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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6화 (26/473)

26화. 선택

꺼내든 걸 든 채 윤슬이 손을 내밀었다.

쿠욱.

등 뒤로 찔러져 오는 무언가.

‘?’

예상과 다른 감각에 유탈라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윤슬의 마음을 약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애써 돌아보지 않고 있던 상태였다.

‘!’

윤슬의 손에 들려있는 건 칼이 아니었다.

급하게 깎아 만든 것 같은 나무 조각상.

서툰 솜씨로 깎여 울퉁불퉁했지만, 조각상이 뭘 나타내고 있는지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유탈라스와 윤슬.

“뭐 하는 짓이냐.”

“어허, 기껏 만들어서 가져왔는데 뭐 하는 짓이냐니. 선물이야.”

유탈라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승천 직전임에도 역린을 찾기 쉽도록 기껏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선물이라니?

“천 년을 기다려온 승천, 축하해.”

윤슬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진심으로 승천을 축하하는 얼굴.

평소와 같은 맑은 미소였다.

유탈라스가 가장 좋아하는, 가장 보고 싶어했던, 그런 미소.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잠시 후면 난 너를 잊는다. 이런 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느냐.”

“상관없어.”

“뭐?”

“율이 너한테는 아주 잠깐의 여흥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니다.’

“아주 작고 작은… 하찮은 시간이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게 아니다.’

“매일 혼자 황무지에 버려져 있던 나에겐 정말 즐겁고 소중한 시간이었어.”

싱긋.

‘나에게도 정말 소중하고 행복한….’

“율아, 네가 잊더라도…. 내가 기억할게. 그건 내 자유잖아.”

“난….”

우우우우!

시간이 되어서일까.

하늘이 유탈라스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때가 됐으니 데려가겠다는 하늘의 뜻이었다.

으득.

그런 하늘의 힘에 마음을 다 잡은 유탈라스.

유탈라스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마을을. 동생을! 포기할 셈이냐!”

“!!”

만난 이후 처음으로 소리를 지른 유탈라스.

그런 유탈라스의 고함 섞인 말에 윤슬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어갔다.

“알고… 있었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우우우우웅!!

하늘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현명한 선택을 해라! 윤슬!!”

다급해하는 유탈라스와 달리, 윤슬의 얼굴로 다행이라는 미소가 어렸다.

‘그래서 그렇게 매정하게 굴었던 거구나.’

선택.

윤슬 역시 알고 있었다.

너무 소중해 만지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작은 동생, 오랜 시간 부족함 없이 사랑을 준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까지.

그리고,

이제 곧 영원히 떠나갈, 함께 했던 기억 따윈 금세 잊어버릴 매정한 용.

머리에선 당연히 전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윤슬이 고개를 들어 다급해하는 유탈라스를 바라봤다.

“천 년을 기다린 용, 율아. 그러는 넌. 현명한 선택을 했니?”

“!”

유탈라스의 말문이 막히고, 그런 유탈라스를 보며 윤슬이 시원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둘 다 바보네.”

우우우우웅!

더 강력해진 하늘의 힘이 유탈라스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안녕, 내 친구야.”

‘안….’

마지막 인사를 하는 윤슬을 뒤로하고, 하늘로 떠오른 유탈라스의 몸이 원래의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 * *

‘안돼.’

완전히 청룡의 모습으로 변한 유탈라스.

멀어져 가는 윤슬을 보며 유탈라스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멈추어라, 빌어먹을 하늘아!”

황폐화된 환경의 마을에 미래 따윈 없었기에, 이대로 승천해버리면 윤슬은 죽는다.

그리고, 원망받을 것이다.

가족과 마을을 버리고 한낱 용 따위를 택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윤슬은 원망받으며 비참하게 죽어 갈 것이다!

“멈춰라아아아!!”

온 힘을 다해 하늘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우웅.

잠시지만 멈춰진 몸.

유탈라스가 아래에 있는 윤슬을 바라봤다.

‘살린다.’

머리가 시키는 선택이 아닌, 마음이 가리키는 선택을 한다.

‘살려야 한다.’

선택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 둘 다 바보네.

‘바보라….’

스윽.

유탈라스가 역린이 있는 턱 아래로 발톱을 가져갔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천 년을 기다렸는데 이런 선택을 하다니.

“!!”

아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윤슬.

이상한 낌새에 무언가를 눈치챈 윤슬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지마!! 율아!!”

푸우욱.

“하지마!! 안돼에에!!”

절규에 찬 윤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쩌적.

관통된 역린을 시작으로 유탈라스의 몸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우…우….

점점 약해지기 시작한 하늘의 힘.

승천의 자격을 잃은 유탈라스를 하늘이 포기한 것이었다.

스아아아아!!

힘을 잃은 유탈라스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멀리서 그런 유탈라스를 보며 소리 지르고 있는 윤슬.

‘살거라.’

죽음을 직감하며 유탈라스가 눈을 감았다.

‘내 친구여.’

* * *

“여기까지가 나의 이야기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들려준 유탈라스.

이야기는 끝났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스스로 선택한 거였구나.

친구를 위해서.

“그런 표정 지을 것 없다.”

나도 모르게 슬픈 표정을 지은 듯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옛날이야기니까.”

천 년.

백 년도 아니고 천 년이다.

천 년을 애타게 기다려놓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다니.

“바보 같은 선택이라 생각하느냐?”

질문을 건넨 유탈라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자문자답을 마친 유탈라스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염치없지만 하나만 더 물어보마.”

유탈라스의 얼굴로 호기심이 어렸다.

“내가 죽은 자리엔 생명이 생겨났느냐?”

생겨났죠.

