”

“신성을 포기한다고 해도?”

“네가 신성을 포기하면 그게 내 것이 되나? 그냥 사라질 뿐인데 내가 왜 그래야 하나.”

“그래, 그러면······.”

아슬란이 포기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가 어서 죽이라는 듯 몸을 축 늘어트리다가 갑작스레 힘을 폭발시키며 돌격했다.

“죽어라, 김······!”

마지막 발악이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김창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벼락을 내질렀고 아슬란의 몸은 불길에 휩싸여 쓰러졌다.

벼락의 뜨거운 열기에 의해 몸이 불타면서도 아슬란은 일격에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가 몸을 버르적대며 중얼거렸다.

“오필리아, 미안하······.”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는 불명확했다. 죽은 제 누이인지, 아니면 곧 죽을 제 조카인지.

김창은 아슬란의 몸이 불길에 휩싸여 재가 되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그의 몸 안에서 막대한 양의 신성이 느껴졌다.

“······.”

점차 신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뭘 할 수 있고 뭘 할 수 없는지가 명확히 구분됐다. 김창은 한참 동안 새로 얻은 신성에 대해 곱씹다가 문득 말했다.

“별 이상한 소리 듣기 전에 얼른 죽였어야 했는데, 쯧.”

하여튼 좆 같은 새끼. 이래서야 이겨도 입맛이 찝찝하지 않나. 김창은 연신 쯧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성벽을 향해 걸어가던 그가 뚝 하고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말했다.

“죽음의 신 양반? 나 보고 있지? 우리 면담 좀 합시다, 뒈지기 싫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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