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13화 (13/126)

에곤 K(2)

*

<사이언스앤드판타지> 공모전 수상 메일을 받은 지 며칠이 지났다.

[···아포칼립스 노벨라 공모전의 1등작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

그 문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여전히 믿기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

‘이게··· 진짜 되네?’

물론 잘쓴 글이라는 확신도, 그래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단 예감이 들긴 했다.

그래도 이렇게 1등작으로 떡하니 뽑히다니, 지금도 여전히 얼떨떨하달까.

편집부의 메일에는 이미 답장을 보내놓았는데.

[시상식에는 불참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얼굴과 신상 비공개, 연락은 에곤 K 전용 계정 메일로만.

출간계약은 대리인을 통해서 하겠다는 뜻을 알려두었다.

나의 법정대리인이자, 출간계약 관련해서는 전문가나 다름 없는 아버지와도 이미 얘기를 마친 터였다.

‘그런 부분은 걱정 말거라. 그건 그렇고.’

아버지는 에곤 K의 존재를 비밀로 하겠다는 내 결정이 조금 우려되는 모양이었다.

‘음, 유진이 네게 메리트로 작용할 만한 기회를 놓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는구나. 나중에 대학 진학할 때라든가.’

‘그건 걱정마세요 아버지. 그땐 또 본명으로 새 작품을 쓰면 되죠.’

‘하하, 그렇지. 너무 당연한 걸 잊고 있었구나.’

‘그보다, 한국행 비행기표는 알아보고 계신 거죠?’

약속대로 건강검진은 꼭 받으셔야 한다- 라고 하자.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알겠다며 기뻐하는 아버지.

상금 5천 달러로 아버지 건강검진을 해드릴 수 있다는 것도 좋았지만.

‘랜든 비숍 작가를 직접 만나볼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벌써부터 두근거린다.

물론 에곤 K의 정체를 비밀로 유지하며 비숍을 만나려면 어떻게 할지 좀 고민해야겠지만···.

‘맙소사! 공모전이라고? 대체 언제 그런 걸 또··· 우리 유진이 정말 천재인가 봐 여보! 유진, 내가 한 번 읽어봐도 되겠니?’

‘오빠 쳔재야? 쳔재!’

소식을 들은 새어머니도, 클로이도 뛸 듯이 기뻐한 것은 당연했고 말이다.

‘뭔가 묘한 기분이네.’

회귀한 지 불과 1달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인데도.

그새 이렇게 많은 것이 변했다니···.

그건 그렇고.

오늘은 가족들이 나의, 아니 ‘에곤 K’의 공모전 수상을 기념하는 축하파티를 열어주기로 한 날.

단둘뿐인 초대손님 네드와 아델이 내 방에 모였다.

*

“유진, 진짜 실망이야.”

아델은 이제서야 소식을 알았다는 것이 서운했는지 뾰로통한 얼굴이었다.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말야. 어떻게 나는 쏙 빼놓고 네드한테만 보여줄 수 있어?”

“어, 그게 어쩌다 보니-”

“그리고, 어? 그 소설을 또 네드를 통해서 읽게 만들어?”

“···미안해 아델.”

으, 소리를 내며 사과하자.

아델은 금세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씩 웃었다.

“좋아, 용서를 구하니까 받아주지! 그리고··· 1등상 탄 거 완전, 진짜 진심 축하해 유진!”

아델이 나를 껴안고 방방 뛰며 기뻐하자, 네드까지 가세했다.

“축하한다 친구여!”

“흐흐, 다들 고맙다.”

이때나 나중이나 한결 같은 친구들의 모습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렇게 한바탕 날뛰며 축하를 마친 뒤.

“아 그리고, 에곤 K 말인데.”

여기엔 우리 셋밖에 없는데도 아델이 목소리를 죽여서 속삭였다.

“그거 비밀이라고 했지?”

“어어.”

“나도 무덤 끝까지 갖고 갈 테니 걱정 마.”

“난 피터 파커 걸었는데, 아델 넌 뭐 걸래?”

네드의 말에 아델의 미간이 좁아졌다.

“뭘 걸었다고?”

“미친, 개충격. 너 설마 스파이더맨의 본명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말을 말자. 그나저나 난 뭐 걸지?”

아니 딱히 안 걸어도 되는데··· 라고 생각하던 그때.

아델이 우리 집에 오면 늘 애용하는 통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네 노래를 걸든가.”

