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의 필요성(3)
나의 과제용 소설 <로렌스 수사의 고백>이 주립대에서 출간하는 앤솔로지로 나올지도 모른다는 것.
“음, 당분간은 너네만 알고 있어줘.”
···이 새로운 소식에 잔뜩 흥분한 두 사람을 나는 간신히 진정시켰다.
“너 문예창작 클럽 들어가기로 했댔지? <스쿨씬>은 이번 달에 나온댔나?”
“또 한 번 학교가 뒤집어지겠네.”
“후우 유진, 너 이러다 점점 손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리는···.”
아델과 네드가 나보다 더 신나서 주접을 떠는 광경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밥이나 먹자.”
우리 셋은 늘 하던 대로 급식을 받아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또 치킨너겟이냐.”
“울 학교 급식이 늘 그렇지 뭐.”
사료를 먹듯 꾸역꾸역 먹는 네드와 아델.
“왜, 맛있기만 한걸.”
오늘의 메뉴를 싹싹 긁어먹고 맨 마지막으로 청사과를 들어 아삭 베어물자.
그런 나를 아델이 신기하게 쳐다봤다.
“···너, 요즘 되게 잘 먹는다?”
“그런가?”
“그런가는 무슨. 급식 먹을 때마다 제일 투덜거리던 게 너잖아.”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긴 하다.
뭐 미국 학교 급식 수준이야 뻔하지만.
“운동을 시작해서 그런가? 뭘 먹어도 다 맛있더라고.”
한창 성장기라 그런가,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프기도 하고 말이다.
“흐음.”
아삭아삭.
사과를 뼈만 남기고 먹어대는 나를 가만히 보던 아델이 말했다.
“너, 키가 좀 큰 것 같아.”
“그래?”
회귀 전에도 딱히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운동을 열심히 하면 좀 더 자라지 않으려나- 생각하던 그때.
“와우, 브로! 이게 누구야!”
높은 텐션의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촬영용 캠을 든 에이든이 우리를 찍고 있었다.
“에이든, 카메라 치워.”
“너 찍는 거 아니거든 아델? 유진, 천재 작가님 여기 좀 봐줘!”
카메라를 내게로 향하며 야단법석을 떠는 에이든.
아델은 어이없다며 혀를 찼고, 네드는 부럽다며 난리였다.
“요에이든 구독자 여러분! 유진이에요 유진, 우리의 코리안 큐트 보이··· 아니다 이젠 코리안 지니어스라고 해야겠네요. 유진! 인사 좀 해줘!”
“안녕하세요, 좋은 하루 되세요.”
남은 사과를 야무지게 베어먹으며 말하자 낄낄거리는 네드와 아델.
“오, 역시 예의 발라! 다들 우리 문학소년이 쓴 글 궁금하시죠? 아 근데 그걸 여기서 읽어줄 수도 없고···.”
에이든은 씩 웃으며 준비해온 교내잡지 <스쿨씬> 지난호를 카메라에 들이댔다.
“우리 학교 교지, 스쿨씬 아시죠? 유진이 쓴 소설이 여기 실리니까 여러분 꼭 챙겨보세요! 오픈하우스 행사 때 나옵니다!”
“···.”
“아 맞다 이거 뒷광고 아니고 앞광고예요! 교지 편집부한테 광고 의뢰 받았음요 으흐흐.”
구독과 좋아요, 알림까지 외친 뒤.
에이든은 촬영용 캠을 끄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테이블에 합석했다.
“헤이 브로. 나 진짜, 백 년 만에 소설 읽어본 거 알아? 근데 진짜 반전이 죽여주더라, 존 수사가 범인일줄은-”
“걔 범인 아닌데?”
“···뭐? 아델, 진짜로 아니라고? 아니 잠깐만.”
“크크크, 야 대체 뭘 어떻게 읽은 거야.”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은 친구들의 모습이 참···.
‘뭐랄까,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인걸.’
물론 내 기억 속의, 그러니까 30대 중반일 때에 비하면 좀 촌스럽기는 하다.
성공한 그래픽노블 작가로서 제법 근사하게 하고 다니던 네드는, 지금은 뿔테 안경에 체크무늬 셔츠만 입는 영락 없는 너드(nerd) 스타일이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세련된 외모를 자랑하던 아델은, 맨날 후드티에 통 넓은 청바지만 즐겨 입는··· 선머슴 그 자체.
‘그때가 프롬 파티 때였나.’
갑자기 초미녀로 변신하고 나타나 다들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서야 아델이 사실은 미인이란 걸 알아차린 분위기였달까.
‘에이든은 지금도 뭐 나쁘지 않지만.’
유명 유튜버가 된 후에는 진짜 연예인처럼 잘생겨졌던 기억이 나는데.
“그래도 역시 어려서 그런가.”
“음? 갑자기 무슨 소리야 유진.”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아델.
