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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87화 (18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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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황금성.”

뒤에서 욕 아닌 욕을 하고 있던 황금성이 김창의 목소리에 몸을 움찔거렸다. 그가 짐짓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왜 부르냐고 묻자 김창이 말했다.

“난 지금부터 케이네스 저 새끼 조지러 간다. 여긴 너한테 맡길 테니까 알아서 해라.”

현재 연합군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원탁 랭킹 2위인 황금성이다. 도박에 미친 성격 탓에 영 미덥지 못하긴 하지만 할 땐 하는 놈이니 전장을 맡겨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나만 믿어! 어쨌건 네가 케이네스를 죽일 때까지만 버티면 되는 거지?”

황금성은 괴물 군단을 전멸시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그림자 괴물은 혼자서 병사 서너 명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하기 때문에 숫자로 압도해야 하는데, 문제는 저쪽 역시 숫자가 어마어마할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원래라면 연합군이 전부 모이면 어느 정도 해볼 만한 싸움이었을 테지만 지금 연합군은 절반 정도 모인 상황이다.

반대로 그림자 괴물은 오히려 숫자가 배로 늘어났으니 저들을 상대로 싸움에서 이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연합군이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버티면서 김창이 케이네스를 죽일 시간을 벌어주는 것뿐이다.

그것조차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가라, 김창! 우리가 길을 뚫어줄 테니까!”

연합군과 괴물 군단의 충돌이 시작됐다. 곳곳에서 비명과 함성이 울리고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황금성은 선두에 서서 그림자 괴물들의 머리통을 박살 냈다. 아무리 그림자 괴물이 강하다 해도 원탁 랭커의 상대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선두에서 눈에 띌 만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자 자연스레 그림자 괴물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모였다.

“저놈부터 죽여라.”

그림자 괴물 중에서 제법 지위가 있어 보이는 놈이 황금성을 가리키자 다른 괴물들이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십 마리의 괴물이 일시에 달려드는 걸 본 황금성이 입술을 비뚜름하게 기울이며 웃었다.

“마력 중첩 10연속.”

그림작 괴물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하지만 황금성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을 하려는 건 알았다.

본능이 그들에게 경고했다. 지금 저놈에게 달려들어선 안 된다고. 거침없이 질주하던 그들이 다리를 멈추고 황금성과 일정한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황금성의 몸에서 터져나온 강력한 마력이 그들 전부를 집어삼켰으니까.

쾅! 넘쳐나는 마력이 맺힌 주먹으로 그림자 괴물의 몸을 한 대 때릴 때마다 공성추에 맞은 것처럼 몸이 터져 나갔다.

수십 마리의 그림자 괴물이 순식간에 머리와 어깨, 배가 터져 죽고 이제 남은 건 공격을 명령했던 한 놈뿐이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답게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웠으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 덤벼!”

황금성은 주먹을 빙빙 휘두르며 크게 소리쳤다. 마치 모닥불에 날벌레들이 달려들듯 그림자 괴물은 빛나는 주먹에 이끌려 그에게 덤벼들었다.

상대가 누구든 황금성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정면에서 적을 분쇄했고 머리통을 으깨버렸다.

그의 뛰어난 활약에 요정 기수조차 감탄하고 있었지만 황금성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다.

‘적이 너무 많아. 단순히 버티기만 하는 것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황금성은 도박을 즐기는 성격이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도박이 어쩌고 할 만큼 정신이 나가진 않았다.

도박에서 돈을 잃는 거야 언제든 다시 벌 수 있으니 상관없지만 지금 여기 걸려 있는 건 모든 사람의 목숨이 아닌가?

김창이 자신에게 이쪽을 맡겼으니 될 수 있는 한 많은 목숨을 살려서 집으로 돌려보내야 했다.

그걸 알기에 혼자서 바쁘게 뛰어다니며 하나라도 많은 그림자 괴물을 죽이고 있지만 자신은 신이 아니다.

혼자서 모든 적을 죽일 수는 없다.

“길 뚫었다! 다들 들어가!”

황금성의 외침에 연합군이 성문 안으로 돌격을 시작했다. 저쪽에서 병력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에 마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황금성을 비롯한 원탁 랭커들의 활약 덕분에 어찌어찌 길을 뚫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씨발······.”

하지만 거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성안에서 끝도 없이 병력이 쏟아져 나오기에 안쪽에도 적이 많으리라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정말 안에 들어와서 보니 욕이 나올 정도로 많았다.

