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계의 전승자-150화 (150/206)

150.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보이지 않던 전투가 보이기 시작했다. 초월급을 넘어선 절대자들의 싸움이었다.

나는 광검제와 마왕의 전투를 보면 뭔가 배워서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바로 접어야만 했다.

검술이나 몸의 움직임이나 그런 것이 무의미한 수준이었다.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 따라 할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마법사도 아닌 인간이 수백미터 상공에서 초음속 전투기처럼 비행하며 오러를 기관총처럼 쏘아대는 것을 뭐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난사하듯 쏘아내는 오러가 모두 유도탄처럼 목표물을 쫓아서 정확히 명중한다. 그 위력이 고층 건물 수십 채는 증발시켜버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저런 것은 헐리우드 히어로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다. 아마 영화를 저렇게 만들었으면 욕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 공격을 서로 미친 듯이 퍼붓고 있었다. 따라 할 엄두를 내지 못하니 배울 것도 없다. 항상 열심히 일하고 있는 능력인 ‘성장’조차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저건 아직 몸을 푸는 수준이야.”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옆에서 하는 말을 들으니 더욱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힘을 가지고 왜 그렇게 사셨던 겁니까?”

용사들이 힘들게 살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모두 잘 먹고 잘살았다. 하지만 이건 규격을 넘어선 힘이다. 마음만 먹었다면 제국이고 뭐고 하루아침에 뒤집어버릴 수 있는 힘 아닌가?

심지어 용사 중의 하나였던 아렌 세인티아는 성국의 부패한 신관들에게 모함을 받아 처형당했다. 그 결과로 신성 왕국이 사라지긴 했지만, 용사들이 직접 힘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런 귀찮은 짓을 왜 하겠니?”

“아쉽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애들도 그럴걸? 지르크만 빼면 모두 그랬을 거야.”

광검제만 빼면 모두 만족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광검제는 아직 살아있다. 광검제가 원했던 삶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광검제가 두 번째 마왕을 처리하고 나서 그 이후에 무엇을 했는지는 기록된 내용이 거의 없다. 가끔 나타나서 무언가를 하긴 했지만, 금방 다시 사라지고는 했다. 그 사라진 시간 동안 광검제는 지구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는 와중에도 광검제와 마왕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천동지할 힘의 대결에 놀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저것은 전투가 아니다.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의 말대로 대련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바로 아래 지상에는 제대로 서 있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격렬한 공방을 나누던 둘은 어느새 허공에 멈춘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진짜로 할 생각인가 봐 잘 보렴”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경고했고 나는 눈에 더욱 힘을 주었다. 둘이 뭔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지만, 내용을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광검제와 마왕의 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정확히는 움직였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모든 것이 끝나있었다.

소리도 없었고 충격파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나 광검제와 마왕 사이의 공간에 검은색의 균열과 같은 것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보았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시커먼 균열 저편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수억, 아니 수십억은 될듯한 무언가가 저편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몸이 떨려왔다. 무섭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몸의 말을 듣지 않는다. 수십억의 무언가가 아직도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툭!

“거기에 너무 빠지면 안 돼”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어깨를 툭 치며 나를 깨웠다. 떨리던 몸이 바로 멈췄다.

“제가 본 것이 뭡니까?”

“다른 세계, 저 양반들이 힘을 좀 쓰면서 공간이 잠시 찢어진 거야. 그 틈으로 다른 세계가 침범할 뻔 한 거지.”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이해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가지는 알 것 같았다. 저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는 몰라도 저것은 1할 아니 1푼만 넘어온다고 해도 이 세계는 위험하다.

“엄청나게 위험한 것 아닙니까?”

“그렇지는 않아. 다른 세계에 간섭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 그보다 방금 그거 잘 봤어?”

“예, 뭐 보기는 잘 봤습니다.”

“경험인 거야. 이것을 한번 본 적이 있는 것과 아닌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

그럴 것이다. 진짜 마왕과의 전투 때 이것을 처음 봤다면 그리고 마왕은 이미 경험이 있어 몸이 굳어버리지 않았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교육인 거군요.”

“말했잖아? 여긴 훈련소라고 처음이랑 중간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최종과정만 보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얼마나 수련해야 저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차원의 벽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찰나의 시간이긴 하지만 그것을 힘으로 찢어버린 것 아닌가? 내가 저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까?

그때 공중에서 마주 보고 있던 광검제와 마왕이 지상으로 천천히 하강했다.

“이제부터가 지금의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땅에 발을 붙인 광검제와 마왕이 다시 격돌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속도에 움직임이었다.

초감각으로 움직임이 잡히지 않는다. 그 정도로 빨랐다. 보는 힘을 부여받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좀 전에 비하면 확실히 인간적인 전투였다.

검술을 사용하고 몸을 움직이는 전투였다. 나는 이 전투를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모든 움직임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성장’도 미친 듯이 일하고 있었다.

좀 전에 비해 인간적이라는 것이지 눈앞에서 벌어지는 전투도 충분히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저렇게 움직이려면 어느 정도나 되어야 할까? 지난번 에인프라흐 공작이 보여준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이 전투가 몇 수 위에는 있다고 생각됐다.

