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무기왕이 헌터로 회귀했다-27화 (27/473)

27화. 형아가 쏜다

가볍게 물놀이만 해도 허기가 몰려오는 게 국룰이라고 했었는데.

그래서인가보다.

뒤지겠다.

옹달샘 속에서 개고생을 한 뒤 긴장이 풀린 시점.

미친 듯한 허기가 찾아왔다.

꼬로로로로록!!

배꼽시계가 울리는 정도가 아닌 폭동을 일으키기 직전.

당장 뭐라도 안 넣어주면 난리가 날 것 같았다.

부스럭.

급하게 가방을 뒤졌지만 나오는 거라곤 뽀글이를 해 먹고 남은 쓰레기뿐이었다.

초코바도 올라오는 길에 다 먹어버린 상황.

군대 야간 행군 전날, 미리 나눠 준 초코바와 건빵을 못 참고 다 처먹은 뒤 당일 날 개고생했던 게 떠올랐다.

어떡하지.

풀이라도 뜯어 먹어야 되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두둥실.

옹달샘 위에 떠올라 있는 거북이의 잔해가 눈에 들어왔다.

- 위험한 상황에선 데몬도 훌륭한 단백질이랍니다!

인터넷 동영상에서 보던 데몬 먹방이 떠올랐다.

야생으로 가 닥치는 대로 데몬을 사냥해 구워 먹던 먹부림 헌터.

생각해 보니까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됐잖아.

과학지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났다.

데몬의 종류에 따라 못 먹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론 비슷한 과의 동물과 다를 것 없기에 먹어도 무방하단 실험이었다.

꼴깍.

한참 물에서 고생을 하다 나와 젖어 있는 몸.

몸으로 불어오는 산 바람에 체온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었다.

으슬으슬한 듯한 느낌이 바로 그 증거.

지금 상태에서 거북이 고기가 우려낸 뜨끈한 육수 한 입을 먹는다면?

천국이다.

옹달샘으로 입수 전에도 깨닫지 않았던가.

뽀글이 국물 한 모금에서 느껴졌던 그 행복감.

거북이탕이라면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을 터였다.

스윽.

마침, 혹시 몰라 챙겨왔던 버너도 있다.

완벽하다.

사사삭!

빠르게 흙을 파고 그 안으로 버너를 넣었다.

그리고 불의 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버너 위에 냄비를 올렸다.

거북이탕 답게 등껍질을 냄비 대신 쓰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탄 사례를 받으면서도 안 깨졌던 껍데기다 보니 두께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산산조각이 나있지만 말이다.

서걱. 서걱.

옹달샘으로 가 거북이 고기를 먹기 좋게 썰고, 탕을 끓일 샘물을 떠왔다.

샘물이 1급수를 넘어 0급수 수준이란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아는 사실.

의구심이 드는군.

버너를 켜서 끓이고 있으면서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아무 조미료도 없이 들어간 거라곤 거북이 고기와 샘물이 끝.

과연 사람이 먹을 만한 게 나올 것인가.

보글보글보글.

어느새 팔팔 끓기 시작한 거북이탕.

고기로서의 제 역할은 하는지 뽀얀 육수가 잘 만들어지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뻗어 고기 약간과 국물을 떠올렸다.

제발!

후릅.

홀리…!

* * *

[잭 더 리퍼]

서걱! 서걱! 서걱!

데몬들을 빠르게 베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힘이 불끈불끈 솟는 구만!

대짜리 냄비 하나를 게 눈 감추듯 삭제 시켜버렸다.

그래서인지 온몸에 거북이탕의 뜨끈함이 가득 퍼져 있었다.

오, 면도칼 꺼낸 채로 왔더니 금방 왔네.

올라갈 때와는 달리 짐도 많이 줄어든 상태.

거기다 면도칼로 인해 속도까지 향상되니 순식간에 구룡산의 입구가 보이고 있었다.

사아아.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면도칼을 해제했다.

“키리리릭!”

!!

우연인지 노린 건지 모르겠지만 면도칼의 해제 순간을 노리고 달려드는 데몬 한 마리.

다 왔다고 생각해서 면도칼을 해제했는데 큰일이었다.

라고 하는 건 오늘 낮까지의 나였다.

[잭 더 리퍼]

푸확!

다시 꺼내든 면도칼로 데몬의 혈관을 끊은 후 가볍게 입구로 착지했다.

씨익.

손에 들려있는 면도칼을 바라봤다.

무기들 중에서는 가장 짧은 쿨타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한 시간 이상이라 항상 아껴가며 꼭 필요한 때에만 꺼내왔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무기고로 유탈라스의 비늘이 추가된 이후.

잭 더 리퍼의 면도칼엔 더 이상 쿨타임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앞으론 꺼내고 싶을 때 마음껏 꺼낼 수 있게 된 것.

든든하구만!

쿨타임이 약간이라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건 천지 차이였다.

이전보다 계획을 세우고 싸우는 데 있어 훨씬 여유와 안정감이 생기게 되었다.