이쪽은 성안으로 들어오는 데만 병력을 제법 썼는데 저쪽은 아직도 저만한 병력이 남아 있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황금성과 함께 적을 죽이면서 성안으로 들어오는데 한 손 보탰던 김창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차원문이 있군. 저걸 먼저 부숴야겠는데.”

그 말에 황금성이 얼른 정신을 차렸다. 울브가 말하기로 이 많은 병력은 저쪽 세상의 신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다른 세상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을 테니 이 병력은 저쪽 세상에서 탄생하여 차원문을 넘어왔으리라.

그럼 일단 차원문을 닫으면 병력이 늘어나는 걸 막을 수 있다. 황금성이 다급히 소리쳤다.

“하오성! 산자이!”

그가 소리치자 두 사람이 얼른 달려왔다. 둘 다 전투의 열기 때문에 몹시 흥분한 얼굴이었다.

“우린 이제부터 차원문을 부수러 간다! 저걸 부숴야 우리한테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어!”

“저 거대한 문? 저게 우리가 때린다고 부서지나?”

“마법사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하여튼 석구 아저씨는 또 어디 간 거야?”

세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김창이 불쑥 말했다.

“그냥 내 벼락으로 부수면 될 것 같은데.”

확실히 김차의 벼락이라면 차원문도 부술 수 있을 것이다. 하오성이 그러면 되겠네 하고 중얼거리는데 황금성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너는 케이네스와 싸워야 하는데 힘 아껴야지. 너는 지금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야. 네가 지면 우리 전부 다 끝나는 거라고.”

내가 이 세상의 희망이라고? 지금껏 사람이나 죽이고 다녔던 놈이 세상의 희망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그만큼 낯간지러운 일도 없다.

김창은 헛웃음을 흘리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나야 상관은 없는데 너희 셋이서 저기까지 갈 수 있는 거냐?”

황금성이 쓰게 웃으며 답했다.

“안 되면 죽는 거지 뭘.”

“뭐? 죽는다고? 난 죽기 싫은데!”

산자이가 징징거렸지만 무시했다. 하오성이 우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암살자인데 저기 가봐야 별 도움 안 되는 거 아닌가······.”

“꿩 대신 닭이라고, 정복자 없으니 네가 대신 뛰어야지 뭘 어쩌겠어?”

꿩 대신 닭이라기엔 너무 차이가 크지 않나? 이 정도면 꿩 대신 참새 갖다 두고 닭이라고 우기는 수주인데······.

하오성이 후우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이 상황이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목숨을 걸어야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것을.

“티샬레!”

황금성의 외침에 티샬레가 민첩한 움직임으로 이쪽까지 달려왔다.

“네, 티샬레 왔습니다! 시킬 일이라도?”

“너는 요정 군대 이끌고 황궁까지 가는 길 뚫어! 김창 보내야 해!”

“황궁에 운석을 떨어트리자는 말이군요! 알겠습니다! 책임지고 보내지요!”

이놈들은 사람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인간 핵미사일이니 운석이니 하는 걸 보고 있으면 기가 찰 노릇이다.

“가자! 다들 작전대로 움직여!”

황금성이 하오성과 산자이를 데리고 달렸고 티샬레는 요정 군대에게 황궁으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김창도 요정 군대와 함께 황궁으로 가는 길을 뚫고 있는데 문득 고개를 돌려 황금성 일행 쪽을 쳐다봤다.

지금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은 건 저 세 사람이었다. 원래라면 김창이 차원문도 부수고 케이네스도 죽이는 게 가장 효과적인 일이겠지만 그랬다가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터다.

그래서 저 세 명을 차원문 쪽으로 보낸 건데 과연 맡은 임무를 잘 끝낼 수 있을까?

확신은 없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저들을 믿는 것뿐이다. 김창은 다시 고개를 돌려 요정 군대와 진격을 이어나갔다.

* * *

‘씨발.’

황금성이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내가 미쳤지. 왜 이 짓거리를 한다고 했지?’

김창이 여길 맡긴다는 말을 듣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라도 했나? 그게 아니고서야 이딴 미친 짓을 할 이유가······.

황금성은 연신 욕을 내뱉으며 자신과 함께 달리고 있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하오성과 산자이. 암살자와 무투가. 게임에서도 딱히 상위권 직업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게다가 얘네는 랭킹도 나보다 낮지 않나?

그런데 이 둘을 데리고 차원문을 부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이긴 한지 스스로도 궁금했다.

