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킬각
아마도 저것들이 윌리암 사일러스가 믿고 있던 전력일 것이다.
그런데 호위로 붙어있던 스무명 정도가 모두 그런 전력이라고 한다면 숫자가 조금 많다. 딱히 오러를 쓰는 자들이 많이 느껴지진 않았다. 몇 명 있긴 했지만, 일반적인 4성 기사 수준이었다.
그 정도를 윌리암 와일러스가 믿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즉 그 스무명은 보통 반마가 아닌 변이체로서 능력이 더 뛰어난 놈들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지금 보여주는 놈들의 전력에 따라 앞으로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이 바뀌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약하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두 명의 전략 병기를 앞세워 쓸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고 만약 그 호위대 스무명이 모두 7성급의 강자라면 오히려 숙이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흐아아아아!”
반마들을 가르고 나타난 세 명이 괴성을 지르며 동시에 변이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반마들은 내가 보아왔던 진짜 변이체와 조금은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비슷한 부분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지금 저 세 명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저걸 어디서 봤더라?’
워낙 많은 변이체를 보아왔고 오래전 기억이다 보니 금방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 것만은 확실했다.
세 명 모두 변이체로 변하면서 팔다리가 길어지고 키가 커졌지만, 오히려 몸은 말랐다. 마치 미국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였던 슬렌더맨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외모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변이체중에 보기 좋은 모습을 가진 녀석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나와는 달리 변신 매너를 지켜주는 것인지 김경식은 그런 반마들을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때 변이를 마친 세 녀석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김경식이 아닌 바닥에 널려있는 반마들의 시체 조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아!’
입 밖으로 소리 내진 못했지만 나는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저놈들과 비슷한 것을 어디서 보았는지 생각해냈다.
공교롭게도 저것들을 만났을 때는 전생에 김경식과 함께했을 때였다. 김경식은 어지간한 변이체와는 일대일로 맞섰을 때 전혀 밀리는 법이 없을 정도의 강자였다.
그런데 고전한 경우가 몇 번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저것과 비슷한 놈들을 만났을 때였다. 이름도 정해진 것도 없고 본 것도 처음인 변이체였다.
바닥을 구르는 녀석들의 몸으로 반마들의 시체가 마치 자석처럼 들러붙고 있었다. 바로 저것이었다. 전생에 저것과 비슷한 변이체를 만났을 때는 반마가 아닌 사람의 시체를 몸에 붙이며 급격하게 덩치를 키웠었다.
검을 사용하는 김경식의 특성상 가뜩이나 잘 죽지도 않는 변이체인데 시체를 마치 갑옷처럼 몸에 붙여서 덩치를 불린 녀석에게 직접 타격을 주지 못해 꽤 고전했었다.
지금 바닥에는 거의 백여구가 넘는 반마들의 시체가 널려있었고 그것을 녀석들이 모두 몸에 붙인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챘는지 김경식도 더 이상 변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달려들었다. 바닥을 구르는 녀석들의 속도가 더 빨라졌지만, 김경식을 따돌릴 정도의 속도는 아니었다.
몇초 되지 않는 사이에 김경식에게 따라잡힌 녀석을 김경식이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벌써 수십구의 시체를 몸에 붙인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계속 공처럼 몸을 굴렸다.
그리고 하나가 그렇게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에 나머지 둘이 바닥에 있던 시체들을 거의 다 몸에 붙이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순식간에 거대한 덩치를 가진 괴물 둘이 만들어졌다.
시체로 만들어진 거인 둘과 어중간한 덩치 하나가 김경식을 포위했다.
“장난하냐?”
김경식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한국어였기 때문에 알아들은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김경식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살았던 지구의 김경식도 고전했으나 결국 저 괴물을 이겼었다. 비록 숫자가 늘어났지만 내가 아는 김경식보다 수십 배는 강할 것 같은 저 김경식이 질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을 포위한 변이체 세 마리를 한번 비웃은 김경식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전투가 벌어졌다.
아직 여력이 있었는지 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김경식을 시체를 몸에 덕지덕지 붙인 녀석들은 감히 따라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변이체들이 느린 것이 아니다.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기사들보다 민첩하고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7성 기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속도를 가진 상대라는 것이 문제였다.
다만 김경식도 놈들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경식의 움직임이 뭔가 이상했다.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 같은 움직임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공격을 일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굳이 힘들게 적의 껍질을 벗기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김경식이 뭔가 준비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김경식의 의도를 금세 알 것 같았다. 김경식은 상대의 특정 부위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마치 구멍을 파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김경식은 전통적인 무인이 아니다. 지구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조차도 이쪽 세계에 오래 살다 보니 기사들의 사고방식에 물들어버린 모양이었다.
김경식이 허리춤에서 뭔가를 떼어내 여태까지 작업해둔 구멍에 사이좋게 하나씩 넣어주었다. 그리고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연신 헛손질만 하고 있던 변이체들이 김경식이 처음으로 뒤로 물러나자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김경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보통 수류탄으로는 이런 화력이 나올 리가 없다. 뭔가 개량된 폭탄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에게도 폭발로 일어난 충격이 전해질 정도였고 근처를 둘러싸고 구경하고 있던 반마들이 폭발에 휘말려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국방부 건물의 모든 유리창이 깨져 쏟아지고 폭발에 휘말린 부분이 크게 파괴되었다.
폭발로 일어난 화염과 먼지가 걷히고 나타난 모습에 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아···.”
세 마리의 거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시체가 사라졌다는 것은 내가 흡수할 기술들도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100번이 넘게 흡수할 수 있던 재료들이 사라졌다.
