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국 깡촌의 천재 작가-29화 (29/126)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1)

*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출간된 지 일주일째.

인터넷은 여전히 이 신인 작가의 데뷔작에 관한 얘기로 뜨거웠다.

어느샌가부터 에곤 K 얘기가 매일 같이 올라오는 SF서브레딧은 물론이고.

[11.6k 에곤 K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정독 중. 피터팬도 좋았는데 이건 진짜 미친 것 같다]

└완전 공감. 그 사이 또 성장한 것 같은 느낌?

└결말까지 읽으면 더 미쳤음(반전주의) 올해 읽은 것 중 베스트 5

└근데 청소년소설이 이렇게 무서워도 되냐ㄷㄷ

└무섭긴 뭐가 무섭냐 난 잘 때 불켜고 잤음ㅠ

···

수천만 명의 회원을 자랑하는 미국 최대 도서 서평 사이트 ‘굿리즈’.

이곳에서도 서서히 에곤 K 열풍이 시작되는 중이었다.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에곤 K

★★★★★ 4.89

321명 평가 | 41명 리뷰

출간 1주밖에 되지 않은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서평이 달린 덕분에, SF와 YA(청소년/청년) 코너 양쪽 모두에서 ‘주목받는 신간’ 페이지에 노출이 된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압도적인 공포, 보다 근원적인 의문]

- 에밀리 던칸 (3,742개의 서평/ 312k 명의 팔로워)

무려 3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해 굿리즈의 비공식적 여왕이라 불리는 유명 리뷰어의 호평 덕분에, SF팬덤 외부의 독자들이 대거 유입되고 있었다.

[좋아, 솔직해지자.

나는 최근 SF계를 뜨겁게 달군 ‘에곤 K 현상’을 과장이라고 봤던 사람 중 하나다.

물론 피터팬을 읽어봤고, 그 작품이 신인의 첫 작품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동시에 신선했으며, 그리하여 팬들이 새로운 스타의 등장에 그토록 큰 기대를 걸게 된 것은 인정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난리를 떨 건 아니지 않나?’라며 쿨하게 뒤로 물러서 있던 독자 중 한 명이랄까.

하지만 그런 나의 스탠스는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를 읽으며 180도 바뀌었다.

250페이지 남짓한 이 소설에서는 1인칭으로 진행되는 10대 소년의 일기와, 3인칭으로 진행되는 어느 형사의 이야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가정에선 학대와 방치를 당하고, 학교에선 동급생들의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는 소년 일라이저.

언제나처럼 호숫가에 들러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그는 기이하고 섬찟한 존재감을 느낀다.

그다음 날, 그를 괴롭히던 학생들이 호숫가에서 하나씩 죽어나가기 시작하는데···.

소년은 이 ‘호수 괴물’이 자신의 구원자인지 아니면 그저 파멸적인 존재인지 혼란스러워한다.

한편, 젊은 수사관은 이 ‘호수 괴물 사건’을 조사하러 이 마을에 파견된 인물이다.

처음에는 괴물에게 희생당했다는 이들과 공통적으로 얽혀 있는 일라이저를 의심하지만.

사건을 파헤치면 헤칠수록 그 뒤에 숨겨진, 인간의 인지로는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공포와 마주하게 되고···.

결말에서 —[스포일러]—를 읽고 얼마나 충격받았던지!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는 나의 지난 며칠간을 그 무엇보다도 행복하게 해주었으며.

앞으로 이 에곤 K가 보여줄 작품들이 미친 듯이 기대된다는 것.

거장 랜든 비숍의 추천사, ‘압도적인 공포, 보다 근원적인 의문’이야말로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문구라는 데 내 그간의 리뷰들을 걸겠다.]

또한,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는 출간 즉시 대대적인 증쇄에 돌입했는데.

하루 만에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 100위권에 진입한 덕에, 아마존 마케팅 담당자들은 재빠르게 이 책을 YA 장르 페이지의 ‘주목받는 신간’ 코너에 노출시켰다.

