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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59화 (15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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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은 하늘을 보고 가만히 섰다가 혼자 픽 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신인데 내가 부른다고 대답할 리가 없나.”

신이란 게 동네 똥개도 아니고 부른다고 반드시 응답할 리는 없다. 신을 모시는 사제 중에서 신의 목소리 한 번 듣는 게 소원인 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오랜 신앙생활을 해온 자 중에서 오직 신실한 믿음을 가진 자만이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김창은 신과 직접 대화할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한 일 아닌가. 그는 신에 대한 믿음은 없고 여차하면 신을 죽이려고 드는 인간인데.

“이렇게 되면 내가 직접 제국으로 찾아가야 하나. 일단 뭔 병인지부터 알아야 할 테니까.”

김창은 조만간 제국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물론 제국의 주요 전력이자 섭정왕인 아슬란이 죽었으니 이때를 노려 제국을 집어삼키려 하는 건 아니었다.

아마 한석구 역시 제국을 집어삼키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당장 왕국 하나만을 다스리는데도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데 왕국보다 훨씬 거대한 제국을 뭔 수로 다스리겠나.

김창이 제국으로 가려는 건 아슬란의 조카인 황제의 상태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슬란이 죽기 전에 말했던 그 구구절절한 사연. 영화로 치면 흔해 빠지다 못해 단물 다 빠진 삼류 스토리지만 이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의 일이었다.

“솔직히 누가 병에 걸려 죽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긴 한데, 병간호해야 할 놈을 내 손으로 죽였으니······.”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가 죽는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건 전설 속에 나오는 성인이나 할 법한 일이다.

당연히 김창은 성인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황제의 이야기를 듣고서 죽든 말든 내버릴 만큼 매정하진 않다.

“왜 쓸데없이 남 도와주냐고, 호구 소리 듣기 딱 알맞은 일이긴 한데, 그래도 그냥 둘 수가 있나. 원래 남 도와주면 그게 다 돌아온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제국의 황제에게 도움을 줬으니 언젠가 보답하긴 하겠지. 김창은 호구 소리 듣기 싫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보답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지 자신도 긴가민가했다.

“뭔가 좀 몸이 무거운 듯한······.”

김창은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격한 싸움이 끝난 탓일까? 아니면 오랫동안 화신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이상하게 몸이 무거웠다.

하기야 세상에 대가 없는 일은 없다고, 이토록 오래 화신으로 변해 있었으면 응당 그만큼 신성을 소모했을 테니······.

“씨발, 내 몸이 이상······.”

김창은 급작스럽게 멀어지는 의식을 붙잡으려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으로 쓰러졌다.

* * *

저 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구름이 어쩌고 바람이 어쩌고, 또 성층권이 어쩌고 중간권이 어쩌고 그런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다.

과학적인 요소는 전부 제쳐두고서 신화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사람의 손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저 하늘 위에는 무엇이 있는가?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저 위는 신역이며 스스로 존재한 신과 필멸의 육체를 내던지고 천상의 신좌를 차지한 승천자가 있다고.

또한 그곳엔 신을 위한 황금 궁전이 있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천사들이 있다고 한다.

신실한 믿음을 지켜온 자들은 죽어서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지옥이 아니라 천상으로 간다고 했다.

신역에는 그들을 위해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토지를 마련해두었고 천상에 오른 영혼들은 일하지 않고 온갖 달콤한 과실을 탐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 저 위는, 신역 또는 천상이라 불리는 저 하늘 위는 천국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지상의 사람들은 오늘도 천국으로 가기 위해 신께 기도를 드리고 자신의 의무를 행한다. 언젠가 죽음이 닥쳐왔을 때, 인생의 결과를 보고서 신이 제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해주길 바라면서.

“난······.”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에 죽은 이후에 그 영혼이 어떤 식으로 신께 거두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저 막연하게 영혼이 육신을 떠나 저 하늘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아마 영혼에는 무게가 없을 테니 마치 연기가 그러하듯 둥실거리며 하늘 위로 올라가리라. 지금 내 영혼처럼.

김창은 자신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 저 위로 올라왔음을 알았다. 그러면 이곳이 말로만 듣던 신역이요, 또한 천상인가?

“여긴······.”

무언가를 안다는 건 인식의 개벽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숨겨진 비밀이라는 건 반드시 숨겨져야 할 이유가 있기에 비밀인 것이다. 그 비밀을 굳이 파헤친 자는 그로 인해 일어날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무지는 바보의 축복이요, 앎은 선각자의 저주니라. 진실은 항상 양날의 검이니 그것이 자신을 찌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바로 지금처럼.

김창은 자신이 본 것을 믿지 못했다.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것은 끝없이 이어진 어둠과 별뿐이다.

방향감이 희미해져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곳이 위인지 아래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고 저기 있는 별이 먼지 가까운지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김창은 자신이 이 광활한 공간 속에 혼자 내던져졌다는 것을 알고서 왠지 모를 서늘함을 느꼈다.

그는 이 넓고 넓은 공간 속에서 자신이라는 존재가 그저 먼지와 다를 게 없다는 걸 알았다.

그 왜 사람은 자신이 감히 대항할 수 없는 것을 보고서 압도적인 무력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던가?

확실히 지금 상황을 보니 그럴 만도 하겠다고 느껴졌다. 끔찍하게 넓은 공간에, 심지어 방향감과 거리감조차 상실된 이곳에 혼자만 버려졌다고 생각하면 그 얼마나 무서운 일일 터인가?

이미 반신의 격에 오른 김창조차 긴장할 정도인데 일개 인간 따위는 이곳에 던져지자마자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이게 천상이라고?”

김창은 마하칼라인에게 천상의 비밀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천상이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곳이 아니고 오히려 허무한 공간이라고 했었다.

