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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의 전승자-53화 (53/206)

53. 넌 끝났어

지구로 넘어가는 순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느껴지는 변이체의 살의가 나를 맞이했다. 이것은 초감각이 없더라도 느낄 수 있었을 정도다.

크아아아!

누워서 버둥거리던 녀석이 내가 나타나자 포효를 지르며 더욱 발광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나를 갈기갈기 찢어서 씹어먹고 말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전해져 온다.

방심은 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녀석을 요리할 생각이다. 슈바르거트에 오러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지난번 도플갱어와 싸울 때는 다르다.

지난번 단검을 던졌을 때는 녀석의 피부에 흠집도 나지 않았지만 직접 쳐보면 어떨까? 그런데 검에 오러를 불어넣는 중에 팔목에서 약간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미리 장착했었던 악마용 공격 팔찌에 새겨진 많은 마법진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오러에 반응하여 작동하는 물건이었나. 팔찌로 스며들어 간 오러는 팔찌 안에서 약간 다른 성질을 가진 오러로 변환되어 나오고 있었다.

그 양이 매우 미미하긴 하지만 아마 변이체에 더욱 강한 위력을 내는 오러로 변환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그렇다면 시험해보면 된다.

조심스럽게 녀석에게 접근했다. 비록 일어서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긴 하지만 변이체란 놈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데 특화된 놈들이다.

촤악!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일정 간격으로 들어서자 녀석이 팔로 땅을 후려쳐서 공중으로 몸을 띄우더니 긴 다리를 휘둘러왔다. 개구리처럼 뭉툭한 발가락이 달린 커다란 발이 마치 채찍처럼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비록 마비 독에 당해 정상이 아니라곤 하지만 그런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속도나 위력은 5성 기사의 검격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어디 제대로 맞기라도 하면 중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물론 맞았을 때 이야기다. 나는 이제 저 정도 공격을 쉽게 맞아줄 정도로 약하지 않다.

녀석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두 번째 다리 공격이 날아왔다.

카캉!

슈바르거트를 들어 두 번째 공격을 받아냈다. 어렵지 않게 막아냈지만, 체급의 차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뒤로 세걸음 정도 밀려났다.

녀석이 소형급에 속하는 변이체라고 해도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내 몸에 비한다면 훨씬 크다. 그리고 수중형이나 비행형이 아닌 육상형 변이체는 보통 생물보다 밀도가 높다고 해야 하나? 같은 크기라고 해도 훨씬 무겁다.

한 번의 충돌이었고 뒤로 밀린 것은 나였지만 손해를 본 것은 녀석이었다. 녀석의 다리에 상처가 났다. 길게 갈라진 피부에서 피가 아닌 투명한 진액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변이체를 상대로 검으로 상처를 내다니 전생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저 상처가 치명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녀석들의 치유력을 생각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있던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꿰에에에!

다시 바닥으로 쓰러진 녀석이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설마 상처를 입을 줄은 몰랐던 것일까? 자존심이라도 상했다는 건가? 아니 녀석들에게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녀석이 다시 팔과 다리를 이용해 바닥을 치며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덩치를 이용해 나를 깔아뭉개 버리겠다는 움직임이었다.

나는 상체를 숙이고 앞으로 몸을 던졌다. 뒤통수 뒤로 녀석의 손끝이 스쳐 지나가며 싸늘한 바람이 목덜미를 휘감았다. 그러는 사이 내가 휘두른 슈바르거트는 녀석의 뱃가죽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적으로 녀석과 내 자리가 바뀐 모양새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득을 본 것은 나다. 얕지만 뱃가죽이 길게 갈라진 녀석이 입을 쭉 찢으며 기묘한 웃음을 지었다.

케케케케!

이놈이 갑자기 왜 저런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금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녀석의 뒤편으로 통로가 열려있었다.

한마디로 녀석은 나의 퇴로를 막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틀린 생각은 아니다. 나는 여태까지 아노더스에서만 통로를 열고 닫았지 한 번도 지구 쪽에서 통로를 닫은 적이 없다. 그래서 지구에서 열리는 통로의 위치는 항상 고정된 상태였다.

