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에서 이미지로(1)
“저, 미스터 케빈?”
어쩐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목소리에 케빈 클레그는 번쩍 정신을 차렸고.
두 눈을 껌벅이자 조심스러운 표정의 유진이 보였다.
“많이··· 놀라셨나 봐요?”
“어, 네.”
침을 꼴깍 삼키고는 덧붙였다.
“인생에서 제일 놀랐을 때가··· 열다섯 살 때 막둥이 동생이, 그것도 쌍둥이가 생겼단 얘기를 어머니한테서 들었을 때였는데.”
그때랑 거의 비슷한 급으로 놀란 것 같다고 하자.
유진이 푸흐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앉으시죠.”
“아, 네네.”
외부와 차단된 미팅룸 안, 테이블을 두고 마주 앉은 가운데.
케빈은 여전히 이 상황이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진짜로··· 유진과 에곤 K가 동일인물이라고?’
아니 아니지, 그보다는 유진의 필명이 에곤 K라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리라.
그나저나.
‘내 직감이··· 맞았다니.’
자신을 미스터 클레그가 아닌, 미스터 케빈이라 부르던 유진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울리는 가운데.
케빈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물었다.
“음, 그런데 작가님. 구체적인 얘기에 들어가기 앞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을 질문드리자면-”
“바로 이런 반응이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요.”
상큼하게 웃으며 잘라 말하는 유진을 보며 케빈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에곤의 정체가 유진이라는 것을 알고 바로 이런 생각부터 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이 나이에 그런 글을 썼지?’
비단 자신만이 아닐 거다.
팬덤 독자들은 물론이고, 전역의 에이전트나 출판 관계자 모두들 에곤 K를 은연 중에 ‘인생 경험이 풍부한 장년 남성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만약 유진이 처음부터 자신이 고등학생임을 드러내고 집필 활동을 했다면?’
작품에 담긴 수많은 함의가, 그저 ‘천재 고등학생’라는 그럴싸한 수식어에 가려졌을 것.
그뿐이 아니라-
‘아예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 했을 가능성도 있지.’
그런 결론을 내린 케빈 클레그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작가님. 작가의 이미지가 작품의 ‘독해’를 방해해서는 안 되는 법이니까요.”
“···.”
그 말에 잠시 눈을 크게 뜬 유진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에이전트 보는 눈 하나는 확실한 것 같네요, 하하.”
*
그로부터 거의 한 시간 동안.
나는 케빈 클레그와 함께 각종 판권 논의를 진행했다.
“좋습니다 작가님! 먼저 해외 판권부터 얘기드리자면요.”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 일본.
모두 도서시장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들로 각각 서너 개의 출판사가 입찰해 있다고 했다.
“출판사들 정보와 각자 제시한 선인세 액수를 정리해서 보내드렸는데.”
이 자리에 오기 앞서, 미리 케빈에게서 받은 자료를 살펴보고 온 터였다.
“음, 미스터 케빈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아, 저요? 제 생각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조금 긴장되는지 흠흠, 헛기침을 하는 케빈.
“출판사들 규모와 성향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면, 선인세 액수로 결정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잇는다.
“단순한 금액이 아니라, 출판사가 이 작품에 이 정도로 투자할 의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지표이니까요.”
그것이 이후 책의 출간과 홍보, 마케팅까지도 쭉 이어진다는 것.
설명을 마친 그가 내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작가님의 의향입니다! 혹시 이미 결정하신 사항이 있다면 편히 말씀주셔도-”
“제 선택은 이렇게.”
[영국- 주피터북스, 프랑스- 에디시옹쉬드, 독일- ZOF, 한국- 문학마을, 일본- 유메분코]
사실, 여기 오기 전에 그가 보내준 자료를 보고 나름 고민했었고.
그렇게 고른 출판사 이름을 적은 메모를 보여주자-
“···어.”
케빈은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이내 흐흐 웃었다.
“으아니 이거, 제가 내린 결론이랑 똑같은데요?”
“하하 그런가요.”
우리는 곧바로 영상화 판권 논의로 넘어갔다.
“음, 앞서 해외판권은 결정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는데.”
테이블 위의 자료에 시선을 둔 채로 케빈 클레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이 영상화 판권은 좀··· 애매하더라고요.”
“음, 어떤 점이요?”
“아 네. 일단 여기 1~4번을 보시면, 1, 2번 같은 경우는 감독이 미정인 상태라···.”
역시나.
나 역시 우려했던 점이 케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반면 3번은 감독이, 그것도 이름값이 상당한 감독이 이미 붙은 상태로 제안해온 것이니만큼.”
내 얼굴을 슥 돌아본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이 네 가지 가운데서 3번을 가장 추천드려야하겠지만, 음 글쎄요.”
