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명가 차남으로 살아남는 법 (1)
“불쌍하네.”
책의 한 챕터를 읽고 나서 나온 감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름을 날릴 천재가 형의 질투에 완벽한 폐인으로 살다 결국 그에게 죽는 이야기라니.
내가 읽은 것이 지나가는 조연 하나의 이야기라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화병이 나서 그대로 책을 덮을 뻔했다.
‘어쨌든 형이 동생 인생 망친 게 밝혀져서 다행이긴 하다.’
그 조연은 죽은 후에도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고 전 국민에게 저주받고 있었다.
가족마저도 그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으니 말 다 했지.
어쨌거나 그 악당은 주인공에 의해 명예도, 부도 잃고 죽었으니, 결말은 나름 괜찮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선 넘었지.’
세상에 죽일 놈이 없어 동생을 죽이냐. 고작 출세 하나 하려고?
‘아냐, 어차피 진짜 일어난 일도 아니잖아.’
적당히 생각을 끊어 내려 했더니만, 또다시 혀를 차고 있었다.
감정 소모를 심하게 해서 그런지 피로가 몰려왔다. 고난이 컸던 만큼 보복의 희열도 크게 느껴졌지만, 피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책을 덮고 휴대폰을 켜 알람을 맞췄다.
‘10분만 자야지.’
자고 일어나면 이 과한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좀 맑은 정신으로 다음 장을 읽는 게 낫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엎어졌다.
* * *
‘아… 미쳤네.’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이미 세상이 온통 어두워진 뒤였다.
10분이 뭐냐, 이 정도면 10시간은 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한낮에 잠들었는데 이렇게 세상이 어두울 리가 없다. 오래 잔 탓에 몸도 무거웠다.
‘…그런데….’
왜 앞이 안 보이지.
분명 눈을 뜨고 있는데도 주위는 그 무엇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까맸다.
나는 황급히 주위를 더듬거렸다. 까슬한 돌바닥 외에 손에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돌?’
나는 침대에서 잤는데 웬 돌바닥?
하루아침에 내 침대가 돌침대가 되었다고 봐야 하나, 따위의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하다 금세 심각성을 느끼고 얼굴을 굳혔다.
소리라도 질러보려 입을 열었지만 그만한 성량이 나지 않았다. 반쯤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어떻게든 목을 쥐어짜 다시 소리를 뽑아냈다.
“아, 아.”
다행히 사람이 알아들을 정도는 되었다.
소리는 못 지르겠지만 누군가 가까이 오면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일단 움직여 볼까.’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 균형감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까보다 더 조심성을 담아 땅에 손을 짚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철컹―
“…?”
쇠끼리 부딪치는 소리였다.
안 그래도 무서운 상황에 다리 하나 움직였다고 이런 소리가 날 일이 있나.
혹시나 해 또다시 다리를 움직이자, 발목에 무언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미친….’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인 것 같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고 나자, 빠르게 사고하기 위해 애써 외면하고 있던 공포심이 한순간에 밀려왔다. 숨이 가빠지기 전에 코를 틀어막아 호흡을 진정시켰다.
“후우.”
침착하자.
일단 주위에 인간은 없다.
아무리 묶여 있어도 상태를 살필 시간은 있다.
손을 뻗어 다리를 더듬었다. 금속 재질의 무언가가 잡혔다.
다행히 무리하게 뽑아내려 하지 않았는지 주위에 상처는 없었다. 약간의 틈이 있어 피도 잘 돌고 있었다.
이것만 끊을 수 있다면 뛰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휴대폰은 없고.’
이딴 상황을 만들면서 퍽이나 휴대폰을 내버려 뒀겠다.
기대를 안 했더니 실망도 없었다. 나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주위를 더듬었다.
그때, 멀리서 말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새까만 공간에 선 형태로 빛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면이 이루어졌다.
오랜 시간 어둠 속에 있었던 탓에 빛을 받자 눈이 시큰거렸다.
“잘 있었니?”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감쌌다.
누군가 새하얀 빛을 뒤로하고 걸어 들어왔다.
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형… 형님.”
‘응?’
내가 형님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아니, 우선 이 말은 내 의지로 내뱉은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가 대체 어디냐고 물으려 했지, 영문도 모를 소리나 하려고 입을 연 게 아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당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내 입에서는 계속해서 두려움에 전 목소리가 나왔다.
“죄, 죄송해요…. 제가,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다시는….”
“뭐?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루카.”
“다시는 안 그럴게요, 형님.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제가 제대로 챙길게요. 정말이에요. 살려 주세요….”
