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28화 (28/126)

쇼타임(2)

<사이언스앤드판타지> 홈페이지에 접속이 되지 않자.

SF팬들은 SF서브레딧으로 몰렸다.

[4.1k S&F 서버 터졌냐?]

└설마 에곤 K 때문에?

└와 미쳤네ㄷㄷㄷ

└ㅋㅋㅋㅋ 나처럼 진작 선주문을 했어야지!!!!

└어떠냐

└아묻따 구매ㄱㄱㄱ

진작에 예약주문을 한 독자들.

아예 킨들용 이북으로 구매해 빠르게 완독한 독자들을 시작으로 극호에 가까운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가운데-

“이야아.”

“되게 비현실적이네.”

네드와 아델은 아이오와시티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대형서점 프레리라이트를 방문한 참이었다.

“에곤 K 신작이···.”

아델은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앞의 광경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도시에서 가장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이 큰 서점의 한복판에, 거기서도 가장 눈에 띄는 메인코너에···.

[이 주의 기대 신간]

에곤 K의 데뷔작,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떡하니 있는 것이 아닌가.

아델과 네드는 잠시 -거친 구어를 섞어가며- 감탄의 뜻을 표했다.

판매대 위의 책을 뒤적이던 네드가 입을 열었다.

“유진 그 독한 자식.”

사실, 이 둘은 오늘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내내 얼른 서점에 가보고 싶어 좀이 쑤신 터였다.

그래서 끝나자마자 서점에 가자 했더니-

‘아, 난 오늘 탁구 클럽 가는 날이라. 끝나고 갈 테니까 너희끼리 먼저 가.’

유진은 클럽활동을 마치고서 따로 방문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지금 이 마당에 클럽활동이 말이 되냐고.”

“동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나가던 손님이 에곤 K의 책을 살펴볼 때마다, 두 친구는 자꾸만 씰룩이는 입가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뿐인가.

‘저기요 이거 엄청 재밌어요! 꼭 사야 함!’이라고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참아야 했으니.

···그 같은 심정을 느끼는 것은 비단 두 친구뿐이 아니었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권상준은 가게를 잠시 비우고 나온 아내와 함께 서점에 온 참이었다.

“여보, 이거 표지가 엄청 근사하지 않아?”

“그 누구더라. 에밀··· 프랭클이 그려준 거라고 하던데.”

“어머 맞다 맞다. 그러고 보니 화풍이···.”

잠시 업계인다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이내 유진이 쓴 ‘감사의 말’ 페이지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

맨 마지막에 적힌 ‘사랑하는 가족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것.

어찌 보면 그저 상투적일 수도 있는 그 문구가 부부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우리 유진, 진짜 대단하네···.”

입술 새로 번져 나오는 미소를 어쩔 줄 모르며 케이트가 책을 집어올린 순간.

“···케이트.”

“응?”

평소 여간해서는 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이 없는 상준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엔 아직 늦지 않았어.’

한국에서 했던 다짐을 되새기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갑자기 웬 뚱딴지 같은 소릴.”

케이트가 눈을 크게 뜨자 상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갑자기 그 말이 하고 싶어져서.”

처음 만났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 유진까지도 조건 없이 사랑해준 그녀를 향한 고마움이 커지는 동시에-

‘유진이에게도···.’

또 한 번 아버지로서 진심을 전해야겠다고, 굳게 마음 먹는 상준이었다.

*

탁구 클럽 활동을 마치고 나니 오후 5시가 다 된 시각.

나는 홀로 서점으로 향했다.

‘물론 친구 놈들과 같이 가도 상관은 없지만.’

이번 책은 아무래도 나의 첫 단독 출간작, 그것도 장편 데뷔작이 아닌가.

서점 매대 위에 올려진 모습을 보면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했고.

‘···그런 모습을 애들 앞에서 보이고 싶진 않으니까.’

이 순간을 온전히 혼자서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 말이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적당히 손님으로 붐비는 서점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1970년대에 문을 열었다는 서점 프레리라이트는 아이오와시티 출신 작가들의 주요 행사장이기도 했다.

‘···회귀 전에도 여길 자주 갔었지.’

나도 언젠가는 여기서 낭독회나 사인회를 주최하는 유명작가가 되고 싶다- 라는 막연한 상상도 했었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카운터에 다가가 어색하게 물었다.

“에곤 K라고, SF 신인작가-”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말이죠? 오늘만 벌써 몇 번째네요. 저기, 이 주의 기대 신간 코너요.”