그 말을 완전히 믿진 않았지만 아주 무시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는 거짓 없이 진실만을 말했다.

천상에 황금 궁전 따윈 없다. 노래하는 천사도 없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도 없다.

있는 것은 그저 광활한 어둠과 셀 수 없이 많은 별뿐.

김창은 이곳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안다.

“우주잖아.”

신이라는 것들은 천상이 아니라 우주에서 살고 있었던 것인가?

이건 화성의 올림포스 산에 정말 그리스 신들이 살고 있는 것과 동급의 일이 아닌가?

김창은 어이가 없어서 허 하고 헛웃음을 터트리는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래, 우주지. 또한 감옥이고.”

분명 귀로 들리는 목소리인데 머리 안에서도 그 소리가 울렸다. 김창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목소리가 난 쪽을 쳐다봤다.

거기엔 남자 하나가 있었다. 구불거리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흑요석처럼 검은 눈, 그리고 잘 단련된 몸을 가진 남자가.

김창은 그를 처음 봤으나 본능적으로 그 정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네가 죽음의 신이냐?”

“내가 신이라는 걸 알면 그런 불경한 말씨는 그만둬줬으면 하는데. 나 역시 필멸자 출신이긴 하지만 그래도 예의를 모르는 건 아니라서.”

죽음의 신 모르스. 그는 오래전부터 김창을 지켜보고 있던 신이었다. 혹시나 하고 면담 신청을 했는데 정말 받아줄 줄이야.

신이란 것도 참 할 일 없는 존재로군. 김창이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모르스가 말했다.

“그래도 뭐, 오랜만에 사람이랑 이야기를 하니 재밌군. 혹시 내 말씨가 이상하진 않나? 사람이랑 직접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내가 목소리를 내는 건 신탁을 내릴 때뿐인데, 그땐 꼭 괴상한 말투를 써야 해서 참 고역이야. 나도 마음 같아선 쉽게 말해주고 싶지만 그러면 목소리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거든.”

신탁이라는 건 항상 얼른 알아듣지 못하게 빙빙 꼬아서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신의 악취미인 줄 알았더니 그냥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지상까지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신이라더니 말투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아까도 말했지만 신이 근엄한 척을 하는 건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하니까 그런 거야. 난 애초에 필멸자 출신이다. 원래 직업은 검투사였는데 우아한 말씨와는 거리가 멀지.”

검투사라면 사람을 참 많이 죽였을 터다. 그러니 죽음의 신이 됐을 테지.

어쩌면 죽음의 신이 되기 위해선 뭔가를 죽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다른 신들은 어디 있냐? 태양신인가 뭔가 하는 놈들. 설마 이곳에 신이 너 하나만 있는 건 아닐 거 아니야.”

“아, 그 친구들? 내가 널 이곳으로 불렀다고 하니까 다들 겁을 먹고 도망갔는데. 혹시나 그 미친놈이 자길 찌를지도 모른다면서.”

내가 뭘 어쨌다고? 김창이 불만스럽게 혀를 찼다.

“그래서 넌 왜 안 도망갔냐.”

“내가 널 불렀는데 도망가버리면 어쩌나?”

“재밌는 놈이군. 그럼 넌 여기서 날 관음하고 있었던 거냐? 신치고 참 할 일이 없어 보이는데.”

김창의 말에 모르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에게 하기엔 아주 불경한 말이지만, 그래, 그게 사실이다. 이미 신이 됐는데 할 일이 뭐 있겠나.”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너도 알겠지만 난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널 부른 거다.”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인지 궁금하군.”

“하긴, 원래 부탁이라는 건 칼 들고 하는 거니까.”

“······내가 필멸자 시절에도 저러진 않았는데. 뭐, 좋아. 네 부탁이라는 건 황제의 죽음을 뒤로 미루어 달라는 것이겠지?”

모르스는 우주에서 김창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으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

김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모르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거야 쉽지. 원래 황제는 내년에 죽을 예정이었지만 죽음을 뒤로 미루어주지. 음, 몇 년 정도 유예를 주는 건 정 없으니까 그냥 오십 년 정도 더 살게 해줄까. 그 정도면 충분히 살았으니 아슬란도 만족할 거야.”

너무 파격적인 대답에 김창이 당황했다.

“내가 신의 업무에 대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죽어야 할 사람의 수명을 그 정도로 많이 바꿔도 되는 건가?”

“안 될 게 뭐가 있지? 지상의 할 일 없는 신학자처럼 질서가 어쩌고 순리가 어쩌고 그런 소리를 하려고? 물론 이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뭐? 내가 죽음의 신인데 제깟 놈들이 뭘 어쩌려고?”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김창이 아연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모르스가 이어서 말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내가 늘려준 건 수명뿐이다. 난 죽음의 신이지, 의학의 신이 아니야. 그러니까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하면 황제는 수명이 다할 때까지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소리다. 음, 이렇게 보니 이건 도와준 게 아니라 저주일지도 모르겠어.”

죽으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데 억지로 수명을 늘려놨으니 이젠 끔찍한 고통을 오십 년 넘게 경험해야 한다.

어쩐지 쉽게 도와준다고 했더니만.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이제 용건 다 끝났으니 날 다시 지상으로 보내줘.”

“음, 그건 곤란한데.”

“뭐?”

모르스가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단단히 단련된 가슴 근육이 보였다.

“신에게 심장은 없지만 그래도 가슴을 찌르면 죽긴 하지.”

“···갑자기 뭔 소리냐?”

“뭔 소리긴. 기회를 주는 거다. 김창, 신이 돼라.”

모르스가 웃음을 뚝 그치고서 말했다.

“여기서 날 죽이고 신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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