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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17화 (17/473)

17화. 떨어진 용

세상에…. 이게 머선 일이고.

눈앞에 떨어진 건 다름 아닌 용이었다.

그것도 푸른 빛깔을 눈부시게 뿜어내고 있는 청룡.

가상의 존재가 아니었구나.

천천히 거닐며 떨어진 용을 살폈다.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전설에서나 듣던 용이 실존하다니.

스윽.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청룡의 몸에 가져다 댔다.

미약하지만 아직 살아있는지 오르락내리락하는 몸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쪽이 머린가.

몸이 두꺼워지는 방향을 향해 걸어갔다.

허허벌판인 고지와 용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터였다.

무기왕의 능력이 날 엄한 곳으로 이끌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쉬이이!

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거대한 뿔이 달린 용의 머리가 나타났다.

갑자기 입 벌려서 날 잡아먹진 않겠지?

조금 전까지 뻑하면 주댕이를 벌려대는 크럭커와 싸우고 와서일까.

거대한 입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았다.

난 맛도 안 느껴질 텐데.

한 입 거리.

아니지, 미세먼지급 먹거리.

이 정도의 크기의 용에게 난 그런 존재였다.

사람이 아주 작고 작은 소금 입자 하나를 먹는 느낌과 비슷할 터.

저벅.

용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얼굴의 정면으로 다가갔다.

만약의 상황엔 도주하기 위해 면도칼을 해제하지 않은 상태였다.

음!?

용의 정면에 선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매섭구만.

예상은 했지만 훨씬 더 부리부리하고 매서운 눈매를 가진 용.

힘을 다한 건지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커다란 코에선 가뿐 숨이 내쉬어지고 있었다.

날 못 보는 건가?

바로 앞에 서 있음에도 용의 눈동자는 날 향하지 않았다.

분명 조금씩은 반응이 있는 걸 보아 멈추거나 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마치 나란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휘적휘적.

손을 흔들어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희미한 숨만을 내뱉고 있는 청룡.

죽어가고 있다.

용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 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호흡이 희미해지고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지만, 느껴졌다.

눈앞의 용이 곧 죽을 것이라는 걸.

!?

죽어가는 용을 바라보고 있던 중, 피부로 느껴지던 바람의 속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달라진 건 바람의 속도뿐만이 아니었다.

슥.

고개를 들자 보이는 하늘.

!!

하늘을 덮고 있던 구름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하늘을 촬영한 뒤 수십, 수백 배속으로 돌려놓은 느낌이었다.

우우웅.

어느새 완전히 눈을 감은 용.

용의 주변으로 맑은 물이 솟아올랐다.

맑다는 단어가 부족할 정도로 깨끗하고 투명한 푸른 색의 물.

청룡의 비늘과 잘 어울리는 색깔이었다.

- 용이 떨어져 죽은 자리에 물이 생기면서 양재천이 됐다고 해요!

구룡산을 오르며 들었던 임수빈의 말이 떠올랐다.

설마.

그저 재미 삼아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용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해서일까.

임수빈이 말했던 게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스르르..

용을 중심으로 솟아난 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샘물 정도의 물이었지만 지금은 콸콸 넘쳐 허허벌판이던 고지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무것도 없이 매말라 있던 장소에 변화가 찾아왔다.

변화.

이 단어만으론 표현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변화보다는 창조에 가까운 현상.

물이 닿은 모든 곳에서 새싹이 피어났고, 그 새싹은 잠시 후 거대한 나무가 되었다.

황무지라 불러도 이상할 것 없던 장소.

조금 지나자 그곳은 숲이 되었고, 점점 솟아오르는 지형과 함께 쌓이고 쌓인 숲은 마침내 산이 되었다.

드드드!

내가 서 있는 곳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주변이 산으로 변한 후, 용이 죽은 장소에도 토지가 빠르게 쌓이기 시작했다.

