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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겜 속 칼잡이-195화 (1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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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식아, 너는 초상권이라는 것도 몰라? 남의 얼굴을 막 베끼면 어떡해?”

“연산 결과 적대적 대상의 섬멸을 위해 가장 유효한 프로그램으로 판명.”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데 신이 예의 그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답하자 김창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니까 날 죽일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인가? 김창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그 말이 옳다고 느꼈다.

지금껏 자기 힘만 믿고 까불거리던 놈들은 자신의 칼날에 모두 목숨을 잃었다. 김창에게 죽은 자가 한두 명이었다면 신도 그저 일개 승천할 자 정도로 생각하고 무시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김창은 엄밀히 말해서 이 땅에서 가장 강한 존재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죽이려면 마땅히 같은 실력을 가진 자가 필요하다.

“아무리 봐도 나랑 똑같네. 이거 뭐 도플갱어 그런 건가?”

전설에 따르면 도플갱어를 만난 사람은 강렬한 살인 욕구를 느낀다고 했다. 그 이유는 도플갱어의 존재가 자신의 유일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창은 지금까지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강렬한 욕구를 느껴본 적이 없기에 조금 신기한 얼굴로 도플갱어를 쳐다봤다.

검은색 머리카락, 날카로운 눈매, 약간 껄렁한 자세로 칼을 잡고 있는 모습, 그러면서도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확실히 자신과 닮았다. 그러나 그 모든 모습이 자신과 똑같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확신은 없었다.

왜 그런가? 그거야 이 세상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거울을 보면서 생활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생김새나 버릇이 좀 닮은 것 같긴 한데 과연 그 영혼까지 동일할 것인가? 그래서 저 존재가 내 영혼의 유일성을 훼손하는가?

도플갱어를 봤음에도 살인 욕구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아닐지도 몰랐다. 어쩌면 저건 그저 껍데기만 닮은 인형에 불과할지도.

“잘 베끼긴 했는데 정말 나랑 똑같은지는 모르겠군. 그럼 실력 좀 볼까.”

김창이 움직이자 도플갱어도 같이 움직였다. 완전히 똑같은 행동을 보고서 김창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가 바닥을 박차고 뛰자 도플갱어 역시 같은 경로로 움직였다. 서로가 거울을 보고 있는 것처럼 완전히 동일한 동작이 행해졌다.

칼과 칼이 부딪쳤다가 떨어지는 사이에 눈은 바쁘게 움직이며 서로의 빈틈을 찾았다. 눈알이 움직이는 것만 봐도 둘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거칠게 달려들자 허공에서 불티가 쉴 새 없이 반짝였다. 찰나의 순간에 몇십 합을 나눈 그들은 이제 서로 위치가 바뀌었지만 취하고 있는 동작은 같았다.

아직 숨이 찰 만큼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김창은 가만히 서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몇 번 칼을 나누지 않았지만 저 도플갱어가 자신의 실력을 잘 베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신의 기계 장치들이 한참 동안 바쁘게 돌아가고 있던 건 그만큼 완벽한 복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신이라는 새끼가 직접 싸우진 않고 남 복제본 만들어서 대신 싸우게 하는 건 좀 추하지 않나?”

도플갱어는 김창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도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프로그램으로서 정해진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김창이 어떤 도발을 하든 도플갱어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걸 본 김창은 왜 자신이 저 도플갱어를 보고서도 살인 욕구를 느끼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저건 날 닮았지만 내가 아니다. 항상 내키는 대로 사람 썰고 다녔던 자신이 방금 도발을 듣고서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까.

신의 꼭두각시가 되어 명령만을 받고 움직이는 것은 내가 아니다. 저건 그저 날 닮은 무언가일 뿐이다.

“그럼 못 이길 것도 없지.”

솔직하게 말해서 김창은 본인을 이길 자신이 없다. 왜? 나는 몹시 강하니까. 나는 나 자신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만큼 잘난 놈이니까.

그런데 저 도플갱어가 실은 내가 아니라면? 그럼 못 이길 게 뭔가. 보아하니 저놈도 신성으로 만들어져 죽이면 대량의 신성을 줄 것 같은데 참으로 군침 도는 일이다.

“난 할 일이 많은 사람이야. 돌아가서 손 봐줘야 할 놈도 있고 다른 세상에 출장도 가야 한다고. 그러니 미안하지만 얼른 돌아가야겠다.”