···이 주의 기대 신간 코너에 있다니.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그쪽으로 가보았다.

“···.”

나의 책이 나왔다는 게 가장 실감되는 순간.

그건 출판사에서 보내준 실물 책을 받아볼 때도 아니고, 인터넷상에 뜬 보도자료 기사를 볼 때도 아니라-

‘···하.’

서점의 매대에 수많은 책들과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을 볼 때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 에곤 K]

[이 작품은 당신을 완벽하게 ‘압도할’ 것이다 - 랜든 비숍, 우리 시대의 SF문학 거장]

에밀 프랭클의 화려하고도 강렬한 표지에, 비숍 작가님의 과분하기 그지없는 홍보문구를 박아넣은 하드커버책.

표지를 손으로 가만히 쓸자 홀로그램박의 오톨도톨한 질감이 느껴지는 가운데, 감회가 새로웠다.

‘회귀 이전, <잊혀진 성자들>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그 당시에 느꼈던 비현실적인 감각과는 또 다른 기분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심정을 말로 표현하자면···.

‘나의 바람이 결국, 이루어졌구나.’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바라던 대로 글을 쓰고, 그렇게 쓴 글을 독자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꿈이-

‘정말로 이뤄졌구나.’

병상에 누운 채 그토록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실감하며, 나는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온종일 병실에서 홀로 지내던 그 시절의 기억이 먼 옛날의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면서도.

내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긴 듯했다.

“···.”

목이 살짝 메어오는 가운데, 나는 가만히 서서 감정을 다스렸다.

책을 펼쳐보지 못한 채 화려한 제목 타이포를 지그시 내려다보던 그때-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

“···어.”

친근한 말투에 옆을 돌아보니, 프레리라이트의 점장이 내 곁에 서 있었다.

중년 남성의 낯익은 얼굴을 보며 기억을 잠시 헤집어보니-

“오랜만이에요, 마크 아저씨.”

뒤늦게 그의 이름이 기억이 났다.

···고등학생 때 사교활동과는 담 쌓고 지내긴 했지만, 도서관과 동네서점의 어른들과는 제법 잘 지낸 편이었으니까.

그 말에 점장 마크가 환하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유진, 니 친구들 아~까 전에 왔다 간 거 알지?”

그와 나는 잠시 밀린 근황을 나눴고.

“유진, 그 책 엄청 물건이다.”

“···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말이야. 에곤 K라고, 요즘 SF팬덤에서 엄청 핫한 작가야. 아, 너도 이미 알고 있으려나?”

“아, 네. <사이언스앤드판타지>에서-”

“오 역시 그렇구나!”

내가 에곤 K를 안다고 하자, 점장은 더더욱 신이 났다.

“···.”

에곤 K가 팬덤에서 얼마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신인인지.

<사이언스앤드판타지> 공모전 당선작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이 얼마나 충격적인 작품인지.

“근데,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는 그 이상이더라고. 오늘 들어오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단 말이지? 와 진짜···.”

그가 나를 붙들고 이 책을 홍보하는 내내, 나는 민망한 기분을 애써 감춰야 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너무 오래 붙잡았네.”

“아녜요 재밌었어요 하하.”

“간만에 진심으로 영업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책을 봐서 넘 흥분했지 뭐냐.”

저기 봐라, 라며 서점 벽을 가리키는 점장 마크.

그쪽에는 서점 직원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신간을 하나씩 골라, 직접 쓴 홍보문구가 붙어 있었다.

[SF씬의 떠오르는 신예 에곤 K 데뷔작! 호수에 대체 뭐가 사는지 직접 확인해보세요! -점장 마크]

[경고 : 청소년 공포소설이지만 어른이 봐도 무서움. 밤에 화장실 못 감.]

대문자로 삐뚤빼뚤 쓴 문구 내용에 푸흐, 웃음이 나오는데.

“근데 유진, 너 이 에곤이란 작가의 정체 궁금하지 않냐.”

“···정체요?”

괜스레 뜨끔하는 기분.

“그 작품 세계만 봐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범인(凡人)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어··· 그런가요?”

“그럼 그럼. 아마 나이가 꽤 있을 것 같은데.”

에곤 K의 정체를 추측하는 마크 아저씨의 말에 농담처럼 한마디했다.

“왜요, 의외로 어릴 수도 있죠.”

“에이 그럴 리가.”

고개를 젓더니 이렇게 덧붙이는 마크.