광검제와 마왕의 전투가 슬슬 눈에 익기 시작했을 때 약속이나 한 듯이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리고 광검제가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이제 직접 해봐”

“예?”

아무리 임시로 힘을 얻었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가브리엘 스피노자처럼 걷지도 못하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죽지 않는다. 그러니 해봐”

거절은 거절한다. 같은 느낌을 마구 내뿜고 있는 광검제에게 못하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검을 뽑았다. 슈바르거트를 본 마왕이 눈웃음을 지었다.

“나와 같은 검을 쓰는군. 좋은 공부가 될 걸세”

“잘 부탁드립니다.”

역시 이 마왕은 진짜 마왕이 아니다. 완전히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가짜 마왕인 것이다. 사이버 강사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인사가 끝나자마자 나는 마왕에게 달려들었다. 땅을 박차는 힘이 어색하다. 예전에 임시로 힘을 얻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어떻게 이길 수 있었지만, 상대가 다르다. 그때는 그냥 상급 마수였고 지금은 마왕이다.

그래도 죽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았으니 모든 힘을 동원해서 싸워본다. 언젠가 나는 교주와 싸우게 될 것이다. 일종의 체험학습이라고 해야 할까.

예상은 했지만,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내가 검을 두 번째 휘두르기 전에 이미 마왕의 검이 내 목 앞에 있었다.

“한번 죽었네”

그리고 다시 대련이 시작되었다. 움직일수록 몸이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른 세 번째 죽었네”

내가 서른 세 번을 죽는 동안 걸린 시간은 몇 분 걸리지 않았다. 그것도 마치 어린아이를 가지고 놀듯이 마왕이 나를 상대해줬기에 걸린 시간이다.

“검로를 읽을 생각을 하지 말아라. 지금 네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다.”

내가 한번 죽을 때마다 뒤에서 광검제가 한마디씩 조언을 한다. 물론 듣는다고 모든 것을 내가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난 천재가 아니니까.

그렇게 대련은 계속되었다. 내가 마왕에게 정확히 100번째 죽었을 때 광검제가 마왕과 교대했다.그리고 다시 나는 100번을 죽었다.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구경하고 있던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나서서 내 옆에 섰다. 정확했다. 200번이나 죽었지만,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 동안 성장했다. 절대 밖에서 경험할 수 없는 체험은 나를 급성장시키고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럼 잠시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말을 남기고 바닥에 주저 앉아 눈을 감았다. 순간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내게 부여됐던 초월급의 힘이 거둬진 것이다.

7성부터는 흔히 깨달음의 영역이라고 한다. 오러가 아무리 많아도 오러의 사용법을 깨닫지 못하면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스승님의 경우처럼 깨달음은 충분하지만, 타고난 오러의 길에 문제가 있어서 승급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6성 기사에 오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나 슬라이트, 자칼 같은 경우가 오히려 비정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맹렬히 회전하는 오러홀의 6개의 별 사이에서 또 하나의 별이 탄생했다. 그리고 오러홀에 가득 찬 오러를 빨아들이며 형제들처럼 몸을 키워나갔다.

예전 승급할 때와 다르게 정신이 점점 흐릿해진다. 정신을 잃는 것이 아니다. 마왕 그리고 광검제에게 당했던 200번의 죽음이 한 장면씩 차례로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나를 죽였던 모든 검로 그리고 그때 느꼈던 오러의 운용 방법, 기술 모든 것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성장’ 녀석이 돼지처럼 그것을 꾸역꾸역 받아먹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전과 다르게 바깥세상과 단절이 되어갔다. 전에 승급할 때는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두 듣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완전히 바깥과 모든 감각이 끊어지자 나는 작은 방에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색 공간이었다. 이것은 내면의 세계? 혹은 심상이라고 하던가? 이런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강한수, 대격변 이전 회사원 시절의 강한수가 보였다. 강한수는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피곤에 찌든 샐러리맨이 조금 야위면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싸늘한 표정이 되었다.

아마도 저것은 대격변 이후인 모양이다. 강한수는 계속 변해갔다. 표정이 변하고 느낌이 변하고 몸과 얼굴에 상처가 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잘 알고 있는 늙고 병든 강한수가 되었다.

강한수는 쓰러졌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몸을 웅크렸다. 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강한수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저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던가? 잘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말이 아니었다. 계속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으려고 할 때 바싹 마른 고목과 같은 강한수의 손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뻗어와 내 손을 거칠게 낚아채며 말했다.

“이번엔 지켜라.”

그리고 의식이 돌아왔다.

마왕 피체둘라는 어디로 갔는지 광검제와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정신 차렸네? 축하해”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가 나를 축하해줬다.

“예, 감사합니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

광검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7성 기사가 되었다. 나이를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경지에 올랐지만, 광검제의 말이 맞다. 이 정도로는 부교주를 상대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나는 더 강해져야만 한다. 그것을 먹기에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그래서 지금 이걸 먹어보려고 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나는 아공간에서 그것을 꺼냈다. 내가 꺼낸 환약을 지그시 바라보던 광검제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미친놈, 너 변태냐?”

역사 남을 정도의 광인이던 광검제에게 미친놈 소리를 들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극찬이 아닐까? 반면에 미레이 반 스트라이더는 깔깔대며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너 재밌는 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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