폭발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경식이 건물 안으로 빠르게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곧바로 밖으로 튕겨 나왔다. 안에서 십여마리의 변이체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모두 그 호위들일 것이다. 신체 강화가 주력으로 보였으나 다른 능력을 가진 놈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안에서 나온 변이체들은 능력 자체는 특이한 것이 없었으나 밖에 널려있는 다른 반마들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전성기의 변이체에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거의 그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해야할까.
강한 변이체들의 집중 공격을 받자 김경식은 고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러지지도 않았다. 위험할 때쯤이면 숨겨두었던 현대문명의 힘을 사용해 위기를 빠져나왔다.
타고난 싸움꾼이 노련함까지 갖췄다. 김경식의 싸움은 그런 것이었다. 나는 김경식의 그 처절한 싸움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윌리암 와일러스가 가진 전력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아직 호위가 전부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김경식의 발을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김경식이 약해서 그런 것일까? 그것은 절대 아니다.
“저 사람과 싸운다면 어떨것 같으십니까?”
“쉽지 않겠구나. 본신의 힘만으로 싸운다면 내가 7할은 이기겠지만 가끔씩 사용하는 저 도구들까지 생각한다면 반반이라고 본다.”
전투를 지켜보는 도중에 스승님에게 한 질문에 스승님은 그렇게 답하셨다. 옆에 있던 바이런 후작의 소감도 마찬가지였다.
“나와는 상성이 좋지 않네.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것 같군.”
김경식은 분명히 7성 기사도 상대해서 승부를 장담하기 힘들 정도의 강자였다.
두 명의 7성 기사가 있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은 윌리암 와일러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전체 전력은 동급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김경식과 변이체들의 전투는 길게 이어졌다. 거의 일진일퇴의 공방이었다. 전투 중에 큰 부상을 입은 변이체들도 보였지만 변이체에게 저 정도 부상은 하루 자고 일어나면 치유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게 밤새도록 이어진 전투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김경식은 힘을 다해 공격을 퍼부어 변이체들이 물러서게 한 뒤에 자신도 빠르게 물러섰다. 그리고 검을 집어넣으며 변이체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내일 보자.”
물론 한국어였기 때문에 그것을 알아들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영문을 모르는 변이체들은 서서히 사라져가는 김경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김경식이 사라짐과 동시에 파괴되었던 국방부 건물과 정원도 원형을 되찾기 시작했다.
하룻밤의 전투였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마신교는 큰 전력을 잃었다. 반마가 100명이 넘게 전사한 것이다.
그렇게 큰 피해를 감수하며 지켜낸 정성화는 과연 윌리암 와일러스에게 열쇠를 주었을까?
당연히 아니었다. 인간으로 돌아왔을 때는 반마들도 분명 인간의 감정이 있었기에 많은 동료를 잃은 반마들은 초상집이 분위기였다. 하물며 시체조차 건지지 못했다.
나도 혹시나 남아있는 시체가 있을까 해서 주위를 기웃거려봤지만 얼마 남지 않은 조각들을 이미 수거하여 워낙 꽁꽁 싸매어놓는 바람에 아쉽게도 능력을 전승받을 기회를 찾을 수는 없었다.
미친놈도 아니고 시체를 만져보겠다고 달려들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마신교쪽이 진정되고 나서 우리는 왕세자를 앞세워 윌리암 와일러스를 만나러 갔다.
“열쇠는 얻었습니까?”
왕세자가 윌리암 와일러스에게 물었다. 윌리암 와일러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표정 관리를 참 못하는 인간이다.
그런 속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인간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지 옆에 있던 정성화가 옆에 입을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적을 죽여야지요. 오늘 하루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악적은 내일도 저를 찾아올 겁니다. 제 목숨을 노리는 적을 처치해야 합니다. 적을 처치하기 전에는 열쇠가 있는 곳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전생에 운영하던 회사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을 때 티브이에 나와 뻔뻔하게 말을 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거짓말인 줄 알지만 그걸 윌리암 사일러스에게 알려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군. 그럼 오늘도 힘을 내주기를 바라네.”
왕세자는 그런 뒷사정을 전혀 모르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지만, 윌리암 사일러스의 속은 좋지 못한 것 같았다.
“우리를 도울 생각은 없는가? 우리가 실패하면 당신들도 이 던전을 공략하기 힘들 텐데?”
윌리암 사일러스의 제의에 왕세자가 고민에 빠지려고 할 때 내가 끼어들었다.
“우리가 그렇게 서로를 걱정해줄 정도의 사이였던가?”
한시적 동맹이라고는 하지만 균형이 무너지면 바로 상대방의 목줄을 끊어버리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아슬아슬한 동맹이었다.
나는 반쯤 강제로 왕세자를 데리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밤이 되자 김경식이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는 정말 결판을 보기로 했던 것인지 호위 전력이 전부 밖으로 나와 김경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김경식은 학습 능력이 있었다. 어제 다시 보자라는 말을 했을 때 이미 드러난 일이었다.
김경식은 어제와 달리 전투에 들어가자마자 가지고 있던 모든 폭탄을 모여있던 변이체들에게 퍼부었다. 그런 김경식의 전술을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변이체 중 상당수가 큰 부상을 입어 전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었다. 몇 마리는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 회복 불능 수준의 타격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초반에 마신교 측에서 상당수 전력을 잃었기 때문에 다시 전투는 백중세로 흐르고 있었다.
상황이 좋게 흘러간다. 지금이면 가능할까? 지금 김경식을 돕는다면 윌리암 와일러스와 그 일당들을 처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틈을 본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스승님이 바이런 후작과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기막을 쳐서 들리지 않고 있지만, 내 생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생에 했던 게임에서 이런 상황을 보고 킬각이라고 했던가? 바로 그 킬각이 지금 날카롭게 뜬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