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 검사
왕세자와 나는 소영주를 다시 불러 영주성을 봉쇄했다. 하셀브링크의 병사들을 완전히 믿을 수 없기에 영주성을 봉쇄하는 것에는 왕세자가 데려온 호위 기사까지 동원되었다.
사실 내가 옆에 있는 것이 기사들 100명을 두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니까. 왕실 기사들을 다른데 이용하는 것이 훨씬 효율이 좋기 때문에 왕세자도 흔쾌히 허락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쓰러져있는 하셀브링크 자작부터 시작해 영주의 가족들부터 시약의 냄새를 맡게 한 것이다.
쓰러져 있던 자작이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요통을 일으켜 다시 쓰러진 사소한 사건을 제외한다면 다행스럽게도 영주의 가족 중에서는 반마가 없었다.
그다음엔 영주성에서 근무하는 사용인들을 검사하는 것이었다.
저녁이 지나 밤이 찾아오는 시간이었지만, 영주성에서 근무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불러냈다.
“준비가 끝났습니다.”
쓰러진 하셀브링크 자작 대신 일을 맡고 있는 소영주는 생각보다 업무수행 능력이 뛰어났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나온 것이겠지요?”
“예,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백명이 넘는 사람이 모여있었지만, 기침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왕세자가 지켜보고 있고 악마와 관련된 일이다.
충격을 받아 상태가 좋지 않은데다 허리까지 다친 하셀브링크 자작도 직접 나와 왕세자 옆에서 검사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 남자들부터 다섯 명씩 안으로 들여보내도록 하세요.”
“예”
먼저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이들은 검사를 받은 후 곧바로 영주성의 봉쇄에 다시 투입이 되어야 했다.
의외로 영주성에서 근무하는 기사와 병사 중에서는 반응을 보인 이들이 나오지 않았다.
“휴!”
기사와 병사들의 검사가 끝나자 옆에서 하셀브링크 자작이 큰 한숨을 쉬었다.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연신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그리 걱정되십니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지요.”
그렇지만 이 검사는 반마를 찾아낼 뿐이다. 그 외의 마신교는 찾아낼 방법이 없다. 물론 이 사실을 왕세자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럼 다음 사용인들을 불러들이세요.”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행정관, 치안관, 집사들이었다. 영주의 가족들을 제외한다면 가장 의심이 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 검사는 소영주가 대신하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내가 직접 일어나 약병을 들고 하나씩 냄새를 맡게 했다.
그런데 역시나일까. 반응이 일어났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반응이긴 하지만 확실하게 눈에 띄기는 했다.
갑작스러운 신체 반응에 반마들이 당황했다.
“거기 두 사람은 빨리 이쪽으로”
신체 반응이 나타난 세 사람을 제외한 두 사람이 눈치를 보며 내 뒤로 이동했다.
“뭐, 뭡니까?”
일이 돌아가는 것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하셀브링크 자작이 힘들게 몸을 일으키며 물어왔다.
“저것들은 반마입니다. 악마의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지요.”
“무, 무슨!”
내 말에 신체 반응이 나타난 세 사람이 크게 당황했다. 반마들의 검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공장과 창고의 목격자를 단단히 입막음했기에 영주성의 누구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당연히 눈앞의 반마 셋도 마찬가지였다.
“억울합니다!”
“영주님!”
“이런 말도 안 되는 시험으로 사람을 악마로 몰아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셋은 격렬히 항의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줄 유일한 사람인 하셀브링크 자작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브란델! 오크셔! 반즐리 자네들이 어떻게 이럴수가 있나! 나와 함께한지가 수십 년이 되었거늘!”
반마로 지목된 이들은 행정관, 치안관, 집사였다. 모두 영지의 중추적인 요직을 담당하는 이들이다. 자작과 비슷한 나이로 볼 때 아주 오랜 기간 자작의 옆에서 보필해온 가신일 것이다.
그러나 셋은 자작의 분노 어린 외침에도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억울함만을 토로할 뿐이었다.
“너희들 배신하고 반마가 된 것이 아니군?”
내 말에 약간이지만 세 사람이 반응했다.