“···내 노래?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심심풀이 취미잖아.”

지금이야 아델이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기억에 남는 게 있다.

네드가 코믹스작가가 되는 데 늘 진심이었다면.

‘아델은 싱어송라이터가 꿈이었지.’

고등학교 때는 그런 티를 안 내다가 대학에 가고 나서부터 음악에 본격 몰두하더니.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대신 고등학교 음악교사의 길을 택했다.

‘교사직도 나쁘지 않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조금 더 일찍, 정말 진심으로 매달렸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러면 좀 달라졌을까?’

아쉬움 가득하던 아델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러니 지금 그녀가 하는 말은, 그냥 센 척에 불과하다는 것 .

“···.”

아델은 잠시 진지한 눈빛으로 날 보더니.

“뭐 그래, 까짓거 걸지. 내 노래를 걸게, 됐어?”

“어, 이제 믿음이 가네.”

“···진짜.”

픽 웃으며 내 어깨를 쳤다.

그리고 잠시 후.

“다들 내려오렴!”

새어머니의 부름에 우리 셋은 1층으로 내려가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 넓지 않은 뒷마당 한가운데에 마련된 바비큐 덱.

그 앞에서 새어머니와 클로이, 아버지가 우리를 맞이했다.

“유진, 정말로 축하해!”

“오빠아, 멋뗘! 최고!”

“···축하한다.”

“크으 우리 유진이 천재 작가였다니!”

“네드, 오늘만큼은 너의 그 오버스러운 반응을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 ”

“하하, 다들 고마워요.”

나 또한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가운데.

“흐으, 이런 걸 한국에서는 ‘상다리가 휘어진다’라고 한다고 했지?”

“와 너무 맛있어요 케이트 아주머니!”

“후후 다들 많이 먹으렴.”

아버지가 직접 구운 바비큐는 물론, 새어머니가 솜씨를 발휘한 음식들 또한 끝내주게 맛있었다.

고기를 오물오물 잘도 씹어먹는 클로이가 귀여워 죽겠다는 아델과 네드.

“우리 클로이이이~~ 어쩜 넌 점점 더 귀여워지니.”

“클로이 볼이 갓 구운 빵 같네.”

“볼, 당기디 마, 네드.”

“으흐흐 미안 미안~~”

나만큼이나 내 동생을 귀여워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흐뭇하달까.

“이런 자리에 음악이 없으면 아쉬운데~ 아델, 괜찮으면 노래 한 번 들려줄래?”

새어머니의 요청에 아델은 민망해하면서도 기타를 들었다.

“Lucky I’m in love with my best friend···.”

제이슨 므라즈의 가 아델의 목소리로 부드럽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유진,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말이야, 정말 정말 재밌더라!”

새어머니가 흥분한 기색으로 본인의 감상을 전했다.

전에 읽었던 로렌스 수사의 고백과는 또 딴판이라며, 그야말로 푹 빠져서 읽었다는 것.

“그것도 그렇지만···.”

클로이에게 고기를 잘라주는 아버지의 옆모습을 슬쩍 돌아본 케이트가 작게 속삭였다.

“아버지가 유진 네 글 읽고 우신 거 아니?”

“···네? 정말요?”

표현을 하는 법이 거의 없는, 무뚝뚝한 아버지가···?

설마 그럴 리가, 라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뜨자.

“안 그래 보여도, 되게 감성이 풍부하잖니. 아니, 어제 방에 들어갔더니 유진 네 원고를 읽던 아버지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는데···.”

눈시울이 다 벌게져 있더라는 것.

“우와, 상상이 안 되는데요.”

“그치? 나도 놀라긴 했어. 근데 또, 민망하긴 한지 울었냐니까 계속 아니라고 딱 잡아떼는 것 있지.”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거기에 전염되기라도 한 듯, 처음에는 새어머니가.

“푸흐흐흐···.”

다음에는 클로이가 영문도 모른 채로 깔깔거렸고.

“뭐야 뭐야, 클로이 뭐가 그렇게 웃긴 건데?”

“흐흐흐, 웃으니까 더 귀여워~~”

아델과 네드까지도, 나중엔 아버지까지 자연스럽게 웃고 말았다.

*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위치한 <사이언스앤드판타지> 편집부 사무실.

“에곤 K.”

약 한 시간 전.

