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반짝이는 상자
“….”
나잇값을 못하고 소리를 질러 대서일까.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굳이 따지자면 곤란한 상황이라기 보단, 쪽팔린 상황.
너무 신이 났던 걸까.
바로 뒤까지 다가온 사람들을 인지하지 못해버렸다.
멍한 표정으로 두 명의 여자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하세요…?”
작은 키의 여자가 말을 더듬으며 물어왔다.
뭘 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고 해야 하나.
더 이상해 보일 거 같은데.
“소연아 이리 와. 가까이 가지마.”
윽.
너무 했다.
바로 앞에 사람이 있는데 가까이 가지 말라니.
주름이 자글자글했던 시절, 많이 들은 얘기였지만 젊음으로 돌아온 후엔 처음 듣는 말이었다.
“희연 언니, 잠깐만. 이 오빠 어디 아픈 거 같아.”
애야 난 아프지 않단다.
잠시 신이 났던 것뿐이란다.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오빠란 호칭은 몹시 기분이 좋구….
짝!
마음속으로 뺨을 올려 쳐버렸다.
상대방의 나이와 현재 내 나이를 고려해봤을 땐 그다지 도리에 어긋난 생각은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내 양심은 불혹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김소연!”
희연과 소연.
두 사람의 이름인 것 같다.
“전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생을 부르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
안 괜찮더라도 걱정하는 언니를 위해서 괜찮은 척을 해야 할 것 같다.
“거봐. 괜찮다고 하시잖아. 얼른 와.”
저 수상한 사람 아니니까 그렇게 급하게 안 부르셔도 되는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방금 처음 본 사람 말을 믿을 리가 있겠는가.
그런 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눈이 같은 눈을 부릅뜨고 날 바라보고 있는 김소연.
애타는 언니를 떠나서라도, 착한 분인 것 같지만 빨리 가줬으면 했다.
혼자 소리 지르다 걸려서 그런지 이 창피를 홀로 삭힐 시간이 필요하다.
“정말은 괜찮은 거죠…? 도움이 필요하신 거 같은데….”
그 정도로 이상하게 보였던 걸까.
하긴, 캄캄한 밤에 왠 놈이 강해지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니 나 같아도 미친놈이라 여겼을 것 같다.
“하하… 아니에요. 얼른 가보세요.”
괜찮다는 말에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김소연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시선을 나에게 고정한 상태로.
“저엉말 괜찮은 거죠…?”
“그럼요, 정말 괜찮아요.”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겠지만, 괜찮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해맑게 웃어 보였다.
씨이익.
그 순간.
하늘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걷히며 캄캄했던 길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동시에 내 얼굴을 비추는 밝은 달빛.
“!!”
“!!”
두 사람의 동작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얼마나 놀란 건지 두 사람은 호흡까지 멈춰버린 것 같았다.
아.
큰일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
지금 내 몰골이 어떤지를.
….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른 후.
“저… 저기.”
“오지 마세요.”
“죄… 죄송합니다!
빠르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 두 사람.
괜찮냐고 묻던 소연이란 분도 피가 떡칠된 얼굴은 감당 불가능인 듯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등을 돌린 희연과 소연.
후다닥.
잠시 후 두 사람의 모습이 마을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 * *
불빛에서 약간 떨어진 버려진 건물.
쏴아아아.
사람의 발길이 끊겨 관리가 엉망이었지만, 다행히 수도는 끊기지 않은 듯했다.
촥! 촥! 촥!
“으….”
차갑다.
더럽게 차갑다.
그런데, 상쾌하다.
얼굴이라도 좀 닦았어야 했는데 내 실수다.
- 죄송합니다!
내 몰골을 보자마자 오만상을 찌푸리며 도망가버린 두 사람.
도망칠 만했어.
그나마 둘은 담력이 강한 편이었다.
나 같았으면 한밤중에 이런 몰골을 마주쳤다?
바로 기절행이다.
- 호다닥.