“이곳에 근무하다가 마신교에 의탁한 것이 아니야.”
자작의 원통한 외침에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을 때 그렇게 느꼈다.
“말해봐라. 어차피 너희들은 오늘 이곳에서 죽는다.”
그러나 이 정도로 정체를 드러낼 생각은 없는지 셋은 침묵으로 대응했다. 말이 통하지 않을때는 검이 좋은 대화수단이라는 말이 있다.
“전하 잠시 무례를 용서하시길”
검을 꺼내기 전에 왕세자에게 허락을 받았다. 왕세자는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고 슈바르거트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피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나에게 가장 가까이에 있던 치안관의 가슴에 슈바르거트를 박아넣었다.
물론 피하려고 해도 피하지 못했겠지만, 정확히 심장에 검을 꿰뚫린 치안관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었다.
“끄아아아!”
슈바르거트를 통해 녀석의 생명력이 빨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자작님!”
행정관과 집사가 내 행동에 경악했지만, 그런 가증스러운 연기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효과는 있었다. 하셀브링크 자작이 자신의 오랜 가신이 검에 꿰뚫리는 것을 보며 엉덩이를 들썩거렸으니까. 그리고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 듯 계속 입술을 달싹거리고 있었다.
“하셀브링크 자작, 잘 보십시오. 이것이 사람으로 보입니까?”
내 검은 여전히 치안관의 심장을 꿰뚫고 있었고 치안관은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비틀고 있었다.
“사람은 심장을 꿰뚫리면 죽습니다.”
확실히 치안관은 힘을 빨아들이니 슈바르거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너희들은 그 연기가 언제까지 통할 것이라 생각하냐? 변이를 해서 덤비는 쪽이 살 확율이 조금 더 높지 않겠나?”
내 말에 행정관과 집사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는 것이 보였다. 물론 변이해서 덤비더라도 살 확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본인들은 아주 적은 확률이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없다.
그러나 두 사람보다 먼저 검에 꿰뚫려 있는 치안관이 먼저 반응했다. 치안관의 형제가 기괴하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액체 형태로 변하며 검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아하”
자연스럽게 신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보니 역시 내 짐작이 맞아떨어졌음을 알았다.
이것들은 도플갱어의 특성을 얻는 녀석들인 모양이다. 변이를 발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체 변형을 한 것을 보니 단순히 반마가 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추가된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히 이런 방법이라면 남부연합의 많은 귀족가에 쉽게 침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창고에서는 목격자들이 있었고 연출을 위해 변이를 마치도록 기다려주었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다.
스스슥!
변이를 일으키며 검에서 빠져나가려던 치안관을 다진 고기처럼 만들었다. 창고와 공장에서 처리했던 여섯 마리의 반마는 모두 신체 강화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덕분에 신체강화가 대략 세 번째 단계 정도에는 올라선 느낌이었다.
경지가 너무 급격히 높아진 덕분에 이제는 신체가 강화된다고 해도 큰 효과를 보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좋아지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눈앞의 세 반마가 모두 신체 변형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면 신체 변형 등급을 하나 더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신체 변형도 이제는 쓸 일이 없을 것 같지만, 세상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얻어둬서 나쁠 것은 없다.
“보셨습니까? 이것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작께서 알고 계시던 가신들도 아닐 겁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에 이 반쪽짜리 악마들에게 당했겠지요.”
하셀브링크 자작이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크크크”
행정관이 미친놈처럼 웃고 있었다.
“뭐가 웃기지?”
“수십 년을 함께 해온 친구라고 말하지만, 저 바보 같은 영주 놈은 2년 전에 우리가 모두 바뀐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더군. 그런데 오늘 갑자기 나타난 너는 한 번에 알아봤으니 이게 웃긴 일이지 않은가?”
“네, 네놈이 감히!”
하셀브링크 자작이 입에 거품을 물면서 행정관에게 삿대질을 하며 달려들려고 했지만, 소영주가 재빨리 달려들어 자작을 붙잡았다.
“진정하십시오. 아버지”
소영주에게 붙잡힌 자작이 난동을 피웠지만, 이미 허리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자작이 한창때의 젊은 소영주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이제 정체를 감출 생각도 없는 건가?”
