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장점도 있어
띠리리 --
“네 전수희입니다. 찾으셨나요?”
전화를 받기 무섭게 질문을 건네는 전수희.
덤덤하게 물었지만 전수희는 간절히 빌고 있었다.
‘제발 찾았다고 해!’
지금 온 전화에서마저 이전과 똑같은 답이 들려온다면.
- 백운이란 남자, 데려오세요.
망했다고 봐야 한다.
개미굴 때문에 크게 깨진 뒤 아직 만회하지도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 … 죄송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죄송하다는 사과가 들려왔다.
‘망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죄송하다니.
“흔적이라도 없나요? 사람이면 뭐라도 있을 거 아니에요. 카드 사용 내역이라던가, 아니면 주소지라던가”
# 그게… 없습니다. 주소지도 없고 어디를 갔다고 특정할만한 정보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근 결제 발생은 있는 거 같습니다만….
“안 내어주겠죠.”
국가와 대산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맞지만, 소속원의 개인정보 만큼은 예외 사항이었다.
겉으로는 뉴스에 나와 악수를 하고 하하호호 만찬을 즐기지만 뒤에선 조직에 도움이 되는 인재를 빼내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헌터니까.’
인재 중에서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계열, 헌터.
좋은 능력을 가진 헌터의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못해도 가진 능력만큼은 조직에 도움이 되었고, 더 나아가 플러스 알파가 있다면 도움을 넘어 조직의 이미지와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장님이 데려오라고 한 거 보면 영입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어떻게 최리아의 머릿속을 다 헤아리겠냐만은.
저렇게 직접 데려오라 말한 거 보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마음엔 안 들더라도 대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한 것.
‘하긴 지금 조회수 터진 거만 해도 충분히 쓸만한 가치가 있지.’
쿵.
‘그러면 뭐하냐고. 내가 못 찾는데.’
전수희가 책상으로 머리를 박아 넣었다.
‘난 무쓸모야.’
절망스러웠다.
최단 시간에 찾아서 실장 최리아에게 조금이라도 이쁨을 받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인간이 연기도 아니고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산단 말인가.
‘이름이라도 알아서 다행인 건가.’
물론 다른 기업보다 앞서 나가는 점은 있었다.
개미굴로 같이 향했던 대산 직원, 이대현과 전국현.
두 사람이 백운의 이름을 들어놨기에 그나마 헌터 무기왕이 백운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벌떡!
‘포기하지 말자 전수희!’
포기하기엔 최리아에게 혼나는 게 너무 무서웠다.
촤락.
전화번호부에서 연락처를 검색했다.
이대현과 전국현.
전국현은 모르겠지만 이대현이라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개미굴에서 그런 개고생을 했으니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딸칵.
# 네, 대산 대외협력 1팀입니다.
“헌터 이대현 님 바꿔주세요!”
* * *
후룹.
“조오타.”
바쁘게 오가는 직장인들을 보며 마시는 따듯한 커피 한 모금.
한껏 여유까지 추가되니 커피가 한층 더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3000만원.
흐뭇.
찜질방에서 잔액을 확인한 이후 계속해서 마음이 풍요로웠다.
뭐랄까.
인생에 한층 여유가 생긴 느낌이랄까.
역시 사람은 돈이 있어야 돼.
돈이 없을 때는 뭔가 살 때마다 가격표를 확인하고, 이 돈이면 아끼면서 며칠을 더 살 수 있는데 라고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사주는 행위 역시 불가능.
하지만, 오늘 새벽은 달랐다.
- 형이 쏜다.
껄렁하긴 하지만 놓고 보니 착했던 중학생 오인방.
녀석들의 건강을 위해 고단백 식품인 맥반석 계란과 핫바를 잔뜩 사주고 왔다.
- 혀… 형님!
형에서 형님으로 호칭이 바뀌는 마술.
이런 맛에 누구를 사주는 건가 싶었다.
덕문 어르신한테 50만원도 드렸고.
줄 돈도 다 줬기에 더 나갈 돈도 없었다.
원래는 스킨 스쿠버 가게로 가서 엄한 화기를 판 것에 대한 피해 청구라도 할까 했었는데.
됐어, 뭐더러 그래. 놔둬!
금융 치료를 받으며 한껏 유해진 내 마음이 발걸음을 막아 세웠다.
어딘가 다친 것도 아니었고 원하던 무기까지 얻어 왔으니 해피엔딩 아니던가.
집도 구하긴 해야 되는데.
언제까지 찜질방 신세를 질 순 없었다.
무릇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의식주 정도는 필요한 법.
굳이 서울일 필요는 없으니까.
무기가 서울에 몰려 있는 것도 아니었고, 10급 헌터를 유지하려면 어딘가로 출근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데몬이야 어느 지역에든 다 있었으니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가능.
굳이 집값이 하늘을 찌르는 서울에 방을 구할 필요는 없었다.
“너 이거 봤어?”
“뭔데 뭔데?”
“이거 한튜브에서 조회수 터진 무기왕!”
구룡산에 박혀 있느라 몰랐었다.
별 생각 없이 제출했던 동영상이 이렇게 핫해져 있을 줄은.
의식을 해서인지는 몰라도 잊을만하면 계속 무기왕이란 단어가 들려오고 있었다.
묘하구만.
내가 겪은 상황을 누군가 보면서 재밌어하고 있다니.
뭔가 몸이 간질간질 해지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후원금 명목으로 목돈까지 들어오니 일석이조.
흐음.
물론, 이게 마냥 잘된 일인지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
굳이 본명을 숨긴 채 닉네임을 사용하며 동영상에서 내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했던 이유.
혹시나 동영상이 퍼져 너무 많은 이들이 내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될까 걱정해서였다.
