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서울로
무슨 제복이었지?
가게로 들어온 사람들을 바라봤다.
작은 상자를 들고 들어온 두 명의 사람들.
군인이나 경찰은 아니었다.
분명 TV에서 본 적이 있는 제복인데.
뭐였지.
저 밑에 있는 기억을 끌어내기 위해 오만상을 찌푸렸다.
통상 찌푸려지는 인상과 기억력은 비례한다.
아!
기억났다.
대기업 대산에 속해 있는 용병단.
그 용병단에 속한 헌터들이 저런 제복을 입고 TV에 나오곤 했었다.
데몬 헌터지만 국가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국가보다 훨씬 좋은 조건을 약속으로 대기업의 용병단에 소속된 이들이었다.
국가 헌터처럼 공식적인 신분은 아니지만, 대기업인 만큼 국가직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는 헌터들.
국가와 대기업의 긴밀한 협력은 기본이라 나라의 지원도 잘 받는다고 들었었다.
“여기는 이런 식당밖에 없는 거야?”
“하하. 외곽이라 어쩔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대리님.”
“쩝!”
상사와 부하로 보이는 이들이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송도 부근의 작은 도시. 아니지, 마을이 더 잘 어울리는 작은 곳이었다.
“역시 돈 잘 버는 사람들은 입도 비싼 건가.”
대놓고 가게를 폄하하는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가게 주인인 이모님도 다 듣고 있는데 이런 식당이라니.
이 너비아니를 먹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봐야겠다.
그나저나.
저걸 어떻게 한다?
상자 안에 뭐가 든지는 모르겠지만 잭 더 리퍼의 면도칼 때와 같은 빛이었다.
뭐가 됐든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들어있을 터.
가서 잠깐만 보여달라고 하면 뺨 쳐맞겠지.
부하는 모르겠지만 안하무인 스타일인 저 대리란 놈은 뺨을 치고도 남을 놈이다.
백번 양보해서 보여준다 치더라도 문제였다.
내 무기고로 옮겨 오면서 실물이 사라졌던 면도칼.
만약 모든 경우가 같다면 난 대산이란 대기업에 도둑놈으로 낙인 찍히고 말 것이다.
지금은 딱히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깝네.
조금 아까웠다.
내가 조금만 더 셌다면 어두운 길에서 뒤통수를 갈기고 상자를 뺏어….
꼬집.
나도 모르게 드는 나쁜 생각에 허벅지를 꼬집었다.
흠.
허벅지를 꼬집어 나쁜 생각을 멈추긴 했지만, 눈을 뗄 수는 없었다.
저 사람들이 상자를 어디다 갖다 버리지 않는 이상 언젠가 내 손에 넣을 수야 있을 테지만.
난 지금 필요했다.
무기고에 면도칼 하나밖에 없는 상태.
다른 무기가 하나라도 더 필요하다.
일단은.
지켜본다.
* * *
식당을 나와 거리를 걸었다.
배가 너무 빵빵해 조금만 더 먹었다간 역류해버릴 것만 같았다.
아쉽네, 한 상 더 먹고 싶었는데.
이미 너댓명 분의 양을 먹었으면서도 아쉬웠다.
내일 출발하기 전에 더 먹어야지.
저벅.
식당에 있던 대산의 헌터들을 떠올렸다.
- 내일 날 밝으면 강남 본사로 가자고.
입으론 너비아니를 먹고 있지만 청각을 포함한 모든 신경은 그들에게 향해 있었다.
그 결과 서울로 가겠다는 상사의 말과,
- 혹시 모르니까 페어를 구해서 가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상사에게 페어를 제안하는 부하의 말을 엿듣는데 성공했다.
페어, 말 그대로 동행이다.
통상 마을에 상주하는 군이나 경찰 가드들이 만들어 주는 동행.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목적지까지의 이동이 안전해지기에 국가 차원에서 해주는 것이었다.
나도 많이 했었지.
개방 조건을 찾겠다며 여기저기 쏘다닐 때 이룬 적이 많았었다.
물론, 능력이 없다 보니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민폐 그 자체였지만.
으.