“빅토리아 팀장님! 대박이에요 대박!”

···이 소식을 부하직원에게서 보고받은 빅토리아는 쯧, 혀를 찼다.

“그러게 진작에 해준다고 할 것이지.”

“아 그리고··· 다음 작품 땐 자기네와 제일 먼저 미팅하자던데요?”

“어디, 아마존이?”

“네.”

“생각해보고 연락준다고 해.”

이 같은 ‘에곤 K 돌풍’은 출판업계 관계자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문학 에이전트들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특명이 내려졌다.

‘계약금을 얼마나 부르든 간에 에곤 K를 잡아야 한다!’

*

에곤 K의 데뷔작이 출간된 직후에도 정신이 없었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난리인 기분인걸.’

지금은 밤 10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할 시각이건만.

나는 쉴 새 없이 대화가 쏟아지는 문예창작 클럽 채팅방을 멍하니 지켜보는 중이었다.

[샬롯_데인즈 :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다 읽은 사람? *_*]

[제이든_쿤츠 : 나!!!!]

[미아_로페즈 : 나도!! 아 근데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어 ㅜㅜ]

···

지잉, 지잉-

자꾸만 진동하는 폰을 보다가 무음으로 해버렸다.

‘여전히 좀 민망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상황으로부터 한 발짝 빠져나와 있다는 것.

‘에곤 K’라는 이름 뒤에서 상대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이 다행이었다.

<잊혀진 성자> 때를 생각해보면 지금도 여전히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긴 하지만.

“그건 그렇고, 얼른 인터뷰 답변을 작성해야지.”

다름 아닌 <가디언>지와의 이메일 인터뷰 말이다.

얘기가 나온 건 한참 전이지만,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출간일정을 고려해 시기를 늦춘 터였다.

<가디언> 쪽에서는 적절하고도 무난한 질문들을 보내왔는데.

작품 내용에 관한 것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에곤 K’라는 작가에 대한 것이었다.

대부분은 작성을 마쳤고 마지막 두 문항이 남아 있는 상황.

나는 뻣뻣해진 목을 돌려 가볍게 푼 뒤, 다음 문항으로 넘어갔다.

[Q.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에 이어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까지 어마어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솔직한 심정을 얘기해달라.]

솔직한 심정이라.

짧은 고민 끝에 키보드 위에 손을 가져갔다.

[A: 나는 한 차례 치명적인 위기를 겪은 바 있다. 말하자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릴 뻔했달까.

위기를 잘 이겨내고 시도한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아 감개무량하다.]

마지막 질문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Q. 당신의 팬들에게 가장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당부하고 싶은 것.

아주 잠시, 병실에서 지낼 적이 떠올라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뭐 그거야 하나뿐이지.”

[A: 그거야 당연히 ‘건강’이다.

바쁘게 살다 보면, 특히 젊을 때는 건강을 소홀히 하기 쉬운데.

건강을 잃었다-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엔 이미 늦은 거다.]

거기까지 쓰고는 한 번 더 스트레칭을 한 뒤 글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건강을 챙기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평소 좋은 음식을 챙겨먹고,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법.

책을 읽을 때면 10페이지마다 스트레칭을 한 번씩 하기를 추천···.]

“흐음, 10페이지 말고 5페이지마다 하라고 할까?”

이 정도면 사랑하는 독자들에 대한 당부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싱글거리던 그때.

“유진, 아직 안 자니?”

열어놓은 방문 사이로 새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가디언>지 인터뷰 작성하느라요.”

“맞다 그랬지.”

나는 서점 관계자이기도 한 케이트에게 내가 쓴 인터뷰 답변을 봐줄 수 있는지 물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내용을 읽은 새어머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음, 유진.”

“네.”

“앞의, 작품에 관련된 대답들은 진짜 너무 좋은데.”