“어, 3번을 추천해주시려는 거 아니었나요?”
짐짓 모른 척 묻자 케빈이 험상궂은 얼굴에 난색을 표했다.
“그··· 물론 3번이 여러 변수로 따져봐도, 옵션 금액만으로 봐도 제일 괜찮은 선택이긴 합니다만.”
목이 타는지 아이스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켜고는 나를 정면으로 돌아본다.
“그, 작가님. 소신 발언 한 번 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아, 이거 선배들이 알면 절 엄청 혼낼 것 같긴 한데.”
쩝, 소리를 낸 케빈이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자비에 산도발 감독, 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입니다. 그분 영화들도 다 재밌게 봤고요.”
<씨몬스터> 시리즈 얘기를 잠깐 꺼낸 그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분의 연출 스타일이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느낌으로 연출할 경우,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묘미를 살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아예 원작이랑은 180도 다른 작품으로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어서.”
“···아.”
“그게 설령 영화 자체로 히트할지라도, 그런 경우엔 원작의 홍보엔 별다른 영향을 주질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후우, 소신 발언을 마친 케빈은 이마의 진땀을 훔치며 덧붙였다.
“작품에 따라 변화 무쌍한 연출을 선보이는 감독도 있지만, 자비에 산도발 감독은 절대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요.”
자신이 그의 영화를 빠짐없이 봐온 만큼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는 것.
“으··· 괜히 제 얘기 때문에 작가님이 혼란스러워지시는 거 아닌지 모르겠는데-”
“저도 동의해요, 미스터 케빈.”
“네?”
두 눈을 껌벅이는 에이전트를 마주 보며 씩 웃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동감입니다.”
바로 얼마 전, 내가 자비에 산도발 감독을 택해서는 안 될 이유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방금 미스터 케빈의 입에서 모두 나와서 솔직히 깜짝 놀랐네요.”
“···!”
거구의 에이전트가 눈을 휘둥그레 뜨던 그때.
“아 그리고.”
나는 자료상의 4번에 적힌 ‘막성스 라미’라는 이름을 짚어 보였다.
“제 선택은 여기 4번, 막성스 라미 감독님입니다.”
“···네?”
“뭐 구체적인 이유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그가 연출한 독립영화를 본 적 있으며, 아직 경험은 많지 않지만 내가 원작자로서 생각하는 <호수에 무언가가 산다>의 영화 버전에 어울릴 것 같다- 라고 두루뭉술하게 설명하자.
“알겠습니다 작가님. 그럼 바로 여기 이 라미 감독님께 연락드리죠.”
“···반대하시진 않는 건가요?”
“제가요? 설마요.”
케빈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에이전트는 어디까지나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그의 결정에서 나올 수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거지, 절대로-”
상냥하지만, 흔들림 없는 목소리였다.
“작가를 대신해서 결정권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배웠거든요.”
···아, 역시.
내가 에이전트 하나는 진짜 기 막히게 선택했네, 라는 생각에 만족감이 들던 그때.
“아 근데.”
케빈이 꼴깍 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작가님, 배고프지 않으신가요? 점심은 뭐 드실래요?”
“아, 점심.”
잠시 후.
우리는 이 근방에서 제일 맛있기로 유명한 피자 레스토랑에 갔는데.
“역시, 피자에 파인애플을 올리는 건 말도 안 되죠.”
“크으··· 역시 작가님은 뭘 좀 아시는 분이셨군요. 피자는 복잡한 토핑 없이, 치즈피자. 아니면 딱 페퍼로니까지가 한계죠.”
“그럼요. 미스터 케빈도 피자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쪽인···.”
입맛도 얼추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로부터 1주 뒤인 2월 초.
<사이언스앤드판타지> 2월호가 드디어 발간되었다.
-드디어 나왔다——!!!!
-벌써 다 읽고 왔습니다··· 미친 재미 보장임
-말해 뭐해 그냥 ‘이것이 에곤 K다’
-아니 근데··· S&F 너무한 거 아님? 3월까지 한 달을 어떻게 기다리라고ㄷㄷㄷ
-사악한 놈들··· 3부 원고도 있으면서 왜 같이 안 내주냐 엉엉
그렇게 인터넷상의 SF 팬덤은 <멸망한 세계의 피터 팬> 2부 발표 소식으로 떠들썩했지만-
“···이게 사람 사는 거지.”
막상 나 자신은 상당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늘 그렇듯 충실하게 수업을 듣고, 클럽활동도 열심히 하고.
가끔은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다니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랄까.”
그리고 오늘은 수업을 마치고 곧바로 문예창작 클럽활동을 하러 온 것.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클럽룸 쪽으로 걸어가던 그때.