“아니, 지금 니들 말야.”
“···?”
세 명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확실히 젊고 어려서 그런가, 아무것도 안 해도 다들 반짝반짝하단 말이지.”
“···.”
한순간, 조용해지나 싶더니.
“으어, 유진 너 방금 완전 아재 같았던 거 알아?”
아델은 진저리를 쳤고.
“신이시여, 유진을 각성시키는 대신 노인네로 만드셨나이까.”
네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며.
“유진, 나 뭐 하나만 진심으로 충고해도 될까?”
에이든은 웬일로 진지하게 말했다.
“충고? 무슨?”
“아니, 너 분명 전보다 밝아지고 자기 표현도 이렇게 마음껏 하는 모습, 정말 보기 좋거든? 근데···.”
에이든이 후, 한숨을 쉬었다.
“진짜로, 말을 웬만함 아끼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뭐?”
“아니 그렇잖아, 입 다물고 가만히 있음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곱상한 문학소년인데 입만 열면 아저씨-”
“거기에 건강 매니아.”
“약간 잔소리꾼 느낌도···.”
···이것들이.
그렇게 셋은 신이 나 시시덕거렸다.
“흐흐 그럼 다음에 또 출연 부탁해!”
에이든이 가고 나서 테이블이 조금 조용해졌구나 싶던 그때.
“저, 유진.”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선 것은 바비 인형처럼 화려한 외모의-
“헐, 앰버! 앰버 브라운이다!”
“···!”
앰버 브라운.
10학년에서 제일 인기가 많다는 여학생의 등장에 네드와 아델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유진 맞지? 나, 니가 쓴 소설 엄청 재밌게 읽었어.”
“아··· 고마워.”
조금 당황하며 대꾸하자.
그녀가 생긋 웃으며 폰을 내밀었다.
“번호 알려줄래? 왓츠앱 아이디 교환해도 좋고.”
“···?”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라는 표정으로 두 친구가 나를 돌아보았다.
*
며칠간 엄청 바쁘게 보냈다.
그 탓에 조깅도 거의 못하고, 아버지와도 딱 한 번밖에 같이 못 나갔다.
‘주말에는 좀 더 자주 모시고 나가야겠네.’
그건 그렇고.
이번 주에 제일 먼저 한 것은-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원고를 손봤지.’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원고를 보자 역시나 고칠 부분들이 한눈에 보였으니.
그렇게 얼추 문장 수준의 교정을 마친 원고를···.
“후우, 야 이거 대체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거냐?”
나의 절친이자, SF에 나름 일가견이 있는 네드 밀러에게 보냈다.
어제 저녁부터 새벽까지 뜬눈으로 읽었다는 네드는 잔뜩 흥분한 기색이었다.
“감상의 첫 마디가 그거냐?”
“아니 아니, 진짜 궁금하다니까!”
내 방 침대가 제 것인 양 드러누워 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사이언스앤드판타지’ 공모전을 설명했고.
“···야, 잠깐만 설마, 그럼 그때 나 기다리다가 갔다는 그날에 쓰기 시작한-”
“비숍을 만나보고 싶어서.”
“음? 비숍?”
공모전 요강 포스터 이미지를 스마트폰으로 보여주자.
네드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와 미친!”
“그래서 쓴 거라면 이해가 돼?”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그래서, 감상은.”
‘감상’이라는 한마디에 네드가 크으, 소릴 냈다.
“그냥 죽여주던데? 꿀잼임. 숨도 못 쉬고 읽었어.”
“어째 지난번이랑 똑같은 느낌이다?”
“아 진짜라니까, 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네드의 요지는 이랬다.
“그, 어른이 되면 죽는··· 전염병? 그거 자체는 흥미롭긴 한데, 엄청 기발하단 생각은 안 들었거든.”
그런 설정의 아포칼립스 소설을 전에도 본 적 있다는 것.
“근데, 주인공이 성장을 멈춘 몸 때문에 살아남은 단 한 명의 어른이다?”
네드가 크으, 소리를 냈다.
“이거는 뽕이 제대로 차지.”
요란한 반응에 픽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 주인공 피터 말야. 애가 되게 짠하더라. 좀 나 같기도 하고. 그래선가? 엄청 이입이 되더라고.”
“···.”
뭐랄까.
저 자식의 입으로 들으니 모든 감상이 좀 저렴한 느낌이긴 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결점을 지닌 ‘인간적’ 주인공일수록.
더 많은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건 불변의 진리인지도 모르겠다.
네드는 그 후에도 한참 두서 없이 열변을 토했다.
“크흐흐, 어쩌면 나,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의 본명)보다 피터 팬딧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어.”
···그거 완전 영광인걸.
그렇게 장장 10분이 흐른 후.
“그러니까 니 말을 정리해보자면, 장르소설적 재미도 충분하지만··· 무엇보다 피터의 인간적 고뇌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건가?”