녀석이 이 방 안의 물건들에서 어떤 기억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귀신같이 그 맹점을 파고들었다. 변이체라는 놈들은 다른 부분에서는 조금 멍청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데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들이다.

내가 여태까지 지구에서 통로를 닫은 적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지구에서 통로를 닫았을 때 만에 하나라도 통로를 다시 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노더스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나는 이곳에서 어떤 여생을 보내게 될까? 어떤 방식으로든 그 시간이 지옥과 아주 가깝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 두려움이 지구에서 통로를 닫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캉! 캉! 캉!

몇 번의 공격을 주고받았다. 녀석은 좀 전과 다르게 방어적으로 나왔다. 팔과 다리에 상처는 늘어나고 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차피 내가 도망칠 곳을 막아놨다는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녀석의 움직임이 미묘하지만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마비 독의 효력이 떨어져 가는 모양이었다.

케케케케!

녀석이 계속해서 웃는다. 변이체는 저런 감정이 있는 놈들이 아니다. 녀석들에게 감정 따위는 없다. 아마도 오랜 세월 속에서 저런 식으로 인간을 도발하는 방법을 학습했을 것이다.

효과가 없다고 하지는 못하겠다. 녀석이 웃을수록 나는 확실히 조급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마비 독의 효과가 끝난다면 나에게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럼 내가 뒤로 물러난다면 녀석은 어떻게 반응할까? 나는 검을 내리고 방 밖으로 도망치듯이 움직였다.

녀석이 따라 나오지 않을까 조금 기대했지만, 녀석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내가 아주 멀리 사라지거나 한다면 그때부터 추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모양이다.

케케케케!

녀석의 기분 나쁜 웃음이 한 번 더 울려 퍼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한 것은 나였는데 이젠 반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마탑에서 가져왔던 물건 중 직접적으로 전투에 사용할만한 물건은 많지 않다. 나는 악마용 단검을 아공간에 다시 집어넣었다. 들고 있긴 했지만 차마 사용하진 못했다.

악마의 피부를 쉽게 가를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슈바르거트로도 충분히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단검의 날이 너무 얇다. 발킬라이 광석이라는 것을 나는 오늘 이전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아마 굉장히 희귀한 광석인 모양인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 종이처럼 얇게 가공해서 칼날을 만들어놨다. 아마 한번 찌르면 바로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마비 독을 하나 꺼냈다. 내가 마비 독을 꺼내는 것을 보더니 녀석이 반쯤 벌어져 있던 입을 갑자기 꽉 다물었다.

아무래도 순순히 삼켜주지는 않을 모양이다. 적어도 녀석이 기분 나쁜 웃음소리는 봉인하는 효과를 봤다. 그런데 이게 마비 독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삼키기 전에 순간적으로 봤을 가능성도 있다. 나는 마비 독을 집어넣고 이번에는 악마용 피부 독을 꺼냈다. 병의 모양은 비슷한데 안에 든 액체의 색이 다르다. 마비 독이 푸른색이라면 피부 독은 옅은 보라색이다.

피부 독을 꺼내자마자 녀석은 다시 입을 열고 웃었다. 확실히 구분을 하는 모양인데 아무리 그래도 비슷한 것은 경계를 해야 하지 않나 싶지만, 이것이 변이체다. 사람 죽이는 방법 외에는 묘하게 멍청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녀석은 어떻게 마비 독을 구분했을까 생각해보니 녀석의 능력을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녀석은 마비 독이 든 병을 삼키면서 그것에 대한 기억도 읽은 모양이다. 그럼 나도 가능할까 잠시 생각해봤는데 나는 변이체가 아니니 유리병을 삼키고도 멀쩡할 자신이 없다.

일단 녀석이 마비 독을 경계하고 나를 따라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면 어쩌겠나 그냥 싸워야지.