“만에 하나라도 그 친구가 어린 작가다, 라고 한다면 그 정신 상태가 걱정될 거야.”

“···예? 왜요?”

“너도 읽어보면 알 거다.”

호수 괴물이 그려진 표지를 손 끝으로 툭 친다.

“보통 미친 게 아닌 것 같거든, 이 작가가.”

“···.”

“여기, 작가 소개페이지에 실린 캐리커처 보이지?”

빅토리아 첸 팀장의 건의로 네드의 그림을 책날개에 실었는데.

‘으아 미치이이인-!’

네드는 자기 그림이 -일러스트료를 받고- 정식으로 실린다는 것에 무척 흥분했던 터다.

폭탄 맞은 보라색 머리, 광기가 번득이는 눈동자에 진한 다크서클, 움푹 팬 볼···.

누가 봐도 미친 과학자 같은 ‘에곤 K’의 캐리커처를 가리키며 마크가 말했다.

“딱, 이런 외양의 작가가 쓸 법한 글이란 말이지.”

“···.”

“글솜씨도 미쳤지만, 읽다 보면 진짜 미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니까?”

“어, 음··· 그렇군요.”

다음 번엔 조금 덜 미친 걸 써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정식 출간된 바로 다음 날.

SFF프레스의 단행본팀 및 <사이언스앤드판타지>팀은 한자리에 모였다.

···다름 아닌, 에곤 K의 데뷔작 성적을 확인하기 위해서.

‘보통 이런 순간은 엄청 긴장되기 마련이지만.’

오늘 직원들의 표정은 긴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기대감에 가득 차, 잔뜩 들떠 보인다고 해야 할까.

“···안 그래도 잘될 것 같긴 했지만.”

에곤 K의 첫 담당자인 마크의 입에서 그 이유가 나왔다.

“설마, 출간 첫 날에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니까요 흐흐.”

SFF직원들 대부분이 그와 비슷한 심정이었다.

물론 정확한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법이지만,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는 선주문 물량부터가 다른 책들과는 차원이 달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때.

“어어, 이거···.”

주문량이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물류 시스템에 접속한 직원의 입에서 경악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잠깐만, 지금 제가···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애초 SF는 미국에서도 마이너 장르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SF 신인 작가의 작품 중 ‘베스트셀러’라는 것들도 1년에 1만 부가 팔리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인데.

에곤 K의 데뷔작은-

‘2만 부로 가지.’

‘네? 초판을··· 2만 부로요?’

주변에서 다들 과감하다 여길 정도로 빅토리아 첸이 초판부수를 높여 찍은 터였다.

그러나 매우 놀랍게도 벌써.

“하루 만에··· 8천 부가 나갔는데요?”

“뭐라고? 8천 부?”

“와——!”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오던 그때.

“반스앤노블, 인디바운드, 쓰리프트북 모두 50위권으로 진입했습니다!”

온라인 마케팅 담당자의 외침에 반응이 한층 더 뜨거워졌고.

“아마존 차트 확인해 봐.”

빅토리아 팀장의 말에 마케팅 담당자가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였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리스트]

그 어떤 차트보다도 가장 직관적이고, 가장 현실적으로 최대 판매 순위를 알 수 있는 현황판.

그것의 베스트셀러 신간 순위 끄트머리에-

“···!!!”

[#100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에곤 K]

···익숙한 제목이 들어 있었다.

“있, 있습니다!”

“랭킹에 있다고?”

“100위! 100위로 차트인입니다!”

우와아아——!

사무실 전체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직원의 목소리가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어? 신간 청소년 SF부문에선··· 1위, 인데요?”

“···!”

순간, 짧게 정적이 일더니.

예에에에—! 하고 더 큰 환호성이 일었다.

몇몇은 저희끼리 하이파이브를 하고 일부는 신이 나 껄껄 웃는 가운데.

“···후우.”

빅토리아 첸.

이번 프로젝트를 전방위로 이끈 리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시선이 책상에 펼쳐놓은 어느 페이지로 향했다.

[···더불어, 저자의 그림자가 되어 이 원고를 근사한 책으로 만들어준 SFF프레스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에곤 K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감사의 말’ 속 어느 구절.

[한 권의 책이 저 한 명이 아닌,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이 작품을 진정으로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 멋진 책으로 만들어내리라 결심한 것은 어쩌면 이 문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친 얼굴에 뿌듯한 미소가 떠오르는 가운데, 빅토리아 첸은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독자들 반응은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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