페어가 이뤄지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통상 같은 페어가 되면 능력을 물어보기 마련.
개방을 하지 못했다는 대답을 할 때마다 얼마나 눈치가 보였는지 모른다.
대답을 듣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는 일.
- 그럼 저한테 딱 붙어있어요! 지켜줄 테니까.
물론 아닌 사람도 있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날 지켜줬던 사람들.
싱긋.
나도 이제 1인분은 할 수 있다.
더 이상 페어를 만들 때마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그럼 이제….
고개를 돌려 적당한 공터를 찾았다.
- 방 없어요.
오랜만에 뜨신 물에 씻고 침대에서 자보나 했는데,
쉽지 않았다.
가는 모텔이나 여관마다 방이 가득 차버린 것.
아쉽지만 오늘은 노숙을 해야 했다.
뭐, 유물관 골방이나 공터나.
골방이 조오금 더 낫긴 했지만, 큰 차이는 없어 보였다.
부스럭.
모텔비 대신 사온 침낭을 꺼냈다.
아니지, 모텔비 대신이라고 하기엔 몹시 비싼 가격의 침낭.
헌터들이 늘어나며 밖에서 자야 하는 상황이 많이 생겨서인지 캠핑 관련된 용품이 더럽게 비쌌다.
쏘옥.
침낭으로 들어가 유사 번데기 형태가 되도록 지퍼를 끌어올렸다.
바닥이 딱딱하긴 해도 비싸서 그런가 꽤 포근한 침낭이다.
“하아….”
하늘을 바라봤다.
캄캄한 하늘을 밝히고 있는 달과 별.
그리고 노출되어 있는 얼굴로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까지.
조용히 눈을 감고 뺨을 간지럽히는 바람을 즐겼다.
뭐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첫날 밤이다.
* * *
“서울로 가시는 분들은 이쪽에 서주세요!”
해가 중천에 뜬 아침.
마을의 가드 역할을 하고 있는 경찰이 교통정리를 시작했다.
어제는 늦은 밤이라 몰랐었는데 마을엔 꽤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었다.
열심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어제 식당에서 만났던 대산의 헌터들.
목적지가 같으니 가능하다면 그들과 페어로 가고 싶었다.
“!!”
“!!”
찾는 헌터들은 없고 다른 이들이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어젯밤 날 보고 도망쳤던 소연과 희연.
어색한 인사를 건네는 둘의 눈을 보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사람이었구나.
100%다.
“안… 안녕하세요.”
나도 인사를 건네는 사이, 인원수와 구성원을 살피던 경찰이 우리 쪽을 바라봤다.
“거기 세 분!”
“네!”
정확히는 두 명과 한 명이었지만, 부르는 소리에 얼떨결에 대답해버렸다.
“여기 대산 분들과 함께 가시죠.”
대산!?
아니나 다를까.
경찰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엔 어제 식당에서 봤던 두 명의 남자가 있었다.
나이스!
상자는 다른 곳에 둔 건지 빛은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나저나,
쭈뼛쭈뼛.
동행이 아닌데도 동행처럼 걸어가자니 몹시 어색했다.
“어서오세요, 이대현입니다.”
“대산의 대리, 전국현입니다.”
어색함을 깨는 대산 헌터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김소연입니다!”
“김희연입니다.”
“백운….”
“어서 오세요! 저희가 안전하게 서울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하하!”
저 쉨.
아니나 다를까.
어제 식당에서 안하무인처럼 굴었던 전국현.
전국현이 나 따위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듯 김소연과 김희연에게 다가갔다.
아직 내 소개는 끝나지도 않았건만.
뭐, 별로 안 궁금하겠지.
“안녕하세요, 백운 님.”
서글서글한 표정의 이대현만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역시.
사람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는 듯했다.
저런 선배 밑에 이런 후배가 있다니.
“이쪽으로 오시죠, 하하! 대산에서 지원해 준 차량으로!”
“하하… 네.”
전국현이 부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김소연과 김희연을 안내했다.
일단 대기업에서 지원해 준 차량이라 하니, 서울까진 편하게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부르릉.
“세상 참 좋아졌어요, 그쵸? 내가 운전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다니.”