다시 싸울 자세를 취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어설프게 몸을 일으켰다. 이제 제법 마비 독이 풀린 모양이다.

긴 팔다리의 이점을 활용해서 녀석이 멀리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계속 피하거나 받아냈다. 받아낼 때마다 녀석의 팔다리에는 검상이 생기지만 치명상은 아니다. 녀석의 입장에선 생채기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묵묵히 계속 그것을 반복했다. 공격을 받아낼 때마다 뒤로 몇걸음은 밀려나지만 그 자리에 다시 복귀했다. 변이체도 내가 다시 통로로 숨는 것을 막겠다는 듯이 자리를 지키며 내가 물러설 때도 따라 나오지 않았다.

스승님의 지옥 훈련 덕분인지 체력적으로는 아직 여유가 있지만 몸에 가해지는 충격에 의해 관절에 이상이 생겼는지 재생력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거리가 벌어졌을 때 잽싸게 사탕을 한 주먹 꺼내 입에 털어 넣고 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스승님에게 배운 반응 속도를 극대화하는 훈련 방법이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스승님이 내가 변이체를 상대할 것을 알고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변이체를 상대하기에 최적의 전투법이었다.

반복된 전투가 이어졌다. 녀석의 팔다리를 걸레로 만드는 것 그것이 내 목적이었다. 그렇게 만든다고 해도 변이체 놈들에겐 치명상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다. 녀석들의 끈질긴 생명력은 도플갱어를 상대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나도 겨우 팔다리 살을 좀 썰어놓는 것으로 승부를 볼 생각은 아니다.

녀석의 상태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며 공격에 강한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반면에 그만큼 녀석의 팔과 다리에 상처도 깊어지기 시작했다. 내 경지가 올라서인지 아니면 악마용 공격 팔찌가 그만큼 효과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효과가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전투 중에 비어있는 한손에 들고 있던 약병의 뚜껑을 땄다. 녀석이 그것을 봤는지 경계하는 움직임을 조금 보였지만 그것이 다였다. 마치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군용 화기나 화학무기에도 끄떡없이 버티며 사람들을 학살했던 놈이다. 녀석들은 두려움을 모른다.

마비 독에 당하는 것도 아마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비 독에 중독되었을 때도 내가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학습한 것이다. 다만 경계는 한다. 그래서 녀석의 입은 꾹 다물어져 있다.

뚜껑이 열린 약병은 녀석의 주둥이에 들어가는 대신 옅은 보라색의 액체를 흩뿌렸다. 엉망이 된 녀석의 팔다리에 뿌려진 액체가 스며들었다.

케케케케!

역시 별것 아니라는 듯이 녀석은 웃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나를 잡아 죽이겠다는 듯이 손을 뻗어왔다. 녀석의 손을 쳐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계속 뒷걸음을 쳤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처음으로 지구에서 통로를 닫고 새로 열었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계기와 용기가 필요했을 뿐이다.

언제까지 기상연구소에 머물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떠돌이 변이체가 두 번이나 방문했다. 가만히 있으면 또 어떤 녀석들이 찾아올지 모른다.

새로운 거점을 찾기 위해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태백시에 가려고만 해도 상당한 거리다. 통로를 열고 닫지 못한다면 지구에서 며칠을 야영하며 지내야 한다. 나 혼자 산다면 모를까 며칠이나 연공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고 하면 누군가는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를 챌 것이다. 아니 스승님이라면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이미 눈치를 채고 계실 것이다.

