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5화 (5/126)

그냥 과제라고? (3)

*

영문학 수업 교실은 술렁임에 휩싸였다.

“잠깐, 방금 그··· 본인이라는 게-”

누군가가 꺼낸 말을 채 끝내기도 전, 또 다른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말도 안 돼, 유진? 유진이 쓴 거라고?”

“어떻게 그런···.”

영문을 몰라 하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은 놀람과 경악, 충격이었으며.

담당교사 레너드의 눈에 들려고 애쓰던 야심 많은 학생들의 눈에는 희미한 시기심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때, 미스터 레너드의 말이 이어졌다.

“자, 고무적인 실력을 보여준 유진에게 다들 박수.”

“···!”

확인 사살하는 격이나 다름없는 말에 다들 얼빠진 얼굴이긴 했지만.

한 박자 늦게 박수가 나오다 사그라들었다.

방금 전 그 뜨거운 반응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고 할까.

다들 이 의외의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는 분위기.

그도 그럴 것이, 누구도 이 작품이 유진이 쓴 것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유진은 몰랐지만, 이 수업에는 문예창작 쪽으로 이름을 날리는 학생들이 몇 명 있었다.

백일장이란 백일장은 전부 휩쓰는 샬롯.

벌써부터 문학 에이전트와 전속계약을 맺었다는 제이든.

문예창작 클럽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로완.

학생들은 대충 이 세 명 중 하나일 거라고 점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이것으로 오늘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 속.

수업이 끝나자마자 유진의 자리 주변으로 학생들이 벌떼 같이 달려들었다.

“잠깐만 유진, 너 원래도 소설 썼었어?”

“아무리 봐도 이거, 도저히 일주일 만에 나올 수 있는 완성도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쓸 생각을 한 거야?”

유진은 조금 난감해 보였지만, 이내 픽 웃으며 가방을 멨다.

“다음 시간에 봐 다들.”

“자, 잠깐! 유진!”

“나, 물어볼 거 아직 많은데···.”

거침없이 일어서서 나가는 그를, 다른 학생들이 붙들려던 그 순간.

“유진, 잠깐만 얘기 좀 할까?”

···미스터 레너드가 선수를 쳤다.

*

잠시 후, 문예창작 클럽룸.

레너드의 설명을 들은 유진이 눈을 한 차례 깜박였다.

“교내잡지에··· 이 작품을 싣고 싶으시다는 건가요?”

문학의 도시 아이오와시티 중심부에 자리한 힐크레스트 고등학교.

이곳은 문화예술, 특히 문예창작이나 저널리즘에 강세를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 덕분인지 힐크레스트의 교내잡지 <스쿨씬>은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관심을 갖고 볼 정도.

“개교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판에 실릴 소설을 찾는 중이거든. 수업 과제로 제출하고 끝내긴 아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말이다.”

그는 자신이 이 교내잡지의 담당고문이며, 고문의 권한으로  <로렌스 수사의 고백>을 추천하겠다고 덧붙였다.

“교지에 실리고 나면, 네 글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읽어볼 수도 있을 거고.”

말을 마친 레너드는 가만히 유진의 얼굴을 살폈는데.

“저야 좋죠.”

유진은 그저 미소만 지었다.

···생각보다 담백한 반응인걸.

교사 레너드가 -이런 유의 제안에- 눈시울을 붉히거나 새된 비명을 지르던 다른 학생들을 떠올리던 그때.

“근데, 고료는 있나요?”

“응?”

“농담이에요 농담.”

“···.”

한순간 벙쪄 있던 레너드가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건 그렇고, 이제 솔직하게 얘기해봐라.”

“솔직하게요?”

레너드 하인스.

오랜 시간 문학 리뷰를 해온 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언제, 어떻게 이 소설을 쓰게 된 거지?”

“···네?”

사실, 이 질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본론이었다.

‘다른 학생들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레너드 자신의 눈은 속일 수 없다.

이 작품은 절대로, 일주일 만에 과제용으로 써낼 만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충격적일 정도로 잘 썼단 말이지.’

문학 교사의 시선이 책상 위 프린트로 향했다.

원작에서 남녀주인공의 사랑의 도피를 도왔던 로렌스 수사는 이 <로렌스 수사의 고백>에서 1인칭 관찰자 시점의 화자로 변신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의 동반자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비극적인 사랑의 말로가 아니라- 두 가문 사이에 얽힌 정치적 음모의 결과임을 고백한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로렌스 수사가 느끼는 불안감과 죄책감이 점점 더 생생하게 전달되며.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나오는 반전.’