김창이 칼을 가볍게 휘두르자 그의 몸에서 강렬한 빛이 반짝였다. 한때는 벼락의 화신이었으나 지금은 온전한 신이 되어 벼락 그 자체로 변한 김창이 자세를 낮추고 도플갱어를 향해 뛰었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벼락은 단두대의 칼날처럼 도플갱어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김창의 경험으로 보건데 아무리 잘난 놈이라도 벼락을 맞으면 무사할 수 없었다.

감히 반응할 시간도 주지 않고 기습적으로 공격했으니 도플갱여 역시 큰 타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

꽈르릉!

용이 울부짖듯 거칠게 울리는 우렛소리. 그것은 벼락의 힘이 날뛰고 있음을 알리는 증거였지만 김창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왜냐하면 방금 울린 그 굉음이 자신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대적 대상의 상태 변화에 즉각 대응.”

우렛소리를 울린 것은 김창이 아니라 도플갱어였다. 그는 김창이 그랬던 것처럼 벼락 그 자체로 변하더니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벼락을 쳐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쳐내는 게 아니라 아예 목을 비틀어 재껴버리는 수준이었다. 신조차 그 공격에 맞으면 빌빌거릴 정도의 위력일 텐데 그걸?

김창은 새삼 자신이 얼마나 잘난 놈인지 깨달았다. 방금 도플갱어가 보여준 기예를 자신도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 벼락은 안 통한다 이거지.”

지금까지 어지간한 적들은 칼을 휘두를 것도 없이 벼락으로 전부 처리했다. 그도 아니면 용의 힘을 빌리던가.

그런데 자신과 완전히 똑같은 적을 만나자 그 모든 건 의미 없는 힘이 되고 말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저쪽도 할 수 있다. 힘과 힘이 부딪쳐 완전히 상쇄되니 벼락을 떨어트리는 건 의미 없는 힘의 낭비일 뿐이다.

그럼 뭘 해야 하나. 세상 모든 일은 결국 돌고 돌아 원점을 돌아온다고 했던가? 김창은 칼자루를 으스러질 듯 세게 쥐었다.

“승천할 자고 반신이고 다 필요 없었군. 결국 모든 건 칼부림 하나로 끝날 일이었나.”

김창은 재빠르게 자세를 바꾸며 도플갱어를 공격했다. 기습적인 공격이었지만 도플갱어는 나라면 분명 그랬을 것이라는 듯 너무나 쉽게 공격을 방어했다.

공격이 막힌 것에 낙담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김창은 더는 벼락의 힘을 부리지 않았지만 정말 벼락이 되어버린 것처럼 빠르게 칼날을 휘둘렀다.

어찌나 빠른 공격이 이어지는지 칼날은 보이지 않고 오직 잔상만이 어지럽게 남았다. 칼날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위협적인 소리가 나고 찢어지는 비명 비슷한 소리가 울렸다.

그의 칼솜씨는 귀기 어렸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위협적이었고 또한 스산했다. 상대를 현혹하듯 어지럽게 움직이는 칼의 궤적을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새 날카로운 상처가 생겨 있었다.

공격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도플갱어는 수세에 몰렸다. 결국 남의 흉내를 내봤자 원본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일까?

동작을 베끼고 벼락의 힘까지 베꼈으나 결국 순수한 실력을 겨루는 칼싸움으로 돌아오자 도플갱어는 어찌어찌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찬 듯 보였다.

이 순간 공세를 잡은 게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연 김창이었다. 그는 늘 그러하듯 무덤덤한 얼굴로 거침없이 적을 몰아붙였고 도플갱어의 몸에 수많은 상처를 남겼다.

누가 봐도 김창이 도플갱어를 압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 그는 드디어 이 싸움의 승기를 잡은 것인가?

‘빌어먹을.’

김창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참으려고 하지만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기가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럴 만한 일이었다. 만약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기고 있는데 왜 화를 내느냐고 하겠지만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나 할 소리다.

이기고 있다고? 몰아붙이고 있다고 해서 이기고 있는 게 아니다. 이건 그저 몰아붙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 구경꾼이라고는 신 하나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싸움의 승기가 점차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그 잘난 연산의 결과를 말하는 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싸움을 볼 수 있는 자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도플갱어는 지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잠깐 웅크리고 있을 뿐.

처음에는 쉴 새 없이 늘어나던 상처가 어느 순간부터 급격히 줄어든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도플갱어는 껍질 안에 들어간 거북이처럼 버티고 또 버티면서 김창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무기질적인 눈, 원본보다도 훨씬 더 무감정한 눈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 눈이 저리 재수 없어 보였나? 아마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김창이 쯧 하고 혀를 차며 칼을 내질렀다.