거기다 구룡산에서 새로 얻게 된 유탈라스의 비늘.

처음엔 의아했었다.

이게 무기라고 할 수 있는 건가?

굳이 따지자면 방어구로 분류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같은 의문들.

하지만, 그 의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 콰아아아아앙!!

유탈라스의 비늘이 감긴 오른 주먹과 무서운 속도로 돌진하던 거북이가 맞닿은 순간.

거북이가 등껍질을 앞세워 그렇게 빨리 돌진해 왔음에도 내 주먹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나의 오른손엔 용의 비늘에 의한 엄청난 단단함과 인간으로서 낼 수 없는 엄청난 괴력까지 더해져 있었다.

- 퍼엉!

물론, 거북이를 박살 내기 무섭게 비늘은 해제됐지만 말이다.

위력이 강한 만큼 짧은 사용 시간.

앞으로 어떤 무기가 나올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무기에 적용될 듯한 법칙이었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다.

내가 사용했던 건 1단계 의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용의 힘이 그 정도일 리가 없었다.

아직 자격이 없다는 거겠지.

분명 훨씬 더 강한 힘이 깃들어 있음에도 내가 사용하진 못하는 상태.

사용하려면 그에 맞는 자격을 갖추고 오라는 무기고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꽈악.

아직까지 남아있는 거북이 분쇄의 손맛.

싱긋.

나도 모르는 사이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멀었지만, 나아가고 있었다.

멈춤은… 없다.

* * *

어째서일까?

분명 멈춤은 없을 터인데.

난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을 텐데.

“맥반석 계란 다섯 개랑 뚱바 두 개요.”

“뚱… 뭐라고요?”

“아, 죄송합니다. 저기 바나나 우유요. 통통한 거.”

“아아, 7000원입니다.”

삑.

계란과 바나나 우유 두 개를 움켜쥔 채 몸을 돌렸다.

왜지?

어째서 내 잠자리는 발전하긴커녕 더 후퇴한단 말인가.

호텔에서 찜질방이라니.

뭐, 어제까지 호텔에서 잔 거야 특수 케이스로 봐야 하지만 말이다.

아니야 아니야, 찜질방이 뭐 어때서.

앞에 놓인 만족스러운 야식을 바라봤다.

갈색빛을 띠며 맥반석에 잘 구워진 계란과 시원한 뚱땡이 바나나 우유까지.

빠른 손놀림으로 계란을 까 입으로 집어넣었다.

으음!

그나저나 배에 거지가 든 걸까.

조금 전에 거북이탕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웠는데 또 계란을 집어넣고 있다니.

아닌가?

어쩌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찜질방에 왔는데 맥반석 계란과 뚱바를 그냥 지나친다? 이게 잘못된 일일지도.

계란을 우물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꽤 큰 규모의 찜질방인데도 불구하고 손님이 나 하나뿐이다.

아, 맞다.

오늘 평일이지.

더군다나 이곳은 구룡산 근처의 찜질방.

주말 등산객이 주 손님일 텐데 평일에다 지금은 출입 금지까지 당했으니.

계란 더 팔아드려야겠다.

꾸욱.

- 크워어어!

액션 캠에 녹화된 영상을 재생시켰다.

옹달샘으로 올라갈 때와 다시 내려올 때 데몬을 잡았던 영상.

으음. 지워야겠지?

적지 않은 숫자를 잡아서 아깝긴 했지만.

대놓고 진입 금지 명령이 내려진 산으로 들어간 거니 당당히 제출하기가 찜찜했다.

난 10급이긴 하지만 어쨌든 공무원이니까.

문제 될 짓은 하지 말아야지.

끄덕.

현명한 선택을 지지하며 삭제 버튼을 눌렀다.

옹달샘으로는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었기에 거북이에 대한 기록은 되어있지 않은 상태.

그래서인지 삭제해야 하는 아쉬움은 훨씬 덜 했다.

그런데 그 거북이 뭐였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구룡산에 그딴 새끼가 있다니.

웬만한 데몬은 도감을 통해 다 봤었는데.

옹달샘에서 마주쳤던 건 처음 본 녀석이었다.

수륙 거북이가 아니라서 옹달샘 위로 기어 올라오기라도 했다면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났겠어.

크럭커가 B등급인 걸 감안했을 때 거북이는 최소 A는 될 것 같았다.

등딱지 때문에 화기가 먹히질 않았을 테니 웬만해선 상대가 안되는 것도 당연한 일.

뭐, 그분이 오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1급 헌터, 기태랑.

거북이 등딱지가 아무리 단단해도 다이아몬드보단 약할 테니 쉽게 처리했을 것 같았다.

나도 다음에 만나면 싸인해달라고 해야지.

헌터 지사에서 만났던 김민희의 반응을 보니 기태랑의 인기는 엄청난 것 같았다.

싸인이라도 받아 놓으면 나중에 요긴한 협상 재료로 사용할 수도 있을 듯….

짝!

계산적인 인간이 다 됐어, 이거.