능력이 생기며 급속도로 발전한 기술들.
그 중엔 나온다 나온다 말만 많았던 자율주행이 가장 큰 찬사를 받고 있었다.
물론 나야 회귀 전까지 더한 것들도 봐왔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말입니다! 하하! 제가 또 그런 걸 그냥 못 넘기거든요! 아주 강하게 말을 했죠! 내가 맡겠다!”
전국현은 출발해서부터 쉬지 않고 자신의 무용담을 떠들고 있었다.
옆에서 그저 웃고 있는 이대현을 보니 50% 이상은 허구로 이루어진 듯했다.
그리고, 사실 상관없었다.
전국현의 말이 허구든 진짜든, 무용담을 떠들든 슬픈 이야기를 떠들든.
내 눈은 맨 뒤에 있는 상자에 꽂혀 있었다.
궁금하다!
미치도록 물어보고 싶었다.
안에 든 건 뭐냐고.
대충 던져 놓은 걸로 봐선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한데.
대체 뭘까?
사사삭.
은밀한 움직임으로 이대현에게 다가갔다.
“대현 님, 뒤에 있는 상자엔 뭐가 들었나요?”
뒤를 돌아본 이대현이 미소를 지었다.
“아아, 저거요. 송도 바다 쪽에서 발견된 유리병이에요. 쪽지가 든 유리병.”
“!?”
무기가 아니라 유리병이라니.
빛을 뿜어내는 게 무조건 무기일 거라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유리병이라니 의외였다.
“대산으로 제보가 들어와서요. 알 수 없는 문자로 적힌 유리병을 발견했다고요. 회사에선 혹시 모르니 가져오라고 저희를 보냈고요.”
쪽지에 무언가 단서가 있는 건가.
카이안도 말했었다.
내 능력과 자신의 능력은 궁합이 좋다고.
바스러져 사라져버린 무기까지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어찌됐든.
약간의 희망은 생겼다.
이대현은 저 상자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았다.
말로 꼬드기든, 아니면 상황을 만들어서라도 서울에 도착하기 전에 상자를 열어봐야 했다.
그렇게 머리를 열심히 굴리고 있던 중.
“배… 백운 님은 서울에 왜 가시는 거예요?”
한참을 불편하게 있던 김소연이 말을 걸어왔다.
“국가직 헌터에 등록하려고요.”
“어! 저랑 언니도 헌터 등록하러 가는 길인데.”
드디어 발견된 공통 관심사.
헌터 등록이란 주제의 등장과 함께 어색함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저랑 언니는 집이 인천이거든요. 그런데 등록소가 강남 밖에 없어서 가는 중이에요.”
“정말 불편하죠? 헌터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강남에만 있는지 모르겠어요.”
“맞아요!”
공감대까지 형성되자 무거웠던 차 안이 화기애애 해졌다.
침묵을 지키고 있던 김희연도 몇 마디씩 할 정도로 전환된 분위기.
“헌터가 되는 게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소외되어버린 탓일까.
잠자코 있던 전국현이 엄근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국가직 헌터는 10급이 시작이다 보니 보수도 너무 적고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가능하다면 저처럼 대기업의 용병단에 들어오는 걸 추천드립니다. 보수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전국현의 자기 자랑과 훈시.
가능하다면 저 주댕이를 틀어 막….
앗.
나도 모르게 나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안하무인이고, 눈치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훈시를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말할 권리는 있는 것인데 말이다.
“하하… 대단하시네요, 국현 님.”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전국현의 말에 열심히 대답해주는 걸 보니 김소연이 어떤 캐릭터인지 알 것 같았다.
천사.
저런 듣기 싫은 소리도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여주다니.
엄청난 인내심과 포용력이다.
“쯧….”
그에 반해 똥 씹은 얼굴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 김희연.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나만 해도 조금만 더 들으면 전국현의 입을 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하하하하! 원하신다면 제가 대산에 추천을….”
끝도 없을 것 같은 전국현의 말이 화룡정점을 찍으려는 순간,
콰앙.
“!?”
“꺄악!”
굉음과 함께 차가 하늘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