공모전 1등상 수상 예정자에게 메일을 써보낸 장본인인 마크가 중얼거렸다.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글쎄.”

마크의 선배 편집자 중 한 명이 대꾸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절대 쌩신인은 아니라는 거?”

“그렇죠? 제 생각도 그런데···.”

마크는 공모전 원고 접수 당시 작가들이 적어낸 정보들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출간이력, 약력, 경력 등 꽤 많은 것을 적어낸 다른 접수자들과는 달리-

‘에곤 K는··· 필명 외엔 아무것도 안 적었네.’

사실, 요 며칠간 이곳 편집부에선 에곤의 정체에 관한 얘기가 한창이었다.

관록 있는 드라마 혹은 시나리오작가가 새로운 도전을 한 거라든가.

중후한 문체를 보아 나이가 제법 있다든가.

아니면 사실 이미 유명한 SF 기성작가가 정체를 숨긴 거라든가···.

‘이제는 일부 유명작가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지.’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띠링- 하고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났다.

‘드디어!’

···그것은 다름 아닌 에곤 K에게서 온 답신.

마크가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클릭해 그 내용을 확인하는 가운데.

“오오, 답장 왔어? 뭐래, 뭐래?”

“시상식이 다음 주 맞지? 크으, 실물이 기대되네.”

“괜찮으면 식 끝나고 편집부랑 미팅 한 번 잡아서···.”

동료 편집자들이 한 마디씩 하던 중, 마크가 입을 열었다.

“어, 에곤 K 말인데.”

“응?”

“그, 시상식에··· 불참하겠다는데요?”

“뭐?”

희희낙락하던 편집자들은 순간 당황했다.

‘설마, 그럴 리가.’

3대 상이라 불리는 휴고, 네뷸러, 로커스 다음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게 바로 이 <사이언스앤드판타지> 문학상이 아니던가.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그리고··· 모든 연락은 메일로만 하겠다 하네요.”

“···.”

“본명과 사진, 개인 신상 공개도 원치 않는다 합니다.”

마크의 말에 더욱 충격 받은 나머지 편집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던 그 순간-

“I knew it(그럴 줄 알았지)!”

해리슨 편집장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어··· 편집장님?”

순간, 제게 쏠린 시선을 깨달은 편집장이 크흠 헛기침을 했다.

“아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건 그렇고··· 마크, 작가에게 상관없다고 전해.”

“상관··· 없다고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해리슨.

“식에 불참해도 수상엔 문제없다고 전해드리라고. ···수상 거부한 건 아니지?”

“네, 그건 아닌데-”

“그럼 됐어. 이 판에 특이한 작가들이 좀 많아? 신상 비공개 정도야 양반이지.”

문명을 거부하고 편지와 종이원고를 고집한다든가.

글이 막혔다고 어디 산속에 틀어박혀 잠수를 타질 않나.

하루에도 감정 변화가 죽 끓듯해 인쇄소에 넘어간 원고를 다시 쓰겠다고 생떼를 쓰질 않나-

아니 이건 그냥 진상인가··· 여하튼.

해리슨이 주변 편집자들을 돌아보며 재차 당부했다.

“절대 부담스럽게 굴지 마. 그러다 놓칠 수도 있다고. ···지금 우리 잡지, 아니 SF판 전체에 새로운 피가 필요한 상황이란 거, 자네들도 다 알잖아.”

그 말에 부하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진 가운데.

“고착화돼버린 판을 뒤집어엎는 대형 신인의 등장. ···이거 하나만으로도 이미 어마어마하다고.”

편집장은 다짐했다.

‘그러니 절대로, 에곤 K와의 관계가 공모전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그의 작품을 싣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사이언스앤드판타지>의 얼굴이 되어줄 작가로 만드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했다.

···그러니 어쩌면.

‘오히려 에곤 K의 정체가 비밀로 남아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의도한 건 딱히 아니지만 일종의 신비주의 전략이라고 할까.

SF 독자들과 업계인들 사이에 계속해서 궁금증을 자아낼 테니 말이다.

‘게다가.’

이 SF업계에 관한 것이라면 단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그의 예리한 육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에곤 K. 그는 거물급 인물이 분명하다.’

···그것도 얼굴이 알려지면 곤란할 정도의 거물.

‘비숍 작가님, 아무래도 이번 내기는 제가 이긴 것 같군요.’

해리슨 편집장은 실실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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