그리고 마을로 도망가버리는 두 사람과 함께 나도 이곳으로 도망쳐 왔다.
죄지은 것도 아닌데 나까지 꼭 도망쳐야 하는가 의문이 들긴 했지만, 혹시나 오해를 해 총탄이 날아들까 일단 몸을 피한 것이었다.
스윽.
고개를 들어 깨져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진작에 씻을걸.
얼굴이라도 씻으니 미치광이 살인마의 이미지에서는 많이 벗어난 생김새가 됐다.
그나저나 또 어두컴컴한 화장실과 차가운 물이라니.
거울에 비춘 모습이 아니었다면 다시 유물관으로 돌아왔다고 착각할 뻔했다.
아 따신 물로 씻고 싶다!
꼬로록.
그렇게 따듯한 물에 대한 욕구를 불태우고 있을 때, 이보다 더 큰 식욕이 내 배를 울렸다.
배고플 만하지.
유물관에서 시작된 아침부터 지금까지 단 한 끼도 먹지 못했으니 말이다.
거기다 그 개들한테 쫓겨서 미친 듯이 달리기까지.
당장 뭐라도 안 먹으면 무기왕은커녕 잭 더 리퍼의 면도칼과 함께 굶어 죽을 것 같았다.
뒤적.
하운드를 잡은 후 굴러다니는 천으로 만든 보따리.
보따리 안엔 하운드의 이빨이 가득 담겨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맞게 일반 개들보다 몇 배는 더 큰 이빨.
하운드의 이빨은 악세사리나 장식품으로 많이 가공된다고 들었기에 돈이 될까 싶어 주워왔다.
진짜로 돈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보자!
밥 먹으러!
* * *
와구와구!
앞에 차려진 상으로 폭격을 시작한 지 10분째.
후루룹!
단숨에 눈앞에 있던 국물까지 원샷 해버렸다.
아직 부족하다.
하나 더 시키기 위해 손을 번쩍 들었다.
“여….”
여기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
나이 때문에 불가능했던 호칭이 떠올랐다.
“이모님!”
입에 착착 감기는 정겨운 호칭.
자리에 앉아 계시던 이모님이 환하게 웃으며 걸어왔다.
시간을 돌리기 전 내 나이와 비슷한 연배이실 듯했다.
“뭐 더 필요한 거 있어? 뭐 줄까? 밥을 고봉으로 줘야겠구만.”
크으, 정겨운 호칭과 그에 따라오는 정겨운 대답.
이게 다 이모라는 호칭의 힘이 아니겠는가.
“여기 너비아니 정식 하나 더 주세요! 밥 가득요.”
“그려 그려. 정말 잘 먹는구먼.”
이모님의 잘 먹는다는 말에 상으로 눈을 돌렸다.
폭격이 제대로 떨어졌는지 어느새 초토화되어 있는 너비아니 한 상.
너무 인간의 존엄성을 버리고 게걸스럽게 처먹었나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제대로 된 음식을 맛보는 게 십수 년만이기 때문이다.
장벽이 생긴 후에도 관련된 능력자와 시스템의 개발로 식량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한정되어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까.
상류층은 식량을 쉽게 풀지 않았다.
대신, 새로 개발한 영양바와 생산이 쉬운 콩고기를 풀었다.
얼마나 지겨웠던가.
뭐로 만들었는지 모르는 맛없는 영양바와 콩 비린내 나는 고기까지.
바닥에서도 진성 바닥의 신분이었기에 이거라도 주는 것에 감사하며 먹긴 했지만 말이다.
두근.
그러던 중 만난 너비아니.
이건 참을 수 없다.
아니, 참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입에 넣는 순간 팡! 하고 터지는 육즙과 혀에 착착 감기는 부드러움까지.
이렇게 미친 맛의 너비아니 정식이 8천원이라니.
백반집의 힘은 위대하다.
하나 더 먹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거기다,
묵직.
주머니도 두둑했다.
앞으로 너비아니 정식 100개는 더 먹을 수 있었다.