내 얼굴을 빤히 보던 새어머니가 노트북으로 눈을 돌리더니.

아래서부터 위쪽으로 역순으로 읽어나갔다.

[책을 읽을 때면 5페이지마다 스트레칭을]

···

[젊을 때는 건강을 소홀히 하기 쉬운데]

···

[잃었다 생각하면 이미 늦은 것···]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던 새어머니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건강전도사···.”

“네?”

*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가 출간된 지 2주가 넘어가는 시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명절을 맞이해 각자의 할머니댁에 간 네드와 아델과 함께 페이스타임을 했다.

-유쥐이인—! 네드!

-크크 천재작가님 잘 있었냐.

폰 화면에 비치는 반가운 친구 녀석들의 얼굴.

-어으, 칠면조 지긋지긋해···.

-나도 나도, 다이어트해야겠어.

“아델 니가 뺄 살이 어딨어, 지금 딱 보기 좋은데.”

-니가 몰라서 그렇다니까.

명절 이야기, 가족 이야기, 다이어트···.

그러다 화제는 자연스레 에곤 K의 데뷔작으로 이어졌다.

-가디언지 인터뷰도 했다 그랬지? 그거 낼모레면 실린댔나?

-크으, 완전 죽여준다. 내 친구가 가디언지에···.

-으흐흐, 사람들 반응 어떨지 기대되네. 아 맞다, 너네 그거 알아? 요즘 독서 커뮤에서···.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떡밥을 두고 토론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그 말과 함께 아델은 우리 셋이 쓰는 채팅방에 캡처 화면을 보냈다.

—————————————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떡밥 정리 완전판

-에곤 K 신작 서술트릭 반전(스포 있음)

-(스포주의)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결말 해석 : 괴물에 먹혔다 vs 아니다

···

—————————————

-오 완전 대박인데? 크흐흐 나도 읽어봐야지.

“와···.”

게시물 제목만 봐도 뭔가 신기하고 감탄이 나오는 가운데.

-이건 아무것도 아냐. 이게 진짜 끝판왕임.

아델이 또다시 채팅방에 공유한 링크.

그것은 SF서브레딧에 누군가가 올린,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미친 반전’에 관한 게시물이었다.

[131.9k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미친 반전(강스포주의)]

———스포일러———

본론부터 말하자면

‘챕터 1 = 결말 이후의 내용’이라는 것.

일단 4페이지, 이 소설의 첫 문단을 보자.

[···‘그것’과 나는 꽤 오래도록 공존해왔다.

그래, 이것은 나 일라이저의 회고록이자.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마감하기 앞서 남기는 유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그것’이 괴물을 의미한다는 건 다들 알 거야.

근데 그 ‘그것’과 내가 오랫동안 공존해왔고, 인생을 마감하기 전에 유언을 남기는 거다?

이걸 볼 때 챕터 1은 소년기 일라이저의 시점으로 쓰인 게 아님.

즉, 마지막 챕터에서 일라이저가 호수에서 괴물을 만난 뒤, 이 괴물과 하나가 되었고.

그 후에 괴물과 오랫동안 공존하다가 자살을 결심한 뒤에 쓴 것이 챕터 1이라고 봄.

└오 그럴싸한데???

└와 미쳤다

└ㄷㄷㄷㄷ 방금 소름돋음

└에곤 K는 ‘진짜’다

└거품이라고 했던 놈들 다 어디 갔냐

···

그것을 다 읽은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아델의 말에 따르면, 이 게시물이 지금 굿리즈랑 인스타그램 등 여러 SNS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나 이거 보고 완전 소름돋은 거 알아? 어떻게 이런 식으로 설계를 할 생각을···.

-와, 이건 아예 상상도 못했는데? 유진 너 뭐야, 진짜 천재였어?

아델과 네드가 신이 나 떠드는 와중에도 나는 침묵을 지켰는데.

물론 이 소설에 반전이 분명히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건 딱히 내가 노리고 쓴 게 아닌데?’