스스로의 세속적임에 고개를 내젓는 사이.

짤랑.

찜질방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손님이 들어왔다.

“마지막에 궁 오졌지?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무슨 개소리야, 내 이니쉬가 지렸지. 그거 아니었으면 졌음, 인정?”

왜 이런 산 근처 찜질방에, 그것도 다음날 학교 가야 하는 중학생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섯 명은 시끌시끌한 목소리를 뽐내며 찜질방 안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아, 이 새끼가 학교 얘기만 안 했어도 계속했을 텐데.”

“그니까, 그 아저씨 우리 민짜인 거 아예 몰랐는데.”

짐작해본 건데 청소년임을 숨기고 게임하던 PC방에서 쫓겨난 듯 했다.

좋을 때 구먼.

오래된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니 흐뭇한 표정이 지어졌다.

나도 왼손의 흑염룡이 깃들었던, 엄청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었다.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니며 허구헌날 치고 박고 싸우….

뻥.

…?

데굴데굴.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는 찰나, 조금 전까지 내 앞에 있던 뚱바가 저 멀리로 굴러가고 있었다.

“앗 죄송.”

조금 전 들어온 중학생들이 장난치다 모르고 차버린 모양.

장난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다시 제대로 갖다 주기만 하면.

“형, 받으세요.”

툭!

데구르르.

저 멀리 간 뚱바로 달려가더니 다시 발로 차버리는 중학생 B.

“이리에스타급 패스네.”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욕탕으로 향하는 녀석들.

이리저리 차인 채 처량하게 놓여 있는 뚱바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뚱바를 괴롭히는 건 못 참지.

오랜만에 왼손의 흑염룡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스윽.

“거기 중딩들.”

“…?”

뭐냐는 듯 동시에 내 쪽을 바라보는 다섯 명의 중학생들.

“일루 와바.”

* * *

오독.

이 사이로 이물감이 느껴졌다.

“똑바로 안 깔래?”

“죄… 죄송합니다.”

“야. 똑바로 까.”

옆에 있는 친구를 격려하는 중학생 B.

- 그러다 다칩니다. 얘가 강동구 돌주먹이에요.

돌주먹이라던 녀석은 사실 돌 손톱이었다.

오른쪽 엄지 손톱이 돌인 능력.

그래서인지,

“너는 잘 깐다.”

“가… 감사합니다!”

칭찬에 신이 났는지 중학생 C가 더 열심히 계란을 까기 시작했다.

스윽.

조용히 계란을 까던 중학생 D가 친구를 돌아봤다.

“이거 무기왕이었으면 면도칼로 껍떼기 남은 거 하나 없이 벌써 다 깠다, 인정?”

“인정이지.”

“킹정이지, 다 까고도 백 개 더 깠지.”

?

“뭐라고?”

잠시 흠칫 놀라던 녀석들 중 하나가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줬다.

“형, 무기왕 모르세요? 요새 완전 인기 터지는 헌터인데.”

얼떨떨한 기분으로 동영상을 시청했다.

# 아가리 벌려라.

# 탄 들어간다.

“크으… 뒤진다.”

“나 저 부분 백 번은 돌려본 듯.”

“지렸다. 빨리 욕탕 들어가야 됨.”

뭐야 이거.

심장박동 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동영상 밑에 달린 수천 개의 댓글.

그리고 그 옆에 믿기 힘든 숫자가 적혀있는 조회수까지.

조… 조회수 41만?

조회수와 응원의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 영상에는 후원금 제도가 존재하는데, 세금을 제하고는 모두 영상을 제공해주신 헌터에게 돌아갑니다.

10급 헌터 등록 때 만났던 접수관의 설명이 떠올랐다.

호다닥!

거의 날다시피해 카운터로 달려갔다.

“뭐… 뭐시여!”

갑자기 날아들자 당황한 주인 아주머니.

“자… 잔액 조회 좀 할게요!”

“난 또 뭐라고! 깜짝 놀랐네.”

가슴을 쓸어내린 아주머니가 기계를 건넸다.

삐빅.

두근두근.

조회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심장이 두근거렸다.

후원금이 꼭 있으리란 법은 없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삑.

허..

잔액: 32,000,000.

하마터면 입에 있던 계란이 튀어나올 뻔 했다.

크럭커 처치 보수로 받은 게 천 만.

거기서 옹달샘 가느라 이것저것 쓴 게 사 백.

2천이 넘게 후원금이 들어왔어?

“총각, 괜찮아?”

걱정스러운 듯 질문을 건네는 아주머니와,

“저 형 왜 저래?”

“좀 이상한 사람 같은데.”

잘못 걸려도 제대로 잘못 걸렸다며 좌절하는 중학생 5인방까지.

후우.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주인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아주머니.”

“이잉?”

“여기 계란이랑 뚱바, 그리고 핫바까지 다 주세요.”

“!?”

고개를 돌려 열심히 계란을 까준 5인방을 바라봤다.

“애들아, 와서 다 먹어.”

“!?”

씨이익.

“형이 쏜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