그것이 독자의 뇌리를 쾅 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 잔상이 아직도 그의 머릿속에 얼얼하게 남아 있을 정도.

‘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따로 있지.’

<로렌스 수사의 고백> 속 한 문장이 그의 눈길을 붙잡았다.

[···눈먼 열정은 독 묻은 비수로, 영광스러운 왕관은 가시 면류관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래.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쓰인 게 하나도 없다는 것.

시처럼 각운을 맞춘 덕에 읽는 묘미까지 느껴지는 것이 소름 돋을 정도였다.

‘흔히들 단편이 분량이 적으니 쓰기 쉽다고 착각하곤 하지만.’

한정된 분량 속, 서사와 메시지를 전부 전달하면서도 완성도를 챙기는 건 상당한 난이도를 요한다.

초단편(microfiction)을 300단어의 미학이라 부르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어쨌거나, 레너드 자신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유진이 쓴 <로렌스 수사의 고백>은 끝없는 고민과 성찰, 훈련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퇴고를 반복한 끝에 나온 결과물.’

헤밍웨이에 따르면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마도 유진은 몹시 고독하게, 자신을 철저하게 몰아붙이며 글을 쓰는 타입일 것이다.

‘그러니 이 정도의 글을 써낼 수 있으면서도, 이제서야 본 실력을 드러낸 거겠지.’

예술가들, 특히 작가 중엔 의외로 흔한 유형이다.

쓰고 또 쓰고, 지웠다가 다시 쓰고.

벽에 부딪힌 채 수없이 고뇌하고, 자신의 내면을 엉망으로 헤집어놓는 끝에 빛나는 결과물을 내놓는 타입.

···젊은 날의 자신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런 이들의 결말은 두 가지 중 하나.’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천재라 불리는,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가 되든가.

감당할 수 없는 내면의 고통에 무너진 ‘실패한 예술가’가 되기 마련.

유진에게 클럽 가입을 권유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였다.

그의 세계가 한층 넓어져, 주변 동료들과 함께 단단한 다이아몬드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랄까.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고독한 작업이지만.”

레너드의 진지한 눈동자가 유진을 향했다.

“그럼에도 동료가 있는 편이 훨씬 낫거든.”

“···.”

“혼자서 글을 쓴다는 건 지독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잖냐.”

잠시 두 눈을 깜박인 유진이 한 박자 늦게 말을 받았다.

“어, 딱히 그렇지는··· 않던데요.”

역시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지.

미스터 레너드의 입가에 다 이해한다는, 그러나 따스한 미소가 걸렸다.

“아닌 척할 필요 없다, 유진.”

고등학생 특유의 치기, 센 척.

자신 또한 그런 시기를 겪었던 만큼 유진의 심리를 십분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선생님도 그게 어떤 마음인지 잘 아니까.”

“···.”

간곡한 진심이 전달된 것일까.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던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말씀이 맞네요.”

그리고 이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깃든다.

“혼자 쓰는 것보단 함께하는 편이 훨씬 즐겁겠죠.”

“그럼, 당연하지.”

레너드가 -들뜬 기분으로- 클럽 가입서를 꺼내던 그때.

“권유해주신 건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응? 긍정적으로?”

“아, 혹시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닌데···.”

혹시 다른 곳을 염두에 두고 있냐, 그렇게 묻자 유진이 씩 웃었다.

“아, 스포츠클럽을 하나 가입할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스포츠클럽?”

“네, 근육을 좀 키워야 할 것 같아서.”

···방금 muscle이라고 말한 건가?

“근육이란 게 말하자면, 일종의 저축이잖아요.”

“저축이라니?”

“30대 중반 이후로 노화가 본격 시작되니까요. 그러면 이제 살을 빼도 지방은 안 빠지고 근육부터 빠지는데.”

젊은 시절에 만들어둔 근육으로 평생 사는 셈이라나 뭐라나.

보건전문가 같은 설명들에 레너드의 정신이 잠시 혼미해지던 그때.

“아 그리고 선생님.”

유진의 곱상한 얼굴이 레너드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평소에 비타민 C는 좀 챙겨드세요?”

“응? 비타민 C?”

그러자 제 눈밑을 짚어 보이는 유진.

“다크서클요. 그게 비타민 C가 부족하면 그럴 수 있거든요.”