“루카.”
상대방의 다그침에 미친 듯이 무언가를 중얼대던 입이 멈췄다. 상대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노려봤다.
모르는 인간이 노려보거나 말거나 어쨌든 내게는 다행이었다.
자꾸 입을 열면 열수록 내 머릿속에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차올랐고, 그 때문에 이 상황에 대해 알아보려는 시도가 족족 실패했으니까.
나는 이제서야 점점 맑아져 가는 의식으로 상대방의 말을 되짚었다.
‘지금… 날 보고 루카라고 했지.’
당연히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자기 전 읽었던 책에 루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큰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을 착각했거나, 나만 모르는 가명을 쓰는 납치 현장이거나, 아니면 둘 다거나.
하여튼 밤새 묶어 둔 이유가 있을 테니 당장 나를 죽이진 않을 것이다. 좀 더 상황을 파악할 시간이 있다.
나는 겁을 먹은 척 주위로 눈을 굴렸다.
‘딱히 위험한 건 없고.’
방 안은 놀라울 만큼 텅 비어 있고, 문 주위에 사람 둘이 서 있다. 물리적으로 이들을 떨쳐 내고 여길 나갈 방법이 없어 보인다.
어떻게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해 내가 루카가 아니라는 것을 설득해야만 한다.
내가 뜻대로 입을 다물고 있자, 짐짓 엄한 얼굴을 지어 보였던 ‘형’이 부드럽게 표정을 풀어 내며 입을 열었다.
“많이 기다렸겠구나. 안 그래도 네 상태에 대해 알아보고 오는 길이야.”
“…상태?”
“그래, 네 말이 맞았어. 네가 약을 먹지 않은 게 아니었어.”
약?
갑자기 뜬금없는 주제가 나왔다.
맥락을 알 수 없는 주제와 더불어 나를 오랫동안 알아 온 듯한 말투가 상당히 거슬렸다.
‘…그런데….’
뜬금없다 여기면서도 마음속에서는 불길함이 엄습했다. 아무것도 짚이지 않았던 아까와 달리, 이제는 대강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내가 정보를 더 끌어내려 입을 열 필요는 없었다. 상대는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금세 말을 이어갔다.
“네 병이 심해졌어. 그동안 마셔 왔던 양으로는 효과가 들지 않을 거라고 하셨어. 미리 알아채지 못하다니, 전부 내 잘못이야. 오해해서 미안해.”
“…병이라니?”
“뭐? 이런…. 많이 아팠구나. 이렇게 될 때까지 대체 다들 뭘 한 거지?”
날카로운 물음에 문가를 지키고 선 이들이 쩔쩔매며 무어라 해명했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잔뜩 호통치며 잘못을 묻는 동안,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네 병’, 약, 형, 그리고 루카.
심장이 더욱 빠르게 뛰었다.
이쯤 되니 아까 읽었던 책의 등장인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루카’도 형이 있었고, 원인 모를 불치병을 앓으며 약을 먹고 있었으니까.
말이 안 되는 우연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그 반응을 병세 악화에 대한 충격으로 여겼는지, 상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양을 늘렸으니 이제 괜찮을 거야. 그보다 네가 지난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구나. 이해해 줘. 네가 그 병 때문에 폭주해서 예전 같은 사고를 내서는 안 되니까…. 전부 널 위한 일이었어.”
그가 손짓하자 문가를 지키고 섰던 사람 하나가 검은 나무 상자를 건넸다.
뒤에서 들어오는 불빛 덕에 내용물이 선명히 보였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리스털 병이 잔뜩 담겨 있었고, 새까만 액체가 상자의 미세한 움직임에 따라 찰랑거렸다.
처음 보는 물건이었고, 동시에 내가 잘 아는 물건이었다.
아까 읽은 책에서 ‘형’이 동생의 인생을 망치는 데에 써먹었던 약물이 현실에 존재한다면 꼭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이건….”
“그래, 겉보기에는 네가 여태까지 마셨던 것과 똑같지. 농도를 조금 높이고 양을 늘린 게 다라서 거부감이 들진 않을 거야.”
그가 크리스털 병 하나를 뽑아 얼굴 앞에 들이댔다.
“그래도 학교는 제날짜에 갈 수 있게 되었구나. 잘못하면 영영 못 가게 될 줄 알았는데, 다행이지?”
“…….”
“그러고 보니… 어제 이미 약을 두 병이나 마셨다고 들었는데, 연락이 좀 늦었네. 마셔 봐야 이번 약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가 혼자 쓸데없는 말을 길게 지껄였다.