에인프라흐 공작을 처음 만났을 때 공작은 멀리서 내 기운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을 의심했었다. 그것을 한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스승님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언젠가는 스승님에게 내 능력을 먼저 털어놓을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통로 너머로 녀석이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 것을 구경하며 사탕을 한 주먹 꺼내 씹었다. 내가 나타나는 지점을 막아놓고 나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녀석에게 한 방 먹인 셈이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피부 독의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효과가 없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서 들어가 싸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역시 마탑의 물건이라고 해야 할까. 마비 독의 효과가 조금 늦게 나타났던 것처럼 피부 독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피부 독이 뿌려졌던 녀석의 팔과 다리에 울긋불긋한 반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효과는 생각보다 굉장했다. 녀석이 미친 듯이 뒹굴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피부 독이 한 병 밖에 없었던 것이 조금 아쉬울 지경이다. 녀석이 끝이 뭉툭한 손가락으로 내가 공들여 포를 잘 떠 놓은 팔다리를 마구 긁기 시작했다. 스스로 상처를 후벼파내는 꼴이었다. 내가 입힌 상처를 녀석이 더욱 후벼파며 흘러나오는 진액으로 바닥이 흥건해질 정도였다.

이제 슬슬 끝을 볼 시간이다. 마탑에서 가져온 물건 중 유일하게 인간에게도 해를 입힐 수 있다고 설명이 붙어있는 섬광탄을 꺼내 들었다. 기사가 시야를 상실하는 빛의 34배의 위력이라고 했던가 그 정도면 눈을 감고 있어도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사용 방법은 기다란 원통형의 막대기 끝에 나온 심지에 불을 붙이고 던지면 된다고 쓰여 있다.

심지에 마법으로 불을 붙이자 심지가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지가 거의 끝에 도달할 때쯤 통로 안으로 던져넣고 통로를 닫았다. 이러면 나는 전혀 피해를 볼 일이 없다.

몇초 후에 다시 통로를 열었을 때 원통형의 섬광탄은 폭발했는지 잔해가 굴러다니고 있었고 변이체 녀석은 눈을 제대로 당했는지 유난히 빨간색이었던 눈의 초점이 흐려져 있었다.

다시 통로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녀석은 피부 독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이제는 한동안은 눈을 볼 수도 없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다고 봐야 한다.

여태까지 내가 팔과 다리만 공격한 것은 최대한 안전하게 전략대로 전투를 이끌어가기 위함이었지 몸통이나 머리를 공격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녀석의 반격은 매서웠지만 눈감고 하는 공격에 맞아줄 정도로 내가 둔한 편은 아니다. 전과 과 다르게 공격적으로 나서 찌르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녀석의 몸 여러 군데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5성에 올랐는데도 아직 녀석의 뼈를 잘라내지는 못한다. 역시 이 녀석들을 제대로 상대하려면 최소 6성의 경지에는 올라서야 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발악하듯이 마구 휘두르는 녀석의 팔을 피해내며, 있는 힘을 다해 가슴 정중앙에 슈바르거트를 박아넣었다. 내 힘을 다했는데도 겨우 한 뼘 정도가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것은 조금 실망스럽지만, 처음으로 상처에서 투명한 점액이 아닌 불결하네 느껴지는 검은색의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케에에에엑!

녀석이 고통스러운 비명이 나를 더욱 흥분시켰다. 녀석은 처음부터 기분 나쁜 웃음 말고 이런 비명을 질렀어야 했다. 이것이 훨씬 효과가 좋지 않은가?

“케케케케!”

나는 녀석의 웃음소리를 한번 따라 해 주었다. 효과가 있었는지 눈도 보이지 않는 녀석이 발광하며 내가 있던 자리에 마구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미 자리를 벗어난 나는 한 번 더 가까이 접근하며 가슴 정중앙에 생긴 커다란 상처에 약병 하나를 거꾸로 박아넣었다.

가슴에 박아넣은 혈액독이 담긴 약병에 담긴 붉은색의 액체가 빠르게 녀석의 안쪽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약병에서 기억을 읽었을까 녀석이 재빨리 가슴에 박힌 약병을 뽑아내서 던졌지만 이미 대부분의 혈액독은 녀석의 가슴속으로 흘러 들어간 뒤였다.

이 독은 즉효성인지 녀석의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가슴을 부여잡고 녀석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넌 끝났어, 이 새끼야.”

간만에 내뱉어 본 한국어, 허점투성이가 된 녀석의 목에 신검 슈바르거트가 박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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