“···.”

항산화 물질을 잘 챙겨먹고, 수면과 휴식을 충분히 취하라.

이어지는 유진의 설명에 그는 그저 어···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다음 수업 때 뵙겠습니다.”

반쯤 얼이 빠진 그에게 유진은 산뜻하니 인사를 하고 나갔다.

탁, 클럽룸의 문이 닫힌 후.

“허.”

쟤 분명, 열일곱 살··· 맞지?

레너드는  턱수염을 쓸며 혀를 찼다.

*

수업을 마친 오후.

네드 아버지께 인사도 할 겸 네드네 코믹북스토어에 들렀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 안.

다양한 종류의 코믹스와 장르소설은 물론, 각종 캐릭터 상품, TCG, 보드게임 따위가 가득했다.

“조셉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나를 보고 활짝 웃는 네드의 아버지 조셉 아저씨.

덧붙이자면 그는 나의 새어머니 케이트의 친오빠이기도 하다.

“유진, 간만에 얼굴 보는구나.”

“그러게요, 잘 지내셨어요?  네드는요?”

“조금 있으면 올 거다. 앉아서 기다리렴.”

푹신한 소파에 앉아 가게 안을 둘러보자니 어쩐지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분이다.

‘여기를 네드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운영하셨다고 했나.’

네드가 히어로물 덕후인 건, 아버지가 코믹북스토어를 운영하시는 것도 영향이 컸을 거다.

“그래, 케이트는 잘 지내고?”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우리는 가족의 안부와 근황을 나누었다.

“아, 잠시만.”

그가 때마침 들어온 손님을 응대하러 간 사이.

나는 네드가 오길 기다리며 가게 안을 잠시 둘러보았다.

‘오늘은 여러모로 즐거웠지.’

영문학 수업도 그렇고, 미스터 레너드의 반응도 그렇고.

내 글에 기뻐하는 독자의 모습을 보는 건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다.

‘선생님이 뭔가 오해를 좀 하신 것 같긴 하지만.’

내가 골방에 틀어박혀 고독하게 글을 쓴다고 생각하신 듯한데···.

“따지고 보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병상에 누운 채 머릿속으로만 글을 쓰던 시간들.

그때는 정말로 고독하기 그지없었다.

‘지금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이 상황이 얼마나 큰 행복으로 다가오는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

‘그건 그렇고.’

삼면의 벽을 꽉 채운 책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절로 두근거린다.

지금은 그저 행복한 독자로서 있고 싶은 기분.

나는 양쪽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채 서가를 뒤적거렸다.

코믹스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마블과 DC의 시리즈들은 물론.

SF, 판타지, 호러 등 각종 장르의 인기작들.

개인이 내는 인기 동인지나 TRPG 시나리오북까지 온갖 책들이 가득하다.

‘흐흐, 행복한 독자가 행복한 작가가 되는 법이지.’

그중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뽑아든 찰나.

“···.”

가게 벽면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사이언스앤드판타지> 주최 아포칼립스 노벨라 공모전]

···사이언스앤드판타지.

그 이름을 본 순간 뭔가 그리운 기분에 사로잡혔다.

‘훗날, 수많은 SF잡지들이 폐간의 길을 얻지만.’

장르 팬들 사이에서 여전히 그 권위와 영향력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곳이 아닌가.

이때나 나중이나, <사이언스앤드판타지>는 SF판타지 컨벤션 참여나 공모전 주최를 통해 매년 기라성 같은 신인 작가들을 배출해낸다.

나는 공모요강을 빠르게 훑어봤다.

[주제 -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하는 모든 이야기

분량 - 2만~4만 단어 사이의 노벨라(중편소설)

상금 - 1등상 5,000달러

기한 - ···]

‘기한도 넉넉하고, 상금 규모도 상당하네.’

덧붙이자면 이 공모전의 수상작은 3대 SF문학상 다음으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3대 SF문학상이란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이 중 하나만 수상해도, 아니 후보에만 들어도 SF씬의 총아로 떠오르는데···.

‘음?’

상금 규모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수상 특전’이 눈에 들어왔다.

‘···랜든 비숍이라고?’

[수상 특전 : ‘SF의 거장’ 특별심사위원 랜든 비숍과의 만남]

랜든 비숍.

내가 SF라는 장르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이자, 고등학생 시절 내내 탐독했으며.

한창 편집자로 일할 때는 이미 세상을 떠난 위대한 작가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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