그런 말을 듣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루카에게는 병이 없다.
형이 말한 그 ‘폭주’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
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 이런 지하에 갇혀 있을 이유도 없다.
그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재능을 타고난 인물이 이 모양으로 사는 건 전부 형에 의한 것이다.
마법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출생 순서 따위는 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오로지 마법이 강한 순서대로 작위를 물려받고, 가주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형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수월하게 가주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루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랬겠지.’
여섯 살이 되어서야 마력이 발현된 형과 달리, 루카는 고작 세 살에 형보다 더 높은 수준의 마력을 사용했다.
그 누구도 루카가 가문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더 강한 자가 태어난 이상 자신이 가주가 될 가능성은 없었기에, 형은 루카의 마력을 틀어막기로 결심한다.
내내 형이 지껄여댔던 그 약은 병을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마력을 죽이는 독이다.
반평생 그 독을 마셔 온 루카는 형의 바람대로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천천히 죽음에 가까워진다.
내 시선이 그의 손에 들린 투명한 약병에 닿았다.
분명 아까 ‘병이 악화되었다’고 했다.
그건 형의 식대로 하자면 독으로 찍어누를 수 없을 만큼 루카의 마력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효과가 떨어진 바람에 약을 먹지 않은 걸로 오해한 모양인데.’
내 입에서 난 영문 모를 소리까지 종합하면 상황이 대충 그려진다.
독을 먹지 않았다고 오해해 동생을 빛도 들어오지 않는 곳에 처박아 두는 형이 세상에 어디에 있나.
그러고서 동생을 위한 일이었다고 하다니, 이렇게 뻔뻔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면 차라리 행복하지.’
루카가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다시 골방에 처박혀 살 즈음, 형은 제 손으로 직접 루카를 죽인다.
약을 먹여 천천히 말려 죽이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스무 살에 죽는 놈의 이름으로 불리고, 또 그 상황에 놓여 있는 것 아닌가.
‘미쳤군.’
나는 그제야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빛이 없었을 때와 달리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딘가 일상적이지 않은, 낯선 시대와 지역의 옷차림. 시야를 가리는 덥수룩한 머리카락, 뼈만 남은 신체, 그리고 이상할 만큼 푸르죽죽한 피부.
이건 나의 몸이 아니었다. 죽었다 깨나도 내가 아니었다.
차라리 정말 형이 꾸며 낸 병에 걸려 형이 만든 독약을 마시며 살다 스무 살이 되고 죽는 엑스트라의 몸이라 하는 게 더 납득 갈 지경이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쏟아졌던 사죄와 처음 보는 ‘형’을 향한 공포까지 고려하면, 더더욱.
나의 정신이 그 미친 소설의 조연 몸에 옮겨진 것이 아닐까.
그 가설 외에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말이 되는 일인가를 차치하고, 내게 전해지는 모든 감각은 현실이었다.
미친 상황이 닥쳤을 뿐 내 지각이 미친 것이 아니다. 그 증거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오히려 묘한 안도감이 느껴졌다.
“서론이 너무 길었구나.”
내가 듣지 않는 걸 알았는지, 그가 말을 하다 말고 병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주의를 일깨웠다.
푸른 빛이 도는 검은 독액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긋하게 말했다.
“지금 바로 마셔, 루카.”
“…!”
하인들의 눈이 커졌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평소 복용량의 두 배를 마셨다.
그 상태에 더 강력하게 만들어진 약을 또 마시라고?
‘…이론적으로는 죽을 수도 있어.’
하인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누군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저, 도련님…!”
“할 말이 있나?”
부드러운 어투에도 뜻은 명확했다.
하인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사죄하고 밖으로 나갔다.
결국, 이 널찍한 지하실에는 나와 상대방만이 남았다. 그가 내 얼굴을 살피더니 다시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죽지 않아. 날 믿어. 전부 널 위한 일이라는 걸 알잖아.”
웃기네. 저놈이 그 약물의 위험성을 모를 리가 없다.
동생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 불가능한 말이다.
‘…미친 새끼.’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맥이 뛰는 소리가 점점 고막을 울렸다.
간신히 참아 냈던 두려움이, 둑이 무너진 것처럼 온몸을 덮쳤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 순간, 눈앞에 새하얀 빛이 나타났다.
띠링―!
〈 Chapter 0. 모든 시작은 어렵다 〉
제안: 최적의 선택을 하세요. (0/1)
* Route 1 ― 〈 Chapter 1. 너 자신을 도우면, 신도 너를 돕는다 (1) 〉
* Route 2 ― 〈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