나도 모르는 반전이 있었다는 이 상황이 조금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

“그야말로 파죽지세입니다, 작가님.”

그 시각, 캘리포니아의 비숍스플레이스.

비서 팀에게서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관련 소식을 보고받은 랜든 비숍이 히죽 웃었다.

“뭐, 원고를 읽어봤으니 당연히 난리가 날 거라 예상은 했지만.”

그런 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이 열풍은 피부로 체감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유진이 따로 보내온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 사인본을 책상에 올려둔 가운데.

비숍의 시선이 테이블에 올려진 인삼환 상자의 내용물로 향했다.

“인삼 성분의 알약이라, 신기하구만.”

인삼환에 코를 가져가 킁킁거리는 노작가를 보며 팀이 한마디했다.

“건강에 엄청 좋은 거랍니다. 꼭 챙겨드시죠 작가님.”

“냄새가··· 인삼 냄새가 나는데.”

“인삼환에서 인삼 냄새가 나지 초콜릿 냄새가 나진 않겠죠.”

“으으.”

단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어린이 입맛의 대표 주자 비숍은 작게 신음하고는.

유진이 직접 손을 써서 보낸 편지를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했다.

[1. 물을 많이 드세요. 여기서 말하는 물이 콜라가 아닌, 미네랄워터란 거 알고 계시죠?

2. 가공식품은 이제 그만. 신선식품 위주로 드시고, 동물성 지방은 적당량만 드세요.

3. 운동, 운동이 중요합니다 작가님. 이제는 살기 위해 근육을 키워야 해요, 일단은 걷기 운동부터···]

그렇게 시작되는 유진의 조언은 30번까지 이어져 있었다.

‘잔소리, 아니 조언이 좀··· 많이 길구만.’

그럼에도 입가에 걸린 미소를 어쩌지 못한 비숍이 입을 열었다.

“팀, 내가 전에 그러지 않았던가?”

“네?”

“에곤 작가 말하는 투가 누군가를 닮았다고.”

그때는 그게 누구인지 아리까리했는데 이제야 기억났다.

“우리 어머니.”

“···.”

“어머니가 날 볼 때마다 랜디, 그놈의 콜라 좀 그만 마셔라! 라며 등짝을 때리곤 하셨는데···.”

빛바랜 기억을 떠올리는 노작가의 얼굴에 그리움이 떠오르는 가운데.

[P.S: 제가 미스터 팀을 통해 작가님을 감시 중이란 걸 잊지 마시길.]

맨 마지막에 적힌 추신의 내용에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팀 자네 혹시, 에곤 작가한테 내 하루 걸음 수도 계속 보고하는 중인가?”

“물론입니다 작가님.”

“하.”

뻔뻔하기 짝이 없는 비서의 대답에 비숍은 웃으며 혀를 찼고.

“이거 이거, 잔소리 안 들으려면 열심히 해야겠군.”

습관처럼 과자 접시로 가져가려던 손이 저도 모르게 멈췄다.

“간만에 산책이나 같이 할까, 팀?”

“저야 좋죠.”

“아, 나가기 전에 잠시.”

무언가에 생각이 미친 노작가가 책상 앞에 앉았다.

입가에 즐거운 미소를 띤 채 말하길.

“불난 곳에 기름 한 번 부어주는 정도야 괜찮겠지.”

“기름···이요?”

비숍은 곧바로 자신의 블로그에 접속했다.

[어느 노인의 낙서장| 랜든 비숍 블로그]

‘어느 노인의 낙서장’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독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하는 곳.

랜든 비숍의 블로그 게시물은 하나 하나가 전부 기사화가 될 정도였다.

노작가는 그로부터 약 10여 분간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놀렸고.

이내 블로그에 새 글 하나를 올렸다.

[‘에곤 K’ 현상이 몹시 기꺼운 어느 노인의 한마디]

···한 명의 독자로서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를 홍보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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