거대한 용의 영향인지 일정한 공간을 남겨두고 동굴화가 되어버린 지대.

첨벙.

곧이어 용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물이 동굴을 채워나갔다.

어어!

발밑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물의 감각.

워낙 빠르게 차올랐기에 피할 틈도 없었다.

발끝에서 느껴졌던 물은 어느새 내 머리를 넘어 동굴을 가득 채워버렸다.

수… 숨이….

익사의 공포에 잠시 허우적거렸지만,

얼레?

숨이 쉬어졌다.

분명 물 속인데 말이다.

슥.

조심스럽게 팔을 움직여 보았다.

조용히 물살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손바닥.

뭐지 이 느낌은.

몸을 감싸는 포근한 물의 기운이 느껴졌다.

숨이 쉬어진다는 걸 깨달은 후 찾게 된 여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물로 가득 찬 공간은 온통 푸른색이었다.

그리고 푸른색만이 존재하는 세상엔 나와 죽은 용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평온하다.

아니, 평온하다는 단어만으론 부족했다.

이곳에 있다면 어떤 위협이 닥쳐도 안전하다는 안정감.

태어나서 이렇게 평온하고 포근한 안정감을 받았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하아.

그렇게 물에 몸을 맡기고 있을 때,

[날 찾아와라.]

!!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있는 곳은 깊은 물 속.

물속에서 어떻게 소리가 들리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분명히 들리고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존재의 목소리가 말이다.

신기하네.

귀로 들린다기보단 내가 들어와 있는 물 자체가 진동하는 느낌이었다.

진동을 통해 온몸으로 목소리가 전달되는 신기한 감각.

우우우웅!

다시 한번 물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빛 한 점 없던 동굴로 눈부신 밝은 빛이 흩뿌려졌다.

[기다리고 있겠다.]

기다리겠다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흩뿌려진 빛에 몸이 집어 삼켜졌다.

* * *

번쩍.

눈을 뜨기 무섭게 들려오는 벌레의 울음소리.

하늘에선 별과 달이 조용히 자신의 빛을 뽐내고 있었다.

돌아왔구나.

고요함만이 가득한 구룡산의 정상.

철퍽.

왠지 몸이 무거운 느낌에 손을 들어 올려봤다.

몸과 옷이 폭삭 젖어있었다.

비늘을 만지기 전까지는 땀에 절여져 몹시 찝찝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깨끗하고 맑은 샘물로 한바탕 몸을 헹구고 나온 느낌.

상쾌하구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왼 손바닥을 바라봤다.

여전히 들려있는 청색의 비늘.

역할을 다 한 건지 비늘에선 더 이상 보랏빛이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안 사라졌네.

황금빛을 뿜어내던 리볼버나 면도칼처럼 사라질 거라 생각했는데.

비늘은 사라지지 않은 채 달빛에 반사된 영롱한 청색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

잠시간의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진 후.

웃챠.

몸을 일으켰다.

비늘을 만지기 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반갈죽 되어 널브러져 있는 크럭커와 이빨 자국이 남은 바위까지.

- 날 찾아와라.

몸으로 전달되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100%는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만진 비늘의 주인, 청룡.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뒤 구룡산을 포함, 이 일대의 자연을 만들어낸 장본인.

손으로 구룡산의 바위를 어루만졌다.

비늘에서 본 동굴.

이 아래다.

얼마나 깊숙한 곳에 위치한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구룡산이었다.

황금색 빛은 무기를 얻을 수 있는 빛.

보라색 빛은 무기를 찾아가는 흔적… 인건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했다.

마지막엔 무언가가 들려오긴 했지만, 처음에 죽어가던 용은 나란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었다.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말을 걸어왔던 잭과 보니의 공간과는 달랐다.

보라색 빛을 따라가면 황금색 빛이 존재한다… 인가?

“으음.”

복잡해지는 머리에 턱을 어루만졌다.

만약 진짜라면 보라색 빛을 따라 도달한 곳에 있는 건 황금빛.