“유진, 안녕.”
문득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자 샬롯이 서 있었다.
···웬일로 나한테 직접 말을 다 걸었네, 그런 생각에 신기하면서도.
“안녕 샬롯, 주말은 잘 보냈어?”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받았다.
“아, 어. ···그, 미아랑 같이··· 프레리라이트에 가서 신간을 둘러보고 왔어.”
샬롯은 여전히 나와 눈은 똑바로 못 마주쳤지만.
떨리는 목소리로나마 열심히 소리내어 말하려고 했다.
“아, 프레리라이트 좋지.”
“응.”
“거기서 행사도 자주 하던데···.”
그렇게 잠시 우리는 서점 이야기를 나눴고.
“그나저나 샬롯,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지나가듯 슬쩍 덧붙이자, 샬롯이 아- 하며 얼굴을 살짝 붉힌다.
“그게··· 음, 여전히··· 쉽지 않긴 한데.”
고개를 들더니 -아주 잠깐- 나와 두 눈을 마주쳤다.
“조금씩, 노력해보려고.”
“···.”
조금씩 노력한다라.
그 단순한 말이 어쩐지 가슴을 울리는 가운데.
나는 응원의 마음을 담아 말했다.
“멋지네. 같이 노력해보자, 샬롯.”
“···고마워.”
그리고 잠시 후.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힐크레스트 고등학교 문예창작 클럽의 정규활동이 시작했다.
*
문예창작 클럽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이라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분기별로 진행하는 ‘주제 글쓰기’였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주제 글쓰기엔 정해진 분량이나 형식이 없습니다. 단지 ‘주제’만이 있을 뿐이죠.”
담당교사의 지도하에 이뤄지는 이 주제 글쓰기 활동은 학생들이 집필 경험을 쌓는 데 좋은 기회가 되곤 했다.
레너드 하인스는 픽션이면 좋겠지만, 논픽션이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덧붙였고.
“그리고 오늘, 내가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은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화이트보드에 알파벳 두 글자를 적는 미스터 레너드.
[AI]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반향이 일었다.
“어, AI요? 재밌겠는데.”
“그러게, SF 장르로 쓰기에 최적인···.”
“근데 너무 뻔해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주제가 정해지고 나자 학생들은 각자 브레인스토밍에 돌입했다.
과학소설 마니아인 제이든은 아주 신이 나서 노트에 뭔가를 잔뜩 끼적였고.
순문학을 지향하는 미아나 로완은 미간을 좁힌 채 고심하는 가운데.
‘AI라면, 몇 번 사용해본 적은 있지만···.’
샬롯 또한 크게 다른 상황은 아니었다.
AI에 관해 그녀가 아는 것이라곤, 일부 학생들이 이 AI로 작성한 과제를 제출해 문제가 되었다는 것 정도?
‘그래서 우리 학교에선 이 AI를 쓰는 걸 엄격히 규제하고 있고.’
그 외에는 자동으로 이미지를 생성한다거나, 코딩을 한다거나···.
뭐 그런 일차원적인 것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에 잠시 한숨을 쉬던 그때.
옆자리의 유진이 노트북 메모장에 타이핑하는 것이 보였다.
[AI. Artificial Intelligence.
AI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떠오르는 생각을 자유로이 메모하는 듯한데.
[AI의 학습가능성
무엇을 학습시키면 좋을까]
썼다가, 다시 지웠다가.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유진이 좀 더 긴 문장을 뽑아낸다.
[장르적으로, 그러니까 하드 SF 말고, ‘휴머니즘’적으로 접근한다면?]
거기까지 쓰고는 미간을 좁힌 채 흐음, 하며 고민하더니.
뭔가가 떠올랐는지 재빨리 키보드 위로 손을 가져갔다.
[ai. 뭔가를 대신해주는 보조적, 혹은 도구적 존재가]
[필수불가결한,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돼버린다면?]
···
[예를 들면]
[죽음/상실/애도]
[가족의 빈자리]
대체 ‘상실’과 ‘AI’라는 키워드가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 걸까.
그 사고 과정을 쉽사리 따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그 빈자리를 ai가 대신해준다면?]
탁, 엔터를 치며 다음 줄로 넘어가는 유진.
[제목-
]
어느새 라는 제목이 나온 가운데.
타다다다닥, 다다다닥—
커서가 실시간으로 움직이며 만들어지는 문장들을, 샬롯은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러니까.’
죽은 딸 데이지의 대화 패턴을··· AI에게 학습시키는 어머니의 이야기란 말이지?
순간, 팔 위로 오스스 소름이 돋는 동시에-
‘진짜 재밌겠다.’
차오르는 기대감에 샬롯은 군침을 삼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