스타가 될 수도 있지만 공인은 그만큼 언행을 조심해야 하니까.
남의 눈을 의식하며 무언가를 조심하며 살 생각이 없었고, 살아야 한다고 해서 잘할 자신도 없었다.
무기를 구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욕 먹을 짓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면 당사자한테만 욕 먹으면 될 걸 사방에서 우수수 들어 먹어야 했다.
지금 가장 잘 알려진 건 보니와 리드의 리볼버.
적색과 청색이 하늘로 뻗어나가다 보니 못 알아보는 게 불가능한 이펙트였다.
얼굴과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리볼버를 사용하는 순간 나를 무기왕으로 특정할 것이다.
끼익.
뭐.
복잡한 생각을 덜어내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정 안되겠으면 잠시 어디 산골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잠수 타다 오면 되는 거니까.
욕 먹을 짓을 안 하겠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함에 있어 욕 좀 먹는 게 두려워 망설일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는 게 꼭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야.
예상하고 터뜨린 건 아니지만, 어쨌든 널리널리 퍼지게 된 무기왕이란 이름.
불리한 상황만 생각해서 그렇지 마냥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서….
“배… 백운 님?”
옆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대현 님?”
개미굴에서 함께 했던 대산의 헌터 이대현.
이대현의 옆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찹쌀떡…?
작은 키에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 허리까지 땋아 내린 갈색 머리.
햇빛을 거의 안 보다시피 한 건지 찹쌀떡마냥 허여멀건한 피부를 가진 여자.
여자는 어째서인지 손을 바들바들 떨어대고 있었다.
“배… 백운…! 찾았다!!”
어떤 상황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현재의 장소와 여자가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을 보고 상황을 추측해볼 뿐이었다.
씨익.
무기왕이란 닉네임이 퍼지며 생길 수 있는 장점.
아마도 지금일 것 같다.
바들바들 떠는 전수희를 보며 몇 시간 전 찜질방을 떠올렸다.
* * *
찜질방을 나서기 전.
드륵.
찜질방에 있던 컴퓨터로 정리해뒀던 파일을 열어보았다.
헌터 테스트를 보러 갔다가 우연치 않게 발견하게 된 유탈라스의 비늘.
비늘을 무기고에 넣었으니 원래 계획했던 루트를 다시 진행할 때였다.
딸깍.
정리해뒀던 리스트 중 한 파일을 클릭했다.
헌터 테스트를 마친 후 찾으려고 했었던 무기.
비전 수리검.
내 무기고에 넣을 수 있는 무기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찾아볼 가치가 있는 무기였다.
수리검이 발견된 건 현 시점부터 약 2년이 흐른 뒤였다.
발견 장소나 과정 자체는 공개된 적이 없기에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길 가다 발견하거나 그런 케이스는 아닌 듯 했다.
2년 전부터 수리검에 대한 소식을 은근슬쩍 흘렸어.
경쟁자를 대비해 자신들이 뭘 찾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하진 않았지만, 이제 곧 어떠한 탐사가 결실을 맺을 것이며 기대해도 좋다는 말 등을 수차례 공표해 왔었다.
아마도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모은 뒤 사람들의 기대감을 위해 조금씩 흘렸던 것일 터.
타다닥.
검색창에 비전 수리검을 검색했다.
검색 건수: 0
0건이라니.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비전 수리검이 발견된 후 봇물 터지듯 올라오기 시작했던 관련 정보들.
당시 정보들의 내용과 양을 봤을 때 지금 시점에 이렇게 깨끗한 건 말이 안됐다.
관리하고 있는 건가.
비전 수리검을 찾고 있는 주체.
그리고 곧 찾을 주체.
그 주체가 비전 수리검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열심히 비전 수리검을 찾고 있을 그곳으로 접근해 정보를 얻어야 했다.
정확히는, 그들이 가지고 있을 실마리를 알아내야 했다.
비전 수리검이 황금색 빛을 띠는 무기라면 분명 실마리는 보라색 빛을 띠고 있을 터.
운이 좋으면 바로 황금색일 수도 있고.
그나저나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까.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서 비전 수리검 좀 보여주실래요?
하면 바로 어딘가로 잡혀가서 죽거나 미친놈 취급을 당할 테니.
자연스러운 접근법을 찾아야 했다.
톡. 톡.
손가락을 두드리며 모니터에 떠 있는 어제 자 기사의 부제를 응시했다.
# 유서 깊은 보물을 찾고 있는 기업! 뭔진 알려줄 수 없지만 거의 다 찾았다!
기업.
대산.
* * *
그래서였다.
대산의 본사 앞에 있는 카페를 찾은 이유는.
대산을 보며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의심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을까.
그리고,
들어봐야 명확해지겠지만.
앞에 있는 전수희의 반응으로 보아 의도치 않게 유명해진 동영상이 내게 길을 열어주려는 것 같았다.
“수희 님, 진정 좀 하세요.”
“아…! 죄송합니다.”
이대현의 만류에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전수희.
뭔지는 모르겠지만 날 열심히 찾은 모양이었다.
“절 찾으셨나요?”
맑고 순수하고 깨끗한,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심호흡 중인 전수희를 바라봤다.
물론 눈과 상반되게 속에선 구렁이 한 마리가 먹이를 기다리며 똬리를 틀고 있었다.
부디 내가 생각하는 게 맞기를.
“후우…!!”
심호흡을 마친 전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찾았습니다.”
개미굴 영상이 뜬 후에도 가만히 있던 대산이 지금 날 찾는다는 건, 무기왕 동영상 때문일 확률이 크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스윽.
조심스럽게 몸을 내민 전수빈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잠시 얘기 좀 하시죠.”
“….”
“무기왕 님.”
콰득.
넓게 벌려진 구렁이의 입 속.
그 속으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들고 있었다.