‘내가 역배에 미쳐 있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사람들이 왜 역배에 돈을 거는가? 확률이 낮긴 하지만 한 번 터지면 어마어마한 리턴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건? 차원문을 부수면 뭐가 돌아오나? 여기 있는 그림자 괴물이 싹 사라지기라도 하나?

고작 적이 더 늘어나지 않는 것에 그칠 뿐이다. 그런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애석하다.

“대장! 조금 있으면 차원문인데!”

산자이의 외침에 황금성도 고개를 들었다. 그 말대로다. 조금 있으면 차원문에 도착한다.

가까이 와서 보니 새삼 크다 못해 거대하다는 게 느껴졌다. 마법사도 없는데 저걸 부술 수 있을까?

암살자나 무투가가 열심히 때려봐야 흠집도 안 날 것 같은데. 심지어 차원문을 부수기 위해선 저걸 지키고 있는 놈들까지 상대해야 하지 않나.

황금성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너희는 괴물들 상대해. 내가 차원문 부순다.”

“네가? 뭔 수로?”

하오성이 묻자 황금성이 굳은 목소리로 답했다.

“마력 중첩 100연속 가야지 뭘.”

“···그게 되긴 하는 거냐?”

“성공할 확률이 0.1% 정도 될걸.”

“가챠 게임에서도 2% 확률 못 뚫어서 빈털터리 되는 놈들 많은데, 0.1%면 고소당하겠는걸?”

“100번 중첩인데 0.1%이면 거저 아닌가?”

도박 중독자의 뇌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하오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황금성은 두 주먹을 꽉 쥐고 도박을 시도했다.

“마력 중첩 100······.”

콰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땅이 흔들리더니 무언가 튀어나왔다. 바닥이 너무 흔들려서 순간적으로 자세가 흐트러진 황금성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위를 봤다.

왜 그랬냐면 바닥에서 튀어나온 게 너무 커서 고개를 들어야만 전신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뱀?”

거대한 뱀. 몸 전체가 새까만 색으로 물들어 있고 눈도 없고 입도 없지만 어쨌건 뱀 비슷하게 생겼으니 뱀일 것이다.

저 거대한 게 지금까지 땅속에 숨어 있었다는 건가? 황금성은 기가 차서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씨발, 진짜 오늘 끗발이 개끗발······.”

욕을 내뱉으면서도 다시 한번 마력 중첩을 시도할 때였다. 황금성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졌다.

또 뭐야? 이젠 욕을 할 힘도 없어서 고개만 드는데 순간적으로 두 눈이 커졌다.

거기엔 용이 있었다. 아니, 용 군단이 있었다. 더 정확히는 뼈로 만들어진 용 군단.

“강하!”

더 놀라운 건 용 군단 위에서 뭔가 뛰어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두꺼운 갑옷을 입은 그것들은 쿵쿵 소리를 내며 지상으로 착지하더니 그림자 괴물을 깔아뭉개버렸다.

헬리콥터에서 강하 훈련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대체 뭔가? 황금성이 당황하는 사이에 커다란 비명이 울렸다.

얼른 고개를 움직이니 거대한 용이 그림자 뱀의 목을 물어뜯어 부러트리는 게 보였다.

그림자 뱀은 그 거대한 덩치가 어울리지 않게 단숨에 숨이 끊어져 바닥으로 쓰러졌다. 또 한 번 쿵 소리가 울리고 황금성은 이게 대체 뭔 일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까지 잘 버텼다, 황금성. 저게 차원문이냐? 저것만 부수면 되겠군.”

용 군단 위에서 뛰어내린 놈 중 한 명이 황금성에게 말을 걸었다. 흰색 갑옷을 입고 철퇴를 든 남자는 구면이었다.

“···정복자? 아니, 이게 대체 뭔 일이냐?”

“미안, 좀 늦었다. 김용걸 저 새끼가 마지막 한 마리까지 다 살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서. 아참, 석구도 곧 병력 이끌고 합류할 거야. 난 신전의 성기사들만 데리고 먼저 온 거고.”

“뭘 살려?”

“용 말이야, 용. 김창이 죽인 바르토시스랑 케이네스가 죽인 새끼 용 시체 전부 다 김용걸이 언데드로 되살렸다. 저기 보이지?”

정복자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거기엔 다른 용보다 훨씬 더 덩치가 큰 용이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엔 김용걸이 있었고.

“나는 드래곤 마스터다!”

저 미친놈. 황금성은 저 또라이 같은 행색을 보고서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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