직선으로 곧게 나아간 칼이 단단한 벽에 가로막힌 듯 챙 소리를 내며 뒤로 튕겨났다. 당황하지 않고 곧장 공격을 이어나가지만 이번 역시 막혔다.

다음 공격도, 그다음 공격도, 그리고 이번 공격도.

막히고, 막히고, 또 막혔다. 마치 거대한 벽을 때리는 것처럼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완벽한 방어였다.

연달아 이어진 세 번의 공격이 전부 무위로 돌아가자 김창은 더는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젠 웅크리고 있던 적이 껍데기를 깨고 튀어나올 차례라는 것을.

“학습 중지. 적대적 대상으로부터 더는 학습할 것이 없음을 확인. 적대적 대상의 위험도를 상에서 중으로 격하. 적대적 대상의 섬멸 활동 재개.”

신의 목소리가 끝나기가 무섭게 도플갱어의 움직임이 변했다. 줄곧 방어로 일관하던 도플갱어가 김창보다 먼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는 아까 김창이 그랬던 것처럼 칼을 내지르며 재빠르게 돌격했다. 저 모든 것은 원본으로부터 베껴온 동작이었으니 김창 역시 쉽사리 방어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큭!”

김창이 억지로 비명을 참았다. 공격을 막긴 했는데 완전하진 않아서 약간의 상처가 생겼다. 순간적으로 칼에 베여본 게 얼마만 인지 생각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는 피가 줄줄 흐르는 어깨를 애써 무시하며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방금 공격을 막으면서 어찌나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는지 오른쪽 손목이 시큰거렸다.

신이라면 이 정도 충격은 기합으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김창은 쯧 하고 혀를 차면서 도플갱어의 공격을 방어했다.

아까까진 김창이 공세였으나 지금은 완전히 입장이 뒤바뀌었다. 도플갱어가 공격을 주도하고 김창은 그저 공격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분명 도플갱어의 모든 공격은 김창의 것을 흉내 낸 것인데 간단히 막아내기가 어려웠다. 도플갱어가 김창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면 그 반대의 경우에도 똑같은 결과가 나와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칼날이 한바탕 춤사위를 끝내고 났을 때, 김창의 몸은 피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그는 후우 하고 더운 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오른쪽 어깨 약간 찔렸고, 복부는 살짝 긁혔고, 오른쪽 손목 시큰거리고, 뺨 약간 긁혔고, 왼쪽 허벅지에 작은 구멍 하나.

“씨발, 이 정도면 그냥 시체인데.”

김창이 입을 오므려 침을 뱉어냈다. 입 안에는 상처 하나 없는데 왜 비릿한 피 맛이 나는지 모를 일이었다.

“하여튼 좆 같은 기계 새끼들.”

김창은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왜 AI에게 바둑을 학습시켰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 기사를 이겼다고 했던가?

그때 사람들은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었었지 아마.

김창은 그 말을 보고서 다들 참 겁도 많다고 코웃음을 쳤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AI의 발전이라는 게 참 무서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보라, 저 도플갱어는 학습을 통해 신조차 넘어서지 않았는가? 어쩌면 도플갱어가 학습의 학습을 거듭해서 자신을 만들어낸 창조주조차 초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윽!”

전투 중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김창은 급작스럽게 훅 들어온 도플갱어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얼굴을 찡그렸다.

또 새로운 상처가 생겨서? 아니면 이미 있던 상처가 벌어져서? 둘 다 아니다.

김창은 두 쪽 나버린 자신의 칼을 보고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칼은 그에게 있어서 자존심이었고 또한 모든 것이었다.

뭔지도 모를 세상에 떨어져 칼 한 자루만을 들고서 기어코 이 자리에 올랐다. 지금껏 상처 입은 적은 있어도 칼이 부러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칼이 부러졌다. 그것은 단순히 싸울 무기를 잃었다는 것 이상의 일이었다.

“알림.”

도플갱어 역시 그 사실을 안다. 이미 다 잡은 먹잇감을 상대로 발톱을 휘두르지 않듯 그는 가만히 서서 김창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순간적으로 조용해진 공간 속에서 오직 신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적대적 대상의 위험도를 조정.”

무미건조하게 울리는 목소리에는 어째서인지 비웃음이 담긴 것 같았다.

“현재 위험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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