“애초에 살려둘 생각도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
“그렇다면 굳이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할 필요도 없겠지.”
행정관은 반쪽짜리 변이체답지 않게 당당했다. 그 옆의 집사도 이미 모든 것을 내려놓았는지 이제 연기를 하지 않고 살짝 굽었던 허리를 펴고 있었다.
“너희는 왜 이런 짓을 하는가?”
“당연한 것을 묻지 마라 마왕님의 강림을 위해서지 않은가?”
“아니 그게 궁금한 거다. 마왕이 강림하면 너희들도 죽을 텐데 왜 마왕의 강림을 원하냐는 말이다. 설마 너희들은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건가?”
“그렇게 믿는 신도들도 있겠지. 하지만 우린 아니다. 마왕께서 강림하시면 이 세상에 풀 한 포기 남지 않을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세계의 멸망을 원하는 건가?”
“그렇다. 이 세상은 멸망해야 마땅하다.”
멸망론자인가? 지구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있긴 했었다. 대격변 이후 변이체가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멸망론자인지 사이비종교 단체인지 서울의 어딘가에 모여서 축제를 벌이다가 변이체에 의해 전부 죽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왜지?”
“긴 설명이 필요한가?”
“아니 가급적이면 짧게 해주면 고맙겠어.”
“그래? 그럼 짧게 해주지, 나는 썩어빠진 귀족에게 가족을 모두 잃었다. 답이 되었는가?”
“그쪽은?”
“나도 비슷하다.”
역시 그쪽인가? 대부분 사이비 종교가 그렇듯이 사회에서 소외되거나 세상 자체를 증오하는 사람들을 노린 모양이다. 사실 마신교는 진짜 존재하는 신을 믿으니 어떻게 보면 사이비도 아니다.
“그렇군.”
“이해하는가?”
“같은 일을 당해본 적이 없으니 이해한다고는 못하겠다. 그리고 그런 일을 당했더라도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하진 않았을 거야.”
“역시 귀족 놈들은 다 똑같지.”
보아하니 변이를 할 것 같지도 않고 더 이상 대화를 해도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예의상 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는 것으로 끝을 내려고 했다.
“포교자는 어디에 있지?”
“흥! 그걸 내가 말해줄 것 같은가?”
“역시 그런가?”
예상대로였다. 슈바르거트가 몇 번 휘둘러졌고 두 마리의 반마가 반항도 하지 않은 채 썰려 나갔다.
“일단 좀 정리를 하고 검사를 계속하지요. 저기 치안관의 시체는 밖으로 내서 다른 사용인들에게 보여주도록 하고 죽은 치안관과 집사 그리고 행정관이 자주 사용하던 물건들을 저에게 가져다주십시오.”
소영주가 질린 표정을 지었지만, 시키는 대로 얼른 장내를 정리하고 시체를 끌어내어 아직 검사받기 전인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여성 중에서는 그 끔찍한 모습에 기절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검사는 밤늦게까지 진행되었으나 더 이상 반마가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남자들의 검사가 모두 끝났을 때 우리는 일단 검사를 중지했다.
사실 여자는 검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럼 이제 어찌할 텐가?”
모든 검사가 끝난 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왕세자가 물었다.
“여자들은 검사할 방법이 지금은 없습니다. 마탑에 이 물약을 개량해서 여성 반마도 찾아낼 방법을 의뢰하고 싶습니다만.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요.”
“그것은 내가 의뢰하도록 하지. 왕실에도 꼭 필요할 것 같으니 말이야.”
“여성 중에 반마가 숨어있다면 저 시체를 보고 반응을 하지 않겠습니까? 걸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영주 일가와 왕세자를 가까운 방에서 머물게 하고 나는 그 중간의 방을 얻었다. 만약 숨어있는 반마가 있다면 반응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밤에 야습을 하거나 아니면 도망치거나. 어쨌든, 그들에게도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나는 조용히 감각을 확장시켰다. 영주성 전체가 감각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영주성에서 참살당한 세 반마의 애장품들이 놓여있었다. 운이 좋다면 이것들에게서 포교자의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