그리고 황금빛과 공명을 통해 들어갈 장소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는 건 용일 확률이 높았다.

쩌… 쩐다.

턱에 닿아있는 손으로 미세한 떨림이 찾아왔다.

용과의 대화라니.

이거 인류 최초 아니야?

최초.

가슴을 떨리게 만드는 단어였다.

히죽.

그렇게 김칫국을 사발로 마시며 웃고있던 중.

“아!”

크럭커에게 나서기 전 켜뒀던 액션 캠이 떠올랐다.

혹시나 이걸로도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켜놨던 것.

호다닥.

바로 귀 옆에 있던 소형 카메라를 떼어내 가장 최근 영상 재생을 눌렀다.

슉슉슉.

크럭커에 관련된 영상은 빠르게 넘겼다.

이런 부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다.

비늘을 향해 손을 뻗기 직전.

과연 비늘을 통해 들어갔던 공간이 찍혔을 것인가.

발라당.

?

안 찍혀있었다.

비늘을 만지는 영상을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향한 곳은 하늘.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카메라가 움직였다.

내가 공간에서 나온 시점.

공간에서 보낸 시간은 못해도 최소 20분이었다.

역시.

면도칼과 리볼버 때도 느꼈었는데, 역시나 공명을 통해 다른 공간에 들어가 있는 동안엔 현실의 시간이 멈추는 듯했다.

흠.

카메라에 공간이 찍히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남들과 함께 볼 수 없어서 아쉽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두근.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오로지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

오로지 나만이 볼 수 있는 공간.

오로지 나만이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쩐다, 그것도 미친 듯이 쩐다.

“나… 나이써!”

공명 최고!!

스스로의 능력에 취해 나이스를 연발하는 사이.

부스럭.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직 누군가 올 만한 시간이 안 됐을 텐….

온몸에 피를 묻힌 채 내게 다가오고 있는 남자.

하운드의 입에서 핏덩이 째로 나왔던 잭을 연상시키는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그건 무기왕의 능력에 의한 고유 공간.

지금은 리얼, 현실이었다.

“꺄….”

너무 놀라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작은 소리를 내뱉은 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 * *

순식간에 정상까지 도달한 기태랑.

기태랑이 한쪽에 앉아있는 백운을 발견했다.

‘!!’

그런 백운의 옆에서 반쪽으로 갈라진 채 내동댕이쳐져 있는 크럭커.

‘올라올 때 본 건 역시….’

하늘로 치솟는 탄환을 본 후.

다급하던 기태랑의 마음에선 작은 여유가 생겨났다.

어째서 여유가 생겼는지는 아직도 모를 일이지만, 그냥 생겨났다.

왠지 모르게 크럭커와 싸우고 있을 남자가 멀쩡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런 기태랑의 직감은 적중했다.

물에 빠진 생쥐마냥 온몸이 폭삭 젖긴 했지만, 어찌 됐든 별 상처 없이 혼자서 주먹을 움켜쥐어 대고 있는 백운.

‘별 상처는 없어 보이는데,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혼자 나이스를 외치며 허공에 어퍼컷을 날려대고 있으니.

누가 오든 의심할만한 장면이었다.

스윽.

인기척을 느낀 걸까.

어퍼컷을 날려대던 백운이 기태랑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

눈동자가 커짐과 동시에 백운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든 말든.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백운에게 걸어가는 기태랑.

기태랑은 궁금했다.

등장부터 개미굴을 쓸어버리고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크럭커까지 잡아낸 남자, 백운.

어떻게 그런 화력을 뿜어낼 수 있는 건지, 그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10급 헌터에 지원을 한 건지.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저벅.

서로의 얼굴이 완벽하게 보이는 거리.

백운에게 말을 걸기 위해 기태랑이 입을 열려는 순간.

“꺄….”

“?”

꺄.

처음 만난 두 사람 사이에 첫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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