작은 풀 수준이 아니라 거대한 산들과 강이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구나. 자. 그럼 지금까지 케케묵은 이야기를 듣느라 고생 많았다. 이젠, 내가 무언가를 줄 차례구나.”

유탈라스가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사아아아!

들어 올린 유탈라스의 팔로 모여드는 청색의 용 비늘.

“나를 천 년 동안 지켜온, 그 무엇에도 뚫리거나 부서지지 않는 나의 비늘이다.”

팔을 옮겨 내 머리에 손을 올리는 유탈라스.

“내 모든 힘이 담겨 있는 보물. 너에게 주마.”

청명한 색의 비늘이 내 몸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항상 후회 없는 선택을 하거라.”

서서히 빛의 입자로 흩어지는 유탈라스.

유탈라스의 입가로 시원한 미소가 어렸다.

“나 또한 내가 한 선택에 있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으니.”

* * *

물이 가득 차 있는 구룡산의 공간.

공간 속엔 더 이상 용의 뼈도, 뼈를 감싸고 있던 푸른 비늘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나의 무기고 공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무수히 많은 용의 비늘들.

마치 생명을 가지고 있는 듯한 영롱한 청색의 비늘이 공간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엄청나구만.

용이 실재한다는 걸 본 것도 모자라 용의 비늘까지 얻다니.

면도칼과 리볼버까지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무기의 범주였다.

하지만, 용의 비늘은 예상외였다.

무기고의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일까.

새삼스레 카이안의 능력에 한계란 게 있긴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공간 자체를 가득 채우고 있던 수많은 무기들.

까마득하구만.

카이안의 발끝에라도 따라가려면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스윽.

고개를 내려 산소통의 수치를 체크했다.

마지막 데몬 거북의 공격으로 하나 남아있던 산소통마저 잃어버린 상태.

지금 입에 물고 있는 게 마지막 산소였다.

딸깍.

제트모터를 다시 가동 시키고 아래로 방향을 틀었다.

돌아갈 때다.

* * *

얼마나 왔을까.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물길의 출구가 보였다.

물길의 출구이자 다시 옹달샘의 범위로 들어가는 입구.

망설임 없이 입구를 통과해 위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은 산소는 기껏해야 10분.

조금이라도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꿀렁.

이 거북이 새끼 왜 안 나오나 했다.

저 멀리서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가 보였다.

조금 전까지 용을 보고 와서인지 왠지 모르게 귀여워 보이는 크기.

머릿속으로 저놈에게 휘둘렸던 장면이 떠올랐다.

구룡산 옹달샘에 들어와 겨우 거북이 한 마리에게 목숨까지 위협받았던 순간.

간신히 물길로 몸을 숨겨 위험에서 벗어났음에도, 속에서부터 끓어 올랐던 분한 마음 까지.

부우우우우우!!

날 발견한 건지 거북이가 빠른 속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흠.

상황만 놓고 보면 무척이나 절망스러웠다.

보니와 리드의 리볼버는 쿨타임에 걸려 있어 꺼낼 수 없었고, 면도칼은 꺼낸다 한들 제대로 휘두를 수도 없는 상황.

돌격해오는 거북이를 피해낼 산소통도 더 이상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았다.

잠시 후면 저 거대한 데몬이 내게 부딪혀 뼈를 부셔놓을 텐데도 말이다.

후우.

오히려 거북이를 대면하고 있는 마음은 절망보단 평온에 가까웠다.

죽기 전엔 평화가 찾아온다고 하던데.

그래서일까?

아니면.

꽈악.

죽지 않을 거란 확신 때문일까.

수우우우웅!

서서히 거북이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니와 리드의 리볼버조차 뚫지 못했던 단단한 등딱지.

그런 등딱지가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머리를 노린다 해도 숨어버리겠지.

리볼버의 탄환을 피할 정도로 녀석이 머리를 숨기는 건 찰나의 순간이었다.

노린다 해서 맞출 수 있는 부위가 아닌 것.

원래라면 이미 내게 도달하고도 남았을 거 같은데.

이상하게 시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것 같았다.

휙.

날 이끌던 제트모터를 옆으로 던진 후, 기다리기 시작했다.

내가 올라가는 걸 막는 거북이 새끼.

부우우우우!!!

엄청난 속도로 코앞까지 다가온 거북이.

꼭 내가 가는 길을 막아야겠다면.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처 부숴주마.

[유탈라스 - 1단계 의태]

물에 반사된 용의 비늘이 오른팔로 모여갔다.

손가락 끝부터 어깨 위까지 빠짐없이 감싸지는 비늘.

오른팔로 지금까지 없었던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확신이 들었다.

이 오른팔에 부딪히는 게 뭐가 됐든, 다 박살 낼 수 있다는 확신.

드루와라, 거북아.

다가온 거북이를 향해 오른팔을 휘둘렀다.

[용 발톱]

콰아아아앙!!

* * *

파바바바박!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발장구를 쳤다.

우웁.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부족해진 호흡.

파바박. 파악.

“푸하아아아아!!”

간신히 도달한 옹달샘의 끝.

부족했던 산소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호흡을 했다.

엉금엉금.

지긋지긋한 옹달샘을 벗어나 뭍으로 기어 올라왔다.

풀썩.

대자로 뻗은 뒤 산속의 맑은 공기를 즐겼다.

새삼스레 느껴지는 공기의 소중함.

“하아.”

드드드.

누워있는 지반으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푸화아악!!

옹달샘의 물과 함께 거대한 물체가 솟아올랐다.

산산조각 나 생명이 다한 거북이의 잔해들.

스윽.

고개를 돌려 솟아오른 잔해를 바라봤다.

씨익.

“거북이 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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