- 멀쩡한 건 개당 2만원! 부러진 건 개당 1만원!
식당으로 향하기 전 들린 물품 거래소.
거래소 주인은 잔뜩 짊어지고 온 하운드의 이빨에 가격을 매겨줬다.
- 다 팔겠습니다!
다른 곳에 가면 가격을 더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차피 안 팔리면 다 버려야지 하던 것들이었다.
얼마를 주든 당장의 배고픔과 옷을 살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 자 여기 80만원.
그 길로 건네받은 80만원을 손에 쥐고 눈에 보이는 백반집으로 돌격했다.
“여기 너비아니 정식에 밥 가득.”
어느새 주방을 다녀온 이모님이 한 상을 더 건넸다.
“감사합니다.”
선택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밥이라니.
입에 너비아니를 하나 넣은 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너무 배고파 잘못 본 걸 수도 있기에 다시 한번 확인해야 했다.
2021년 7월.
음! 잘못 본 게 아니군.
걸려 있는 달력과 식당의 TV에서 나오는 날짜를 재확인한 뒤에야 마음이 놓였다.
아직 종말의 날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좋았어.
무기를 모아 강해질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
날짜를 봤는데 당장 내일이 종말의 날이었다면 몹시 곤란했을 텐데, 다행이다.
“총각도 헌터인감?”
내 먹방을 구경하던 이모님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얼굴과 몸은 대충 씻어냈지만 여전히 옷에는 하운드의 피가 묻어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던 이모님.
아마 데몬을 사냥하는 헌터가 낯선 직업이 아니고, 헌터들이 피를 묻히고 다니는 일도 흔해서인 듯했다.
“하하… 아직은 아니에요.”
아직은.
아직 아니지만 내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가장 최우선은 무기 모으기지만, 그러기 위해선 일단 먹고 살 방법이 필요했다.
옷이라던가, 밥이라던가, 잘 곳이라던가.
그리고 교통비도 필요했다.
가까운 곳부터 가긴 하겠지만, 다양하고 많은 무기를 찾기 위해선 결국 다른 나라까지 가야 하니까.
“그래? 될 생각이 있다면 서울로 가야겠구만.”
국가직 헌터에 지원할 수 있는 등록소는 서울에만 딱 하나 있었다.
그것도 가장 핫플레이스라는 강남.
아마 강남의 돈 많은 사람들이 유동 인구의 유입을 위해 하나만 지어놓은 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어쨌든,
“내일 가볼 계획입니다, 하하.”
“가서 잘 하길 바라네.”
“고맙습니다.”
호칭의 힘이 이리도 강했던가.
마지막 덕담까지 잊지 않은 이모님이 밝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훈훈….
훈훈하다고 생각하려는 순간.
이모님을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인구의 99.9%가 개방을 해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종류는 무척 다양했다.
그리고, 능력의 대부분은 거창한 단어와 달리 몹시 평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바느질을 빠르게 할 수 있다던가, 발음이 더 정확해진다던가.
이런 류의 능력을 갖게 된 사람들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개방과 동시에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말이다.
반성해야겠네.
유물관 창고에서 검을 만지며 개방을 했을 때도 난 절망했었다.
이제와서 개방이 되는 게 무슨 소용이야! 라고 하면서.
그랬었는데 밝게 웃으며 처음 보는 나한테 덕담까지 건네는 이모님을 보니 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다 먹고 더 먹어야지.
별로 도움은 안 되겠지만 최대한 많은 백반을 팔아드리리라 마음먹는다.
오늘 많이 못 먹으면 내일 떠나기 전에라도 와서 또 먹어야지.
그렇게 잠시 멈췄던 식사에 속도를 높이려는 찰나,
짤랑.
백반집의 문이 열리고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왔다.
반사적으로 눈이 문으로 향하고, 들어 올리던 젓가락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복이 멋있다거나 아는 사람이어서는 아니었다.
반짝.
제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
두 남자가 들고 있는 상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면도칼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황금색 물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