방금 전 이야기를 요약하자, 네드가 입을 떡 벌렸다.
“···와.”
“왜.”
“유진, 나 방금 또 소름 돋은 거 알지? 글 쓰는 능력만 각성한 줄 알았더니··· 진짜로 지니어스가 돼버린 거야?”
오버스러운 반응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놈의 소름은 어째 맨날 돋냐. 반사 기능에 문제 생긴 거 아님?”
그래도 재밌었다니 다행이다.
아무리 경험이 많다 해도, 누군가에게 초고를 보여줄 때는 늘 긴장되기 마련이니까.
“아, 몇 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나는 네드의 의견을 물어가며 몇 가지 마음에 걸렸던 부분을 수정했고.
그대로 앉은 자리에서 문장 단위의, 단어 단위의 교정교열까지 전부 마쳤다.
곧바로 공모전 원고를 접수하려고 <사이언스앤드판타지> 사이트에 접속했는데.
“음, 고민이 되네.”
“뭐가?”
나는 노트북 화면 속 한 곳을 짚어 보였다.
[작가명]
“유진 권···이라고 쓰면 되는 거 아냐? 아, 필명을 쓰려고?”
하긴, 장르씬에선 그러는 게 보통이지- 라고 덧붙이는 네드.
이는 작가의 이름이 주는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뭐였더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였나? 완전 상남자 스타일의 SF 작가. 50대의 CIA 요원인 줄 알았는데 여자 작가라며.”
네드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여자 작가 맞고, CIA 정보원인 것도 맞아. 공군조종사로도 일했대.”
“뭐, 진짜?”
이처럼 사생활과 작품 생활을 분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아예 장르마다 다르게 해서 필명이 여러 개인 작가도 제법 되니까.
또 덧붙이자면.
“지나친 유명세는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이지.”
‘학교에서 글 좀 쓴다는 고등학생’과, ‘상업출판으로 정식 데뷔한 고등학생 SF 작가’ 사이엔 크나큰 차이가 있으니까.
“크으 뭐야, 너무 유명해질까 봐 벌써부터 걱정하는 거냐?”
네드가 낄낄거렸지만.
이는 회귀 전, 베스트셀러 작가로 석 달을 지내며 얻은 교훈이었다.
‘매일이 화려한 파티와 이벤트, 술자리의 연속.’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흥청망청 지낸 그 석 달의 시간이야말로 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신체의 건강도 건강이지만, 그때 나는 마음의 평정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고, 내 글을 찬양하고.
평소라면 범접할 수도 없는 유명인들-
대작가, 헐리우드 감독이나 배우, 심지어는 거물 정치인과 한자리에서 내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는 것.
···술보다도 그 사실 자체에 취해 있었으니까.
‘한 번은 미국 대통령이 내 책을 읽고 있다는 트윗을 올려 난리가 난 적도 있었지.’
당시엔 그 모든 것이 즐거웠지만.
돌이켜보니 그때의 나는 실체 없는 환상을 좇고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런 유명세를 감당해낼 깜냥도 안 됐고.’
급류에 휩쓸려 환상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입 속으로 들어오는 바닷물마저도 너무도 달콤해 그것이 내게 독이 되리라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뭐, 중심을 잘 잡는 게 중요하긴 하지.”
네드가 중얼거린 저 말이 맞다.
작가에게 내면의 중심을 잃는다는 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비단 나뿐 아니라 수많은 유명작가들이 급류에 휩쓸렸다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편집자일 때부터 수없이 봐왔잖아?’
그러니 이번엔 내가, 그 모든 속도를 조절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유명해져 ‘버리는’ 것이 아닌, 원하는 시기에 나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도록.
‘그러니 필명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한정해야 하고.’
우리 가족과··· 네드, 아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출판사 담당자와도 메일로만 소통하는 건 물론이고 말이다.
그러한 다짐을 입 밖으로 내자 고개를 끄덕이는 네드.
“오케이, 내가 니 필명은 무덤까지 비밀로 가져간다.”
“맹세할 수 있음?”
“피터 파커의 이름을 걸고.”
“그럼 믿을 만하지.”
내 말에 낄낄 웃은 네드가 물었다.
“그래서, 필명은 뭘로 지을 건데?”
우리 둘은 잠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오 잠깐 잠깐! 나, 영감이 떠올랐어!”
잔뜩 필을 받은 네드가 이상한 필명을 쏟아냈는데.
북나이트(Book Knight), 페이지터너(Page Turner), Sci-Fi 센티넬 그리고-
“아 노벨닌자는 진짜 아니지.”
“왜, 죽여주지 않냐?”
“···.”
결국.
나는 내 이름 유진 권(Eugene Kwon)의 철자를 재조합해보았고.
[Egon K]
에곤 K.
그것으로 나의 SF 전용 필명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